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누구의 멘토를 뺏겠습니까?”
“저는…”
나는 망설이는 척, 카메라를 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방송은 어그로로 시작해서 어그로로 끝난다.
아마 오 PD 성격상 여기서 한번 끊고 넘어갈 텐데, 편집점 줘야지.
이렇게 어그로를 끌수록 내 분량이 느는 건 확실하니까.
“뺏지 않겠습니다.”
“!”
오 PD는 정말 놀랐는지 작은 눈을 최대한 크게 떴다.
“왜… 왜 안 뺏겠다는 거죠? 멘토가 없으면 불리한 부분이 많아요.”
그러나 오 PD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미션 때 편곡이나 안무 짜기, 트레이닝 모두 멘토가 도와주는 건데, 그런 이점이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런 이점을 모두 포기해도 된다는 건가요?”
오 PD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윤청 연습생은 본인 능력에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 나는 멘토가 없어도 된다, 그건가? 아니면, 뭐, 사장님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자막으로 아주 대문짝만하게 나가겠군.
의미심장한 BGM과 함께.
벌써 귀에 들리는 듯했다.
자막: 멘토를 거부한 윤청 연습생. 이유는…?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어떤 대답을 하냐에 따라 내 캐릭터의 편집 방향이 잡힐 테니까.
만약 자신이 없다고 하면, 마음만 약한 바보로 보일 거고.
자신이 있다고 하면, 선배 아이돌을 싹 다 무시하는 건방진 연습생으로 보일 것이다.
전자는 노잼 캐릭터, 후자는 빌런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방송 초반부터 그런 캐릭터로 갈 순 없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오히려 멘토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에게서 멘토를 뺏어 올 수 없다고 결정한 거예요.”
나는 최대한 침착해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얼굴을 굳혀선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혼자 경연을 준비하겠다는 거죠? 멘토도 없이?”
됐다.
나는 오 PD의 질문을 듣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원하던 질문이었다.
“저는 다른 연습생의 멘토를 뺏는 대신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저만의 멘토를 만들겠습니다.”
“…?”
내쉰다.
오 PD는 ‘얘가 정신이 나갔나’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 기분 나쁜 시선을 참고,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는 다른 연습생들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저를 쭉 봐 온 제 동료들을 제 멘토로 삼겠어요.”
“!”
오 PD는 다시 한번 놀란 눈으로 날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긍정적인 놀라움에 가까웠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해도 괜찮으실까요?”
나는 일부러 오 PD의 허락을 구했다.
오 PD 같은 사람은 이렇게 본인의 허락을 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고?
허락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우기면, 날 찍어 누르고 싶어 할 테니까.
저런 인간들은 그렇다.
‘권위’를 중요시한다.
“솔직히 당혹스럽긴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오 PD의 표정은 바로 부드러워졌다.
“안 될 건 없을 것 같네.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강 작가?”
“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원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연습생들끼리 서로 돕기도 하니까. 그걸 좀 공식화하는 걸로 봐도 무관하겠죠.”
메인 작가인 강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말이지.”
오 PD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윤청 연습생은 다른 연습생들이 도와줄 거라고 확신하나요? 이건 경연이에요.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지금 윤청 연습생을 강력한 데뷔 후보로 꼽고 있어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 이 말이 방송으로 나가는 건, 좋지 않았다.
유력 후보라는 말은, 물론 기분 좋은 말이긴 했다.
하지만 방송에 타고 나갈 시, 단점이 더 많았다.
왜냐고?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랬다.
첫째, 견제 대상이 된다.
좋게 말해서 견제 대상이지, 나쁘게 말하면 모두의 적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투표를 생각하면 그건 최악의 방향이었다.
둘째, ‘설마 쟤가 안 되겠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뽑겠지. 일단 급한 애부터 뽑자.’의 ‘쟤’가 되고 만다.
실제로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어난 일이다.
누가 봐도 절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안정권 후보들도 떨어지곤 한다.
왜?
바로 이런 것 때문에.
안심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오 PD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경을 꾹 참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데뷔 못 할 것 같아요, 라며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처음에는 동정표를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저 동정표일 뿐이다.
인기가 아니야.
둘은 분명하게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연습생들이 윤청 연습생을 도와주려 할까요?”
합당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예상한 질문이었다.
