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46
46
46 함정
건조한 동굴, 커다란 고릴라 한 마리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턱.
여울은 놈의 머리를 밟고는 그곳에 꽂혀 있는 하얀 검을 한 손으로 뽑아냈다. 놈도 화염도마뱀처럼 화르륵 타오르더니 이내 불길이 사그라졌다.
화염도마뱀보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둔한 놈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빠르고 괴력도 강하여 사람들에게 꽤 까다로운 몬스터가 될 것 같다. 몸집은 작아도 21층 대의 대형 몬스터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화염고릴라의 배를 갈라서 벌려 보니 열기가 후끈 느껴지며 안의 장기도 새까맣게 탄 것이 보인다. 여울은 왼손을 집어넣으려다가 포기했다.
이미 죽은 지 1분도 지났고 다 타 버려서 데리고 다니기 불쾌할 듯싶다. 이번 층에서는 영혼 구속 없이 다녀야 할 듯하다.
딱 하루, 하루만 몰이사냥을 해 보고 35층에서 경험치를 확인해 볼 계획이다. 베헤모스도 6레벨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40층 보스는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은서가 중요한 만큼 무리한 도전은 금물이다. 자신이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빠른 레벨업이 가능하면 레벨업 후에 40층에 도전할 것이다.
여울은 두 손에 검을 들고 몬스터들을 향해 달렸다.
화염고릴라는 높게 멀리 뛰어서 많은 개체수를 몰이할 수는 없었다. 화염도마뱀까지 합쳐서 최대 여덟 마리가 전부였다. 공동에서 충격파로 잡을 때도 화염고릴라는 한 번에 죽어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여울은 수십 번의 반복 사냥 후에 피곤함을 느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동굴에서는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없는 단점이 있어 이렇게 신체 반응으로 하루를 체크한다.
[케라브, 35층입니다.]여울은 내려오자마자 바로 감정의 돌에서 경험치를 체크했다.
경험치 7퍼센트, 하루에 2퍼센트를 올린 것이다. 아래층들보다는 빨리 오르지만 그래도 두 달은 걸리는 것이다.
“하…….”
좌절이다. 어깨에는 8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번에는 90일을 줬다. 그만큼 40층 보스가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달이라면 너무 늦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다. 이런 마음과 함께, 베헤모스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던 때가 오버랩된다.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가 있으니 일단 퇴로 먼저 확보하고 부딪쳐 볼까? 아니, 베헤모스처럼 한 방에 거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상을 입으면 속도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진다.
일단 결정을 미루고 잘 준비를 했다. 12시 방향 공동으로 가서 5층처럼 높은 곳에 홈이 파여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도 그런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놈만 없었으면 마음 놓고 잤을 텐데. 아니다, 이제는 어디서든 가능성을 두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되었다.
아주 구석으로 가서 칼론의 주머니에서 블랙다콘의 가죽 꺼내어 깔고 누웠다. 언데드 티거가 있었으면 조금 더 편안하게 잠을 잤을 텐데 싶은 마음이 든다.
여울은 밀려오는 수마에 굴복하며 의식을 놓았다.
벌떡!
얼마나 잔 거지? 31층에서 35층에 올라올 동안, 그리고 36층에서 한 번 사냥을 할 동안 한 번도 잠을 자지 않았으니 적어도 나흘 만의 수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고 지금은 개운함이 느껴지니 꽤 오래 잔 듯하다.
그딴 수마를 못 이겨 시간을 이렇게나 허비하다니,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니, 자책할 때가 아니다. 이럴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
여울은 바로 36층에 올라가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몰이사냥 끝에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한 층당 입구가 몇 개인지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35층의 구조를 봐서는 한 개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여울은 망설임 없이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케라브, 37층입니다.]챙! 채앵!
“크허어엉!”
올라가자마자 전투 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화염고릴라와 화염도마뱀 두 마리를 한 번에 상대 중인 소년이 보인다. 조금 버거워 보이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잘 피하며 상대한다.
하긴 이곳에 혼자 올라올 정도면 저런 상황은 질릴 만큼 많이 있었을 것이다. 소년은 대체 어떤 이유로 저렇게 무모할 정도로 빨리 올라가는 걸까?
남의 사정에 의문을 품을 여유는 없다. 여울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두 마리를 상대하던 중에 뒤쪽에서 화염고릴라 한 마리가 더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36층에서는 두 마리 이상 나타난 적이 없었기에 적어도 38층 이상에서부터 3마리가 겹칠 줄 알았다.
