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3)
전화벨이 울렸다.
타란티노 감독의 전화였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해 달라고 했잖아요. 해 지겠네!
타란티노 감독이 투덜거렸다.
해가 진다고?
늦잠을 잔 건가?
어젯밤 새벽 2시에나 잠이 들었다.
밤 12시쯤 타란티노 감독이 시나리오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음성 파일을 보내왔고, 앞부분만 듣고 자려다가 끝까지 들었다.
곧바로 타란티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옐로우’ 배역을 맡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타란티노 감독은 우혁이 ‘옐로우’ 배역을 맡겠다는 말에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계약을 하자고 성화를 부렸다.
우혁이 계약은 서둘 것 없지 않겠느냐고 하자 타란티노 감독은 자기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라며 캐스팅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우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달이 난 타란티노 감독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기에게 전화를 달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우혁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어나기도 전에 타란티노 감독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시간을 확인했다.
6시 40분.
“미국은 아침 6시 40분에 해가 지나 보죠?”
–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자는 거요? 이렇게 게으른 배우는 처음 보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타란티노 감독, 앙탈을 부린다.
“잘 주무셨어요?”
– 잘 자고 있는 사람을 어떤 인간이 전화를 해서 깨우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어요.
“한숨도 안 잔 거예요?”
– 통화 끝내고 잘 거요. 졸려 죽겠어.
“그럼 주무세요.”
– 통화하고 잔다잖아.
“말씀하세요.”
– 어제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죠?
“촬영은 6개월 뒤부터 할 수 있다는 것까지 얘기했던 것 같은데요.”
– 그건 좋다고 얘기했고. 촬영은 여기서 할 거예요. 당신이 미국에 와야 된다는 얘깁니다. 올 수 있지요?
“설마 제가 한국의 우리 집 안방이 아니면 촬영 안 할 사람으로 보였나요? 당연히 미국에 올 겁니다.”
농담을 했는데 반응이 없다.
– 촬영 기간은 1년 이내. 오케이?
“좋아요.”
촬영 기간 동안 아내와 민서를 미국에 데리고 올 생각이다.
아내와 민서 없이 1년을 혼자서 생활한다?
생각도 하기 싫다.
– 다 집어치우고, 출연료 얘기부터 합시다. 얼마 생각하고 있어요?
“화이트와 블랙 배역을 맡은 배우만큼 받을 생각입니다.”
– 미쳤군!
“세 사람이 같은 비중의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 화이트가 누군지 알아요?
“누구죠?”
– 레오나드 디카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렇군요. 블랙은요?”
– 윌 스미스!
“두 사람 중 출연료 낮은 사람의 70퍼센트 맞춰 줘요.”
– 50퍼센트!
“70퍼센트!”
– 60퍼센트!
“70퍼센트!”
– 50퍼센트, 아니 10퍼센트만 줘도 하겠다는 배우가 60억이야!
타란티노 감독이 어금니를 앙다문 채 씹어 뱉었다.
아무리 흥분해도 그렇지 60억은 심했다.
세계 인구가 75억인데.
“그럼 그 배우한테 ‘옐로우’를 맡기세요.”
– 빌어먹을! 대신, 최대한 빨리 계약해!
“왜 그렇게 서두르시죠?”
– 당신이 한국으로 달아나서 안 오면 어떡해? 북한으로 숨어 버리면 어떻게 찾아?
“하하하하하!”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그런데 출연료 문제를 왜 감독님이 신경 쓰지요?”
– 제작사에 배우가 얼마를 원하는지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오. 이제부터 난 제작사 놈들하고 싸워야 한다고! 그놈들이 원하는 사람은 기무라야.
“이렇게 하시죠. 감독님한테 제 출연료 문제는 완전히 맡기겠습니다.”
– 갑자기 왜 이래?
“감독님이 좋아졌어요. 어떤 조건이더라도 이 영화 출연하겠습니다.”
– 진심이에요?
“진심입니다.”
진심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먼저 진심을 보였으니 우혁으로서도 진심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 강! 날 믿고 기다려 줘요. 최소한 50퍼센트는 맞춰 볼 테니까. 70퍼센트는 장담 못하겠어요. 하는 데까지 해보겠지만.
