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978)
978화. 공백을 만들다 (3)
쩌어어엉!
모용우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촤아악!
화려하게 베어 넘기는 검초 앞에 세 줄기 장력이 모조리 분쇄되었다.
탕마신검은 여느 패검보다 더 길고 두꺼운 군검(軍劍)이었다. 당연히 무게도 더 나가지만, 그만큼 단단하며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인지라 지금껏 날 한번 상한 적이 없었다.
반쯤은 신병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검은, 천재의 재능과 경험, 엄격한 연마와 강력한 자신감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신력(神力)을 뿜어냈다.
푸화아악!
곧게 찌르고 들어간 검에 요승 하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죽여라!”
“저놈이 우두머리다!”
모용우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전방, 그리고 좌우 측방에서 달려드는 세 명의 고수는 나각뢰가 데리고 온 수하들이었다.
그들의 무력은 이 오백 병력의 대장들보다 명백히 아래였으나 합동술이 대단했다. 위치 선점이나 기가 막힌 연계기가 없어도 익힌 신공의 진기가 최선의 공격을 가능케 해 주고 있었다.
모용우의 검에서 푸른 검광이 파도처럼 일었다.
퍼퍼퍼펑!
폭음이 터져 나왔다.
세 사람이 한 몸이 되어 내친 장력을 검기(劍氣)로 분쇄한다.
단순하지만 합공의 빈틈을 쑤시고 들어간 절대의 일검이었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세 사람 사이를 잇는 진기가 툭툭 끊어질 정도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말에서 내려온 모용우가 보법을 밟아 가며 좌측 요승의 머리통을 향해 탕마검을 내리쳤다.
그 즉시 두 사람이 돕기 위해 강권(强拳)을 내쳐 왔지만.
번쩍!
내리치는 검결을 유수처럼 부드러이 움직여 검로를 비틀고, 하단에서 상단 대각으로 올려 쳤다.
그 부드러운 일격에 두 요승의 팔뚝이 날아갔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마치 잘 드는 명검에 요승 둘이서 팔을 가져다 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남은 요승 하나가 깜짝 놀라 달려들었지만, 이미 모용우의 손은 그의 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우둑!
잡아 비틀어 버린다.
단순하지만, 완력만 충분하다면 지극히 효율적인 한 수였다.
팔뚝이 날아간 고수들이 창백하게 질려 주춤할 때, 모용우가 건곤백팔검해(乾坤百八劍解), 천지간쌍두룡(天地間雙頭龍)의 절초를 펼쳤다.
벼락처럼 쏟아진 두 줄기 검이 남은 두 요승의 목숨까지 앗아 가 버렸다.
몇 합 만에 세 명의 고수를 죽였다. 중원 어디를 보내 놔도 절정고수 소리를 듣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절정고수 셋과의 승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거야 이전에도 가능했지만, 이렇게까지 쉽고 간결하게 승부를 내진 못했다.
눈에 띄는 성장, 그러나 모용우는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상황도 아니었다.
세 명의 고수들을 베어 넘기기 무섭게 또 다른 고수들이 몰려든다. 제각기 석장(錫杖)이나 계도(戒刀) 따위를 쥐고 휘두르는데, 석장 끝 창날과 계도의 날이 그 명칭과 달리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쏟아지는 병장기 속에서 모용우의 몸이 회전했다.
쩌저정! 서걱! 퍼억!
모든 병장기를 튕겨 내고 네 명의 몸을 갈라 버렸다.
모용우가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당상아의 섬섬옥수에서 튀어나온 철질려 하나가 계도로 모용우의 등을 찌르려던 요승의 목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파아아악!
당상아의 신법은 가히 발군이라 할 만했다.
그야말로 바람을 방불케 한다.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느껴졌다.
당가 최고의 경신술인 추뢰신법(追雷身法)은 여타 경신술보다 내공 소모가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속도를 낼 수 있어 위치 선점에 지극히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독을 이용해 내성을 기르고, 나아가 내공까지 불리는 당가 직계 혈족에게 있어 내공 소모가 많은 것은 큰 단점도 아니었다.
