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1화 녹화가 끝나고.
나는 멤버들을 먼저 숙소에 보낸 후, 다흰과 잠시 남았다.
회사를 통해 미리 빌려 둔 차 안에서, 오랜만에 단둘이 만난 것이다.
“오늘 선배님 정말 잘하시던데요…! 반면에 저는….”
다흰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아냐. 다흰이 너도 오늘 너무 잘했어.”
“아니에요. 제가 봐도 아예 질적으로 달랐는걸요.”
다흰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냥… 무대를 기획할 때 저희의 의견이 조금만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단 더 나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들어요.”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다.
만약 김 이사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면 나도 저러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먼저 모먼트를 견제할 만한 무기가 필요해. 뭔가를 발견했다고?”
“아, 네!”
다흰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님이 저희를 사무실로 불러 혼내실 때 이사님 책상 위에 있었던 서류예요. 이사님이 서류철 사이에 넣어 둔 건 이게 유일했거든요. 중요한 건가 싶어서 찍어 오긴 했는데….”
그건 어떤 명단들이었다.
사람 이름들과, 그 옆에 쓰여 있는 숫자들.
“이게 뭘까요?”
“글쎄.”
나도 이것만 봐선 도저히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사진, 내게 보내 줄래?”
“네!”
다흰에게서 사진을 전달받은 뒤, 그대로 한재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이게 뭐인지 알아볼 수 있겠냐는 연락과 함께.
일단 이건 더 알아보는 걸로 하고.
“다흰. 혹시… 너희 회사가 요즘 뭘 하고 있는지 아는 거 있어?”
“어… 아뇨! 또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모먼트가 우리에게 사재기 누명을 씌우려는 건 모르고 있구나.
나는 다흰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정말 그런 끔찍한 짓을… 계획하고 있다고요…?”
“내 추측이지만, 스틸블루든 인라이븐이든 다음 앨범에 모두 작업이 들어갈 거야. 하지만 터지는 건….”
“선배님의 앨범만 터지는 거군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TMM 쪽 통해서 아마 언론에도 보도가 크게 들어갈 거야. SWC도 동참하겠지.”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다흰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그런…. 하지만 전생에선 저희만 터졌었는데요…!”
“뭔가가 우리의 미래를 바꾼 거겠지. 애초에 스틸블루가 두 앨범 연속 1위를 하는 것도, 미래가 꽤 바뀐 거잖아. 전에는….”
“저희가 거의 유일한 신인상 후보나 마찬가지였죠….”
“아마 그래서 모먼트 쪽에서도 급해진 게 아닐까 싶어. 신인상 타이틀은 중요한 거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번애쉬와 넥스트젠 쪽에도 작업이 들어가겠지만….
나는 그것까지 말하진 않았다.
안 그래도 심약한 애 더 놀라게 하지 말자.
번애쉬와 협력하고 있다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다음 앨범은 어느 정도로 완성됐어?”
“저희는 싱글로 갈 것 같아요. 타이틀은 이미 뽑혔고, 녹음 중이에요.”
“컨셉도 나왔어?”
“구체화하고 계신 것 같아요. 어둡고 강한… 그런 컨셉으로 간다고 하셨어요.”
“예상되는 컴백 시기는?”
“8월 말 정도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얼마든지 앞당겨질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하라고….”
왜 그런 말을 덧붙였는지는 안 물어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컴백을 일찍 하면 저쪽도 따라 일찍 하겠다는 뜻이겠지.
“선배님께선 언제쯤에 하시나요?”
“우리도 확실한 건 없어. 7월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
“그럼 저희도 그때쯤 컴백하게 되겠군요….”
“그렇겠지.”
그나저나 어둡고 강렬한 컨셉이라.
인라이븐의 전 타이틀인 [LOVE SAVE>는 밝고 희망찬 느낌이었다.
신인다운 컨셉이었지.
어두운 컨셉은 주로 코어 팬덤을 모을 때 쓰는 전략이다.