퍼억!
소년이 잠시 당황한 사이, 상대하던 화염고릴라의 앞발에 정통으로 맞았다. 소년은 가슴에 살을 에는 듯한 열기를 느끼며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등에서 느껴지는 2차 충격에 몸이 순간 경직되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하필 나가떨어진 곳이 방금 나타난 화염고릴라가 있는 곳이다.
놈의 그림자가 소년을 뒤덮었다. 놈은 두 앞발을 추켜올렸다. 저 앞발에 내리찍히면 열기는 둘째치고 그 괴력에 몸이 터져 나갈 것이다.
그때.
퍼석.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색 검이 놈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검은 다시금 쏙 빠져나와 주인의 손에 돌아갔다. 소년은 고개를 홱 돌려 그 주인을 바라봤다.
‘저, 저자도……?’
이제 경직된 몸이 풀렸다. 하지만 가슴의 열기는 그대로다. 그사이 상대하던 놈들이 다가온다. 소년은 바닥을 박차고 붕 떠올랐다.
후웅, 후웅.
여울은 몬스터들 사이로 슥슥 잘 피하며 지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몬스터들은 약이 올랐는지 소년의 뒤를 미친 듯이 쫓아간다. 그 수가 점점 불어난다. 저러니 36층에서도 몬스터를 달고 왔던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저 소년을…….’
* * *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사막 한가운데, 신기할 정도로 맑은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다. 그 주변으로는 푸르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황량한 사막의 꿀 같은 오아시스다.
그곳의 구석진 곳, 나뭇가지와 이파리로 지은 조잡한 움막이 몇 개 있고 그중 커다란 움막 안에 몇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 때문에 험악함이 더한 사내가 그 중심에 앉아 있다.
그는 능력 있는 특성자나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수집하여 노예로 만드는, 악명 높은 진강길드의 중철이라는 자다. 그들의 악행을 저지할 대형 길드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C구역만의 특이성 때문에 더욱 활개를 치는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든 케라브에서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악명이 높아지자 길드에 들지 않았던 웬만한 파티들도 모두 길드에 드는 상황이었다.
중철은 사나운 얼굴에, 머리에 터번을 쓴 사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보니까 그 여자애 뭣 모르는 거 같은데, 그냥 데리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덩치가 일단 아예 가까이 가지를 못하게 합니다.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을 극도로 피합니다. 말도 못 섞어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다 같이 쳐?”
터번 사내는 시선을 내리고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쓰다듬다가 대답했다.
“둘이 같이 있으면 저년이 요술을 써서 피해가 심할 겁니다. 음…… 이건 어떻겠습니까, 저번에 잡은…….”
* * *
잿빛이 깔려 있는 사막 한가운데, 수십 마리의 해골들이 살아 있는 트롤을 둘러싸 정신없이 공격하고 있고, 그 뒤에는 덩치 큰 사내가 해골들의 뒤통수를 빠개고 있다.
펑!
그 사내의 목말을 타고 있는 소녀, 은서가 소리쳤다.
“엇, 사라졌다! 튀어, 둥둥!”
“앗, 티어라!”
신나게 도끼를 휘두르던 둥둥은 은서의 말에 바로 뒤돌아서 라브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라브에 도착한 둥둥은 바로 은서를 내려놓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은서는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어 둥둥을 바라보았다.
“우아, 나 레벨 숙련도 꽉 찼대. 둥둥, 나 레벨 동기화 할 테니까 잘 지켜 줘야 돼?”
“후웁, 후웁, 거쩡마라, 은떠!”
둥둥은 팔을 구부려 두꺼운 근육을 보이며 든든함을 표했다. 은서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레벨 진입.”
그 말과 함께 은서의 몸이 들썩들썩거렸다. 둥둥은 그런 은서를 보며 안절부절못했지만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레벨 동기화 중에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은서에게 세뇌에 가깝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은서의 눈꺼풀이 열리고 맑은 눈망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관찰.”
-레벨 : 4
-경험치 : 0퍼센트
-특성 :
관찰 – 접촉 대상의 정보를 볼 수 있다. 시선 집중으로 몬스터의 정보를 볼 수 있다.
환상 – 제거했던 대상의 환상을 불러올 수 있다.(기여도 20퍼센트 상승) 실체감 20퍼센트.
