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064)
1064화 도박. (8)
현의 결정에 따라 제국의 핵심 관료층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국 관료들의 수장인 한치형은 좌우 부총리들과 각부 장관들을 모아놓고 임무를 배정했다.
“우부총리는 3국의 협력을 조율함과 동시에 페르시아에서 우리의 뜻을 대변할 이를 모색하시오.”
“알겠소.”
한치형의 명령에 성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치형은 이어서 류순에게도 할 일을 배정했다.
“좌부총리는 정보와 관련된 업무를 맡을 총괄부처의 신설과 이를 제어할 방도를 궁리해 보시오.”
“최선을 다하겠소.”
총리에게 할 일을 분배받은 부총리들은 각부 장관들과 협의해 좀 더 세세하게 할 일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우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명과 일본이 함께 하는 초유의 일이오. 나쁜 전례(前例)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오.”
“명심하겠소.”
핵심 부처인 외무부 장관이 대답했지만, 성준의 주의는 끊이지 않았다.
“일본은 빈틈을 보면 절대 놓치는 법이 없소. 명 또한 마찬가지요. 예전에 비해 빛이 많이 바랬지만, 그래도 주변의 국가들을 모두 휘어잡던 제국이오. 가볍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유념하시오.”
“각별하게 신경 쓰겠소.”
외무부 장관은 시작이었다. 성준은 다른 부처의 장관들에게도 할 일을 지시했다.
“명과 일본의 군대가 사용하는 무기들과 관련된 정보를 확인하시오. 아! 무기만이 아니라 병력도 확인하시오. 차선의 수로 병사들을 파병할 수도 있으니 말이오. 그리고…..우리 제국에서 일본으로 들어가는 재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보시오. 여차하면 그걸로 일본의 목을 조여야 하니까 말이오. 아! 생각난 김에 일본에서 제국으로 온 유학생들의 수와 그들의 성향 역시 한번 살펴보시오. 그들을 제국 편으로 만든다면 앞으로도 수월할 테니 말이오. 이어서……”
그렇게 성준의 명령이 나올 때마다 장관의 뒤에 서 있던 보좌관들이 부지런히 첨필을 놀려 명령을 기록했다. 우부총리의 뒤를 이어 차례가 된 좌부총리 류순이 장관들이 할 일을 추가했다.
“외무부와 국방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와 인력에 관한 기록을 작성해 제출하시오. 포도청 역시 마찬가지요. 민정을 규찰하는 부서와 관련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심판원은 민정 규찰과 관련해 벌어진 송사, 그러니까, 무고라던가 금품 갈취와 같은 사건의 기록을 정리해 보고하도록 하시오. 또한, 심사원에도 미리 기별을 넣어 새로 만들어질 부처에 관한 법안을 미리 궁리해 보라 하시오. 그리고……”
류순의 업무 지시 역시 길었다. 이를 받아 적느라 보좌관들의 어깨가 뻐근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류순의 말이 끝났다.
“그럼, 모두 최선을 다하시오. 이번 일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우리 역시 제국의 역사에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새길 수 있을 것이오.”
“최선을 다하겠소이다!”
한치형의 말에 장관들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럼, 여러분들만 믿겠소이다.”
그 말을 끝으로 한치형과 부총리들은 뒤로 빠졌다. 회의실에 남은 장관들은 보좌관들이 적은 기록을 앞에 놓고 다시 한 번 조율에 들어갔다.
“이 부분은 외무부보다 국방부가 더 적임일 것 같고……”
“이 부분은 재경부가 적임일 것 같소.”
“이 부분은 우리 교육부가 맡는 것이 합당할 것 같소.”
그렇게 다시 한 번 조율을 끝낸 장관들은 담당 부처로 흩어졌다.
* * *
그 뒤로 제국의 관리들은 부처를 막론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많은 관리들이 기록원으로 몰려들었다.
“자료가 없습니다!”
“기록원은 뒀다 뭐 할 거냐!”
“여기와 여기의 수치가 다릅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정정본 있을 거 나야! 그거 찾아!”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습니다!”
“기록원!”
“옙!”
칭제건원 이전의 조선은 물론이고 전조인 고려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상국시대와 그 이전까지 남아있는 모든 기록들은 기록원에 모여 정리되고 보관되어 있었다. ‘부패 관리의 지옥’. ‘문자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명이 붙은 곳이었지만, 관련 자료를 찾는 관리나 학자들에게는 보고(寶庫)인 곳이 기록원이었다. 산처럼 보고서와 자료들을 실은 수레들이 서울의 육조 거리를 폭주하고, 청사의 복도와 사무실마다 서류를 한 아름씩 안은 관리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전에도 바빴지만, 요즘은 아예 폭주하는군.”
육조거리와 청사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관리들의 모습에 서울 주민들은 이렇게 평했다.
“그렇기는 한데, 어쩐지 예전에 비교해 활력이 넘치는 듯하이.”
“그건 그래. 다들 보약이라도 한 사발씩 자셨나……”
주민들의 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관리들의 얼굴에는 묘한 활력이 돌고 있었다. 일종의 낙수효과였다. 제국이 궤도에 안착하면서 관리들은 일종의 매너리즘에 젖어 들었다. 물론, 쉴 틈이 없는 매일이 이어지고, 틈만 나면 야근에 쉴 만하면 철야가 이어지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었다. 이런 반복적인 일상에 자극을 주는 것은 예전 ‘이탈리아 통일 전쟁’과 같은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뿐이었다.
