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대장장이 (2)
“아니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늦으셨어요?”
“미안, 미안하다. 아버지가 만나뵈야 할 분의 저택으로 가려면 도시 중심부를 지나야 하는데, 그 포세이돈 신전 부근에서 또 무슨 일이 또 나서.”
“뭔데요?”
“어떤 바보들이 신전의 공물을 훔쳤지 뭐니?”
내 몸이 멈칫, 하고 굳는다. 아버지가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잇는다.
“포세이돈께 진상되었던 어패류에 손을 댄 모양이야. 뭐 지금은 문제가 해결된 듯싶지만.”
뭔데. 또 어떻게 ‘해결’당했는데.
“그, 다들 죽었나요?”
“그렇지.”
“신전 사제들이 죽였나요?”
“그럴 필요도 없었어.”
아버지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포세이돈께서 직접 처리하셨거든.”
마침 그 도시 중심부를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참이었다.
“보시오, 동료 시민들이여! 신성을 모독한 자들이 결국 이러한 최후를 맞이하였소! 세상의 모든 파도와 조류를 지배하시는 분께서 내리신 분노를 보고, 그 결과를 가슴에 새기시오!!”
···와우.
“저게, 그 바보들의 시체 맞아요?”
“아마 그럴게다. 일단 돌아서 가자. 하필 여기다 걸어놓을 줄은··· 평소에는 외곽 성벽에 걸어놓더니만. 미안하구나. 너희 엄마한테도 얘기해줘야지. 많이 무서워 할 텐데···”
사람 몸이 어우, 삼지창으로 찍은 듯이 어우··· 거기에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으로 흉터들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야만의 시대. 잔혹한 살인 의식은 우리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시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집에, 가요.”
이 미친 세상.
그냥 전원생활에 만족하며 살자.
***
탈출을 포기한 뒤로는 약간 마음이 찝찝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어쩌면 괜한 시도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로마 제국도 인육만 안 먹었지 인신공양은 상식이었고, 신대륙 환경상 생산력이 딸려 문명 발전이 지체되던 아즈텍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니까 고대 로마보다도 더, 더, 더, 고대인 지금에는 뭐가 더 낫겠나? 지금은 중원과 한반도에서도 순장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참이다. 그러니 내가 있는 이 시대의 상식에 발맞춰···
“끄아아아아아아아!!!”
“괜찮니?”
“요새 악몽이 더 심해지는 모양이네. 신전에서 약이라도 타올···”
“괜찮아요. 저는 완벽하게 멀쩡합니다.”
그래. 나는 정상이다. 암, 암, 신께 바치는 제물에 손을 댔으면 죽어야지. 신성 모독한 그놈들이 먼저 잘못한 거다. 그리스 신들이 얼마나 쪼잔하고 성질이 뭐같은데 겁도 없이.
나는 자체 최면세뇌 현지문화 동기화를 마친 뒤 부모님께 미소로 답했다.
그제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부모님은 다시 누웠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장간에 다녀온 이래 며칠 동안 별 일이 생긴 적은 없다.
도시 한복판에서 병사들한테 신성모독자로 잡혀가는 일도 없었고, 열심히 상태창을 외쳐보았으나 눈앞에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망상이었나···.’
하기사 환생이라는 게 비현실적이긴 한데 그렇다 해서 꼭 무슨 소설 속 주인공이 되거나, 뭔가 대단한 사건에 휘말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거, 일상물이란 것도 있지 않나?
‘조금 독특한 신앙’과 ‘약간 엄혹한 형벌 체계’를 가진 시대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적당히 눈 감고 익숙해지기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전근대 인구의 99%쯤을 차지할 농사꾼이나 유목민에게 닥칠 재앙이라 해봤자 자연재해나 전쟁뿐이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인구 밀도 자체가 적어서 흉년이 들거나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떼로 죽거나 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또 내가 사는 국가는 이야기만 들으면 적당히 강력하고 안전한 듯하니 전쟁의 위협도 없을 것 같았다.
이 분야에서는 양치기 노예 소년 주제에 알 수 있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기는 하다만 현대인의 지식으로 유추 가능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철이 귀한 시대에 축제 때마다 쇠로 바퀴축을 단 전차들로 전차 경주를 한다.
