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155)
1155화 뒷감당은 누구 몫? 네 몫 (7)
얼마 후부터 후속하는 부대의 규모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성 호르헤에게 감사를 드려야겠군….
”
뒤에서 가해지는 압박이 한결 줄어들면서 병사들이 좀 더 안전하게 운신할 수 있게 된 것을 파악한 지휘관은 가볍게 성호를 긋고는 중얼거렸다.
* * *
그가 언급한 ‘성 호르헤’는 다른 지역에서는 ‘성 게오르기우스’ 또는 ‘성 조르주’, ‘성 조지’로 불리는 성자였다.
군인과 기사의 수호성인이자, 많은 직업과 물건의 수호성인이였고, 정교회에서는 ‘대성인’으로 칭해지는 이였다. 때문에, 기사부터 병졸까지, 정규군부터 용병까지 군인을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이 이 성자를 상징하는 장식물-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반면, 포병들은 ‘성 바르바라’를 수호성인으로 믿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전투에 출정한 포병 상당수는 자신이 담당한 대포에 자그마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달아놓고 다녔다.
* * *
해가 지면서 치열했던 전투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천지를 뒤흔들던 포성과 총성이 잦아들고, 백기를 등에 멘 병사들이 부상병과 사망자들을 들것에 담아 뒤로 옮겼다. 최전방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하루를 무사히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후방의 사령부 텐트에서는 알바 후작과 지휘관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겨우 200야드를 진출하는데 하루가 지났군.”
“죄송합니다.”
알바 후작의 푸념에 지휘관들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 지휘관들의 반응에 알바 후작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귀관들이 죄송할 일은 아니네. 그동안 제국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물리도록 겪지 않았나? 오히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겠지.”
알바 후작의 말에 지휘관들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 자리에 모인 지휘관들 대부분이 그동안 지브롤터 주변에서 제국군과 치고 받아온 이들이었다. 때문에, 제국군이 얼마나 교활하고 끈질긴지 뼈에 사무치도록 잘 알고 있었다.
알바 후작의 말에 옆에 있던 선임 참모가 말을 덧붙였다.
“제국처럼 대량의 대포를 동원한 것은 효과가 좋았습니다. 물론, 여러모로 아쉬운 점은 있었습니다만, 이 부분은 보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선임 참모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파냐와 프랑스가 연합한 포병들이 포격할 동안은 제국군의 저항도 완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격이 멈추자마자 제국군의 저항은 매우 완강해졌고, 능 선을 오르는 에스파냐군의 피해는 급격히 늘게 되었다.
이후, 양쪽의 포병대가 격렬하게 서로 대포병 사격을 치고받기 시작하면서 능선으로 향했던 에스파냐 병사들은 가까스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문제는 프랑스 놈들이 ‘비행기’라고 말한 물건이야. 아군 포병대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놈은 제국의 대포가 아니라 이놈이야.”
황조롱이와 신천옹의 공습을 직접 몸으로 겪은 알바 후작은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알바 후작만이 아니었다.
당시 근처에 있던 참모들과 포병대 지휘관들 역시 표정이 매우 안 좋아졌다.
“문제는 이놈들이 계속 우리를 괴롭힐 것이 확실한데, 우리는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알바 후작의 문제 제기에 지휘관들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아졌다.
오늘 하루의 전투를 통해, 다시 한번 대포, 그것도 ‘아주 많은’ 대포의 중요성을 체감한 그들이었다. 문제는 포병 세력은 구멍이 나면 그 구멍을 다시 메울 때까지 많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약간 과장되게 말하면 지나 가던 남자 아무나 붙잡아 총 한 자루 건네면 끝인 보병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병과였다.
그런데, 오늘 공습의 결과로 상당히 큰 구멍이 난 것이었다.
“우선은 포병대의 진형을 손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알바 후작의 문제 제기에 잠시 고민하던 포병대 지휘관들이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선 대포들을 일직선으로 방열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위치를 잡아 방열한다.
이렇게 하면 제국의 ‘비행기’에서 가한 화차 사격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대포들의 간격을 좀 더 넓히고 대포 주변을 모래포대로 둘러 대포와 포병들을 보호한다.
-대포와 포탄, 화약을 좀 더 멀찍이 떼어 놓는다. 또한, 포탄과 화약을 저장하는 곳도 모래포대로 두른다.
“….이렇게 하면 발사속도는 좀 떨어지겠지만,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연쇄폭발로 인한 피해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럴듯하군.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포병대 지휘관들의 제안을 들은 알바 후작은 바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저 비행기에 대한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막는 것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말이야. 저 비행기를 막는 방법이 필요하다.”
알바 후작의 지적에 지휘관들은 다음과 같은 방책을 내놓았다.
-우선, 화차들을 대량으로 배치한다.
“낮에 벌어졌던 전투를 생각한다면 화차로 비행기를 막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막지는 못해도 방해는 할 수 있습니다.”
에스파냐군 포병 장교의 말이 끝나자 프랑스군 장교의 제안이 이어졌다.
“화차는 임시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소관이 생각하기에 비행기는 비행기로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행기로?”
