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준비 (3)
등자.
전세계적으로 최초의 등자가 발명되려면 수백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유럽에는 중세 초기에나 등장할 물건이다.
“워우, 워, 워어··· 이 녀석이 다른 말들보다 훨씬 몸이 커서 타기가 꽤나 까다롭지.”
“그래 보이는군요.”
심지어 지금 안키세스는 안장조차 없이 그냥 울퉁불퉁한 말등 위에 올라타 있다.
있는 거라고는 그나마 고삐뿐인데, 그것조차 없었으면 말갈기 잡고 달리는 야만전사 같았을 거다.
“일단은, 한번 내려보시죠.”
“음? 그래 알겠네.”
안키세스가 시종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하마하는 동안 나는 준비해놓은 물건을 꺼냈다.
“그건 또 뭔가? 좌석 같이 생겼는데.”
“맞습니다. 앉는 용도죠. 안장이라고 합니다.”
투레질치는 말 근처로 내가 다가가니 말의 등근육이 긴장하는 게 드러난다.
“제가 말과 붙어 있어야 해서 말입니다. 잠시 안키세스 님께서 안심시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좋네. 기다려보게.”
안키세스는 말의 코를 적당히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지 않니? 응? 조금만 얌전히 있고···”
···뭔가 불쾌하다.
아무튼 나는 조심스럽게 말등에 안장을 얹는다. 말이 잠시 불편한 듯 콧김을 뿜어댔지만 안키세스가 목덜미를 토닥여주자 조용해진다.
그 뒤로는 말의 배 아래로 복대를 채우고··· 조인다.
됐다.
“이제 이 위에 올라타 보십시오.”
“안전한 건 맞나?”
“왕도에서 가장 비싸다는 피장이들에게 맡긴 겁니다. 말 허리둘레에 꼭 맞게 고정했으니 이전보다 훨씬 안전한데다 편하기도 할 겁니다.”
“믿어도 되는 것 맞겠지?”
“그럼요. 헤파이스토스 님께 맹세코.”
“그렇다면야···.”
“이 발걸이를 전번에 얘기했듯이 ‘등자’라고 부르는데, 이걸 딛고 말에 오르시면 한결 편하실 겁니다.”
안키세스는 반신반의하는 듯 다치지 않은 오른발을 등자에 올려놓고, 등자 손잡이를 쥔 채 몸을 들어올린다.
“일단, 시종의 도움없이 말에 오를 수 있는 건 좋군.”
단평을 남긴 안키세스는 안장 위에서 자리를 잡고는 고삐를 잡고 말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린다.
“하아!”
그리고, 내달린다.
···인상적이다.
이 시대의 말은 우리 시대의 당나귀 정도 크기다.
탄다고 해봐야 어린애가 탈 정도고, 당연히 힘도 딸리니 보통은 사람이 직접 타기보다는 등에 짐을 실어놓거나 여러 마리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나 안키세스의 말은 달랐다.
내가 아는 다른 말들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는 더 컸다. 뼈는 굵었고, 근육은 단단하게 꿈틀거린다.
무엇보다도 전인류가 강제 뚜벅이 생활을 경험해야 하는 이 시대에, 안키세스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기마술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는 트로이아 최고의 기사이자 최악의 기사일 거다. 왜냐하면 기사가 자기 혼자밖에 없으니까.
나와 비슷한 감상을 받았는지, 근처의 시종들도 안키세스가 들판을 내달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마치 신과 같은 모습이야.”
“저러니 아프로디테께서 저분께 아들을 주신 거겠지···.”
그런 중얼거림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평소의 괴짜 안키세스는 어디 가고 말을 타는 강건한 미중년만 남아 있으니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었다.
한참동안이나 즐겁게 말달리던 안키세스는 점차 마음을 가라앉힌 듯 말의 고삐를 가볍게 당겨 속도를 늦춘다. 나와 시종들은 안키세스가 멈춰선 그 지점까지 따라 달렸다.
“굉장하군! 다리에, 아니 온몸에 부담이 훨씬 덜 들어가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그렇게 등자와 안장을 써서 말을 타는 데 계속 익숙해지시면, 나중에는 말 위에서 양다리의 힘으로 몸을 지탱하고 칼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활을 쏘는 일도 가능해지겠죠.”
“그건··· 놀랍군. 말 위에 탄 채로 적과 싸운다?”
“적들의 머리 위에서, 말발굽으로 적들을 깔아뭉개면서요.”
안키세스는 내가 말하는 광경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는지 눈을 빛냈다.
“그거 정말 멋지군! 말을 탈 줄 아는 저 북방의 야만인들도 그런 일은 감히 해내기 힘들어 할 걸세!”
아마 그렇겠지. 걔네도 지금 안장 같은 건 없을 거다.
“아주 고맙네. 자네 덕분에 아주 멋지게 말을 탈 수 있게 되었군.”
안키세스는 즐겁게 웃었다. 지금이 아마 부탁을 건넬 기회일 것이다.
‘등자’에 대해 떠올렸을 때부터 벼르고 있었던 그 부탁을 말이다.
