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동진열도(東進列島) (1)
임자년 12월 하순. 대설도의 오타오르나이 항.(지금의 오타루)
이 ‘오타오르나이 항’이라는 이름에는 꽤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타오르나이의 뜻인 ‘모래사장 가운데의 하천’을 가져와 ‘사장천(沙場川)’이라는 이름이 붙었었다.
하지만, 아이누인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고, 다른 곳보다 일찍 보급된 훈민정음 덕에 원래의 이름인 오타오르나이 항으로 이름이 굳혀졌다.
그리고 눈이 수북하게 쌓인 오타오르나이 항의 부두로 도전자급 전선이 접안하고 있었다.
배의 선수 측면과 선미에는 ‘길림(吉林)’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만주와 먼터무가 이끄는 여진족들을 조선군이 박살 낸 ‘길림 전투’를 기념해 이름을 붙인 도전자급 제10번 함 ‘길림’이었다.
* * *
부두에 접안한 길림 함의 함장 고일남은 수병들에게 소리쳤다.
“하루 쉬고, 최대한 빨리 보급과 정비를 마친다! 정비가 끝나는 즉시 원산으로 회항한다!”
“예!”
고일남의 명령에 수병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고일남의 훈시가 끝나고 우르르 배에서 내린 수병들은 곧 삼삼오오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 고일남은 항구의 방어사령부를 찾았다.
고일남의 간략한 보고를 받은 사령관 강호준은 일남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도 급하게 움직이는 것인가?”
“예. 동북방을 조사하는 과정에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무엇인데?”
흥미가 일은 호준의 물음에 일남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동으로 향하는 열도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일남의 대답에 호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인가!”
* * *
연구소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설전이 벌어지기 전이었지만, 수군의 함장들과 고위 간부들은 지구 구체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항해 과정에서 익숙하게 겪은 여러 자연 현상-시차와 둥글게 휘어 보이는 수평선 등-으로 누적된 경험과 연구소에서 내놓은 ‘가설’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몸으로 체감한 수군의 간부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의문이 튀어나왔다.
“그럼 동쪽에는 뭐가 있을까?”
이렇게 수군의 간부들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조화론’ 때문이었다.
-음양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오행도 상생상극 하며 조화를 이룬다.
이 조화론에 따르면 각종 자연재해와 전염병은 이 조화가 깨지면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화가 깨지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부덕해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때문에, 각종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발생하면 임금이 가장 먼저 나서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었다.
* * *
정화의 항해 기록과 관측 자료들을 손에 넣은 향은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동원해 지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지도에 만수르를 통해 들어온 이슬람권의 지도가 더해졌고, 수에즈-정확히는 알렉산드리아-까지 항해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항해 기록이 더해지면서 지도는 점점 정교해졌다.
거기에 대설도의 주변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대양(大洋)의 존재가 더해지면서 수군들이 의문을 품게 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땅이 이렇게 한 곳에 모여 있다면 균형이 맞지가 않잖아?”
“그렇지? 뭔가 조화롭지가 않아.”
“음양과 오행의 조화가 영 조화롭지 않지. 저리되면 수기(水氣)가 너무 많아.”
전통적인 ‘조화론’에서 출발한 의문이었지만, 수군들은 점점 의문과 가능성을 품기 시작했다.
‘동쪽에는 분명히 육지가 존재한다!’
이런 의문과 가능성은 바로 문서로 작성되어 근정전으로 올라갔다.
“한번 검토해 보거라.”
“예, 아바마마.”
세종에게서 건네받은 보고서를 읽은 향은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이게 이렇게 얻어걸리나? 뭐, 따지고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향은 세종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시도할 가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에서 벌어진 설전과 그 결과물들- 그 가운데에는 비록 추정이지만 이 지구의 지름까지 있었다.-을 전해 들은 수군의 분위기는 가능성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이 세상이 그리도 크다면 동쪽에는 반드시 땅이 존재한다!”
동쪽에 분명히 땅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품었지만, 수군은 바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 * *
조선 수군의 행동을 막은 장애물들은 여럿이 있었지만, 크게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장애물은 수군은 물론이고 조선 전체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력 부족이었다.
인력 부족의 문제 때문에 조선 수군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조선 근해의 제해권(制海權)을 확보하기 위해 해응급 전선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해응급 전선들이 우선 배치되면서 도전자급 전선들의 생산과 배치는 뒤로 밀려났다.
조선 수군이 보유한 전선들 가운데 가장 강한 전투력과 장거리 항해 능력을 보유한 도전자급 전선들이었지만, 요구되는 인적 자원도 상당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해응급도 만만치 않지만….”
관련 보고서를 살피며 향은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절대적인 수치로는 도전자급보다는 적은 승조원이었지만, 상대적으로는 덩치에 비해 많은 승조원들을 태우는 것이 해응급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해응급의 빠른 기동력을 뒷받침해 주는 돛 때문이었다. 덩치는 작았지만 달린 돛의 수는 도전자급에서 딱 2장 모자란 것이 해응에 달리는 돛의 수였다.
때문에, 국방부는 물론이고 세종과 대신들까지 도전자와 해응을 놓고 고심을 해야만 했다.
“도전자급 전선을 우선으로 해야 하옵니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조선의 교역량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전자급 전선을 우선해야 하옵니다!”