이번 앨범으로 팬덤을 끌어모으려는 생각인가 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반대로 가는 게 맞겠지.
마침 우리가 구상하고 있는 컨셉과도 맞아떨어졌다.
“다흰. 일단 네가 찍어 온 사진은 내가 알아볼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쾅쾅!
“!”
내가 다흰을 위로하려는 순간, 갑자기 차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누군가가 다흰이 앉은 조수석 쪽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다흰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조수석을 두드리는 손과 얼굴을 보았다.
“저, 저희 매니저님이에요….”
매니저?
나는 얼굴을 구겼다.
이렇게나 대놓고 위협적으로 굴다니.
“나와!”
우리가 문을 열어 주지 않자, 매니저가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냐.
나는 다흰에게 잠시 뒤로 물러서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창문만 내렸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거기서 뭘 쑥덕거리는 거야? 약속한 10분을 넘겼잖아! 당장 나오지 못해?”
다흰의 매니저는 거의 악을 지르고 있었다.
다흰은 그저 벌벌 떨고 있었고.
…평소에도 항상 이런 태도였나 보군.
“목소리 낮추시죠.”
“목소리를 낮춰? 야. 니가 뭔데-”
“여기 방송국 주차장입니다. 언제든 이 장면을 찍을 사람이 널려 있다는 건 매니저님도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허! 신인 주제에 말만 따박따박…!”
“그리고 저 매니저님 아랫사람 아닙니다. 같은 성인끼리 반말부터 대뜸 하시는 거, 예의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말에, 매니저의 눈이 뒤집혔다.
“어린 게 좀 떴다고 어디서…! 너 내가 누구 키웠는지 알아? 어?”
“모먼트 아이돌들 키우셨겠죠. 그래서요?”
“뭐, 뭐?”
“전 컬러즈 소속입니다. 매니저님이 절 키우실 일도 없는데 그걸 저한테 강조하셔서, 뭐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내 말에 매니저는 입술을 떨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원래 모먼트의 임원급인데, 인라이븐을 감시하느라 잠시 붙어 다니는 거라 했다.
이런 취급은 또 오랜만에 받는 걸 테니 열 좀 받겠지.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는 화를 풀 곳을 찾다가, 다흰의 손목을 잡아챘다.
“!”
“매, 매니저님…!”
“나와!”
“뭐 하시는 겁니까? 놓고 말하시죠.”
“나오라고, 유다흰!”
매니저는 막무가내로 다흰을 내리게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매니저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렸다.
“이보쇼.”
왔다.
“당신 뭔데 내 아티스트 차에 얼쩡거려? 손 안 치워?”
내 새로운 매니저.
내 편.
“아까 그 친구는 그렇게 보내도 되는 거야?”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새 매니저, 백주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일단 그나마 말이 통한다는 다른 매니저와 동행시켜서 보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모먼트 놈들 거칠고 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자기 아티스트들한테도 대놓고 저럴 줄은 몰랐네.”
백주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사람한테 맞서 싸운 언니도 대단해요. 언니 몸집 두 배던데.”
“지가 뭘 때릴 거야, 죽일 거야? 원래 덩치만 큰 놈들은 별거 없어.”
“하하.”
오랜만에 진심 어린 웃음이 나왔다.
그래. 원래도 이런 사람이었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마지막에는 성격이 많이 둥글어진 편이었지만.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백주하는 이런 사람이었다.
강하고, 거친 사람.
또 확고한 신념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
“스틸블루 매니저 일주일 차부터 아주 신고식 제대로 하네.”
“…저희 맡은 거 후회 안 되세요? 원래 담당 배우님은 업계 탑이라 이런 일 겪지 않으실 수 있었잖아요.”
“그 양반은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 재미없어서 나올 생각이었어.”
백주하는 선글라스를 끼며 말했다.
“성민하 배우님이 안 붙잡으셨어요?”
“붙잡았지.”
“그럼 왜…?”
왜 편한 길 내버려두고 나왔냐는 물음에, 백주하는 씩 웃기만 했다.