당상아는 당대 가주 당관의 여식이었고 전대 가주인 암왕에게 직접 훈련받은 기린아였다. 실력으로도, 내공으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번쩍! 번쩍!
번개를 쫓는다는 이름처럼 당상아의 움직임은 무식하게 빨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드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벼락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르지만, 벼락이 아닌 바람을 닮았다.
그 풍뢰(風雷)의 신법 속에서 끄집어내는 당상아의 살법은 우아한 몸놀림과 어울리지 않게 지독했다.
푹! 푹! 푹! 푹!
불그스름한 비수가 요승들의 목을 찌르고 빠져나왔다.
빠르고 독랄하며 치명적이다. 당상아에게 당한 요승들은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죽음이라는 결과는 변치 않겠지만, 내공으로 약간은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도 단박에 죽었다. 그것은 비수에 담긴 독한 내공 때문이었다.
그녀는 당관에게 직접 제왕독공을 전수하였고, 무종지벽에 해당하는 제왕독공 붕정승제의 경지를 뚫었다.
그녀의 내공은 그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맹독으로 바뀔 수 있다. 당가의 보물 염왕비(閻王匕)에 담긴 독기가 단 한 방으로 적을 허물어트린 것이다.
피슉! 퍽! 퍼버벅! 푹!
빠르고 부드럽다.
요승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파고들어 그들의 목, 명치, 겨드랑이, 허벅다리 대동맥을 화려하게 긋고 지나가는 당상아의 몸놀림은 춤사위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다.
죽음의 춤사위. 한 번 스칠 때마다 꼭 하나의 목숨이 사라진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요승을 죽이고, 그들의 몸이 허물어지기도 전에 또 십여 명의 요승을 죽였다.
신들린 속도, 압도적인 살법이었다.
당가 최강의 독공인 제왕독공과, 역시나 당관에게 전수한 사비무쌍세(死匕無雙勢)를 추뢰신법과 섞어 자신만의 무공으로 재탄생시킨 당상아의 살법은 이 전장에서 선두를 다투었다.
‘된다.’
역수로 쥐어 휘감아 찍거나 베고, 기다란 손가락의 움직임을 이용, 정수로 변환해 내리긋고 올려 치는 비수의 움직임 자체도 작은 춤과 같다.
춤과 춤. 그녀의 몸 주변으로 하늘하늘한 옷가지가 둘러쳐진 듯했다.
‘완성됐어.’
나찰염사의(羅刹染死衣).
한 요승 뒤로 돌아가 왼팔로 목을 감고 오른손에 쥔 비수로 벼락처럼 옆구리를 찔렀다.
한 방으로 족했다. 곧장 요승의 목을 놓고 발로 걷어차 진열을 흐트러트린 후 화려하게 회전, 접근한 요승 둘의 목젖을 베어 넘겼다.
나찰의 춤사위, 죽음으로 물든 옷을 걸친 악귀의 칼질이었다.
화려한 기공술이나 압도적인 기세로 적을 무너트리지 않는다.
다만 비수가 지닌 가능성을 극한까지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사비무쌍세 자체가 천하일절의 무공이었지만, 자신에게 맞게 개조한 나찰염사의는 당상아의 손에서 무적의 무도(武道)로 화했다.
“엄청난데?!”
콰앙!
무지막지한 일도로 요승 셋을 날려 버린 팽대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전의 싸움에서는 제대로 보여 준 게 아니었구려!”
푹! 푸화악!
발등을 찍고 올라와 복부를 가로로 갈라 버린 당상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보여 줄 수가 없었죠. 지금까지는 날 첩보원으로 써먹었잖아요?”
“아마 제갈 동생이 지금의 당 누이를 보면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오!”
그때였다.
퍼어엉!
화려한 폭음과 함께 제갈준이 등장했다.
“정확합니다.”
소천성장법으로 접근하는 요승의 석장을 튕겨 내고 대천성장법으로 흉골 전체를 부숴 버리는 제갈준의 무공 역시 강하고 과격하기론 누구 못지않았다.
“누님이 강하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모용 형님보다 더한데요?”
“그럴 리가.”
당상아가 힐끔 모용우를 바라보았다.
냉정한 얼굴로 탕마신검을 휘두르는 모용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다소 수동적으로 움직였던 그가 이제야 진면목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퍼버버벅!