달리기 대회 우승자에게 꽤나 많은 철괴를 부상으로 준다.
근처의 토지도 꽤나 비옥한데, 해안을 끼고 무역까지 한다.
군사기술도 발전했고 살림도 나쁘지 않을 강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
전쟁이 나더라도 자유민들만 징집하니, 노예인 나는 안전하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 있다.
“그래··· 나만 가만히 있으면 별 일 없어. 나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로운 삶, 순탄한 삶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평생 직장(노예), 집세 없는 집(주인 소유), 거기에 살기 좋은 마을(사이비)과 좋은 이웃들(살인자들)이 있으니···
“그냥 이렇게만 살면 되겠지.”
물론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을 만났던 그때의 불안과 충격은···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고민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아버지는 약속한 기일이 다 되었다면서 대장간으로 떠났고.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꾸나.”
지난 번에 만났던 대장장이가 기다렸다는 듯 집에 찾아와 나를 납치했다.
***
당황스럽다.
“저기, 제가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말씀을 해주실 수···”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모르는구나. 나는 스클레오스다. 앞으로 그렇게 불러다오.”
“앞으로라니? 아버지는···”
“너희 아버지는 대장간에서 내 동료들이 잘 설득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거라.”
“어··· 설득이 다 안 끝났는데 절 데려오신 거예요? 아까 어머니한테 드린 말씀하고는 좀 이야기가 다른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렇다.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도 사정을 듣고 나면 다 이해하실 거다.”
···그 설득이란 게 잘 될 리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것보다도 왜 이리 급해?
발목까지 오는 긴 외출용 망토를 미리 두르고 있던 걸 보니 애초부터 날 데려가려고 작정했던 모양이었다.
“아까 네가 물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자면, 우리는 대장장이들의 신전으로 간다. 거기서 널 데려가기로 약속했거든. 그런데 너희 부자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말이다. 급하게 끌고 와서 미안하구나.”
차분하고 단단해보이는 인상에 맞지 않게 다발총처럼 말을 쏘아내면서도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대체 누구와 약속을 잡았길래.
이 시대에 대장장이를 이렇게 서두르도록 만들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야금술에 능한 이들은 곧 각 국가의 전략자산이고, 금속이 귀한 만큼 이들이 만지는 건 왕족과 시민들을 위한 각종 사치품이다.
이곳이 해안을 접한 무역도시인 만큼 이들은 존재 자체로 귀하신 몸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궁금증은 많았지만, 대장장이 역시 긴장한 모습으로 걸음을 더욱 빠르게 했기에 어린아이의 보폭으로 쫓아가느라 질문할 틈이 없었다.
대장장이는 결국 따라잡기 힘들어하는 나를 한쪽 팔로 들어앉아 달리기 시작한다. 고대 세계의 유일한 시계인 태양의 움직임을 올려다 보며 초조한 티를 낸다.
“도착했다.”
그렇게 말하며 스클레오스는 날 내려놓았다.
돌아보니 익숙한 풍경. 다시 보니 그때 그 대장간이다. 그리고 대장장이들에게 둘러싸인 아버지가 나를 보고 난처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아들!”
“아, 아버지?”
“스클레오스 님,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아들놈을 데리고 오시면 저희 아내가 아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자네 참 애처가로군. 걱정 말게. 자네 아들한테 해코지하는 일은 없을 테니. 이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셔서.”
‘보고 싶어 하시는 분’.
스클레오스의 말에 아버지도, 나도 긴장하고 말았다.
이 시기 대장장이라면 상당한 고위층이다. 귀족에 준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반 시민에게는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라 할 수 있다. 짐작했던 바가 현실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분’이라 지칭하는 대상이라면··· 일개 노예가 거부할 일이 아니다.
“내 스틱스 강에 걸고 자네 아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겠네. 가급적 오늘 안으로. 이러면 되겠나?”
“그, 그건···”
거기에 스클레오스가 고대 그리스 사회의 최후 보루, 스틱스 강까지 꺼내자 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고는 한 발 물러났다.
“아들아,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나중에 얘기해주거라.”
“···네.”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으로 스클레오스의 한 쪽 손을 잡고 이끌려 대장간을 떠났다.
“멀리 가는 건 아니다. 아니, 아주 가깝다고도 할 수 있지.”
