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대장장이 (3)
“이 아이를 제자로 삼거라.”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진다.
제자? 뭐 때문에?
정말로 고작 가위 하나 때문에?
“···영광일 따름입니다.”
신이라니. 그것도 헤파이스토스라니?
“그래··· 영광이란 말이지. 좋다. 스클레오스, 그 기물은 어떻던가?”
“써본 건 어제 뿐입니다만 꽤나 유용하더군요.”
아마 이 시대라면 가위란 저 멀리 이집트, 아니면 더 멀고 먼 메소포타미아에서나 볼 수 있을 물건일 것이다.
이 물건의 정체를 알고 있으려면 그 머나먼 바다 건너나 동방의 문물에 훤해야 할 텐데, 멀리 나다니지 못하는 대장장이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명색이 신인 헤파이스토스 역시 가위에 대해 몰랐다는 점은 놀라웠다. 고대 그리스라는 영역 안에서만 노는 신이라 그런가.
아무튼 가위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려는지 헤파이스토스는 다시 손가락을 튕겨 가위를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나와 스클레오스를 번갈아 내다보더니 한숨을 쉰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아이의 거취를 어째야 할지 고민해보게. #$@#$@ 왕의 눈에 띄면 안 될 테니까.”
···무슨 왕?
“일단 $@#$% 왕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안 될 테니, 양치기인 부모와 함께 지내다가 가끔씩 저희 대장간에 마을의 물건을 맡기는 척 돌아다니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일세. 좀 더 생각을 가다듬어 보고···.”
한낱 양치기의 아이가 국왕의 이름을 들을 일은 분명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 깨달았다.
내 귀에 제대로 안 들리는 게 내 이름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이제 이 나라 왕의 이름까지 무슨 노이즈가 낀 것처럼 알아듣기가 힘들다.
더 정확히는, 분명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는 알겠지만 그 발음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이다.
“얘야.”
“어··· 아, 예? 헤파이스토스 님?”
“우리가 너를 거두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왕의 눈에 띄면 네게도, 우리에게도 모두 안 좋은 일이 될 테니 네게 기술을 가르치는 건 아주 비밀스럽게 진행해야 할 거다.”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다. 너희 마을 사람들 정도야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으니 알아도 상관 없겠고, 알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 밖의 외부인들이 알게 된다면 큰일이 날 테다.”
어째서지?
“···자세한 설명은 자네에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 님.”
“스클레오스, 자네가 기본기부터 잘 가르쳐주게. 다음부터는 내가 자네 대장간으로 직접 찾아갈 테니 아이에게 가르침을 전할 시간만 잘 정해두게. 성벽 밖에도 작업장이 있었지?”
“예, 사람들 눈에 안 띄게 그쪽에서 작업을 진행해보도록 하죠. 동료들에게도 말해놓겠습니다.”
“그래··· 좋아···. 가끔씩 조수로도 데리고 다니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좋을 걸세. 부모가 물건 값을 지불하지 못해 자식을 얼마간 빌려주는 식으로 팔았다든가.”
헤파이스토스는 흡족하단 듯 답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선다.
[스클레오스, 무엇보다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게.]그의 모습이 점차 흐릿하게 변하다가 이내 대리석상과 겹쳐지며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꼬마야.]다시 웅대하게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어쩐지 아까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다음에 다시 보자꾸나.]그리고,
광휘.
처음 보았을 때의 위압감이 점차 돌아오면서 헤파이스토스가 있던 자리로부터 화산 같은 열기와 빛이 쏟아졌다.
거기에 이기지 못하고 뒷걸음질치며 눈을 가리다 다시 겨우 시야를 회복했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 설명받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왜 왕의 눈에 띄면 안 되는지, 왜 대장장이 일을 배우는 걸 비밀로 해야 하는지.
내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는 걸 안다는 듯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헤파이스토스 님의 다리 형태가 기억나니?”
“왼쪽이 유독 짧고, 뒤틀려 있었죠.”
“그래. 맞다.”
걸으려면 절뚝거리지 않을 수가 없고 똑바로 서려고 한다면 지팡이를 필요로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
“제, 제가 알기로는 헤파이스토스 님의 어머니이신 헤라 님께서···”
“···신을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그 이야기는 알고 있다고? 네 말이 맞다. 신기하구나.”
둘 중 하나를 찍었는데 맞춘 모양이다.
헤파이스토스의 다리에 관한 설화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제우스와 헤라의 말다툼에서 헤라 편을 들었다가 성난 제우스가 지상으로 집어던져 그때 다리를 다쳤다는 설.