“아침 식사하셨어요?”
– 잘 거라니까!
“그럼 주무세요.”
– 한국에 잘 가요. 북한으로 넘어가지 말고. 권처럼!
[길 밖의 새> 주인공 권혁철을 말하는 모양이다.“걱정 마세요.”
– 옐로우 캐스팅이 빨리 끝나야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 한 달까지 못 기다려요. 제작사와 딜을 한 뒤에 결정되자마자 한국으로 날아갈 겁니다.
“그렇게 하시죠.”
***
한국에 귀국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타란티노 감독이 우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 내일 한국 갑니다. 계약할 거니까 준비해 줘요.
“제작자 설득하셨어요?”
– 설득? 세계적인 감독은 제작사에 설득 같은 거 하지 않아요. 내가 이 배우하고 하겠다, 그러면 끝나는 겁니다.
아닐 것 같은데···.
인천공항 도착 시간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 뒤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그때 또 한 통의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었다.
시놉시스를 이메일로 전송했으니 검토한 뒤에 통화하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처가댁에서 만났을 때 이미 약속을 한 일이지만 막상 시놉시스가 도착했다니 걱정스러웠다.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톤 감독의 작품을 읽지도 않고 거절하는 게 죄송스러워서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
시놉을 읽고 최대한 빨리 답변을 주는 게 도리일 것 같아 곧바로 원고를 다운받아 읽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보내준 것은 A4 용지 15매 정도 분량의 스토리 트리트먼트였다.
읽기도 전에 스톤 감독에게 해야 할 거절 멘트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트리트먼트를 다 읽고 나서 멘붕에 빠져 버렸다.
“미치겠네!”
우혁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백곰이 그 모습을 보고 우혁에게 물었다.
“왜 그래, 형?”
“홍길동이 부럽다.”
“갑자기 웬 홍길동?”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분신을 만들고 싶다는 거야? 왜?”
“좀 전에 올리버 스톤 감독의 트리트먼트를 받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백곰도 스톤 감독이 시놉시스나 시나리오를 보내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내용인데?”
내용은 간단했다.
미국 거주 한국 이민 2세의 인종 차별을 다룬 영화였다.
제목은 [위대한 시민>.
타란티노 감독의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는 인간의 보편성에 관해 다루고 있다면 [위대한 시민>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주인공 ‘용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은 20여 년 전 LA 한인 타운.
백인 경찰의 과도한 대응으로 흑인 청년 ‘토미’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목격자는 없다.
그렇게 흘러갈 뻔했는데, 목격자가 나타난다.
바로 용호.
용호는 부인과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늦은 퇴근을 하던 용호 부부는 지나가던 토미를 불러서 마구잡이로 폭행하는 경찰을 보고 놀라서 숨는다.
토미는 용호의 식당에 들어와 돈을 훔쳐 달아난 적이 있는 동네 말썽꾸러기다.
그렇지만 경찰에게 맞아 죽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
용호 부부가 목격한 장면은 누가 봐도 과잉 진압이었다.
용호 말고도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
아빠가 신문 기자인 백인 소녀 앤.
앤이 그 장면을 아빠 헨리에게 말하고, 헨리는 이 문제를 기사화한다.
LA가 발칵 뒤집어진다.
경찰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한다.
사진도 없고 목격자도 없다.
그렇게 되자 사건을 보도한 헨리가 곤경에 처한다.
신문 기사를 읽은 용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하다가 단골인 헨리에게 자신이 본 것을 털어놓는다.
용호의 등장으로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고, 다른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큰 이슈가 된다.
그 와중에 용호의 식당은 두 번이나 강도를 당하고, 누군가의 방화로 보이는 화재를 겪기도 한다.
KKK단 청년 회원들이 한 짓이다.
동네 사람들도 용호의 식당에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용호는 푸드트럭을 하며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법정에서 사실대로 증언한다.
헨리와 언론의 노력으로 용호의 증언이 사실임이 밝혀진다.
경찰도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KKK단 청년 회원들은 앙심을 품고 용호의 푸드트럭을 노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민들이 푸드트럭과 용호를 보호한다.
푸드트럭을 감시하고 있다가 KKK단 청년들이 다가서면 호루라기 소리를 내고, 사람들이 푸드트럭으로 몰려든다.
