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사실 이 회동을 만든 건 나였다.
물론 나도 홍 사장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회사의 다른 간부급이 오겠거니 했을 뿐.
먼저 난 오 PD가 혹시나 자신에게 튈 불똥을 겁내게 했다.
연주홍을 통해서.
어지간한 동기로는 오 PD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 PD와 내가 협력을 몇 번 한 건 맞지만, 그건 어쩌다 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오 PD는 슬슬 가늠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내 편을 드는 게 이득일지, 아니면 슬쩍 빠지는 게 이득일지.
물론 비열한 오 PD의 특성상, 귀찮은 건 피하고 싶어서 빠지는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빠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이다.
다른 연습생의 말이라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주홍은 막내.
17살이라는 나이는, 생각보다 많은 설득력을 가진다.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는 말이지.
못돼 처먹은 어른에게 강요를 받기엔 딱 좋은 나이 아닌가.
오 PD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연주홍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겁낸 것이다.
거기다가 나는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아예 오 PD의 핸드폰으로 음성 파일을 보내 버렸으니까.
아마 솜 뭉탱이가 그렇게 복도로 나가 보라고 알림을 준 건….
이런 상황을 대비하라는 약간의 힌트였겠지.
이 더러운 세상을 겪다 보니 나도 녹음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터득했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녹음을 한 것이고.
이 음성 파일을 쓸 일은 안 생기길 바랐지만….
써야 할 때 안 쓸 생각은 없다.
아무튼.
음성 파일을 받은 오 PD는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님을 깨달은 듯했다.
바로 이런 모임을 주최한 걸 보니.
“…대충 내용을 전해 듣긴 했지만, 정말 기가 막히는군.”
홍 사장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어린 애가 대체 어디서 이런 것만 배워 와서….”
홍 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김 이사를 대놓고 노려보았다.
아마 저기서 배우긴 했겠죠.
김 이사는 입술을 꽉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이 상황에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이상했다.
“먼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윤청 연습생.”
홍 사장은 이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꼬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미리 대응해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우리도 자세한 정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 바로 대처하지 못했어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홍 사장의 말은 반만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구 말이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어서 대응을 미룬 것도 맞을 것이다.
섣불리 대처했다가, 자신들이 틀린 게 밝혀지면 일이 더 커지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홍 사장은 ‘약간’의 논란이 화제성을 부르고, 화제성이 인기를 부른다는 연예계의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이 논란을 며칠간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내버려 둔 건….
신중하려는 마음 반, 논란을 좀 키워 보자는 마음 반이었을 것이다.
논란을 키울 대로 키운 후, 진짜 피해자는 데뷔, 진짜 가해자는 내치려는 속셈이었겠지.
그러면 엄청난 화제성 속에서 데뷔할 수 있는데다가, 여론을 등에 업고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잠깐은 입을 다물어 준 것이다.
하지만 이젠 입을 열어야지.
이래 봬도 1위로 데뷔해야 하는 입장이란 말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신가요?”
“….”
홍 사장은 역시나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좀 더 논란을 키워 볼지, 아니면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갈지 고민인 거겠지.
아무래도 진짜 피해자인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까.
“윤청 연습생이 원하는 건 뭔가요? 김려유 연습생의 사퇴?”
“아닙니다.”
내 대답에, 홍 사장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제가 원하는 건, 진실이에요.”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회사 차원에서도 입장문을-”
“아뇨.”
“?”
“제가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이거든요.
***
“언니!”
“청아!”
내가 숙소로 돌아오자 다들 버선발로 나와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이건 또 낯선 감각이군.
난 항상 집에 혼자 들어왔으니까.
애초에 숙소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냥 내 개인 집이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인터뷰 따는 건 갑자기 중단됐지, 너는 또 불려 가서 사라졌지. 우리 다 깜짝 놀랐어.”
“사장님 오셨다면서요?”
“진짜로? 왜요?!”
“사장님이 뭐라셔요?! 이제 회사 차원에서 해명하시겠대요?”
“PD님은요?! 엠텐은 어떻게 하겠대요?”
나는 슥, 김려유의 방 쪽을 돌아보았다.
다들 그 시선의 의미를 이해했는지, 바로 설명했다.
“려유 언니 오늘은 본가 가서 잔대요.”
“아, 그래?”
김 이사와 급하게 대책 회의라도 하려는 모양이군.
“그러니까 어서 털어놔 보시죠.”
다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입을 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음. 나도 불려 간 건 맞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
“왜요?!”
“아직 거긴 회의 중이시거든.”
“헐.”
난 제안했고.
거기선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무대에 집중하는 것뿐.
