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020)
1020화 땔감의 이름은 군비경쟁 (13)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던 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걸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가 걸작이었지…..”
당시 수업에서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친구만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저희 나라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도발적인 학생의 질문과 주장에 교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걸 호구라고 부르기로 했죠. 그리고….. ‘저희’ 나라가 아니라 ‘우리’ 나라입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은 겸손이지만, 조국까지 낮추는 것은 비굴입니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제스쳐까지 써가며 이어진 교수의 대답에 문제의 학생은 얼굴이 벌게진 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전생의 기억을 반추한 향은 결론을 내렸다.
“호구 잡는 것은 몰라도 호구 잡히면 안 될 일이지.”
가닥을 잡은 향은 현에게 전달할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편, 관리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수군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태상황께서 나라꼴이 개판이라고 하셨는데 말이지. 뭔가 안 어울린단 말이야. 거기서 왜 개판을 쓰셨지?”
“개판이? 흐음……”
이야기를 들은 관리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뭔가 좀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로군.”
씨름 시합에서 양 선수가 동시에 땅에 넘어지면 누가 먼저 쓰러졌는지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다툼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이때, 아예 시합을 다시 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이를 ‘개(改)판’이라 불렀다. 이게 널리 퍼져서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을 ‘개판하다.’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향의 말에 쓰인 ‘개판’에 그 뜻을 집어넣으면 뭔가 많이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향의 말을 곱씹어보던 관리들은 주변을 살피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봐도 그 ‘개’가 그 ‘개’가 아닌 듯하이.”
“그렇지. 하지만, 태상황께서 그런 경박한 말씀을 하실 리가…..”
“그렇겠지?”
혹시라도 다른 누가 들을까 봐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관리들이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태상황이시라면 충분히 그렇게 쓰실 분이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판’의 ‘개’는 ‘改은’가 아니라 ‘犬’을 뜻하면서 점점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향이 만든 또 다른 나비효과였다.
* * *
그렇게 벌어진 한바탕의 투닥거리 끝에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린 제국 관리들 덕분에 루이를 비롯한 외국의 사신들은 다시금 진땀을 빼야 했다.
“아무래도 황제와의 회견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보좌진의 보고에 루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려야 했다. 루이 역시도 이를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회담을 이어가는 신숙주의 태도가 회담 이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회담 후의 신숙주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가 하는 말은 이탈리아에 있었던 때보다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신숙주는 당장이라도 루이를 난도질 할 기세였다.
덕분에, 루이와 신숙주는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이 있다)’라는 말이 어울릴 회담을 이어갔다.
덕분에, 루이는 현과의 회담 직후 예상했던 결과보다 조금은 부족한 결과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아닌가? 그래도 ‘글로리아에 대한 불간섭’을 얻어낼 수 있었으니까. 해응급 전함들도 꽤 많이 구할 수 있었고 말이야.”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대한 불간섭’이 아니라 ‘글로리아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한 불간섭’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상당한 성과라고 자족하는 루이였다.
* * *
루이와 제국의 협상은 다른 국가들의 경쟁을 불러왔다. 해응급 전선의 구매를 원하는 국가가 더욱 늘어났고, 그 척수도 대폭 늘어난 것이었다.
-제국은 해응급을 대체할 함선을 건조할 계획은 있다. 예산을 비롯한 준비가 된다면 바로 시작할 것이다.
-해응급 전선을 추가로 건조할 계획은 없다.
신숙주가 루이와의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영빈관에서,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해 이 정보를 알게 된 국가들은 다시 한 번 맹렬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신규함이 해응급을 완전히 대체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바꿔 말하자면 제국 역시 당분간은 해응급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해응급을 새로 건조하지 않는 다는 것과 해응급의 선령(船齡, 배의 나이)을 생각한다면 구매할 수 있는 쓸 만 한 해응급의 수는 한정적이다.
-결론, 망설이면 품절!
이런 결론을 내린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제국에 사자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잉글랜드와 오스만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와중에도 다른 발상을 하는 이들은 있었다.
“어차피 목선이잖아? 나무만 갈아 끼우면 되는 일이니 선령은 상관없지 않나?”
이런 제안을 들은 해군 관계자들, 특히, 제국의 해응급과 도전자급 전선에 당해본 경험이 있는 해군 장성들은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 빌어먹을 나무가 문제요.”
“엥?”
* * *
초기의 해응급과 달리 후기의 해응급은 신지에서 나는 신지 참나무-향이 개입하기 전 역사에서는 그 유명한 버지니아 참나무-로 건조했다. 그것도 신지 주둔 제국 해군만이 아니라 제국 해군의 모든 후기형 해응급이었다.
이를 위해 신지 북서부 해안지역에 대규모 조선소들이 건설되었고, 신지 동부에서 벌채된 목재들이 철로를 통해 서부의 조선소들로 수송되었다. 거대한 일관 생산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풀린 자금은 더욱 많은 원주민들이 제국화 시키는 일에 가속도를 붙이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이는 향이었다. 당시, 재정문제를 걱정하던 완과 대신들에게 향은 이렇게 적은 서한을 보냈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 불리는 것이다!
