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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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발표회
“지금 몇 시지?”
우혁은 밴에 오르며 백곰에게 시간을 물었다.
“새벽 4시가 지났어.”
백곰이 말했다.
“기다리느라 피곤했지?”
우혁이 백곰, 고현주, 송유미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따뜻한 차 안에서 쉬고 있었는데 뭘.”
“잠도 자고요.”
“오빠가 걱정이죠. 내일, 아니 오늘 오전 10시에 제작발표회도 있는데.”
백곰, 송유미, 고현주가 차례로 말했다.
오늘 촬영은 예상 시간을 훌쩍 넘었다.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첫 방 때문인지 문 피디를 비롯해 배우들이 모두 예민했다.
평소와 달리 대화들도 별로 나누지 않았고, 자기 역할만 할 뿐이었다.
촬영 기계들도 예민했던 것일까, 발전기가 말썽을 부리더니 그예 조명의 전구가 나가는 것으로 모자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고가의 장비가 망가져 버리기도 했다.
레일이 고장 나는 바람에 수리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멧돼지 때문에 촬영이 중지되는가 하면, 귀신 소동까지 벌어지면서 촬영장 분위기가 흉흉했다.
분위기 메이커인 무통 역의 천승재와 마숙 역의 마동춘도 오늘은 분위기를 띄우는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분위기를 띄우기는커녕 오히려 험악하게 만들었다.
자잘한 사고들이 이어지자 천승재가 투덜거렸다.
“첫 방 앞두고 왜 이래? 재수 없게!”
“그러게 말입니다. 시청률 바닥 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천승재 옆에 서 있던 마동춘이 천승재의 말에 호응했다.
그런데 천승재가 버럭 화를 냈다.
“시끄러!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몰라. 말을 해도···.”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재수 없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게 누군데.”
마동춘이 대거리를 했다.
늘 다투던 사람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의 다툼은 촬영장 분위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빨리 끝내고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조바심을 낼수록 계속해서 사고가 이어졌다.
NG를 좀처럼 하지 않던 우혁까지 NG를 냈다.
신을 찍으려고 하면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거나 스텝 중 누군가가 넘어지고, 대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상대 배우가 치고 들어왔다.
그중 정점은 멧돼지의 출현.
대사를 거의 마쳤을 때 화면에 멧돼지가 찍힌 것이다.
우혁의 실수로 생긴 NG는 아니라 해도 NG는 NG였다.
다른 배우들은 훨씬 심했다.
대사를 잊어버리고, 발음이 꼬이고, 동선이 엉켰다.
그러더니 결국 진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박예진이 발목 염좌 부상을 입은 것이다.
특재가 옷을 벗고 연못에서 멱을 감는 신까지는 순조로웠다.
남장 여자인 특재는 옷을 벗어 놓고 속곳 차림으로 연못 속으로 들어가 멱을 감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홍길동에게 당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기 위해 길동의 충복인 특재를 미행하던 양반집 자제 이 도령과 그의 졸개들.
이게 웬 떡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 도령 일행은 특재를 훔쳐보다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일을 꾸민다.
아무것도 모르는 특재가 멱을 감고 옷을 벗어둔 곳으로 나왔을 때 벗어 두었던 옷이 사라진 것을 깨닫고 놀란다.
그때 이 도령과 그의 졸개들이 나타나 특재를 에워싼다.
속이 훤히 비치는 속곳 차림의 특재는 여체를 감추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잽싼 몸놀림으로 놈들을 피해 달아난다.
쫓고 쫓기는 추격 신.
그 신에 이어 홍길동이 나타나 이 도령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특재를 구해 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얼핏 특재의 여체를 본 것 같아 이상하게 여기지만 어느새 특재는 이 도령의 옷을 입고 있어 잘못 본 것이려니 한다.
우혁은 이 도령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촬영 준비를 마치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나 버렸다.
추격 신을 찍다가 박예진이 엎어지면서 발목을 다친 것이다.