“그렇다고 전쟁이라도 벌어지라고 빌면 죽일 놈이지……”
“지루할지라도 태평성대가 좋은 법이야.”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추진되기 시작한 ‘3국 연합’과 ‘페르시아 투자’ 건은 매우 매력적인 이벤트였다.
“군사행동이 벌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높은 편이 아니지. 그리고 설사 군사행동이 벌어진다 해도 명과 일본이 있으니 부담도 크지 않을 거야.”
여기에, 장차관과 그 바로 아랫급 간부들은 다른 계산이 있었다.
-지난 ‘이탈리아 통일 전쟁’은 전임 총리들과 장관진의 몫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바로 우리가 담당한다!
-이번 일을 성사시킨다면, 제국 역사의 우리 이름들을 당당하게 기록할 수 있다! 그저그런 ‘범용’한 이들이 아니라 ‘매우 유능’한 이들로 말이다!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이는 우 리의 실적이 된다! 태평성대가 좋다고는 해도 출세에는 불리한 법이다. 하지만, 이것을 성공시켜 실적으로 삼게 된다면 출세는 따 놓은 당상이다!
명예욕과 출세욕에 사로잡힌 윗분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장서서 움직이면서 이 영향이 아래로 퍼진 것이었다.
* * *
나름의 준비를 마친 제국은 명, 일본을 상대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이미 명과 일본 역시 단단히 준비한 상황이었기에 세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협상은 매우 치열했다.
-3국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3국은 협동한다.
협상을 시작하자마자 위의 명분에는 바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그 아래로 이어지는 조항들을 놓고 치열한 설전과 눈치싸움,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하루가 멀게 남경과 야무가치로 연락선들이 오갔고, 틈만 나면 휴정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명과 제국, 제국과 일본, 명과 일본 사이에 밀실 협상이 벌어졌다.
그렇게 치열한 협상 끝에 삼국은 나름 만족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3국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3국은 이를 위해 상설 협상기구를 창설한다.
(중략)
-페르시아 지역에서 확보하는 이익은 다음과 같은 비율로 분배한다. 분배율은 다음과 같다.
제국 4 : 명 3.5 : 일본 2.5
-이 분배율은 10년 단위로 조정한다.
(하략)
“흐음…..10년 주기로 분배율을 조정하는 것이 조금 거치적스럽군.”
협상 조율안을 확인한 현의 지적에 한치형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명과 일본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사옵니다. 또한, 우리 제국에게도 좋은 수였사옵니다.”
“좋은 수?”
“예. 10년마다 조정할 수 있기에 저들이 뒤에서 수를 쓰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안 쓸 이들은 아니지만, 최대한 막을 수 있기에 좋은 수이옵니다. 또한, 우리 제국으로서도 우리의 뒤를 이을 이들이 방심할 수 없기에 좋은 수가 된 것이옵니다.”
“흐음…..그렇군.”
한치형의 설명을 들은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공정하게’ 지분을 나누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욕심으로 인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때문에, 중간에 조율 과정이 없이 끝까지 저 비율을 고집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 확실했다. 지금에야 제국이 명과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지만, 앞날은 모르는 법이었다.
명은 영토와 인구에서 확실한 대국이었고, 일본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명과 일본이 손을 잡고, 제국과 군비경쟁이라도 벌인다면…..
‘제국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큰일이지.’
셈을 끝낸 현은 한치형에게 말했다.
“총리의 말처럼 지금의 형편에서는 최선의 수요. 이대로 추진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경들의 수고가 눈에 보이는 결과요. 부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들의 이름이 청사에 남길 바라오.”
현의 치사에 한치형과 대신들은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 * *
한편, 수강궁에서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받던 향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삼국동맹? 아니면 동서냉전인가?”
유럽의 열강이 오스만에 손을 쓰는 것은 페르시아 때문이었다. 제국과 명, 일본이 손을 잡고 움직인다면 유럽 열강은 바로 알아챌 것이고, 이에 대응을 시작할 것이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유럽 열강도 동맹을 구성하는 것인데, 쉽지는 않겠지.’
지금도 틈만 나면 서로 치고받는 유럽의 열강들이었다. 그런 형편을 생각한다면 유럽 열강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익, 그것도 큰 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손을 잡을 거야.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야.’
21세기에도 석유를 무기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곳이 아라비아반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이었다. 21세기에도 석유를 놓고 피가 마르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럽의 열강들이 결국은 손을 잡을 것이라 확신하는 향이었다.
“흐음…….”
향은 지도를 보며 앞날을 생각했다. 한참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가로 저으며 셈을 해보던 향이 종이를 펼쳤다.
“이런 때에는 역시 영국 스타일이겠지……”
-영국이 지브롤터를 장악해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것처럼 제국 역시 지브롤터를 확고히 장악해 지중해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이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한 것처럼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을 이용해 유럽 열강을 견제한다.
여기까지 정리한 향은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영국 버프를 받은 일본이 무슨 짓을 했더라….. ‘가지 않은 길’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길’도 있는 걸까?”
향 자신이 직접 썼고, 현에게 건의할 제안서였다. 태상황인 향이 올린 제안서를 현이 거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아니, 현이 아니라 향 자신이라 할지라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국익을 우선하는 군주에게는 너무 달콤한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직접 적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라. 그렇게 해서 천금과 같은 시간을 번다.’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언젠가는 제국도 싸움에 끼어들게 되는 결말이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