헨리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KKK단 청년들이 용호 가게에 불을 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KKK단 청년들은 법정에 서게 되고 결국 방화범으로 밝혀진다.
제목 [위대한 시민>은 주인공 ‘용호’와 ‘용호’를 지키려는 시민들이다.
우혁은 스톤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혁!
전화번호를 입력해 둔 모양이었다.
스톤 감독이 반가운 목소리로 받았다.
“[위대한 시민>을 읽었습니다.”
– 잠깐만요. 장소를 좀 옮길게요. 사무실이 조금 시끄러워서 말이에요. 우혁이 제 원고를 읽었다니 긴장되는군요. 자, 이제 말해 봐요. 조용한 곳에 도착했으니까.
“두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작품에 출연한다면 어떤 역할을 맡기실 건지 궁금합니다.”
– 당연히 ‘용호’죠.
“주인공 ‘용호’의 실제 모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까지 제가 만든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요. [위대한 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용호’의 실제 모델 있습니다. 이성욱 회장님!
역시!
– 푸드트럭 근처 차 속에서 소형 카메라를 들고 KKK단 청년들이 나타나면 촬영을 하며 쌍욕을 퍼붓는 백인 청년이 등장하는데 기억나나요?
“이름이 쿠엔트였던가요?”
– 그 청년은 타란티노 감독이 모델입니다.
그러고 보니 타란티노의 퍼스트 네임이 쿠엔틴이다.
쿠엔틴을 쿠엔트라고 살짝 바꾼 모양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모델이라구요?
-쿠엔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쿠엔트 역은 무조건 잘생겨야 한다고 떼를 쓰더군요. 자기 배역의 배우는 자기가 캐스팅하겠대요. 브래드 피트를 우정 출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난리에요. 그 친구는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브래드 피트하고 자기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타란티노 감독! 귀여운 줄은 알았는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 25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제 와서 왜 25년 전의 일을 영화로 만들려고 하느냐고요?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거든요. 아주 유사한 일이 벌어졌어요. 최근 들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조짐이 보여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미국인
으로서 이 문제를 방관할 수만 없었습니다. 트리트먼트를 집필하면서 ‘용호’ 역할을 할 만한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우혁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난 겁니다.
“‘용호’ 역을 하고 싶습니다.”
–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 쿠엔틴의 시나리오를요? 그 친구가 우혁에게 완전히 빠졌나 보군요. 시나리오 주는 친구가 아니거든요.
시나리오 음성 파일 마지막에 타란티노 감독의 육성 담겨 있었다.
– 강! 잘 들어요. 이건 농담 아닙니다. 이 시나리오가 유출된다면 당신 머리통에 구멍을 100개쯤 낼 거예요. 제발 조심해 줘요.
“타란티노 감독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 잘 생각했어요. 좋은 감독입니다. 난 읽지 못했지만 보나마나 좋은 시나리오일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 트리트먼트 읽고 ‘리’ 배역도 탐이 납니다. 출연하고 싶습니다.”
– 그게 무슨 문제예요. 둘 다 출연하면 되지요.
“촬영 일정이 겹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요.”
– 둘 다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세요. 쿠엔틴한테 이 얘기를 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거예요. 그러면 [위대한 시민>을 선택하겠다고 말하세요. 쿠엔틴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알았다. 둘 다 하자!
– 절대 당신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걱정할 거 없습니다. 일정을 우리 쪽에서 조절하면 됩니다. 쿠엔틴 그 친구, 나처럼 일정 질질 끌지 않아요. 순식간에 찍어 버리죠. 그런데 완성도는 나보다 훨씬 높지요. 쿠엔틴은 천재예요.
스톤 감독이 아버지처럼 느껴진다.
– 우혁! 어쩌면 이 영화가 내 마지막 영화가 될 수도 있어요. 내 나이 알지요? 천천히 만들 생각입니다. 쿠엔틴 영화 촬영 기간은 6개월을 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내 영화는 최소 1년은 걸립니다. 어쩌면 시나리오 완성까지 1년이 걸릴지도 몰라요. 내 영화만
하다가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다른 작품 출연하세요.
[ [위대한 시민> 스토리 트리트먼트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