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원양함대. (2)
‘어느 세월에~’라고 푸념은 했지만, 향과 조선 수군은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형함의 가능성을 확인하자마자 수군은 원산에 만들던 조선소의 건설 속도를 높였다. 건설 속도만 올린 것이 아니었다. 조선소의 건설이 완료되자마자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향과 수군이 조선소의 건설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었다. 신형 함선을 운영할 선원들을 육성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단순히 기존의 전선이나 판옥선을 가지고 훈련을 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
향의 말에 조말생을 시작으로 한 병조의 관리들과 수군의 도절제사(都節制使)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는 바이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훈련에 쓸 수 있는 배는 도전자 호 하나뿐이니 이게 문제이옵니다.”
“제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향은 가지고 온 종이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놓고 펼쳤다.
“이것은?”
“훈련용 모의 선박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반 동강 난 배를 육지 위에 놓은 것이랄까요?”
“흐음….”
향의 설명에 병조의 관리들과 수군 도절제사들은 꼼꼼하게 설계도를 살폈다.
한참이나 설계도를 살피던 수군 도절제사들이 먼저 의견을 피력했다.
“좋을 것 같습니다. 비록 땅 위에서 훈련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구조에 익숙해진다면 실제 배에 올라서도 빠르게 적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관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수군 도절제사들 전원이 찬성하자, 조말생이 입을 열었다.
“문제는 어느 곳에 만드느냐입니다. 당장을 생각한다면 남양에 설치함이 좋겠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원산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말생의 말에 전라 수군 도절제사가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원산의 조선소는 건선거(乾船渠, 드라이독)의 건설 외에도 부대 시설의 건설에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라 도절제사의 지적에 경상 수군 도절제사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다고 두 곳에 모두 훈련 시설을 건설하기에는 예산에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호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경상 수군 도절제사의 지적에 향과 조말생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지요….”
당금 조선 조정의 모든 부처- 특히 쓰기만 하고 버는 것이 없는 병조-들은 호조의 눈치 보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조선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은 여의정이 아니라 호조판서다.’라는 말이 관계(官界)에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다.
물론, 이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김점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느 멍청한 개자식이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누구 사약을 먹이고 싶어 환장했나? 아니, 사실 말이야 바른말로,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리는 만인지상 봤어? 봤냐고!”
하지만, 예산을 쥐고 흔드는 호조의 권한은 막강했다. 때로는 향도 호판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바마마, 예산을 좀….”
이런 말이 나오면 세종은 바로 김점을 바라봤다. 김점의 표정에 따라서 ‘그러냐? 생각 좀 해 보자꾸나.’와 ‘나가, 이 자식아!’가 결정되었기에, 향도 김점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조와 호판에 관한 소문이 들려도 향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21세기에서도 중앙정부 공무원의 꽃은 재경직이었으니까.”
* * *
향이 대학교에서 전공 수업을 받을 당시, 담당 교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재경직의 파워가 어떠냐고? 예를 들어 볼까? 대본영도 우습게 보던 관동군이 말이야. 대장성의 예산 담당 과장이 오니까, 사열까지 벌이면서 환영했었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교수의 말에 수업을 받던 학생들은 모두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었다. 당시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음을 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과 예산이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야.”
* * *
결국, ‘훈련 시설의 건설 장소’ 문제는 향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잠깐 고민하던 향은 바로 결론을 내렸다.
“원산에 짓도록 하지요. 어차피 도전자 호나 다른 원양함선들이 마음 편하게 제대로 훈련할 수 있는 장소는 동해밖에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향의 결정에 참석자들은 반대가 없었다.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향은 조말생을 돌아봤다.
“그럼, 이대로 아바마마께 상주(上奏, 임금께 말씀을 아룀)하도록 하시지요.”
“예. 곧 문서로 정리하겠습니다.”
언제나 일 떠넘기는 것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향이었다.
* * *
병조를 통해서 올라온 내용을 확인한 세종은 바로 결재를 했다.
“바로 시행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말생이 바로 읍하며 대답하자, 김점이 나섰다.
“전하, 병조에 들어가는 예산이 점점 늘고 있사옵니다.”
은근히 반대하고 나서는 김점의 말에 세종은 손을 내저었다.
“물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나, 제대로 훈련하지 못한 선원들의 실수로 배를 상실하는 것보다는 싸게 먹히지 않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조말생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자, 김점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 * *
세종의 재가가 떨어지면서 원산에는 빠르게 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
시설이 완성되자, 향과 관계자들은 원산으로 향해 상황을 점검했다.
“진짜로 배 한 척을 동강 내서 올려 뒀네.”
완성된 시설을 본 수군 관계자들은 모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선원들의 훈련을 위해 만든 시설은 신형 함선의 선체 바닥 부분과 한쪽 선체의 외벽을 모두 도려낸 것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었다.
완성된 시설을 본 향은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드라마나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봤던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되네?”
향의 말처럼 원산에 만들어진 훈련 시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세트장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속이 훤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훈련장에는 갑판의 높이에 맞춰 교관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공간에서 교관들이 선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훈련을 진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시설물의 점검을 끝낸 향은 관계자들을 돌아봤다.
“그럼 한번 시작해 봅시다.”
“예, 저하.”
향의 명령에 교관들은 훈련을 받을 선원들을 시설에 투입했다.
“닻을 올리고, 돛을 올려라!”
확성기를 입에 댄 교관의 명령에 사방에서 복창이 이어졌다.
“닻을 올리고, 돛을 올려라!”
“닻을 올리고, 돛을 올려!”