다행히 추격 신을 거의 다 찍었기 때문에 박예진이 더 이상 달릴 필요는 없었으나 여주인공이 다치는 건 대형 사고였다.
더구나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있지 않은가.
박예진은 사고 이후에도 남은 촬영을 끝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예진아, 괜찮겠어?”
우혁이 박예진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마. 이러다 심해지면 더 큰일이야.”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요.”
문 피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박예진은 괜찮다고 우기면서 빨리 촬영하자고 보챘다.
박예진은 압박붕대를 감고서 투혼을 발휘했다.
이후 장면은 박예진이 격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길동이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며 특재에게 같이 멱을 감자고 하지만 특재는 이미 멱을 감았다면서 거절하고 자기 앞에서 알몸을 드러낸 길동을 보고 얼굴을 붉힌다.
멱을 다 감은 길동이 물 밖으로 나와 옷을 입고 산길을 걷는 신을 찍어야 했는데 박예진이 잘 걷지를 못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신을 건너뛰면 다음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신을 찍기 위해 이곳에 와서 야간 촬영을 다시 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누구도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혁은 문 피디에게 다가가서 제안했다.
“특재가 걷다가 발을 삐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면 어떨까요? 할 수 없이 길동이 특재를 업고 가게 되는 거죠.”
“그거 괜찮네. 그렇게 되면 길동이에 대한 특재의 감정도 재미있게 잡힐 거 같고 말이야.”
문 피디가 우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 피디는 곧바로 장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쪽대본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장 작가가 대본을 수정하는 동안 다음 장면을 촬영했다.
길동과 특재는 움막에 도착해 좁은 공간에서 잠을 청한다.
금세 곯아떨어진 길동이 몸을 뒤척이다 특재를 껴안고, 특재는 놀라서 가슴을 콩닥거리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무리 없이 촬영하고 나서 대본이 도착했다.
연못 근처에서 특재가 엎어지고, 길동이 엎어진 특재에게 퉁을 주면서도 걱정스러운 듯 발목을 살핀다.
특재는 걸을 수 있다고 하지만 특재가 제대로 걷지를 못하자 구시렁거리면서 등을 내민다.
빨리 업히지 않고 뭐해? 길동이 특재를 윽박지르고, 특재는 할 수 없이 길동의 등에 업힌다.
길동이 특재를 등에 업고 산길을 걷는 장면을 찍으면서 문 피디는 매우 흡족해했다. 특재의 감정이 잘 살아났다며.
그렇게 촬영은 무사히 끝냈다.
스텝들은 우혁 덕분에 그나마 잘 끝낼 수 있었다며 속삭였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치고 밴에 올랐을 때는 어느새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형!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여.”
백곰이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송유미가 목 베개를 우혁의 목에 걸어 주었고, 고현주가 무릎 담요를 덮어 주었다.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던 문 피디가 마음에 걸렸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게 순조로웠던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편찮은 건 아니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이 피디에 의하면 문 피디가 시청률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다고 했다.
우혁은 길동이 특재를 업고 걷는 신을 찍은 뒤에 문 피디가 무심코 던진 말이 떠올랐다.
“아주 좋아. 결과 좋을 것 같아. 이러면 망하던데. 빌어먹을 징크스! 퉤!!”
***
집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 뒤 일어나 미용실로 가서 머리를 매만지고 제작발표회 장으로 갔다.
박예진이 먼저 와 있었다.
“다리는 좀 어때?”
박예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병원에 갔더니 며칠만 무리하지 않으면 나을 것 같대요.”
박예진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도착한 문 피디도 박예진의 다리 상태를 물었고, 박예진은 우혁에게 했던 대답을 똑같이 했다.
“그래?! 다행이구먼. 잘 됐어.”
문 피디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저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팬들이 보낸 쌀 화환 보셨어요?”
박예진이 우혁에게 물었다.
복도에 세워져 있는 화환을 보기는 했지만 누구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박예진 것이려니 했다.