“네.”
“!”
오 PD와 강 작가가 눈을 크게 떴다.
아마 내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단호하게 말해서인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글쎄.
나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확신하는 게 아니라, 확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확신해야 한다?”
오 PD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네. 왜냐면-”
***
8평짜리 자취방.
텔레비전에서는 요즘 가장 반응이 좋은 아이돌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바로, ‘메이크 어 뉴 컬러’.
이제 막 3화가 시작됐지만, 반응은 미친 듯이 뜨거웠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설픈 연습생들, 악마의 편집이지만 간신히 선은 넘지 않는 연출.
하지만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비주얼이랑 실력이지.”
방구석에서 맥주 한 캔을 딴 모 컬러즈 팬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왜 특정 아이돌 그룹의 팬이 아니라, 소속사 ‘컬러즈’의 팬이라 자처하던가.
일명, 컬덕.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컬덕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
컬러즈 놈들이 일을 잘해서냐고?
아니다.
컬덕이 보기에 컬러즈는 일을 지지리도 못했다. 아티스트를 쥐어짤 줄만 알았지, 아티스트들을 잘 대우해 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눈 하나만큼은 귀신같단 말이야.”
솔직히 컬러즈 캐스팅 디렉터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그 사람이 연봉 다 받아 가야 한다.
최소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사실 별 기대 없이 본 ‘메뉴컬’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컬러즈 소속 아이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굳이 또 새로운 아이돌을 파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현실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퇴근하고 나면 기절할 것 같은데, 새로운 아이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왜 보고 있냐고?
“…하필 또 금요일 밤에 하잖아!”
퇴근한 직장인들이 맥주 마시면서 보기 딱 좋게!
그녀는 중얼중얼거리면서 화면을 보았다.
솔직히 컬러즈는 마음에 안 들지만, 애들은 하나같이 다 뛰어났다.
“이래서 컬러즈 못 놓지….”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맥주를 마셨다.
열두 명의 연습생들 모두 정말 빠짐없이 인재들만 모아 놓았다.
누구 하나 데뷔 못 하는 게 마음 아플 정도로.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있었고, 누가 봐도 쟤는 데뷔해야 한다 싶은 애가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 나오는-
제작진: 확신해야 한다?
[윤청: 네. 왜냐면….]윤청이었다.
8년 컬러즈 덕질의 짬밥이 말해 주고 있었다.
‘컬러즈 특산품 비주얼 되고 끼 되고 춤 되는 메보…!’
놓칠 수 없었다!
다만, 재능과 매력은 또 다른 영역.
그녀는 아직까진 그냥 객관적으로 ‘아, 쟤 좀 괜찮네.’ 하는 마음으로 윤청을 보고 있었다.
여태껏 두드러진 캐릭터가 그렇게 막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두드릴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윤청: 지금 이 서바이벌이 마지막이 아니잖아요.]연습생들 특유의 화장기 옅은 얼굴, 어설프게 손질된 검은색 생머리.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어려 보이지만, 20살이라고 했었지.
[윤청: 누가 데뷔하든, 이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잖아요. 때때로 가시밭길도 있고, 또 때때로 꽃길도 있겠죠.]차분하게 말하는 목소리 톤만 들으면, 인생 다 산 어른의 느낌도 나고.
20살의 분위기라기엔 신기했다.
그러나 뭔가 고개를 끄덕이며 듣게 되는 힘이 있었다.
[윤청: 저희는 그 길을 같이 걸어갈 사람들이니까요. 서로 지탱하고, 또 서로를 위할 운명이고.]…덕후의 심금이 조금씩 울리고 있었다.
[윤청: 다들 데뷔하고 싶겠죠. 하지만 누구도 데뷔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거예요.]윤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꼿꼿하게, 하지만 맑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윤청: 저희는 하나의 그룹이고, 저는 다른 연습생들을 그저 라이벌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멤버들이라 생각해요.]제작진: 데뷔할 거라고 굳게 믿는 듯한 말투인데?
[윤청: 네.]텔레비전 속 윤청은, 정말이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윤청: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모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그리고 그 미소가, 어느 한 컬덕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윤청: 그래서, 저는 다른 연습생들을 멘토로 삼고 싶어요. 그분들이 저를 기꺼이 도와줄 거라고 믿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