“안키세스 님.”
“왜 그러나, 파리스?”
“혹시 안키세스 님께서 저와 다른 사람들에게 기마술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안키세스의 표정이 갑자기 침착하게 변한다.
“파리스? 비록 내가 말을 타는 모습이 굉장히 극적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이렇게 커다랗고 오래도록 탈 수 있는 말은 세상에 별로 없단다.”
“압니다.”
“물론 그렇겠지. 키가 크다고 해봐야 네 배꼽이나 가슴 정도까지 오는 높이일 테고, 쉽게 지쳐서 대부분 짐수레나 끌고 다니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나는 말에서 내린 안키세스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도, 이 말이 트로이아의 신마(神馬)에서 씨를 받아오신 결과물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뚝.
갑자기 주위의 소리가 멎는다.
조용히 안키세스의 귀에서 떨어져 보니, 안키세스의 얼굴이···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온 시종들도 충격받았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아, 어, 어어? 뭐라고? 아니지, 하, 하하하, 네가 어디선가 이상한 소문을 듣고 왔구나. 그게···”
“총 6마리지요?”
다시 뚝.
안키세스의 얼굴 표정이 굳었다.
“마침 잘 되었습니다. 6마리 중 한 마리만 허락해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배울 자신이 있습니다.”
“···.”
“안키세스 님?”
“···사, 사흘에 하루씩 시간을 내보거라.
사흘 뒤에··· 여기로 나오면, 그때부터 시작하자.”
해냈다.
***
내 친아버지가 프리아모스.
프리아모스의 아버지가 라오메돈.
라오메돈의 아버지가 트로이아의 건설자인 일로스.
일로스의 아버지가 트로스.
···그 트로스의 셋째 아들이 바로 가니메데다.
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던 가니메데는, 제우스에게 납치당한 뒤 신들을 위해 술시중을 드는 직분을 얻게 되어 영생을 누리며 살았다. 아니, 살고 있다.
나도 올림포스에 올라갔을 때 가니메데를 잠시 마주쳤으니.
아무튼 난데 없이 아들이 제우스의 그렇고 그런 욕망 때문,에 그렇고 그런 목적으로 납치된 트로스는 심히 당황했다. 그리고 제우스는 그런 트로스에게 보상으로 신성한 불사의 말을 선물해주었다.
나중에 라오메돈이 헤라클레스에게 보상으로 주겠다고 사기쳤던 말이 바로 이 녀석이다. 어찌 보면 그 말 한 마리 때문에 나라를 말아먹었다 볼 수 있겠다.
아무튼, 라오메돈은 조카인 안키세스에게 그 불사의 신마(神馬)를 돌보도록 명했고···
“역시, 혈통이 혈통인지라 정말 훌륭하군요.”
“···그쯤 만지고 어서 올라타거라.”
“알겠습니다.”
···안키세스는 몰래 그 씨를 삥땅 쳤다.
자기 소유 암말과 교미시켜서.
그렇게 낳은 6마리 중 2마리는 안키세스가 이미 아이네이아스에게 선물로 주었을 것이다.
하나는 안키세스가 이미 타고 다니고 있고.
“여기, 고삐를 쥐거라.”
“감사합니다, 안키세스 님.”
다시 그 중 하나가 내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남는 게 이제 둘인데···
“헥토르 형님? 형님도 감사인사를 하셔야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훌륭한 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신마를 제하면 이보다 좋은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아닐세.”
당연히 트로이아 최고의 영웅에게 줘야지.
마차를 끌려면 적어도 2마리는 있어야 할 테니.
신마의 자손들을 타고 다니는 헥토르와 아이네이아스.
이래야 포세이돈한테 말 2마리를 선물받은 아킬레우스랑 밸런스가 대강 맞지 않겠나?
아무튼 헥토르는 실험적인 것보다 확실한 걸 선호하는지, 새로 얻은 말 두 마리에 굴레를 씌워 마차 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차차 기마술을 배우도록 설득하면 되겠지.
“파리스.”
“네, 따라가겠습니다.”
어차피 트로이아에 기마술을 가르칠 스승이 한 사람뿐이라면, 그 한 사람이 프리아모스와 함께 국정을 살피느라 바쁜 안키세스라면, 몇 년 안에 기병을 양성하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다.
해봐야 두서너 명?
그렇지만 트로이아의 주요한 장수 중 한 사람이 기마술을 익힌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다.
전략적으로는 큰 효용이 없을지 몰라도, 영웅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한 이 시대의 전장에서는 전술적으로 거대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
전투의 승패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아, 맞아. 파리스?
“왜 그러십니까, 안키세스 님?”
“나도 제대로 가르쳐주기 힘들 수 있다. 이거 안장을 쓰는 법을 익혀보니, 이전과는 균형잡는 법부터 달라지더구나.
그런데 말타는 건 균형잡는 게 기초니까 나도 초보라 할 수 있겠어.”
“어··· 예?”
“그러니까 네가 알아서 익히거라. 해보니까 몸을 똑바로 세워야 할 것 같은데··· 감속하거나 멈출 때는 고삐를 당기거라.