* * *
‘철목(鐵木)’이라는 별명까지 있을 신지 참나무로 만든 덕분에 더욱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제국 해군의 전함들이었고, 이들에게 제대로 당했던 기억들이 있기에 실무진들이, 해군 장성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제국 놈들이 그 빌어먹을 나무를 어디에서 구한 건지는 모르지만 빌어먹게 단단한 나무들이오. 우리나라에서 나는 나무들로 교체했을 때도 그런 방어력을 가진다고 절대 장담 못 하오. 그런데, 나무만 갈아 끼우면 된다고? 헛소리지. 아, 루존 지방에 나는 나무들도 단단하다고 하는데, 거기는 우리 왕국의 영토가 아니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오.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그나마 제일 쌩쌩한 놈들을 골라 끌고 와야 하오. 그게 제일 싸게 먹히오.”
“이런 젠장……”
다시 한 번 각국의 재정 담당자들이 앓는 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었다.
* * *
유럽의 열강을 시작으로 ‘해응급 앓이’가 번지고 있을 때, 명과 일본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우선, 명은 아예 해응급 구매의사가 없었다. 아니, 성화제는 충분한 의사가 있었지만, 대신들의 반대가 엄청났다. 심지어 성화제의 친위대조차 이번 사안에서는 반대를 표했다.
“어째서?”
“지난 전쟁, 특히 황해 해전에서 명 해군을 박살 낸 전선들 가운데 하나가 해응급입니다. 만약 배를 들여온다면 백성들이 바로 들고일어날 겁니다.”
“그런가?”
“물론 돌격귀선 정도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그걸 팔겠니?”
“……..”
“결론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명의 반응이 이러했다면, 일본은 달랐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 해응급이 넘어갔다.’라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이가 일본이었다.
“제국이 일본에 왜 해응급 전선을 넘겨줘야 하오? 전조 말엽에 본지에서 어떤 분탕질을 벌였는지 잊은 것이오?”
제국의 부정적인 반응에 일본은 왕세자까지 보내며 끈질 지게 협상했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은 양국 사이에 있어서는 잊어서는 안 될 비극입니다. 하지만, 미래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일본은 앞으로도 제국에 충실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미래를 생각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일본의 왕세자까지 나서서 간절히 청했기에, 현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명분도 좋고, 해응급 정도면 지금이나 앞으로나 우리로서는 충분히 제압 가능하오. 그러니 생색이나 냅시다.”
“명을 받드옵니다!”
이렇게 해서 제국은 일본에 해응급 전선 20척, 최종적으로는 40척을 판매하게 되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결정을 통고받은 일본 왕세자는 크게 절하며 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일본에서 만드는 배 들은 군함과 상선을 막론하고 제국에 비해 여전히 몇 수나 뒤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응급 전선 40척은 큰 전력이었고, 왕세자의 감사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일이 일단락되었지만, 이후 일본은 다시 한 번 제국에게 읍소했다.
“도전자급을 달라고? 그것도 신규 건조한 것으로 세 척이나? 왜?”
“한 척은 일본왕이 순행에 나설 때 쓸 것이고, 다른 두 척은 사령선으로 쓰려고 한답니다.”
신숙주의 대답에 현은 피식 웃고는 국방부 장관을 돌아봤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도전자급 세 척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되옵니다.”
“만약, 도전자급 세척과 해응급 40척을 한꺼번에 몰고 기습한다면?”
“대마도를 넘지도 못할 것이옵고, 반대로 저들의 도읍인 야마구치가 잿더미가 될 것이옵니다.”
“그렇군.”
“기왕이면 외화내빈(外華內貧)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옵니다.”
“좋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새롭게 건조되는 도전자급 전선의 선체는 신지 참나무가 아니라 본지의 참나무로 만들어졌다. 대신, 선체 후방의 선장실과 장교실 등은 전에 없이 화려하게 외장과 내장이 치장되었다.
* * *
사방의 나라들에서 해응급 전선들의 판매를 요청하면서 바빠진 곳은 원산의 조선소였다. 본지와 서남도 지역에 배치된 해응급 전선들 가운데 판매가 결정된 배들의 점검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흑경급 수송선의 건조와 ‘구축함’이라는 새로운 함선의 시험함을 건조하느라 원산의 조선소는 밤낮없이 돌아갔다.
덕분에, 조선소를 경비하는 제국군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해응급 전선을 인도받을 당사자들은 양양이나 목포에서 대기하고, 제국 해군이 배를 거기까지 가져다주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원산까지 오는 이들이 있어서, 이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어느 날, 향과 현이 원산의 조선소를 방문했다. 구축함의 시험함 전조가 끝나 진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엄중한 경비 속에 조선소에 들어선 두 조손은 시험함이 자리한 선대에 도착했다.
“흐음……”
진수를 준비하고 있는 시험함을 요리조리 살피며 조손은 대화를 이어갔다.
“해응급보다 덩치가 작지만, 더욱 날래 보입니다.”
“그렇소.”
“하지만, 화력이 좀 부족해 보입니다. 아니, 부족합니다. 2연장 속사포 5문이 전부니….”
아쉬움이 가득한 현의 말에 뒤따르던 해군 관계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향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화포 성애자들 아니랄까봐….. 아, 나도 그중 하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