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83
맹수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느낄 때, 다음 발걸음이 절벽 끝에 내딛여질 것을 직감할 때, 목 뒤 털이 곤두서고 식은땀을 흐르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서늘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서늘함은 피부를 뚫고 혈액을 타고서 뇌와 심장과 창자를 울린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그 기이한 냉기는 시간을 멈추고 사람의 정신을 그 한없이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
남자 역시 그를 느꼈다.
전장에서처럼 뚝뚝 끊기는 짧은 감각이 아니다. 그에게 명백한 살기를 품은 반신(半神)이나 하투샤의 대왕을 마주했을 때조차 이리 숨쉬듯 서늘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 숲 자체에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차즘차즘 걸어갈수록 사람은 물론, 켄타우로스, 사티로스나 요정을 마주하는 일이 줄어든다. 돌이켜보면 산짐승조차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그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고자 남자는 수하들을 이끌고 강행군을 지속했다. 이보다 더 힘들고 위험한 경험은 많이 겪었지만, 이렇게 기분나쁜 여정은 처음이었다. 이런 것은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앞에 두고 꽤나 무리하게 휴식시간을 줄여 달려온 결과 수하들도, 남자도 모두 녹초가 되었다.
남자는 드러누운 채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가 데려온 수하들 역시 저마다 축 늘어진 채 주저앉아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가지에서 이파리가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가을이 아니다.
문득 서늘한 느낌이 더 강하게 밀어닥치는 느낌을 받는다. 남자는 급히 몸을 일으킨 다시 수하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불사조 근위대. 움직인다.”
항상 남자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끊임없이 부활하는 새와 트로이아의 왕실 근위대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런 이름을 붙이는가. 파리스가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남자가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그의 직책명은 불사조 근위대장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남자는, 테오는 단 한 번도 그 이름 자체를 무시한 적은 없다.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불사조 근위대원이라 불렀고, 수하들 역시 그 이름에 항상 응답했다.
“···.”
“···.”
“···.”
“···근위대?”
지금은 아니었다.
테오가 가까이 다가가자 근위대원들은 모두 저마다 바닥에 쓰러지듯 앉거나 누운 채 입에서 입김을 뿜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테오가 후, 숨을 불어내자 어김없이 김이 달라붙었다.
방금 전까지는 이렇게 차갑지 않았다.
테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지만 근위대원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딱, 그 정도. 그저 깊은 잠에 빠진 정도.
왠지 테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이들의 상태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정신이 ‘뭔가’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머잖아 일어날 것이다. 직감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구릉을 넘어서 사흘.”
어차피··· 거의 다 왔다.
이들이 버티지 못한다면, 나 혼자라도 가야 한다. 테오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돌아가 보고하라는 명령을 목판에 새겨 남기고 앞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어느새 이파리를 급히 떨구는 나무들이 보인다. 관목이 서로의 몸을 스치며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고 언덕을 휘도는 바람은 불길하게 속삭였다.
파랗게 식어가는 입술을 혀로 핥는다. 땀을 식히느라 헐벗었던 상반신에 다시 망토를 걸치고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는 식은땀을 훔친다.
사무치는 냉기를 막으려 그는 망토를 여민 채 홀로 전진했다.
고작 언덕 몇 개만 더 넘으면 끝이다. 도리아인들의 영토가 머지 않았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 부근에서 수상할 정도로 인적이 끊겨 있는가? 길안내를 맡던 상인들이 이쪽으로 향하지 말라며 만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이곳에 수천 명이 사는 도시가 있는 게 맡기는 한가? 이곳에 수만의 도리아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던 게 맞기는···
-터벅.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와중에도 걸음은 이어졌고.
-턱.
그는 마침내 목표로 했던 언덕의 꼭대기에 닿았다.
생각보다 가팔라 오르기에 꽤나 버거웠지만 주위를 둘러보기에 알맞았다. 기이하게 뒤틀린 나무들이 삭아 쓰러져 있어 시야가 순식간에 트였다.
그래서 테오는 곧장 내다볼 수 있었다.
“···뭐야, 저게.”
지키는 이 없는 성벽.
울타리에 갇혀 굶어죽은 가축들의 뼈와 거죽.
폐허.
누군가에게 침략받지도, 불타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버려진 도시.
