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고향 (1)
“앞으로 1년 안에, 아카이아인들이 사절을 보내올 것 같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이타카인들을 중심으로 방문할 듯하온데···”
“접대에 신경쓰게.”
그리 짤막하게 이야기를 던잔 프리아모스는 문득 생각난 듯 말을 덧붙인다.
“다만, 그들을 끼고 들어올 밀무역상들은 보이는 족족 잡아들여 목을 치게. 봐주기는 없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불만이 클 텐데요.”
“어쩔 수 없지.”
시기가 안 좋게 겹친다.
머지않아 슬슬 히타이트의 사신이 트로이아에 방문할 철이 다가온다.
히타이트의 사신이 들어올 때 금수조치를 약속한 아카이아의 상인들이 트로이아 영토를 들락거리고 있다면 히타이트에 할 말이 없어진다.
안 그래도 저 아카이아인들이 연례행사처럼 보내는 사신단은, 히타이트가 지시한 금수조치를 풀어내는 게 그 목적이다.
실질적으로는 그 사신단에 끼어서 ‘합법적으로’ 당도한 상인들에게 밀무역의 기회를 주기 위함이지만··· 아무튼 히타이트를 더 자극해서 좋을 건 없다.
업무 하나를 더 처리한 프리아모스는 피로한 몸을 등받이에 기댄다.
천장이 탁 트인, 중정의 하늘을 바라본다.
궁전의 하늘 위로 점 몇 개가 뭉쳐서 움직이더니, 이내 고도를 낮추어 담장 너머 어딘가로 내려앉았다.
새들이 날아든 방향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번에도 헥토르겠군.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경애하는 사촌이시여, 걱정이 너무 많으십니다. 마음을 편히 먹으십시오. 어차피 지금쯤이면 안탄드로스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그 소식을 전하려 보낸 서신이겠지요.”
안키세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지만 프리아모스로서는 찌푸려지는 미간을 펼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러겠나? 나는 저들이 그리 적극적으로 나오리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프리아모스는 눈을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그러자 눈꺼풀 안으로 헥토르가 보내온 지난 편지의 내용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저들이 파리스를 납치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계속해 왔네.”
의심이라기보다도 당연한 추론에 가까웠다.
히타이트 충성파에 파리스는 기회다.
1차적으로는, 드디어 그들의 대표자가 되어 프리아모스와 대적해줄 새로운 왕족을 구할 절호의 기회다.
정 그게 힘들다면 파리스를 어떻게든 프리아모스의 약점으로 만들어 물고 늘어지기라도 해야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저들에게 파리스와 접촉하는 일은 무조건적인 이익을 보장한다.
당장의 정쟁으로부터 멀어져서 더 큰 그림을 내다본다면···
프리아모스는 저 남쪽의 하늘을, 안탄드로스의 시민들이 올려다보고 있을 하늘을 지켜본다.
파리스를 통해 저들은 하투샤에 비견된다는 안탄드로스의 제철업과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히타이트와···.
히타이트, 리키아, 미시아, 프리기아, 트라키아, 아마존.
그리고 어쩌면, 아가멤논이라는 야심가가 일어나기 시작한 아카이아까지.
이 일대의 모든 세력이 움직일 만한 사안이다.
“저들이 필사적일 만하지. 그렇지만 인어들이라니?”
프리아모스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런 게 가능키나 했단 말인가? 어떻게 인어들을 움직여 파리스를 해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우리는 히타이트의 신들께도 항상 제물을 넉넉히 바쳐왔는데···.”
“주군, 신들의 의지는 저희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의 중요성이 작다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흠숭받아 마땅한 신들께서도 개입하실 만한 일이지요.”
단지 도시 하나가 살고 망하는 일에도 수천, 수만 명이 목숨을 걸고 나선다.
그런데 파리스 한 사람의 확보에 거대한 제국의 성쇠가 달려 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얼마나 많은 핏값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인가?
사람과 새들이 띄엄띄엄 프리아모스에게 소식을 물어다 줄 때마다, 그는 늘 가슴 졸이면서 헥토르의 필체를 훑었더랬다.
그렇게 불안해하면서도, 수도에 파리스를 내버려두는 것보다 이 편이 나았다고 스스로를 설득시켜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곧 파리스와 헥토르가 안탄드로스에 당도했을 때가 아닙니까?
다시 주군께 말씀드리지만, 저는 파리스를 안탄드로스에 보내는 데 반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제가 보기로도 파리스 왕자는 안탄드로스에 도착하는 그 순간 절대적으로 안전해집니다.”
“위로해주니 고맙네. 그래, 파리스 주위에도 좋은 조력자들이 많이 있었으니 안탄드로스에서 그리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아닙니다. 조력자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친절한 보호자 어른 몇몇이 붙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갑작스럽게 변하는 안키세스의 말투에 프리아모스는 고개를 돌렸다.
안키세스의 진지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적이 대체 언제였던가?
···안키세스가 진지했던 적이 있긴 하던가?
“주군, 안탄드로스의 시민들은 파리스에게 단지 우호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파리스는 안탄드로스의 일개 유력자가 아니죠.