출발할 때는 구령을 외치거나, 뒤꿈치로 가볍게 배를 차주고. 이렇게.”
“자, 잠시만 기다···”
안키세스가 자기 발을 내밀어 내 말의 배를 발로 찬다. 그러자 말이 콧김을 내뿜으며 질주하기 시작한다.
“으, 으아, 으으으으아아아악!!!!”
“수고하거라, 파리스! 몸의 균형을 잡고!
···어이쿠. 떨어져도 별로 안 아프지? 그렇지?”
···어쩐지 안키세스가 쉽게 당해주더라.
***
약 5번을 내리 굴러다니고, 8번을 낙마할 뻔하다 살았고··· 1번을 낙마했는데 발이 등자에 낀 채로 한참 동안 바닥에 질질 끌려다닌 결과, 이제 말에서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이거, 근데 말이 생각보다 제멋대로네요?”
“음? 어떤 점에서 말인가?”
“말씀해주신 대로 신호를 줘도 가끔씩 그냥 제멋대로 날뛸 때가 많아요.”
“그건 원래 그렇네. 자네가 낯설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도 비슷한 상태에 빠질 때가 있지. 그럴 땐 별 수 없이 말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기다려야지.”
···음?
“말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고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런 일이 얼마나 잦나요?”
“대강 반나절 실컷 타고 즐기면 그 중 5분의 1 정도는 그렇네.”
“···.”
이건 또 곤란하다.
만일 내가 말 위에서 하루종일 전장을 내달리는데 그 중에 두세 시간 정도를 말이 내 통제 하에서 벗어난다면?
특히나 전장이라면, 겁이 많은 말에게는 소음과 날붙이 같은 스트레스 요소가 아주 많은 곳이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말이라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잠깐, 훈련되지 않은 말?
“안키세스 님? 이 말은 어떻게 길들였습니까?”
“자네도 몰아봐서 잘 알겠지만 이놈들이 굉장히 영리하다네. ···혈통이 혈통이라, 크흠.
아무튼 내게 말타기를 가르쳐준 야만족도 몰다 보면서 이런저런 신호를 주다 보면 서로 소통이 된다 하던데 딱 그런 느낌이었네.”
“특별히 훈련을 한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음? 무슨 훈련?”
말을 훈련시킨다는 개념이 없다.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말을 가축화한 건 역사가 길지만 그 위에 올라탄 역사는 더 짧고, 지금은 안장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니까.
해봐야 저 북쪽의 유목민들이나 이제 막 기마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정도다.
그렇다면야 군마로 훈련시킨다느니 뭐니 할 개념이 없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하하, 내가 뭐 목숨 걸 일이 있겠나? 가는 데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기는 해도 전장 한가운데서 말에 올라있던 적은 없네.”
나의 목적이 전쟁 준비인 이상 다른 방도가 필요하다.
생각해보자. 안장도 없이 굴레만 씌우고 고삐만 달아 겨우 말을 통제하기 시작한 오늘날에 대해서.
3,000년 뒤의 미래와 오늘날은 그 제반조건부터 완전히 다르다.
말의 체구가 작아서 오랫동안 단독으로 사람을 싣고 다니기 힘들고, 결국 말이라는 전략자원은 전차 단위로 운용하게 되었다.
기마술을 익히는 과정부터가 어렵다. 안전벨트 없이 로데오를 한다면 목뼈가 부러져 죽기 십상인데 안장도 등자도 없는 이 시절에 말에 오른다는 게 딱 그 수준이다.
어찌저찌 기마술을 익힌다 하더라도 그 난이도는 변함이 없어서, 체력과 주의력의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매 순간 균형을 잡으며 사방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말을 오래 탈 수 없는 조건들로 가득했지만, 내가 안장과 등자를 개발함으로써 해결이 되었다.
“만약에 내가 이 녀석을 전장에 나간다 생각하면, 스스로 알아봐야 한다는 건가···.”
나는 투레질치는 녀석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거 잠깐 올라탔다고 벌써 내 손길에 익숙해진 걸 보아 영리한 놈이다.
그래. 주위 사물들에 겁을 덜 먹게 한다든가, 피로감을 줄인다든가 할 만한 수단들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이 녀석 눈 아래에다 그림자를 못 보게 섀도우 롤을 깔아도 되겠는데?”
“음?”
“그냥 뭐, 말이 눈 아래쪽을 못 보게 해서 앞에만 집중하게 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군. 대체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내는 건가?”
“···말···딸.”
“뭐라고?”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흠··· 잠깐만.
“저 북방의 유목민들은 어떻게 말을 길들인 겁니까? 안키세스 님은 너무 말 타는 데 능숙하지 않으십니까?
야만인이 가르쳐줬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북방의 말들이 다 안키세스의 말 같은 것도 아닐 텐데.”
“북방에는 켄타우로스들이 살지 않나? 그들을 보고서 동경하는 마음이 드니 억지로나마 따라한 게지.”
맙소사.
켄타우로스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