“내일 개인 인터뷰는 다시 따신대. 그리고 미션곡이 뭔지도 알려 줄 거고. 다들 나 때문에 일정 밀려서 미안해.”
“아니에요! 언니 때문이 아니죠! 지금 이… 이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연주홍이 길길이 날뛰었다.
고맙긴 했다.
솔직히 본인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내 걱정까지 해 주니.
“다들 잡시다. 괜찮을 거예요.”
“안 괜찮아요.”
류보라였다.
우리 네 사람의 눈이 류보라에게로 쏠렸다.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줄 알아요? 주변에서 수십 번도 넘게 봤다고요. 억울한 누명에 휩쓸려서, 연예계에 환멸 나 은퇴하는 사람들.”
류보라의 눈에는 분노를 넘어선 슬픔까지 느껴졌다.
“사람들은 진실이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쪽을 선택한다고요. 그러니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대처를 해 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미적미적-!”
“보라야.”
나는 류보라의 기다랗고 살랑이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예쁜데 또 귀엽게 생겼다.
“! 언니, 미, 미쳤…?”
김금이 류보라보다도 먼저 식겁하며 반응했다.
정작 류보라는 이 상황이 아예 인지도 안 되는지, 멍한 얼굴이었다.
“네 말이 맞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재미있는 쪽을 좇아가기 마련이지.”
나도 연예계에 있으면서 자주 본 현상이었다.
그래서 왜 류보라가 속상해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옳은 것을 좇기도 해. 지금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도, 그게 옳은 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잖아. 진실이 가려져서.”
“그래도-!”
“무엇보다 우리 팬분들도 있잖아.”
그렇게 외롭고 공허했던 연예계 생활에서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 연예계를 떠나지 않게 해 준 유일한 이유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진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백녹하로 연예계에서 10년을 살아 본 후 윤청의 몸에 들어와서 다행인 이유기도 했다.
나는 팬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직접 그 사랑을 받아 봤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 윤청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그 애가 마땅히 받았어야 했을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그 애의 노력들이 받았어야 했을 애정과 응원이 무엇이었는지.
***
“마지막 미션곡 세 개, 발표하겠습니다.”
다음 날, 촬영은 다시 재개되었다.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채로.
김려유는 어제보다 훨씬 초췌해 보였다.
아마 윗분들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겠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홍연서가 내 생각만큼은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길 바라보자.
“첫 번째 곡은….”
오 PD가 입을 뗀 그 순간,
“짜잔!”
“?!”
“헉.”
도희영이 우리의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한동안 또 안 보인다 했다.
“첫 번째 곡은, 제가 작곡에 참여한 노래인 만큼, 제가 직접 소개하겠습니다!”
오.
도 선배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아직도 아이돌 현역으로 뛰면서 예능에, 작곡에.
나는 예능엔 도저히 감이 없어서 그건 못 했는데.
대단한 사람.
“물론, 제가 혼자 작곡한 건 아니고 저희 멤버 솔이가 거의 다 했어요.”
도희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커다란 스크린 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열한 명의 댄서들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
음.
도 선배. 작곡엔 그렇게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네.
그냥저냥 딥 하우스 장르에 감각적이긴 한데… 아주 막 귀에 꽂히는 포인트는 없는.
컨셉은 어두우면서도 파워풀한 느낌이겠다.
가사도 그렇고.
이런 경연에서 한 번 정도 쓰이고 끝날 수준이었다.
물론 아주 나쁘고 그렇진 않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곤 있지만, 표정에 영혼이 없는 걸 보니.
곡보다는 사실 안무가 더 눈에 들어왔다.
“큰일 났다….”
연주홍의 표정이 안 좋아질 정도로, 안무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노래가 엄청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을 합쳐 놓으려니 조금 힘들긴 하겠다.
“자, 어때요. 좋죠! 우리 솔이 작곡 잘하죠!”
“네!”
“와, 너무 좋아요. 선배님 대박.”
다들 사회생활 열심히 하네.
나도 최대한 밝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나도 사회생활은 해야지.
“자, 다음은. 두 번째 곡. 여러분이 각각 팀별로 할 노래입니다.”
반짝.
그제야 다들 눈에 영혼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사람이 경쟁이 붙어야 또 불이 들어온다니까.
이번에는 다섯 명의 댄서들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동선은 우리가 알아서 수정하라는 뜻이겠지.
이번 곡은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의 일렉트로 팝이었다.
첫 번째 노래보다는 훨씬 더 중독성에 신경 쓴 느낌이었다.
가벼우면서도 귀에 확확 꽂히는 느낌.
안무는….
“진짜 망했다….”
연주홍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