안탄드로스로 향한 파리스는, 자기의 영토에서 완벽하게 안전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주군.”
안키세스가 손을 가슴에 댄다.
“제가 말하는 내용의 진위를 아프로디테께서 보증하실 겁니다.
파리스는 안탄드로스의 지배자였습니다. 저희는 파리스를 그 둥지로 돌려보낸 데 불과합니다.”
프리아모스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배자?
파리스가 의존할 권위가 무엇이 있다고?
분명 안키세스 본인의 입으로 파리스가 총독을 제외한 모두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위치에···
-똑. 똑. 똑.
시의적절한 순간에 환관이 문을 열어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는 중정으로 편지를 전달한다.
그 작은 쪽지를 프리아모스는 펼쳐 읽는다. 슬슬 시력이 부치는 만큼 미간을 찌푸려가며 조심스럽게 읽는다.
가지런한 글씨체, 정중하되 낭비 없는 문투.
예상대로 헥토르의 쪽지였다.
“헥토르가 안탄드로스에 도착했다는군···.”
그리 말하는 프리아모스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린다.
“그리고···”
***
약 두 달 동안의 강행군 중, 파리스가 ‘야만에 가까운 도로 상태’에 대해 쏟아낸 불평불만만 모아도 서사시 하나는 족히 완성시킬 수 있으리라 헥토르는 확신했다.
-“형님, 수레가 이렇게 덜컹거리면 허리가 아프지는 않습니까?”
수레가 덜컹거리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고통스럽군요. 비가 내리니까 무슨 발목까지 진흙이··· 젠장, 젠장, 이 신발이 어떤 신발인데. 안에 칼날이 내장된 건데 고장나면···.”
비가 와서 질척이지 않는다면, 무슨 바닥이 돌로 깔려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죠. 그걸 도로라 할 수 있겠죠.”
그럴 돈과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것보다도, 그럴 돈과 여력이 있다면 차라리 도시의 성벽을 더 높이 쌓아올리는 편이 안전을 위해서라도 낫지 않겠는가? 어차피 트로이아는 수운으로 움직이는데?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파리스의 불평불만은 마치 이보다 더 나은 것을 누려본 듯한 사람의 말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안탄드로스와 그 주위의 시골에서 트로이아의 것보다 더 나은 교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도로’가 깔렸구나.”
헥토르는 멋지게 한 방 먹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돌로.”
“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여긴 아직 흙길이었는데, 증설했나 보군요. 보십시오. 덜 덜컹거리지 않습니까?”
“그렇네. 놀랍군.”
헥토르는 즐거운 당혹감에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고 대견한 일이다. 이 대공사를 본인이 직접 주도했다고 주장하니, 파리스가 얼마나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훌륭하구나. 이런 도로를 건설하면서 얻은 이익이 있니? 통행료로 돈을 모은다든가.”
“아뇨. 사실 아무리 돈을 받아도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들이붓는 격이죠. 그래도 안탄드로스와 그 주위 도시들은 이 덕에 번영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기대감이 차오른다.
파리스가 노예 소년으로서, 그리고 대장장이의 노예이자 조수로서 이 모든 일을 해냈다면 안탄드로스의 군주로서는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내겠는가?
어쩌면 파리스와 안키세스가 호언장담했듯 쇠로 밀이삭을 베고 쇠로 땅을 파는 그런 날이 올지···
-반짝.
“···저게 뭐지?”
“농부들이죠?”
“아니, 농부들이 들고 있는 게. 뭔가로 땅을 파고 있는데.”
“음? 모르셨습니까? 이상하군요. 이미 안키세스 님께서 다 보고하셨다 들었는데.”
파리스는 왠지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말한다.
“강철입니다.”
***
···다르다노스의 군주, 카피스의 아들 안키세스.
그는 정말 많은 훌륭한 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유쾌하며, 낙천적이고, 무예에 뛰어나면서도 적당한 겸손함을 갖추어 사람들과 두루 사귄다.
약간 엉뚱하기는 하지만 절대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다. 미의 여신에 대한 찬미가 약간 과할 때도 있기는 하다만 그 또한 신을 공경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다만, 사람이 조금 문학적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쓴다고 쳐보자.
-‘프리아모스 님, 오늘은 언덕 몇 개를 넘었습니다. 중간에 개울을 건너느라 발이 젖었지만 햇볕에 말랐습니다. 지친 일행들은 골짜기에게 바람을 피하고 있습니다.’
안키세스는 이렇게 쓴다.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주군이시여, 오늘은 가이아의 주름살 사이를 거닐며 대지의 광활함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오케아노스의 무수히 많은 자식들 중 하나가 제 발에 냉기를 더하였고, 이에 아폴론께서 천공을 가로지르시며 다시 온기를 채워주셨습니다. 허나 저희는 지금 힘이 다하여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필멸자의 육신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다리와 팔이 모두 무겁습니다. 혹여나 어느 질투심 많은 바람에 심장의 따스함을 빼앗길까 저어하여 하데스에 가까운 산맥의 흉터 사이에 몸을 누이고···’
고로, 헥토르와 프리아모스는 다년간 안키세스의 말투와 글투를 적당히 ‘일반적인’ 것으로 대체하여 이해하는 데 익숙해졌다.