“걘 이제 사고만 안 치면 되는데 내가 뭐 필요하겠어. 그리고 아이돌은 처음이긴 하지만, 재밌을 것 같았거든.”
백주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돈을 뒤지게 많이 주던데. 컬러즈 돈 많긴 한가 보다 했지. 뭔 매니저 월급에 그렇게 많이 쓰나 할 정도로.”
그렇겠지….
내 수익에서 나가는 거니까….
백주하는 몸값이 비싸 컬러즈에서 정해 준 월급 기준으로는 턱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내 사비를 좀 써야 했지만, 이런 건 말하지 말자.
부담스러워할 사람이다.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야 해. 그래야 내가 너네를 케어하지.”
“그럴게요.”
“또 내가 알아야 하는 부류들이 있어?”
이젠 모먼트 말곤 더 없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먼트만 치우면 돼요.”
“치워? 회사 하나 치우는 건 껌이라는 듯이 말하네.”
“하하.”
“어라. 진심인가 봐?”
백주하는 코를 찡긋거렸다.
저거, 재밌다는 뜻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게 많겠어. 모먼트는 뭐가 문제인데?”
“아마 언니한테 컨택 계속 들어갈 거예요.”
“뭔 컨택?”
“정보 좀 넘기라고.”
“상도덕이 없는 놈들이네.”
백주하는 혀를 내둘렀다.
“돈은 많이 준대?”
“많이 주면, 받으실 건가요?”
“아니. 난 불로소득 싫어해. 사람이 일해서 돈을 벌어야지, 검은돈은 필요 없어.”
말은 저렇게 해도 대쪽 같은 사람이다.
백녹하였을 때,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주었던 그 매니저 언니가 바로 저 사람이었다.
10년 넘게 봐 왔고, 10년 넘게 좋은 사람이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
신뢰 하나는 보증된 사람이었다.
전생에선 서 대표가 싹싹 빌어서 데려왔는데, 다행히도 백주하가 날 마음에 들어 해서 눌러앉았었다.
이번에도 잘 눌러앉아 주면 좋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니까.
“청아.”
“네.”
선글라스 뒤에 있는 눈빛이 반짝, 하고 빛났다.
“나한테 페이가 센 월급을 줄 때부터 각오하고 왔다.”
“….”
“나, 내 배우 밑바닥부터 탑까지 끌어올린 사람이야. 온갖 더러운 꼴 다 봤으니까, 뭐가 필요한지 말해.”
백주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액셀을 밟았다.
“오늘 무대 보니까 알겠더라. 실력 보아 하니 내가 없어도 충분히 뜰 애들인데. 왜 나를 불렀을까. 생각하다 보니 답 나오더라고. 뭔가 필요한 게 있구나. 아니면-”
“뭔가 치워야 할 게 있구나.”
“그렇지. 뭔가 더러운 걸 하나 치워야 하나 보다, 했지.”
때마침 숙소에 도착하고.
백주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제 말해 봐. 뭐가 문제니?”
…일단 물꼬부터 터 볼까.
“이 사진에 대해서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나는 다흰에게서 받은 사진을 백주하에게 보여 주었다.
“이게 뭐야?”
“모먼트 이사 사무실에 있었던 서류예요.”
“좋아. 내가 뭘 파야 하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내 추측을 내놓았다.
“저는 이 명의들이… 모먼트가 사재기를 할 때 쓰는 명의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
“물론 제 추측일 뿐이긴 해요. 그 추측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건…”
“나겠지.”
백주하는 내 핸드폰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았다.
“이해했다. 이거 나한테 넘겨.”
“네.”
“그리고 청아.”
“네?”
백주하는 인상을 팍 썼다.
“넌 이제 무대랑 다음 앨범만 신경 써. 세상 어떤 아티스트가 이런 거까지 신경 써? 컬러즈 뭐 하는 놈들이야? 니 본업만 생각해, 이제.”
와.
정말이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