잠시 의문을 표하던 알바 후작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가 비행기를 개발했다지? 지원을 요청해야겠군. 다른 좋은 생각은 없나?”
알바 후작의 말에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결국, 대포들의 방열 위치를 조정하고, 방호벽을 두껍게 쌓는 방법이 채택되는 것으로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포병대의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능선 공략은 보류하도록 한다. 무의미한 손실이니까. 대신에 교두보는 최대한 강화하도록.”
“예!”
후작의 명령에 크게 대답한 지휘관들은 깍듯하게 예를 올리고는 천막을 빠져나갔다. 천막을 빠져나가는 지휘관들은 동료들과 작게 속삭였다.
“‘문법 선생’이라는 별명이 잘못 붙은 것 같군. 그렇지 않나?”
“동감일세.”
알바 후작의 별명은 ‘문법 선생’이었다. 그만큼이나 고루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오늘 보여주는 알바 후작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불굴의 용기를 강조하는 모습은 고루해 보였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특히, ‘포병대의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는 공략 능선은 보류한다.’라는 결정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덕분에, 천막을 나서는 지휘관들, 특히, 에스파냐군 지휘관들의 얼굴은 상당히 밝았다.
* * *
지휘관들이 모두 나간 다음, 선임 참모가 알바 후작에게 물었다.
“프랑스가 비행기들을 내놓을까요?”
“내놓을 거야. 이번 전쟁을 계획하고 시작한놈들이 그 놈들이니까. 일을 벌였으면 뒷감당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외교나 정치 같은 것은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페르난도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
“각하…..”
기겁한 참모가 주의를 줬지만, 알바 후작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백지를 펼쳤다.
“보자…. ‘경애하는 연합 왕국의 섭정이시자 아라곤의 국왕이신 페르난도 2세 폐하’…..”
냉소 가득한 표정으로 화려한 수식어를 내뱉으며 페르난도 2세에게 보낼 서한을 작성하는 알바 후작이었다.
* * *
‘비행기가 필요하다.’는 알바 후작의 요청은 바로 파리로 전달되었다.
“비행기라…..”
요청서를 확인한 샤를 8세는 루이 12세와 프랑수아 1세를 돌아봤다.
무언의 질문에 프랑수아 1세가 바로 대답했다.
“제국군 비행기에 해군은 물론이고 육군 포병대도 호되게 당했다는 보고입니다.”
“해군 보고는 이미 확인했지만, 육군도 당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잠시 고심하던 샤를 8세는 루이 12세에게 물었다.
“비행기를 보내는 것이 과연 좋은 결정이라 보시오?”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예전에 로렌에서 비구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를 생각해 보면, 비행기 상대로는 비행기가 최선입니다.”
“비행기까지 에스파냐로 보낸다는 것이 좀 께름칙하다는 것이오.”
“그건 그렇습니다.”
샤를 8세와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가 고심하고 있을 때, 정전의 문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샤를 8세의 물음에 밖의 상황을 살핀 시종이 돌아와 아뢰었다.
“몽포르 백작이 알현을 요청하고 있사옵니다.”
“몽포르…….”
‘몽포르’란 말을 듣자마자 3인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몽포르 백작은 프랑스 비행기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미친 인간’, ‘망상가’라는 별명이 더 유명한 이였다.
-이제부터는 ‘공군(aviation)’의 시대다!
이제 겨우 40여 기 조금 넘는 비행기를 보유한 부대의 지휘관이면서 ‘공군’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외치고 다니는 이가 몽포르 백작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샤를 8세는 시종에게 명했다.
“들어오라 하라.”
“예, 전하!”
정전에 들어온 몽포르 백작은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어서 오시게, 백작. 그래, 무슨 일로 짐을 보자 한 것인가?”
새를 8세의 물음에 몽포르 백작은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브롤터에서 제국이 공군을 이용해 아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들었습니다. 폐하! 폐하의 프랑스 공군은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습니다.”
“공군…..”
몽포르 백작의 말에 샤를 8세와 루이 12세, 프랑수아 1세는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몽포르 백작의 열변은 계속 이어졌다.
“폐하! 비행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비행기뿐입니다! 부디 프랑스 공군의 출전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지금 우리 프랑스가 보유한 비행기의 수는 많지 않다.”
“폐하! 공군의 비행기는 무기이지, 장식품이 아니옵니다! 그리고, 실전을 겪어야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사옵니다!”
몽포르 백작의 항변에 루이 12세가 끼어들었다.
“에스파냐에 비행기를 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안하오.”
이에 몽포르 백작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로마의 세자르(Cesar, 시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제국과 전쟁이 벌어진 마당에 더 따질 것이 있습니까?”
몽포르 백작의 지적에 샤를 8세와 다른 이들은 모두 아픈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이 세운 계획이었고, 벌인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전황에 세 사람은 전쟁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체 공작을 통해 전력을 다할 것임을 전해온 제국이었다. 처음에 예상했던 ‘협상’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몽포르 백작의 말처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샤를 8세는 결심을 정해야 했다.
“백작에게 명하겠소. 지금 당장 에스파냐로 보낼 비행대를 편성하시오.”
“명을 받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