박예진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 등의 폭넓은 팬들을 팬덤으로 가진 스타였다.
“내 것도 있나?”
“있나라뇨. 반은 오빠 거던데요.”
“반이나 된다고?”
설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아이고 우리 길동이 형님, 인기 좋네. 쌀이 1톤은 되겠어요.”
마동춘이 들어오며 말했다.
1톤은 과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1톤이 넘었다.
2톤을 넘긴 박예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화환의 숫자에서는 박예진과 비슷했다.
20킬로그램부터 500킬로그램까지 쌀 화환의 종류는 다양했다.
500킬로그램짜리는 우혁의 소속사 ‘나무’에서 보낸 것이고, 200킬로그램짜리 두 개 중 하나는 민환이가, 다른 하나는 팬클럽 ‘혁바라기’에서 보낸 것이었다.
혁바라기는 [서울 가로등>이 5회쯤 방송되었을 무렵 자연스럽게 생겨나 우혁의 팬카페로 처음에는 몇 명 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가입자가 많이 늘어났다.
개인 팬들이 보낸 작은 쌀 화환들도 10여 개쯤 되었다.
대부분 [서울 가로등>의 가로등지기 팬들인 듯했다.
드라마가 종영하고 나면 곧 잊히기 마련인데 이렇게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제작발표회 때 화환을 보내 주는 팬들에게 고맙고 또 고마웠다.
얼마 전 ‘혁바라기’ 카페 회원 중 한 사람이 우혁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다는 쪽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우혁은 옷이나 신발 등의 개인 선물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꼭 주실 생각이 있다면 쌀을 달라고 했고, 보내주면 쌀은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우혁은 같은 취지의 내용을 게시판에 남겼다.
쌀 화환은 이미 다른 연예인들의 제작발표회나 팬미팅 등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우혁은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소속사로 보내온 선물들도 있었는데 보낸 분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한 뒤 모두 필요한 곳에 기부했다.
팬들이 보낸 손 편지와 엽서, 이메일, 쪽지 등은 소중하게 간직했다.
연기가 잘 되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그 편지들을 읽으면 신기하게도 기분이 가벼워지고 힘이 생겼다.
우혁은 자신에게 보내온 화환을 보며 인기를 실감함과 동시에 책임감을 느꼈다.
팬들이 보내온 쌀의 무게만큼의 책임감.
보답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좋은 연기자가 되는 것.
***
제작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문 피디, 박예진, 권선자, 천승재, 마동춘은 객석을 향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다들 새벽까지 촬영을 한 탓에 조금 피곤해 보였다.
특히 문 피디는 다크써클이 무릎까지 내려와 있고 면도도 하지 않은데다가 인상까지 찌푸리고 있어서 보는 사람까지 피곤하게 했다.
우혁은 문 피디와 박예진 사이에 앉아 객석을 담담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 이럴 시간에 한 컷이라도 더 찍게 내버려두지.”
문 피디가 투덜거렸다.
“지금부터 [홍길동전> 제작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회를 찾아주신 기자님들과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제작피디이신 문웅현 피디님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문 피디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마이크를 귀찮다는 듯이 들어올렸다.
“사극, 그동안 많이 연출했습니다. 좋은 성과도 거두었구요. 몇몇 기자님들께서 고개를 들고 저를 쳐다보시는군요. 거짓말이기 때문이겠지요.”
객석에서 쿡쿡 웃음이 터졌다.
문 피디는 진지했다. 조금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리막길입니다. 그래프를 신뢰하시는 분들이라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제 성적을 보셨을 테고, 다음엔 낭떠러지라고 예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발표회장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꼴 보이지 않고, 이 드라마 판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드라마를 만들면서 한 가지 징크스가 있습니다. 망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면 대박이 나고, 대박 날 것 같다고 예상하면 망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어떠신가요. 망할 것 같겠지요?”
사회자가 밝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반전되기를 바라며.
“대박 날 것 같습니다.”
문 피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질문을 한 사회자가 당황했다.