강하고 장중한 검법이었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담긴 탕마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 앞에 선 적들은 팔다리를 잃고 쓰러졌다. 개중에는 압도적인 검압에 짓눌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이들도 많았다.
당상아의 무공이 빠르고 치명적인 가운데 우아했다면, 모용우의 무공은 강하고 장중한 가운데 멋스러웠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신장과 선녀가 손을 맞잡고 적도들을 격파하는 듯했다. 팽대호, 제갈준, 남궁표의 무공 역시 대단했지만, 보는 이를 압도하는 무공을 구사하는 두 사람만큼 인상적이진 않았다.
“잡담은 그만!”
번쩍!
한 줄기 푸른 검광과 함께 요승 둘의 몸이 갈라졌다.
남궁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여유는 전투가 끝난 후에 즐기시오!”
창궁의 검으로 적을 베어 넘기는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무림맹 병력 모두가 그들처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이것은 소수의 싸움이 아니라 병력과 병력이 맞부딪치는 집단전이었다.
남궁표는 자신의 무공을 과시하듯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자들을 향한 질투는 어쩔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쩌저저저정! 퍽!
요승들의 석장과 계도를 튕겨 낸 그가 중심점이 되는 적 하나를 베고 물러났다.
전투 불능이 된 무림맹 아군을 위해 잠시나마 숨 쉴 틈을 만들어 준 것이다. 놀랍게도 남궁표는 전공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아닌, 병력 유지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러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맡은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당상아가 외쳤다.
“길이 열렸어요! 좌측 수장을 잡으러 갑니다!”
파아아아앙!
벼락처럼 튀어 오른 그녀가 요승들의 어깨를 밟아 가며 질주하더니, 염주 두 개를 목에 건 중년 요승을 향해 염왕비를 휘둘렀다.
오백 병력을 지휘하는 초절정고수 중 하나였다. 그들이 병력 깊숙한 곳까지 돌파한 이유는 바로 적장을 잡기 위함이었다.
중년 요승, 혈음나한의 눈에 사이한 광채가 이글거렸다.
“이 망할 계집이!”
쩌어어엉!
염왕비와 계도가 부딪치며 시퍼런 불똥을 토해 냈다.
처음으로 염왕비가 막혔다. 더하여 적의 힘에 손목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당상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세상에 강자는 많다. 그리고 적장 역시 자신보다 못하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공격했다. 이 정도 충격은 당연했다.
파바바박!
회전하며 휘두르는 염왕비에 혈음나한의 소맷자락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칼을 빼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팔뚝이 걸레짝이 되었을 것이다. 혈음나한의 표정이 돌변했다.
콰아앙!
당상아가 혈음나한에게 도달했을 때, 멀리서 홀로 난전을 치르던 오구문 역시 같은 위치의 수장인 혈적나한을 향해 스승의 애병 참악도(斬岳刀)를 휘두르고 있었다.
쩌어어엉!
오구문의 일도(一刀)는 만근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팽대호의 도법이 강하고 빠른 와중 무수한 변화를 담고 있었다면, 오구문의 칼은 지나칠 정도로 간결한 대신 무지막지한 과격함을 담고 있었다. 무공 시연이 아니라면, 전장에 훨씬 더 어울리는 도법이라 할 것이다.
혈적나한이 소리쳤다.
“혈수! 이놈부터 막아야겠네!”
“시끄럽다!”
오구문이 회전하며 혈적나한의 장력을 흘린 후 사선으로 칼을 휘둘렀다.
쩡! 피슉!
강철처럼 단단한 주먹이다.
참악도의 일격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았다. 다만 주먹 가운데에 깊은 자상이 났다.
오구문도 놀랐고, 혈적나한도 놀랐다.
그중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오구문이었다.
한발 빠른 마음가짐이 대번에 승패를 갈랐다.
‘일도(一刀).’
참혼교도(斬魂交刀)의 단순 무식한 초식 일도.
번쩍!
혈적나한의 왼팔과 왼 다리가 통째로 날아갔다.
퍼억!
반쪽이 난 몸뚱이를 걷어찬 오구문이 외쳤다.
“다음은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