마치 막 돌연사한 시체처럼 불길한 잔해.
그 다음 테오는 더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신이 밟고 있는 언덕.
왠지 모르게 높고 가파르다. 그런데 나무나 풀은 자라있지 않아 붉은 흙과 쓰러져 썩은 나무만 가득하다.
마치 흙과 통나무로 무언가를 덮은 지 오래된 것처럼.
테오는 망토 안쪽 자신의 척추를 타고서 어떤 저릿저릿한 감각이 오르내리는 것을 느낀다.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발가벗겨져 칼바람 앞에 놓인 것 같다.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버린 듯한 감각.
그러나 그는 멈출 수 없었다. 테오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맨손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프리아모스가 그에게 명했다. 그의 주군께서, 그가 평생을 바치기로 한 그의 주인이 그에게 명령했다. 도리아인들의 왕국을 살펴보고 오라고.
그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리고 테오는 정신없이 흙을 파내다 무언가를 만진다.
부드럽다. 그러나 벌레나 썩은 과일의 부드러움은 아니다.
딱딱하다. 하지만 바위나 나무처럼 딱딱하지는 않다.
이 부드러움은 산 것의 부드러움이다.
그러나 이 딱딱함은 죽고 말라비틀어진 것의 딱딱함이다.
테오는 하얗게 질린 사람의 손을 발견한다.
더는 피가 통하지 않고, 더는 살아있지도 않은.
일어선 그는 뒷걸음질치며 언덕을 괜히 발로 툭툭 밟아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거대한 언덕 전체가.
봉분이다.
***
클레이다이오스가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왕의 혈통은 힘을 지닌다.]“···그렇습니까?”
이제 도리아인들의 왕 클레이다이오스는 이제 머릿속의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는 데 익숙해졌다. 어느덧 수행원들도 그를 기이한 눈으로 보기보다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그들도 이 대화가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신기(神氣)에서 온 것임을 짐작한 것이다.
[그렇다. 그리고 너는 이 에게 해에서 가장 위대한 혈통을 지녔지. 누가 네 조부의 위대함을 부정하겠느냐.저 바다를 누비는 페니키아인들도, 교만한 아이깁토스인들도, 양을 치는 히브리인들과, 폐허를 붙든 채 겨우 버티는 네샤인들도 모두 네 조부를 기억한다.
위대한 자였지.]
그 목소리에서 클레이다이도스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감을 느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분에게서 내려온 클레이다이오스의 정당한 권리를 앗아갔다. 그러나 이 거룩한 목소리는 그분을 잊지 않았다.
[위대한 자의 혈통에는 위대한 권능이 뒤따른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기억하기에. 다른 헤라클레스의 자식이 많으나, 네 아버지 헤라클레스의 아들 힐로스는 그의 정당한 몫을 받아 도리아인의 왕이 된 자다.너는 헤라클레스의 ‘적자’다.]
이 거룩한 목소리의 주인 되시는 분께서는··· 분명 그분을 기리고 계신다.
“당신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러한 줄 알겠습니다.”
[고로 위대한 자의 혈통에는 위대한 권리가 뒤따라야 한다.]그 순간 클레이다이오스는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클레이다이오스, 네게 정당한 몫을 주겠다. 네 백성들은 너를 위해 무장할 것이다. 너는 정복자로서 아카이아 땅을 밟으리라.]아니, 느꼈다.
목소리의 존재감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클레이다이오스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분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의 기거하는 장소에 가까이 왔기 때문이겠지.]“당신께서 기거하시는··· 장소 말이십니까?”
그 말에 클레이다이오스는 주위를 돌아본다. 여전히 이곳은 산일 뿐이다.
곳곳에서 신의 숨결 같은 증기가 피어오르고, 열기가 느껴져오는, 거대한 산. 살아있는 짐승도 많지 않다.
이 지중해에서 가장 높은··· 지중해의 중심에 틀어앉은···
에트나 산.
시칠리아의 중심.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
거기까지 말한 뒤, 클레이다이오스의 입이 다물린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산 아래 누가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지.
누가 제우스의 지배를 무너뜨리려다 결국 산 아래 갇혀 끊임없는 불꽃만을 쏟아내게 되었는지.
티폰(Τυφών).