재경부 장관 김점은 강력하게 도전자급 전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지만, 당분간은 해응급 전선에 우선권을 부여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우습게도 도전자급의 탁월한 장거리 항해 능력 때문이었다. 장거리 항해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수병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도전자급 전선의 건조와 배치가 완전히 중지된 것은 아니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건조와 배치가 이뤄졌고, 11번 함까지 진수가 끝난 상황이었다.
* * *
두 번째 장애물은 대설도 동쪽에 자리한 대양의 어마어마한 덩치였다.
대설도 동쪽의 대양이 말 그대로 망망대해(茫茫大海,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라는 것을 조선이 확인한 것은 도전자급 6번 함 ‘진포(鎭浦)’의 조난을 통해서였다.
대설도의 해안선 측량까지 끝낸 조선 수군은 대설도 동쪽에 자리한 대양을 한번 탐사해 보기로 결정했다.
탐사 항해를 위해 선택된 진포 함은 최소한의 무장-단 1회 전투가 가능한 정도-만 탑재하고 나머지는 식량과 식수로 가득 채웠다.
“지금 탑재한 식량과 식수로는 3개월의 무보급 항해가 가능하옵니다. 물론, 좀 더 안분(按分, 일정한 비율로 고르게 나눔)을 잘한다면 4개월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무리이옵니다.”
전선에 보급을 완료한 담당관의 주의를 들은 진포함 함장 김억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주의하지.”
그렇게 준비를 하고 출항한 진포함은 함장부터 말단 수병들까지 자신만만했다.
취역한 이후로 알렉산드리아와 치타공까지 수차례 갔다 왔고, 대설도 동북 지역의 거친 바다도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동쪽으로 나간 진포함은 한 달 보름이 되도록 육지를 만나지 못했다.
“배를 돌릴까, 아니면 좀 더 나가 볼까?”
“조금 더 나가 보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치타공이나 알렉산드리아로 갈 때를 기억해 보면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섬이나 육지를 만나지 않았사옵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
김억수의 물음에 휘하 군관들 대부분은 좀 더 동쪽으로 갈 것을 주장했다.
그들의 말마따나 알렉산드리아나 치타공으로 갈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믈라카가 나왔었다.
군관들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좀 더 확고한 지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김억수는 수병들까지 불러 놓고 의견을 물었다.
김억수에게서 상황 설명을 들은 수병들은 군관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수병들 역시 그동안의 장거리 항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달 하고 열흘이 되도록 섬이나 육지는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은 무리다.”
무리라는 것을 확인한 김억수는 결국 배를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진포함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해류와 바람 둘 다 거슬러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진포함이 대설도에 돌아온 때는 출항하고 거의 반년이 지나서였다.
혹시 몰라 향이 배치한 증류기와 건채(乾菜), 건육(乾肉) 등으로 아사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함장 김억수부터 말단 선원들까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다시 기력을 차리기까지는 2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보고에 수군과 국방부는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정동 항로 탐사는 중지한다. 대신, 동북 방면 탐사에 주력한다.”
그렇게 결정이 된 상태에서 길림 함이 동쪽으로 향하는 열도의 발견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 * *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길림 함은최대한 빠른 속도로 원산으로 향했다.
보통 동북 지역 탐사에 나갔다가 대설도로 돌아오면 사흘 정도 쉬고, 보급을 받고 원산으로 향하던 기존의 경우와는 달랐지만 수병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수병들 역시 기대에 들뜬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함장들부터 수병들까지 전선에 탑승해 생활하는 이들에게 ‘진포함의 조난’은 일종의 수치였다.
“천하 제일의 전선에 천하 제일의 수병들이 탔는데 조난이라니! 이건 수치다!”
그 거친 왜구들과 해적들도 도전자급 전선을 보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상황을 겪으면서 하늘 끝까지 솟은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바다를 무시하면 안 돼!”
물론 경험이 많은 노병들은 경고했지만, 지금의 조선 수군은 함장부터 수병들까지 모두 젊었다.
* * *
원산에 도착한 길림 함의 함장이 작성한 장계는 바로 한성으로 올라갔다.
“이건 최대한 빨리 주상 전하께 알려야 한다!”
장계를 확인한 조말생은 두루마리를 움켜쥐고 근정전으로 달렸다.
조말생이 올린 길림 함 함장의 장계를 확인한 세종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명을 내렸다.
“지금 즉시 길림 함의 함장을 불러 좀 더 자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아니지, 제대로 알려면 좀 더 많은 이들의 기억이 필요하니 길림 함의 모든 이들을 한성으로 호출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 * *
세종의 명에 따라 원산에 머물던 고일남과 군관들, 그리고 수병들은 한성에 와야 했다.
그렇게 한성에 온 이들을 상대로 국방부의 관리들은 자세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함장과 군관, 선원들의 구두(口頭) 보고는 물론이고, 항해 기록과 개인적인 기록물까지 받아 확보한 정보를 기반으로 국방부의 관리들은 꼼꼼하게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져 본 관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가능성이 있겠는데?”
그리고 그 결론은 곧 두툼한 보고서로 환골탈태해 조말생에게 올라갔다.
보고서를 확인한 조말생은 부하들에게 명했다.
“근정전에서 제대로 보고할 준비를 하도록. 목소리 좋은 놈이 누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