그 말대로 스클레오스는 바로 대장간 옆으로 몇 분 걸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지근거리에 있던 신전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붉은 기와지붕 아래로 하얗게 뻗은 대리석 기둥이, 촘촘히 문양을 새겨넣은 벽돌 계단 위에 올라서 있다.
스클레오스는 이마에 촘촘히 배인 땀을 닦았다. “이거··· 목욕한 보람이 없군.” 같은 소리를 하며 투덜대다가 내 한 쪽 손을 잡고 계단을 걸어올라간다.
높게 솟은 대리석 기둥들은 하나하나가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굵기였다. 자세히 보니 주위에는 동전이나 은화를 던지며 기도하는 참배객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그들을 뚫고 스클레오스와 나는 신전에 대문 앞에 섰다. 분화하는 화산과 망치질하는 거인이 양각된 화려한 청동문, 곳곳에 은과 금이 장식으로 씌워져 있다.
대장간의 옆에 붙어 있는 신전이라···
이 신전의 주인이 누군지, 나는 어렵잖게 짐작해낼 수 있었다.
–끼이이이익.
이내 두터운 청동문이 열리고, 색색깔의 돌을 갈아만든 타일과 신화 속 장면들을 짜넣은 테피스트리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가 드러난다.
양옆으로 도열한 기둥들은 갈수록 그 너비가 좁아지고, 기둥 사이에 난 길 끝에는 거대한 대리석 신상이 짐짓 위엄을 갖추고 옥좌에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망치를, 다른 손에는 집게를 든 채.
그 앞으로 나를 데리고 다가선 스클레오스는 무릎을 꿇고 속삭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약속한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설마 약속이란 게···”
“쉿, 그분께서 오신다.”
···신과의 약속이었나?
어질어질해진다. 정말 이 세계의 광신은 적응이란 게 불가능한 수준이 아닐···
[늦은 건 괜찮다.]···나는 들려선 안 될 목소리를 들었다.
들려선 안 될 방식으로 들었다. 귓구멍뿐만이 아닌 눈, 코, 입, 피부 곳곳에 널린 땀구멍으로 그 장중한 음향이 스며오고 있었다.
마치 눈으로 맛을 보고, 귀로 냄새를 맡는 듯이 온몸의 감각이 순간 교란된다.
이것은 지상에 있어서는 안 될 목소리다.
지상의 필멸자가 감히 마주해서는 안 될 존재.
뜨거워.
“허어··· 허어어어··· 흐어어어어억···.”
“괜찮으냐? 어디 불편한 곳은···”
숨 막혀.
시야가 한 점으로 좁아진다. 가장자리부터 어둠에 삼켜진다.
사지가, 온몸이 내 말을 따르지 않고 제각기 따로따로 진동한다, 경련한다, 뒤틀린다.
“커··· 커허··· 커허허헉···.”
[뜨겁겠지.]거대한 화산이 내게 불꽃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 음성이, 분명 형체가 없는 소리일 뿐일 텐데도 녹인 쇳물을 귀에 들이붓는 듯 뜨겁게 타오른다.
[그래도 참아보거라.]“어, 어, 어떻게···.”
[가슴으로부터 목과 코까지 바람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느끼거라. 네가 살아있음을 생각하거라.]“프, 프허어어억!!”
겨우 숨이 쉬어진다.
[옳지. 이제, 손가락부터 움직여보고. 네 몸이 네 것이라고 단단히 생각을 붙들고···.]팔다리의 경련이 점차 멎는다. 온몸을 둘러 싸던 열기가 환상처럼 가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눈물, 콧물 다 쏟고서는 바닥에 반쯤 엎어져 있었고···
[이제 괜찮으냐?]그런 나를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구, 피부로 와닿는 열기, 절름발이, 한 손에 쥐여진 망치와 다른 손의 지팡이, 못생긴 얼굴.
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신상을 바라보았고, 다시 낯선 남자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똑같이 생겼다.
설마.
나는 알고 있음에도 몰랐고,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했다.
아니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 고약한 꿈이다. 내 모든 상식과 일상과 주변세계 전체를 찢고서 이렇게 누군가가 폭압적으로 다가올 리가 없다.
눈앞의 존재는 ‘신’ 치고는 퍽이나 자상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딴에는 어린아이를 안심시켜주려는 듯한 태도.