은서는 두 눈을 깜빡이며 허공에 뜬 정보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오오, 실체감 5퍼센트 올랐다! 환상 더 강해졌겠다!”
꾸벅꾸벅 졸던 둥둥은 박수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며 말했다.
“우아, 잘대따!”
“정보창도 이제 몬스터 잡기 전에도 볼 수 있나 봐!”
“우…….”
“쉿, 잠깐만…….”
은서는 둥둥의 입을 자신의 검지로 막고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해골을 바라보았다.
-종족 : 언데드 오크
-레벨 : 2
-특이 사항 : 미스릴에 약하다.
“우오 신기하다! 진짜 나오네.”
“으흐, 으흐.”
은서가 신나 하자 둥둥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은서는 그에게 마주 웃어 보이고는 그의 등을 툭툭 쳤다.
“이제 움직일까? 둥둥 졸려 보이니까 레벨업 기념으로 한 타임만 뛰고 쉬자.”
“둥둥 안 존닌데, 가댜!”
둥둥이 은서를 어깨 위에 올리고 단단히 조일 때쯤 눈앞에 쌍검을 든 트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서가 한 손을 뻗자 트롤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해골들을 몰기 시작했다.
둥둥이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중, 저 멀리 라브가 있는 곳에 누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은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자세히 보았다. 한 여인이 다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아, 둥둥, 저기로 가 보자. 누가 있어.”
“응? 안 대, 낯떤 다람 위허매.”
“알아, 근데 다쳤고 혼자야. 일단 가 보자.”
“다텨떠? 아라따!”
은서는 트롤 환상을 이용해 그 주변의 해골들을 유인하여 멀리 보내었다. 가까이 가 보니 옷이 헝클어진 미모의 여인이 울먹이고 있다.
둥둥은 입을 반쯤 벌리고는 여인의 가슴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은서는 둥둥의 머리를 한 대 툭 치고는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어쩌다 여기 혼자 있는 거예요?”
여인은 둥둥을 보고는 뒤로 몸을 물리다가 은서의 목소리에 울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흡, 흐윽…… 같이 사냥하던 파티가 있는데…….”
여인의 말에 따르면 파티원들과 함께 사냥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고, 라브를 바르고 회복하는 중에 같이 있던 파티원이 덮쳐 강하게 거부하니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은서는 둥둥과 얼굴을 마주하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케라브에서 사람들과 섞인 적이 없으니 그녀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것이다.
그때, 진정이 된 여인이 말을 이었다.
“저도 오래 폐 끼칠 생각 없어요. 15층까지만 데려다주시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녀의 말에 은서는 둥둥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나는 여기 있으면 괜찮으니까 데려다주고 와. 15층 마법진이랑도 가까우니까.”
둥둥은 은서와 여인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근방 오께, 은떠야!”
“웅웅, 알겠어~ 나 걱정 말고 다녀와~!”
은서는 해골들을 몰고 달리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둥둥에게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둥둥은 그제야 완전히 고개를 돌리고는 뒤뚱뒤뚱 달려갔다.
* * *
얼마나 달렸을까. 이제 15층으로 내려가는 마법진이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한 무리가 둥둥의 앞을 가로막았다.
열댓 명의 무장한 사내들이다. 둥둥이 그들에게 가로막혀 멈춰 서자 안겨 있던 여인이 내려서 그들에게 걸어갔다. 다리를 다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걸음걸이였다.
“흐흐…….”
“이 멍청한 새끼…….”
둥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인이 다가오자 사내 중 한 명이 그녀의 팔뚝을 거칠게 낚아채며 이죽거렸다.
“잘했어. 가자, 중철 님이 상을 내리실 거다.”
그 사내와 여인은 뒤돌아서 어딘가로 향했다. 둥둥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저 여인이 어떠한 이유로 자신을 이곳에 유인한 것이다.
둥둥은 코를 씰룩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씨이, 씨이.”
사내들은 검을 돌려 가며 둥둥을 압박해 왔다.
“애들아~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다!”
그 말과 함께 사내들이 한 번에 덤벼들었다. 둥둥은 등에 매달았던 도끼를 꺼내어 꽉 말아 쥐었다.
* * *
모래언덕 위, 한 무리의 사내들이 모래에 몸을 파묻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무릎을 파묻고 있는 은서가 보인다.
날쌔 보이는 한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덩치가 걸려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는 사내, 중철이 말했다.
“좋아, 저년을 잡자고.”
중철 일당은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