문 피디의 징크스대로라면 [홍길동전>은 망한다는 말이 된다.
사회자뿐만 아니라 단상의 배우들도 서로를 쳐다보며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혁은 전혀 동요 없이 객석을 응시했다. 지난 새벽에 문 피디가 무심코 했던 징크스에 관한 말을 곱씹으며.
사회자가 수습을 하려고 애를 썼다.
“어제 새벽 4시까지 촬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디님께서 잠시 착각을 하신 모양입니다. 거꾸로 말씀하신 거죠, 피디님?”
기자들과 천승재, 마동춘이 미소를 지으며 문 피디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요. 대박 날 것 같습니다.”
문 피디가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천승재와 마동춘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문 피디가 덧붙였다.
“좋은 배우들 덕분에 즐겁게 촬영했고,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사실인 걸 어쩌겠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묘합니다. 바라건대 이번에는 제 징크스가 깨졌으면 합니다.”
작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문 피디의 부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징크스라는 말이 가진 불길함이 남아 있었다.
징크스라는 단어는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자, 그럼 홍길동 역을 맡은 강우혁 씨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가 서둘러 우혁에게 소감을 물었다.
“소감 말씀드리기 전에 여기 참석해 주신 분들께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항아리가 있을까요?”
우혁의 질문은 다소 뜬금없었다.
분위기가 반전되길 바란 사회자도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마이크를 입에 떼었다 붙였다 할 뿐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우혁의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읽었는지 기자 중 한 사람이 미소를 지었다.
그 기자는 바로 [생강> 제작발표회 때 민환을 꿩에 비유하고 우혁을 닭이라 했던 꿩닭 기자였다.
“없습니다.”
꿩닭 기자가 대답했다.
우혁은 꿩닭 기자에게 목례한 뒤 말을 이었다.
“대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항아리는 없을 것입니다. 징크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항아리와 마찬가지로 결국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이지요. 문 피디님의 징크스, 이번에 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우혁의 말이 끝나자 꿩닭 기자가 박수를 쳤다. 혼자 치는 것으로 만족 못했는지 전후좌우 사람들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마치 제작사에서 심어 놓은 박수 알바처럼.
꿩닭 기자의 박수에 동조하면서 박수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특히 천승재와 마동춘은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쳐댔다.
“홍길동 파이팅!”
천승재가 외쳤다.
오른쪽에 앉은 박예진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권선자 선생은 ‘우리 홍길동이 말도 잘한다.’ 하시며 우혁의 등을 토닥였다.
문 피디의 징크스 발언 때문에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우혁이 깨끗이 지워준 것이다.
제작피디의 징크스 발언은 첫 방을 앞둔 연기자들에게는 불안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멋있는 비유는 아니었으나 우혁으로서는 다른 연기자들의 찝찝함을 조금이라도 지워 주고 싶었다.
“자, 그럼 이제 소감 말씀해 주십시오.”
사회자가 우혁에게 소감을 요청했다.
“저는 시청률 결과에 연연하고 싶지 않습니다. 피디님께서 낭떠러지를 걱정하셨습니다.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청률은 낭떠러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피디님의 작품과 연출력은 결코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영원히 드라마 역사에 남을 것이고, 후배 연출자들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박수가 쏟아졌다.
우혁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문 피디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우혁이 박수를 치자 잦아들던 박수가 다시 커졌다.
문 피디는 자리에 일어나서 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문 피디가 만감이 교차하는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한 것이다.
눈물을 글썽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속이 상했구먼. 속이 상했어.”
권선자 선생이 문 피디의 마음을 짐작하며 눈가를 훔쳤다.
배우들 사이에서 발이 넓기로 유명한 권선자 선생은 그 내막을 알고 있었다.
함께하자고 하면 두 말 않고 달려올 줄 알았던 배우들과 스텝들이 문 피디의 제안을 거절했다.
문 피디가 무서워서이기도 하지만 내리막길을 걷는 피디와 함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팠을 것이다.
박수는 한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