나는 그를 더 이상 외면 할 수 없었다.
[네가, 고안해냈다 들었다.]그가 지팡이를 놓고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다 무언가 익숙한 형상이 튀어나온다.
가위.
그는 내게 자기소개를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를 알았다.
너무도, 잘 알았다.
“헤, 헤파이스토스···.”
***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날 데려온 대장장이 스클레오스는 걱정 어린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아 균형 잡기를 도와주었다. 나는 그제야 똑바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모든 풍경은 아까와 다름 없었다.
여전히 저 닫힌 문 너머에서는 참배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기둥과 벽 너머에서는 신전을 관리하는 이들이 수근거리면서 걸음소리를 죽여 걸었다.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고요함.
그러나 이전과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단 한 사람···아니 신의 존재 때문에.
[나도··· 조절을 좀 해야겠군. ···자, 이제 어떠냐?”머릿속을 웅웅 울리고 고막을 뜨겁게 두드리던 소리는 가시고, 이제 평범한 사람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거대한 존재감만큼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분명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외모다. 오히려 저 뒤의 군데군데 도금된 대리석 신상이 훨씬 위엄 있고, 신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듯했다.
모사품보다도 더 볼품없는 외모와 일근육으로 가득 찬 몸.
하지만 수만 명 가운데 그가 숨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망설임없이 집어낼 수 있으리라.
“···헤파이스토스.”
“님.”
“헤파이스토스 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 저는···.”
“네 소개를 할 필요는 없단다.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아···.”
뭐지? 신전에서 공기 중에 마약 성분을 풀었나?
“아저씨, 눈앞에 계시는 분 생김새를 얘기해주시겠어요?”
“키가 크시고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계시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계시지.”
맙소사.
내가 스클레오스와 텔레파시를 쓴 게 아닌 한 환각 작용이 동일하게 나타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방금 일어난 일이 현실이라는 뜻인데···.
“얘, 괜찮으냐?”
“원래 모자란 아이인가?”
“아뇨. 그냥 놀라서 그런 것 같은데, 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을 뵙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하기사, 그렇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자, 헤파이스토스는 내 눈앞까지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쳤다.
“$@^#. 이게 보이느냐?”
“···네.”
헤파이스토스가 내 앞에 내민 것은 예의 그 가위였다.
“재밌는 물건을 만들었더구나. 집게와 비슷하면서도 칼날을 달아 물건을 집는 대신 자르는 물건이라니.”
“과···찬이십니다.”
“···말하는 것도 어린아이답지 않군. 아주 흥미로워.”
나는 헤파이스토스에 대한 온갖 신화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나는 대한민국의 20대 후반 청년이었다.
그 말인 즉슨 학습만화 시장의 전성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뜻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쳤던 작품이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였다는 게 지금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줄 누가 알았을까?
‘홍X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장장이의 신인 만큼 내가 ‘발명한’ 가위라는 신기술에 흥미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차칵, 차칵’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자신의 옷자락 끄트머리의 실을 잘라내어 보기도 했다.
“칼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하겠어. 나의 권속들이 다치는 일이 크게 줄 테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겠지.”
그리 평한 뒤, 이번에 헤파이스토스는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양털을 자르거나 하는 데도 훨씬 수월할 거고.”
내가 양치기라는 사실까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가위를 둘러보았을 때처럼 나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평가하는 눈빛.
“아직 어리지만 근육이 붙기에 좋은 팔다리 형태로군. 생각하는 속도도 빨라.”
그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면서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내 한 쪽 팔을 들어 살펴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보기도 하였다.
“···잘생겼구나.”
“감사합니다, 헤파이스토스 님.”
“칭찬에도 반응이 시원찮은 것을 보니 가위 말고도 다른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있나 보구나? 그렇지?”
헤파이스토스의 눈이 반짝인다. 정확히는 눈동자 속에서 불티가 마구 튀어오르는 게 보였다.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올림포스로 데려가기는 어렵겠고···.”
“···네?”
“대신 다른 방법이 있지, 스클레오스.”
“예, 헤파이스토스 님.”
“이 아이를 데려가라. 네 공방에 맞아들이고, 나를 자주 부르거라.”
헤파이스토스가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제자로 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