클레이다이오스가 눈을 깜빡이자.
[아니다. 네 생각은 틀렸다.]그는 어느새 에트나 산의 분화구에 홀로 올라와 있었다. 끓어오르는 불과 물을 그는 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아니다. 아니···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 무엇도 아니다.]“그, 그렇다면··· 무엇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게 그리 중요하더냐?]열기가 그의 몸을 휘감는다. 뒤돌아보니 그를 뒤따라오던 수행원들이 갑자기 광인처럼 분화구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비명을 내지르면서. 죽음을 향해 발버둥치면서.
기묘하게도 클레이다이오스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너는 네 왕좌가 중요하지 않더냐?네가 받은 모욕을 되갚아주고 싶지 않더냐?]
“···.”
왠지 그 머릿속 속삭임이··· 점차 그 자신의 생각처럼 느껴진다.
“저, 저는···”
도리아인들의 왕의 뺨에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바랍니다. 제 정당한 몫을.”
화산이 입을 벌린다.
[오거라.]죽음을 택하라는 말인가? 그 생각에 클레이다이오스가 뒷걸음질치자 그의 귓가에 어떤 속삭임들이 들려온다.
어떤 남자는.
어떤 남자는 이곳에서 최후를 택했다 한다. 신이 되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위대해지기 위해서.
그는 시칠리아 섬 아크라가스(Ἀκράγας)에 살던 남자. 만물이 네 가지 질료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믿었던 남자.
그는 자신이 신던 청동 신발을 벗어던지고 미련없이 뛰어들었으니 피어오르는 물과 흐르는 불 속에서 그는 분명 신이 되었으리라.
신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는 영원불멸할 이름을 얻었으니. 그의 교설이 수천 년 동안 세상을 지배하나니. 그의 위대한 명성은 수천 년을 이어 신과 같이 떠돌아다니니. 너도 그와 같이 되리라. 너는불속에서위대해지리라너는물속에서위대해지리라너는잿더미위에서새로운왕관을쓰리라지상의모든권세가너를두려워하리라네가이곳에서이모든것을받아들일준비가되어있다면.
네가.
[나의 것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너는 죽지 않는다. 너는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바다가 넘치기 직전이란다. 마지막 한 방울 물만 있다면 대양이 요동치며 세상의 모든 뭍을 덮어버릴 듯하구나.
[네가 그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다.]오거라.
클레이다이오스는 어느덧 눈물투성이가 되어, 자신의 수행원들이 뛰어든 불꽃을 지켜본다. 잿가루마저 녹아내려 이제는 그들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으니.
그는 아크라가스라는 도시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가 알기로 시칠리아에 그런 이름의 도시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궁금해하는 바는 그게 아니었다.
“···제, 백성들은 어찌 살고 있습니까? 제가 떠나온 동안, 보살펴준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너와 나의 목적을 위하여 헌신하였다.]기이한 답변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과연 그 자신의 생각일까? 아니면,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클레이다이오스는 불꽃 속으로 몸을 던진다.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른다.
왕의 피와 살과 뼈가, 신이 갇힌 감옥 속으로 녹아들어온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어떤 존재가 미소지었다.
***
테오는 서둘러 언덕에서 내려온 뒤 자신의 수하들을 찾는다. 그들이 몸을 비척거리는 것을 보고 그들의 뺨을 때려 일깨운다.
“일어나! 당장 이 엿같은 곳을 벗어난다!!”
“다, 단장? 무슨 일입니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조시모스! 당장 다른 것들부터 같이 일으켜세워! 티모테오스! 너는 짐 챙기고!! 너는···”
테오는 그리 외치다가 문득 발 아래를 내려다본다. 다른 불사조 근위대원들도 그의 시선을 쫓는다.
그러자 그들 발 아래의 땅이 새하얬다.
서리가 내렸다.
지금은 겨울이 아닌데.
얼어죽은 나뭇가지가 떨어진다.
지금은 겨울이 아닌데.
지금은 겨울이 아닌데.
“당장 움직여!!!!”
테오의 말에 근위대원들은 서둘러 길을 나선다. 그들은 다시 지금껏 걸어온 험난한 길을 따라 트로이아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뒤로.
언덕이 들썩인다.
하늘이 울렁거리고.