다른 하나는, 제우스가 아테네를 낳은 데 경쟁심리를 느낀 헤라가 혼자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가 못생겨서 지상으로 집어던져서 다쳤다는 설.
아마 이 세계에서는 후자가 정설인 듯했다.
스클레오스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미소는 이내 고소(苦笑)로 변한다.
잠시 입을 다물고 싸물한 침묵만을 발산하던 스클레오스는 조용히 덮고 있던 외출용 망토를 걷어 자신의 다리를 보였다.
헤파이스토스와 똑같이, 왼쪽 다리가 손상된 절름발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스클레오스의 쓴웃음이 짙어진다.
“그렇다면 내 다리가 왜 이런지는 알고 있니?”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린 견습생일 때, 왕과 귀족들은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우리를 모아놓고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스클레오스는 순간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저 비슷한 눈빛들을 많이 보았다.
보통 저런 상태를 현대인에게 익숙한 용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대장장이들은 그 주인 되시는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불구의 고통을 겪고 계신데 어찌 그 종복으로서 고통을 나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주입된 그대로를 찍어내듯이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왼쪽 다리에 자리한 화상자국을 쓰다듬는다.
아주 오래 전에 아문 듯한 상처임에도 마치, 아직도 그곳에서 피와 진물이 흐르고 있는 듯 스클레오스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찌푸리고 몸을 움찔거린다.
아마 심리적인 고통이리라.
“모두, 핑계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러지 않으면 발목이라도 잘라버린다고 위협했으니까.”
스클레오스가 말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인다.
“대장장이 한 명 한 명의 존재가 곧 수백의 장정들을 무장시키고 하나의 소도시를 먹여살릴 수 있는 힘을 지닌단다. 우리들의 앎과 우리들이 체득한 기술이 곧 부와 권세를 주고.”
“···.
“···그, 아무튼 권세가들이 대장장이들의 재주를 독점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지. 혹시 대장장이들이 새 주인을 찾아 떠나기라도 하면 막심한 손해가 되니까.”
그래서 다리를 분지르고, 인두를 대어 지져버려 그 성장을 멈추게 한다. 근골을 뒤틀어 고통 속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네가 대장간의 일을 배운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란다. 알겠느냐?”
스클레오스의 말에 나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되고 싶었던 건 신의 가호를 받는 고소득 고급 기술자지, 평생을 새장 속에 갇혀사는 누군가의 장난감이 아니다.
스클레오스와 헤파이스토스의 말은 그런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막아주겠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러니 아직은 네가 $%%^# 왕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네가 대장간 일을 배운다면 꼭 비밀리에 이뤄져야 할 테고, 반드시 네가 원해서 이뤄지는 일이어야 돼.”
스클레오스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어떠냐? 나와 함께 쇠를 다루는 법을 배워 보겠느냐? 방금 말했듯 정말 위험한 일이다. 거부해도 좋다. 내가 헤파이스토스 님께 말씀드릴 테니.”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잔혹하고, 성급하며, 이기적이다.
일반적인 다른 신들은 제자로 삼으려던 이가 제안을 거부한다면 죽이거나 끔찍한 저주를 심으리라.
그렇지만 내게 다가왔던 헤파이스토스를 보며 느껴졌던 것은 오히려···
다정함, 연민, 배려심과 이타심···.
그는 나를 간절히 돕고 싶어했다. 고작 가위 하나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대장장이로서의 기술을 배워볼 것인가?
아니면 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조용히 산골에 묻혀 양치기로 살아갈 것인가?
얼마 전까지의 내게 이런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잠시의 고민조차 없이 바로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내가 바라던 건 평화롭고 단조로운 삶이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이 세상이 날 그렇게 내버려둘까?
고작 축제 때 혼자 다녔다고 죽음의 위기를 겪었는데? 그때 그 불가사의한 순간들은 여전히 내게 두려움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지금처럼 신의 눈에도 띄었다면, 내가 언젠가 무심코 보여줄 미래의 지식이나 행동거지가 누군가의 주의를 잡아끌 일이 없을까?
술 한 모금 마시려다가 반역자로 잡힐 뻔했던 것처럼.
평생 동안 두려워하면서, 몸조심하면서 살아남기도 어렵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노예일 뿐이다. 주인이 죽이려면 죽일 수 있는 재산일 뿐이란 말이다.
“배우겠습니다.”
내가 쥘 카드가 필요하다.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다 혹시나 위험에 처했을 때, 내 몸을 보전하게 만들 특별한 기술이 하나쯤 필요하다.
이 시대에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대장장이라는 신분과 야금술은 내게 살아남을 기회를 줄지 모른다.
