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멘토가 정해지고 며칠 후.
연습생들은 배정된 멘토들과 의논해 가며 경연 무대를 준비했다.
중간 평가 무대는, 편곡이 완성되지 않은 무대였다.
이번 미션이 비록 ‘선배 아이돌 커버’이긴 하지만, 그대로 따라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대로 재현해 내는 건 마이너스 요소였다.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커버라는 게 있겠는가?
“커버 무대는 원곡자를 뛰어넘을 생각을 하면 안 된대.”
새벽,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연습실.
서백영이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길게 썬 당근이 들려 있었다.
“그냥 노래만 같은, 다른 무대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한대.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몇백 일, 몇 년을 연습한 원곡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다. 애초에 뛰어넘겠다는 생각을 했다간, 원곡의 팬들에게 미움받기 딱 좋았다.
그런 욕심보다는, 그저 다른 매력으로 접근하겠다고 생각해야 했다.
리메이크지, 뛰어넘겠다는 게 아니다.
“그래. 멘토님도 그 얘기 하시더라.”
“어떤 분으로 배정받으셨어요?”
“진화 선배님.”
아.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쉬의 메인 댄서.
이미 춤 쪽에서는 아이돌 중에서도 탑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댄스 주력인 서백영에게는 제격이었다.
“잘됐네요. 잘해 주시나요?”
“응. 원래 안면 있는 사이기도 하고. 워낙 실력 있는 분이시니까.”
다행이군.
나는 빠르게 서백영에 대한 불안함을 지웠다.
“그런데 말이야.”
“네?”
서백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복잡한 얼굴이었다.
“너 왜 멘토… 안 뺏었어?”
이 질문 왜 안 들어오나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뺏을 필요 없잖아요. 다른 연습생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로 했으니까. 다행히 모두 도와주기로 했고요.”
오 PD와 딜이 끝나자마자, 오 PD는 내게 카메라 하나를 붙여 주었다.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에게 협조를 얻어 내는 감동의 장면까지 따냈다.
…물론 솔직히 대부분 감동이나 우정 때문에 나를 도와준 건 아닐 거다.
앞에 카메라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해?
거절했다간 인성 논란 터지게 생겼는데.
“그게… 그게 말이 돼?”
아니나 다를까, 현실적인 면이 있는 서백영은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결국엔 연습생이야. 멘토들을 이길 순 없어.”
“알고 있어요.”
“그럼 대체 왜? 이미지 챙기려고 그런 거야?”
아야.
아픈 질문이군.
“아주 없다곤 못 하겠네요. 솔직히 거기서 멘토 뺏었으면 욕 좀 먹었을 테니까.”
“욕먹어 봐야 잠깐이야. 다들 어쩔 수 없다고 생각-”
“전 방송국 안 믿고, PD님 안 믿어서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도 여기서 데뷔하고 싶으면 믿지 마세요.”
“…!”
다른 PD도 아니고 그 오 PD다. …7년 뒤에는 오 PD 때문에 은퇴하는 연예인도 몇 나온단 말이야.
“아니… 그래서 자신은 있는 거야? 다른 연습생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카메라 있을 때만 하잖아, 너.”
“다들 바쁠 테니까요.”
“사실 처음부터 우리한테 도움받을 생각도 없었던 거네. 그냥 너 혼자 하려 했지?”
들켰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프로듀서인 쪽이 익숙했다.
병아리들한테 뭘 도와 달라 해, 도와 달라 하긴.
내가 은근히 도와줘야 하는 쪽이면 모를까.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제가 남의 도움 받는 거에 그렇게 익숙하지 못해서요. 죄송하기도 하고.”
“죄송할 게 뭐 있어. 네가 우리 멘토 뺏어 가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데.”
“언니가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김려유라거나.
서백영은 내 생각을 정확히 읽었는지 반박은 하지 않았다.
“편곡은 다 했어?”
“그럼요. 원곡과는 꽤 많이 다른 분위기일 거예요.”
중간 평가 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를 시켜 놨으니까.
나는 일부러 중간 평가 때 완성된 무대를 보여 주지 않았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그럼 재미없잖아.
“네가 편곡도 직접 할 줄은 몰랐어.”
“아무도 몰랐을걸요.”
그거야 편곡 능력은 윤청의 것이 아니라 나, 백녹하의 것이니까.
하지만 서백영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는지,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윤청을 못마땅하게 대한 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뭐, 굳이 정정하진 말자.
“걱정 안 돼?”
서백영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날 보았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을 걱정해 주고 있다니.
넌 천생 리더감이다.