거대한 봉분이 꿈틀댄다.
탈옥
지하의 왕은 올림포스의 뜰을 거닐지 않는다.
그는 명부(冥府)의 지배자이며, 곧 지하세계의 제우스이기에. 그의 백성들은 떠도는 혼백들이며 산자들은 아직 그의 보살핌 아래 들지 않은 것들뿐이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이다. 필멸자들이 귀히 여기는 온갖 보화가 그의 왕국 깊숙한 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강철과 번뜩이는 청동 모두 인간들이 그의 영토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다녀오리다.] [아카이아인들의 처결은요?] [미노스와 다른 이들이 괜찮을 거요. 일단은 출발해야 하니.] [주인님께서 궁전을 나서신다! 전차를 준비하라!] [문을 열어라, 이 어리석은 것들아! 문을 열어라!! 너희들의 주인께서 나서신다!!]그렇기에 하데스가 자신의 왕국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쟁은 그에게 가장 막중한 책임을 안기는 일이니. 괴물들이 날뛰고 대적들이 다가설 때면 오히려 그는 형제들을 돕는 대신 자신의 왕국에 틀어박혔다.
밀려드는 새 백성들을 심판하고, 거룩한 엘리시온 평원에 갈 이들과 그러지 않은 평범한 이들을 분류하며, 환생할 이들을 레테 강물로 인도해야 했으니.
그것 모두 지하세계의 왕인 그의 몫이었다.
땅 아래 잠든 모든 것이 그의 것인 동시에, 땅 아래 잠든 모든 것이 그의 책임 아래 놓여 있었으니.
-우르르르릉!!
이는 저 타르타로스 아래 틀어박힌 티탄들, 온갖 죄인들, 그리고 괴물들까지 그가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저 에트나 산의 끔찍한 괴물까지도.
하데스가 검은빛을 띠는 전차 위에 오르자 죽은 짐승들의 반질거리는 뼈로 장식한 난간이 하얗게 반짝인다. 그 위에 씌운 황금과 보석이 으스스함을 고혹적인 화려함으로 바꿔놓는다.
검은 말들이 우짖으며 내달리자 하늘이 없는 세계의 바위로 된 천장이 열리고 달빛이 쏟아진다. 하데스는 손을 휘저어 밤의 어둠을 망토처럼 두른 뒤 곧장 지상으로 날아오른다.
그러자 하데스의 전차는 밤하늘의 검은빛 아래 완벽하게 녹아들고, 바위로 된 입구는 하데스의 등 뒤에서 단단히 닫힌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필멸자의 시선을 탐지한다.
아무도 없다.
짐승들만이 왠지 모를 불길함에 털을 세우고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칠 뿐이다.
지상의 여러 제왕들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구하고 싶어할 화려한 장신구도, 전차도, 뛰어난 말도 모두 누구의 시선에도 띄지 않는다.
하데스는 그제야 완벽하게 안심하며 조용히 고삐를 쥐고 방향을 튼다. ‘죽음’은 필멸자의 눈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공중에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전차는 움직인다. 천천히, 바위 틈바구니에서 나온 전차는 고도를 높여 구름 가까이로 스치며 날아간다.
그러면서 하데스는 흘깃 저 아래에 자리한 거대한 산을 지켜본다.
오랫동안 그를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그런 산이다. 지중해에서 가장 높이 치솟은 산, 한때 그와 형제자매들 모두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던 그 끔찍한 것이 저 아래 잠들어 있다.
티폰이 저 아래 잠들어 있다.
[···형제여.]상념에 잠긴 하데스의 곁으로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다가와 속삭인다. 하데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한다.
[제우스, 분명한가. 도리아인들의 왕이 이곳으로 향했다고 했던가.] [그렇다. 그는 우리가 내민 또 다른 선물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하더군.그는 아폴론의 사제를 베어버린 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뒤로는 알 수 없다.]
흰머리수리의 눈에 일순간 황금빛 섬광이 일어난다.
[알 수 없다니, 그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다. 나의 형제여, 나는 하늘을 지배한다. 물 속에 잠겨있지 않고 지표면 아래 잠들어있지 않은 모든 것이 나의 지배 아래 있고 나의 눈길 아래 있다.하지만···무언가 내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