“···그분도 널 마음에 들어하셔서 다행이구나.”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내 대답을 듣고는 피식 웃으며 머리카락을 헝클어주었다.
“아주, 아주 기특해. 어린 놈이 울거나 겁먹지도 않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
“감사···합니다.”
“넌 네가 무슨 결정을 내린 건지 아마 알지도 못할 게다. 아주 위험한 일이야. 그래도 괜찮겠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는 더 세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까 신전까지 뛰어올 때는 급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다리의 상처가 계속 눈에 띄었다.
나는 시선이 그쪽으로 가지 않도록 고개를 돌렸지만, 아저씨는 내가 고개를 돌린 이유도 알고 있는 듯했다.
“자, 가자꾸나. 너희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셨을 테니, 앞으로 네가 찾아올 곳만 알려주고 내가 집으로 바래다주마.”
절뚝거리며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신전에서 걸어나갔다. 기운이 빠진 듯 아까보다 절뚝거리는 정도가 좀 더 심해졌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열린 문 너머, 도시의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내가 갈 곳은 아주 예전에 버려진 대장간이다. 내 아버지 대에나 쓰이던 곳인데, 전쟁이 몇 번 나고나서는 대장장이들을 성벽 안으로 빠르게 대피시키려고 옮겼지.”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속삭이듯 말했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혼자 찾아오기는 힘들 테니 너희 부모님 정도한테는 말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한테는 위치를 밝히면 안 된다. 네가 대장간 일을 배운다는 사실은 말해도 그 위치를 밝혀서는 안돼.”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
“그래.”
그렇게 짧게만 답한 뒤, 대장장이는 성문을 넘었다. 성벽을 수비하던 병사들이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꽤 오래 걸어가야 할 테니 다리가 아파도 좀 참아주렴. 그쪽으로 가려면 아마··· 북쪽이던가?”
스클레오스는 내 한 쪽 손을 잡고서 앞장을 섰다. 처음에는 포장된 큰 길로 다니다가 어느새 흙투성이의 오솔길로 빠지고, 그 뒤로 한참 지나자 흙도 없이 그저 풀밭이었다.
“길이 여기서 끊기는데, 이제 저기 숲만 지나면 된단다.”
“···절대로 그냥 들킬 일은 없겠네요.”
“그렇지? 아마 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 중 이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건 나랑 내 대장간 동료들뿐일 게다.”
한참이나 내 허리까지 오는 풀들을 헤치고 걸었다. 머리 위로는 빽빽하게 하늘을 매운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서 그나마 덥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열리고 다시 태양광이 머리 위로 내리쬔다.
“으으으으차! 여기다!!”
-끼기기기기긱.
돌쩌귀가 비명을 지르며 관절을 비틀자 겨우 문이 열린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먼지 냄새가 훅, 하고 들어오는 바람에 한동안 콜록거려야 했다.
곳곳에는 거미줄이 커튼처럼 늘어졌고, 뽀얀 먼지는 무슨 카펫마냥 깔려있었다.
“청소가 조금 필요하겠는데. 다음에 올 때는 걸레라도 들고 와야 하겠어.”
···조금?
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멋쩍은 듯 웃으며 머리 뒤쪽을 긁는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곳이라 그렇단다. 일단 오늘은 뭐가 어디 있는지 정도만 알아보고 돌아가자꾸나.”
뭐, 대단할 건 없었다.
이런저런 모양의 먼지 낀 거푸집과 먼지 낀 선반, 먼지 낀 화로와 먼지 낀 모루와 먼지 낀 망치와 먼지 낀··· 어우.
“쿨럭! 쿨럭! 카아아악··· 퉤!”
어른이라도 견디기 힘든 탁한 공기였는지 스클레오스 아저씨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한 뒤에야 다시 시설 소개를 이어갈 수 있었다.
“저기 저곳에 원래 패다놓은 장작과 목탄을 놨었지. 지금은 구멍이 막혀 있지만 저쪽이 바람구멍이고···”
“저기, 저 문은요?”
“무슨 문? 어··· 어라? 저기 저런 게 있던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먼지가 안 낀 문.
모든 것이 허름하고 삐뚜름한 이곳에서, 탁자는 다리 길이가 서로 안 맞아 덜컹이고 문은 아귀가 안 맞아 여닫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로 잰 듯 말끔한 마감.
“난 본 적이 없는데.”
그렇겠지.
원래 없었을 테니까.
이 세계가 신화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뭔가 이상한 확신이 감돌기 시작한다. 저 문은 원래 이곳에 속하지 않았었다. 저 문은···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청동으로 된 경첩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문 너머의 광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건, 기대 이상인데.”
문 안으로 들어온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