나는 낯선 느낌에 눈을 깜빡였다.
“이번 무대, 중요하다는 거 너도 알 거야. 물론 모든 무대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건 첫 미션이니까.”
“그렇죠.”
나는 아이돌이긴 했지만, 아이돌 그룹에 소속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솔로로 데뷔했으니까.
많은 솔로 아이돌들이 그룹 활동 후 홀로서기로 나오는 걸 생각하면, 아주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그룹 활동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주변 아이돌 그룹 출신 친구들 덕분에 간접적으로 느껴 본 게 전부였다.
그들이 부러웠던 적이 없었다곤 말 못 하겠다.
혼자라는 건 언제나 외로운 일이었고, 또 불안한 일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라는 관계는 아주 특별한 관계인 게 보였다.
동지, 전우, 친구, 동료.
그 모든 것을 합친 무언가.
그 끈끈함은 확실히 부러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니까.
물론 나는 단 한 명의 실수로 그룹 전체가 붕괴되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솔로인 것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걱정 안 시킬게요.”
이렇게 누가 날 걱정해 주는 것도 나쁘진 않네.
***
경연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새벽 2시까지 연습하다가 퇴근을 준비했다.
연습실을 청소하고, 문을 잠그고 나오는 순간-
“안녕하세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발성이 좋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
이건….
“안녕.”
류보라였다.
배우 하기 딱 좋은 목소리군. 힘 있으면서도 단단한 목소리.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기보단, 뭔가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이제 퇴근하세요?”
“응, 너도?”
“네, 저도.”
이 시간까지 남아 있다니.
꽤 열심히 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사윤 선배님이 멘토였지?”
“네. 저는 사윤 선배님 솔로곡 커버라.”
화이트노이즈의 사윤.
올라운더 멤버로, 특별한 메인 포지션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력 하나는 화이트노이즈에서도 손꼽히는 멤버였다.
그리고 솔로 앨범을 낸 유일한 멤버기도 했고.
그 앨범, 대성공했는데. 부담스럽지도 않은가 보네.
보기보다 배짱이 있는 타입인가 보다.
생긴 건 무슨 톡 하면 쓰러질 것 같은 아기 사슴처럼 생겼는데.
“응, 수고했어. 다음에 보자.”
대충 인사하고 떠나려는 순간,
“언니.”
류보라가 나를 붙잡았다.
“응?”
“금이가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 하더라고요.”
금이…면 김금을 말하는 거겠지?
갑자기 김금?
나는 뜬금없는 주제에 대답을 못 했다.
“언니가 편곡을 잘한다는 소문, 벌써 파다해요. 프로듀서님도 언니 편곡 듣더니 손 더 안 대고 보내 줬다고.”
그거야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칭찬 고마워.”
“그래서 금이가 욕심이 나나 봐요.”
“욕심?”
“언니랑 데뷔하면 곡 같이 만들 수 있겠다고요. 하나보단 둘이 편하니까요.”
김금과 류보라.
둘 다 같이 데뷔하고 싶은 유력 후보들이었다.
김금의 능력치야 말할 것도 없었다. 김금은 스틸블루가 망한 후에도 그 재능 덕분에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면 승승장구했지.
아이돌 출신‘치고’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잘했으니까.
하지만 류보라는….
“너는?”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배우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류보라는 그냥 증발이라도 한 듯, 연예계에서 은퇴해 버렸다.
“네?”
류보라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너는 나랑, 데뷔하고 싶어?”
“…그럼요. 당연하죠.”
류보라는 바로 얼굴에 가면이라도 씌운 듯, 예의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처럼 실력이 좋은 사람과 데뷔하는 거, 누구나 반길 만한 일이잖아요.”
굉장히 진심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다운, 틈 하나 없는 연기력.
예쁘긴 정말 더럽게 예쁘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얼굴로 어떻게 일반인의 삶을 살았다는 거야?
“아무튼, 다음번에 금이 연습할 때 한번 봐주세요. 걔가 생긴 건 좀 그래도 애는 착하거든요.”
“그럴게.”
뭐, 나야 김금이랑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김금이랑 류보라가 친한 건 의외였지만.
하긴 둘이 동갑이었지. 18살.
“네, 그럼 들어가세요.”
류보라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깍듯하고 예의 바르네.
…엄청나게 벽이 느껴지긴 하지만.
류보라는 내 인사를 딱히 기다리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보라야.”
나는 그런 류보라를 불러 세웠다.
“금이 말고, 너는 연습 도움 필요 없어?”
류보라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대답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역시 벽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