명령을 받은 선원들은 자신들이 담당한 부분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선수 부분으로 향한 선원들은 커다란 수레바퀴를 눕혀 놓은 것과 같은 권양기(캡스턴)의 손잡이에 달라붙었다.
“돌려라!”
“어이, 차! 어이, 차!”
손잡이를 붙잡은 선원들이 구호를 맞춰 권양기를 돌리면서 닻을 끌어 올리는 동안, 다른 선원들은 돛대에 연결된 도르래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끼이익!
선원들이 도르래를 돌리자, 돛을 매단 활대들이 하나둘 돛대를 따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는 향의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전통적인 갤리온이었다면 돛을 매단 활대는 처음 배가 만들어질 때 끌어 올려진 다음부터는 계속 돛대에 고정된 상태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돛을 펼치거나 접기 위해서는 선원들이 마스트에 올라가 활대에 매달려 돛을 펼치거나 접어야 했다.
하지만, 향이 보기에 이는 대단히 위험해 보이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파도가 출렁거리면 병신 되거나 죽기 딱 좋잖아?”
때문에, 향은 이 돛 부분에 동양의 방식을 적용했다. 도르래를 사용해 돛을 매달은 활대를 돛대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돛 자체는 서양식 돛이었지만, 구동 방식은 동양식을 절충한 것이었다.
이렇게 돛대에 활대를 고정한 다음에는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해 돛의 방향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동서양 공통의 방식이었다.
실제 돛이 올라가는 장면을 보며 향은 작게 중얼거렸다.
“활대를 매달고 돛을 풀어 내리느냐, 돛을 단 활대를 끌어 올리느냐. 어느 것이 더욱 우수할지 모르겠지만, 이거 다음 버전은 더욱 확실히 우수해질 거야. 문제는….”
향은 더욱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범선은 인력 소요가 너무 커.”
운영에 필요한 선원의 수를 줄이기 위해 향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도르래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 이유였다. 하지만, 선원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수의 승무원은 필요했다. 그리고, 범선은 그 요구하는 선원의 수가 만만치 않았다.
닻이 올라가고, 돛이 완전히 펼쳐지자 교관들은 시간을 확인했다. 유리 공급이 흔해지면서 만들어진 모래시계를 이용해 시간을 확인한 교관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각(약 45분)이나 걸렸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걸?”
2개의 돛대에 6개의 돛을 펼치고, 20관(약75kg)짜리 닻이 달린 쇠사슬을 끌어 올려 출항을 준비하는 데 3각이란 시간을 소모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교관들이었다.
“아직은 제대로 손에 익지 않으니 늦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군. 그럼 포격전을 살펴보도록 하지.”
“예!”
훈련지휘관의 명령에 교관들이 목례를 하며 답했다.
지이잉~.
잠시 후, 커다랗게 징 소리가 울리며 고함 소리가 터졌다.
“적선 발견!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다시 한번 여기저기서 복창이 튀어나오며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1층 갑판에서 도르래와 밧줄을 상대로 씨름을 하던 선원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1층 갑판 후미에 있던 창고의 문이 열리며 자그마한 산탄포들과 포순(砲盾, 포방패)들이 들려 나와 갑판에 만들어진 고정식 포가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조립을 끝낸 포가마다 포술장이 소리를 질렀다.
“준비 끝! 화약과 조란환 가져와!”
1층에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때, 2층 갑판에서도 바쁘게 움직였다.
“화약고 개방!”
안전을 위해 단단히 닫혀 있던 화약고의 문이 열리자, 대기하던 선원들이 추진용 화약이 담긴 포대기들을 건네받고는 자신이 속한 화포로 달려갔다.
한편, 격벽으로 구분된 화포들 주변에서도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꺼내 놓은 철환(鐵丸)이 담겨 있는 상자들의 뚜껑이 열렸고, 포술장들은 화포용 뇌관의 상태를 살폈다.
또 다른 선원들은 화포에 화약과 철환을 장전할 장전봉을 든 채 화약이 오기를 기다렸다.
“거리는 최대로 맞춰라!”
화포를 지휘하는 군관의 명령에 포술장은 동차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포신의 각도를 조절했다.
“화약 왔습니다!”
양손에 화약이 담긴 포대기를 든 병사가 도착하자, 포술장은 화약포 하나를 잡아 꼬챙이로 푹푹 찌르고는 장전을 담당한 병사에게 건넸다.
그렇게 화약의 장전, 화탄의 장전이 끝나자, 선원들은 동차와 선체의 늑골 사이를 연결한 두꺼운 밧줄을 당겼다. 밧줄이 당겨지자, 동차는 발사 위치로 움직여 고정되었다.
마지막으로 뇌관을 격발기에 꽂고, 격철을 당긴 포술장은 격철에 연결된 방아끈을 잡고 크게 외쳤다.
“준비 끝!”
“방포!”
“방포!”
복창과 동시에 포술장들은 방아끈을 당겼다.
콰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화포에서 화탄들이 발사되었고, 잠시 후 저 먼 동해 바다에 물기둥들이 솟아올랐다.
단망경(단안식 망원경)으로 물기둥의 숫자를 센 교관이 훈련지휘관에 보고했다.
“모두 이상 없이 발사되었습니다.”
“그래? 시간은?”
“반각 조금 안됩니다.”
모래시계를 확인한 교관의 보고에 훈련지휘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나마 전투 준비는 빨랐군. 갈 길이 멀겠어.”
평가를 내린 훈련지휘관은 뒤를 돌아봤다. 뒤쪽에 자리한 상석에는 향을 비롯한 높으신 양반들이 평가를 내리고 있을 것이었다.
“좋게 봐 줬으면 좋겠는데….”
높으신 분들이 보일 까탈에 지레 걱정이 앞서는 지휘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