즉 10줄이 있으면 3줄로 요약한 뒤에 그 내용을 읽었다는 뜻이다.
아마 파리스의 명확한 지위나 안탄드로스의 자세한 정황은 그 잘려나간 7줄 속에 포함되었었던 모양이다.
저 멀리, 들판 사이로 잘못자란 이빨처럼 울퉁불퉁한 안탄드로스의 전경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워지자 그 앞에 선 사람들의 인영이 보인다.
“파리스다!!”
“경칭··· 경칭으로 말해···!”
“파, 파리스 님이시다!”
도시의 총독으로 보이는 이부터, 장로들, 부유한 시민들, 대장장이와 각종 장인들까지 유력한 인사는 모두 모였다.
헥토르는 파리스 쪽을 돌아보았다.
섬세하게 썩어들어가는 파리스의 표정에서, 막 출세한 이들 특유의 우쭐거림은 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신 뭔가 상당히 껄적지근한 듯한, 이 사이에 고기조각이 하루종일 끼어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파리스는 그런 불편한 표정을 유지하며 가볍게 손짓한다.
“···니키스. 니키스! 니키스!!”
갑자기 대오의 한가운데서 장년의 남성 하나가 급히 뛰어오더니 고개를 숙인다.
“예, 파리스 님.”
“그, 내 정체는 언제쯤 말했지?”
“떠나신··· 바로 다음날 밤이었습니다.”
“그래, 그럴 거라고 예상했네. 내가 어색할 일은 없겠지?”
“다들 이런 날을 예상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파리스는 관자놀이를 비비며 가벼운 신음 소리를 내었다.
헥토르가 멀뚱멀뚱히 서있는 동안 파리스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제 다시 트로이아로 돌아갈 셈인가?”
“아마 그렇겠지요. 총독 관저는 이미 수리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니면 새로 궁전을 짓기를 바라시는지···”
“귀찮게 가지 말자고. 자네가 잘해줬어.”
어딘지 비틀려 있다.
15살의 소년이 막 군주랍시고 돌아왔을 때, 헥토르가 예상했던 정경은 우쭐거리는 파리스와 그를 못마땅히 여기는 안탄드로스 시민들의 대비였다.
그러나 지금 파리스와 총독이 나누는 대화는··· 단순히 정체를 알기 때문에 나오는 말들이 아니다.
“안탄드로스의 군주로 임명된 파리스다. 이쪽은 내 형님이신 프리아모스의 아들 헥토르시다!”
파리스가 대오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 외치자, 다들 조용히 머리를 조아렸다.
한 사람씩 나와서 헥토르에게 자신의 이름을 읊을 때와, 파리스에게 향하여 인사를 올릴 때는 확연히 달랐다.
모든 게 익숙해보였다. 바뀐 것은 그들의 대외적인 상하관계뿐.
“아저··· 스클레오스? 대장간의 시설 증설은 어떻게 되어가죠?”
“어, 음, 크흠, 파리스 님, 일단 수차 하나를 더 세우는 중이다. 거기에 망치 두어 개를 더 연결할 참인데.”
“저는 고로 쪽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한번 현장을 보죠.”
이전에 해왔던 것을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파리스 님!!”
“아노이토스?”
“파리스 님께서 과연 영웅의 혈통을 타고나셨으리라 믿었습니다! 트로이아는 어땠습니까? 저희 아버지는 만나보셨습니까?”
“못 만나봤어. 하도 바빠서··· 여기, 트로이아의 왕자이신 헥토르 님이셔. 인사드려.”
“아, 헥토르 님! 드높은 명성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몇 번 만나뵌 적이 있지요?”
“···카시우스의 장남인가?”
헥토르는 정신이 없다.
파리스는 왜 이렇게··· 능숙한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안탄드로스 시민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렇게 물흐르듯 당연하게? 헥토르는 파리스가 자리잡기 전까지 이어질 치열한 정치적 투쟁을 상상했었는데···.
“형님, 인사하시죠. 어··· 저를 조수로 받아주셨던 스클레오스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네.”
정말로, 안키세스가 말했듯이 농민들이 동일한 무게의 황금보다 값비싼 쟁기로 땅을 갈아내고 있다.
안키세스가 장담한 대로, 한낱 노예 소년이 도시의 상층부를 대부분 장악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헥토르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조금 가까워졌다 생각했던 동생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파리스?”
“예, 형님.”
“어떠한 과장이나 수사 없이 내게 말해다오.”
“알겠습니다.”
“안탄드로스와 도로로 연결된 도시들은 얼마나 되지?”
“흠··· 그렇게 물어보시면 애매하긴 하지만 한 대여섯 곳 됩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강철을 농기구에 쓰는 도시는?”
“전부 다죠.”
“···마지막으로.”
헥토르는 파리스를 돌아보았다.
“그 강철을 생산할 수 있는 도시는 얼마나 되느냐?”
“한 곳뿐입니다.”
한 곳.
그러니까 여기.
파리스가 그렇게 말하듯 눈짓으로 도시의 성문을 가리켜 보인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