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34
“어째서 부름받지도 않으시고, 제물을 받지도 않으시고 내려오셨나이까?”
[···.]데메테르는 내 말에 잠시 양팔을 들어올린다. 마치 그녀 자신을 바라보라는 듯이.
[보거라, 트로이아의 왕자야. 나의 몸에 상처가 있느냐?]“···.”
없다.
[그래. 나는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내가 비겁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데메테르는 일리아스에서도 그 이름만이 언급될 뿐, 단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조차 자신이 어여삐 여기는 인간들을 돌보려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도.
그녀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여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올림포스의 열두 옥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 나 역시 나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그리고, 이것이 나의 싸움이다.]
데메테르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더니, 곧 앞으로 나아간다.
[이 도시가 우리의 ‘제국’을 지탱한다. 거대한 전쟁의 산물, 영원불멸할 올림포스의 영광, 그 모든 것이 너와 이 도시에 달려있다.]데메테르가 눈을 빛낸다.
[기억하거라. 이번 한 번뿐이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은 없을 터이니.]나는 데메테르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절한다.
“곡식 이삭의 어머니시여!!!!”
어느새 달려온 농부들과 오소르콘이 감히 데메테르의 곁에 다가서지 못하자 데메테르가 웃는다.
[보아라.]그녀가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움켜쥐듯 한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황홀한 황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황금빛은 어느 왕의 왕관이나, 저 하늘의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휘황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익어가는 곡식의 황금빛이었다.
[파리스, 보아라. 이것이 내가 너의 도시에 주는···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선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손에 움켜쥔 황금빛을 온 땅에 흩뿌린다.
눈부신 빛이 순식간에 들판을 통째로 태워버리듯 퍼져나가고, 그 눈부신 빛에 모든 필멸자들이 무심코 눈을 감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겨우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눈을 떴을 때쯤.
“···아아, 아아아아!!”
“맙소사, 어머니 대지시여! 농부들의 자애로운 보호자시여!!”
우리는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마치 시간이 뒤죽박죽이 되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노랗게 시들어 죽어있던 풀들에 푸른빛이 되돌아오더니, 다시 꼿꼿이 일어서서는 높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마치 1년의 시간을 되감았다가, 빠르게 돌려놓는 것 같았다.
새싹이 풀이 되고, 풀이 기나긴 줄기가 되고, 기나긴 줄기 끝에 꽃이 피고 또 지더니 그 위에···
이삭이 맺힌다.
황금빛으로.
이곳에 있는 농부들과 디오니소스 신도들 모두가 멍하니 들판을 바라본다. 여전히 이 근방에서는 동남풍이 불어온다.
뜨겁고 건조한 동남풍.
영구히 보존 가능한 식량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바람.
하지만 밀이랑 보리가 갑자기 살아났지 않나? 헛고생한 건 아닌가?
“···그럴 리가.”
당황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이어지니 반쯤 혼이 나갔나 보다. 혼잣말이 튀어나오고..
데메테르가 힘써 밀과 보리를 안겨주었다. 막대한 양이다. 수만 명이 수 개월은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다.
즉, 안탄드로스의 수 개월치 식량이다.
앞으로 겨울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를 상황에서 몇 달을 더 버틸 자원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저 식량으로 다른 동맹시들까지 지탱해야 한다면 더더욱.
“···오소르콘? 수확을 명하게.”
“아···알겠습니다. 이보게! 이곳으로 모이게!”
멍하니 기도를 올리던 오소르콘이 급히 농부들에게 손짓하며 움직인다. 조용하던 들판이 금세 소란스러워진다.
그렇게 나는 익숙지 않은 여름철의 보리 수확을 구경하다가··· 뭔가 놓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뭐지?’
데메테르는 드넓은 들판의 곡식을 되살려주었고.
노토스는 뜨거운 남풍을 안탄드로스로 몰아다주었다.
그 덕에 보리와 감자전분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딱 좋은 상황이다.
그것 이외에 또 놓친 게 있나? 분명 없는 것 같은데, 왠지 뭔가를 잊어버린 듯한 기분인데···.
알 수가 없다. 나는 일단 들판에서의 일을 오소르콘에게 일임한 뒤 궁전으로 돌아와 누웠다. 일이 많았던지라 피곤한 하루였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숲에서 돌아온 이노의 곁에서 잠에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주군, 왔습니다!! 드디어 왔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일 내에 도착했습니다!!!!”
항해학교 쪽에서 달려온 아노이토스의 흥분한 목소리.
“···그래. 뭔가 기쁜 일이 생긴 건 알겠네.
그런데 뭐가 도착했다는 건가?”
내가 되묻자 오히려 아노이토스 쪽에서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답한다.
“무엇이겠습니까, 주군? 뭐 때문에 제가 이렇게까지 기뻐하겠습니까?”
그는 내 양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분들이 왔습니다! 텔라몬의 용맹한 두 아드니···”
“파리스 왕자여!!!!”
알현실의 문이 다시금 열리고, 그 너머에서 수십 명의 남자들이 걸어온다. 하나 같이 꾀죄죄하고 지친 기색이 완연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다.
모두가 훌륭한 갑옷을 걸쳤고, 모두가 무장한 상태다. 그러나 적의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무장한 듯한 모습이다.
그들의 선두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아노이토스가 이야기했던 그대로.
“아, 아이아스? 테우크로스?”
텔라몬의 두 아들이 실로 오랜만에 내 궁전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들은 막중한 임무를 맡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식량을 찾아 인도로 간 이들이었다.
그리고 인도는 아카이아의···
“···동남쪽에 있군. 그대들은 동남풍을 타고 왔던 것이오!!”
“마, 맞습니다! 혹시 사정을 알고 계십니까? 인도에서 무역과 약탈을 끝낸 뒤 순조롭게 동풍을 타고 돌아오는데 아이깁토스에서 운하를 넘자마자 갑자기 매서운 북풍이 사라지고 남풍이 불어 순식간에 도착했습니다! 뭔가 연유를 아시는지···.”
알지.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이런 은혜는 한 번뿐일 것이다.]
나는 노토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안탄드로스에서 북풍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그가 그런 말을 꺼내는 줄 알았다. 아니면 데메테르의 축복에 대해서 하는 말이거나.
큰 싸움으로 말미암아 부상당하고 지친 신이, 그 정도의 권능을 드러내 보일 일은 더 이상 없으리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내 생각들은 거의 맞았다.
단지, 동남풍이 미칠 범위에 대해서 너무 작게 생각했을 뿐.
“···다들 수고들 하셨소. 트로이아로 가기 전에 내 도시에 들른 이들을 위해 조촐한 연회라도 벌일 터이니 각자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손님용 방으로 향해주길 바라오.”
나는 그리 말한 뒤 ‘인도’에서 온 손님들을 물렸다.
썩어버린 감자를 되살려 얻은 전분.
얼어죽은 밀과 보리가 다시 자라나 얻은 이삭.
거기에 인도에서 약탈해온 온갖 식량과 재화까지.
···버틸 수 있다.
못해도, 앞으로 1년에서 2년은 더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