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561)
561화 혈하(血河) (7)
조병덕은 지휘봉으로 지도의 인산진영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 빌어먹을 성과 후방의 연결로를 끊어버리면, 적들은 고립을 피하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노려야 하는 것이다.”
조병덕의 말에 지휘관들은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았다.
그렇게 수를 계산해보던 부하 장수 하나가 문제를 지적했다.
“잘못하면 협공을 당할 수 있사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높다.”
부하의 지적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조병덕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파악한 조선군의 병력은 20만. 그 가운데 절반이 수군이다. 그리고 지금 저 빌어먹을 성에 배치된 조선군의 수는 얼추 5만. 이 말은 나머지 5만이 조선 전역에 퍼져 있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병력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만약, 귀관이 조선의 도독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남은 병력을 이곳에 모을 것인가, 아니면, 한성에 모을 것인가?”
조병덕의 질문에 협공 가능성을 지적했던 장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한성에 모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대답을 들은 조병덕은 다른 장수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우회에 성공하면 저들은 성을 버리고 나올 수밖에 없다. 넓은 개활지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협공? 물론, 협공당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몰려든 조선군 가운데 제대로 훈련받은 정예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이 근처에서 징집된 농민들로 꾸며진 오합지졸일 뿐이다.”
팡!
지휘봉으로 지도를 후려친 조병덕은 마무리를 지었다.
“이번 전투는 적들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했고, 우리는 선택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지.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저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차례다. 따라서! 우선은 확보한 교두보를 단단히 만드는데 주력한다! 그동안 부서진 화포들을 복구한다!”
조병덕의 말에 부하 장수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직까지는 요동군의 규모가 조선을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오늘처럼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는 전투를 피한다면 조선군을 계속 압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계속해서 병사들을 조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는 5만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화룡포대 지휘관이 조병덕에게 건의했다.
“화룡포들의 복구도 중요합니다만, 포대의 이동도 필요하옵니다. 언제 결행하실 것이옵니까?”
“사흘 뒤.”
“부족합니다. 최소한 이틀은 더 주셔야 하옵니다.”
“이틀이나?”
“최소한이옵니다.”
화룡포대 지휘관의 대답에 조병덕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했던 화룡포의 화력은 조선군의 성벽을 격파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화룡포를 포기하자니 저 빌어먹을 조선의 철승망이 문제였다. 저 철승망을 격파하기에는 화룡포의 화력이 제일 적격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오늘 전투에서 저 조선놈들이 가진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 화룡포대의 진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뒤로 빼야 했는데, 진지를 이동하고 구축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들어갔다.
즉,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발목을 잡아끌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많이 아쉬운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조병덕은 결국 어중간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루를 더 주겠다. 그리고, 인근 부대에서 병력을 추가로 지원해 주지. 나흘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화룡포대 지휘관의 대답을 들은 조병덕은 다시 부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곧 명령서를 작성해서 줄 테니, 화룡포대와 다른 포대의 복구에 최선을 다하도록. 그동안은 불필요한 공세는 벌이지 말고 최소한의 견제만 진행하도록.”
“예!”
“무릇, 전투란 것이 다 힘든 법이지만, 그 가운데 으뜸이 공성전이다.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시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예!”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군막 안에는 조병덕과 참모들만 남았다.
“후우~. 공성전이 난전의 으뜸이라 했는데, 진짜 힘들기는 하군.”
조병덕이 한숨과 함께 푸념하자, 옆에 있던 참모가 그를 위로했다.
“원래 공성전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끝을 볼 수 있는 전투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렇기는 해. 단지, 저 무시무시한 화룡포를 견디는 성벽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그런 성벽을 만든 놈들이 조선놈들이라는 것이 좀 걸리는군. 결행일까지 계획을 좀 더 가다듬어 보자고.”
“예.”
“가장 큰 문제는 저 조선놈들이 하늘에 띄운 요상한 물건이옵니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비구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이게 참 골치입니다. 저 하늘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으니….”
참모 하나가 비구를 언급하며 곤란함을 표하자, 참모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고, 다른 쪽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게 큰 문제가 되겠소? 저 하늘에 떠서 우리를 내려보는 것이 거치적거리기는 하지만, 저 하늘에서 지상까지의 통신이 문제 아니겠소? 물론, 적당한 수단을 준비했겠지만, 전령이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겠소?”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소. 하지만, 하늘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으니 그 대응도 빨라지지 않겠소?”
계속해서 비구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말이 이어지자 반대쪽 참모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것을 과대망상이라 하는 것이오!”
“뭐라!”
“전선이 수십, 수백 리에 걸쳐 펼쳐진 상황이라면 유용성이 크겠지만, 지금 전선이 어떻소? 겨우 손바닥만 한 공간이오! 그런 곳에서 빨리 아나, 늦게 아나 얼마나 차이가 있을 것이라 보오? 괜히 저 하늘에 뜬 기물을 의식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게 더 큰 손해요!”
결국, 조병덕이 나서서 종지부를 직었다.
“나 역시 그 기물을 못 본 것이 아니고, 충분히 위협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방금 나온 말처럼 우리가 머무는 전장이 넓음을 생각하면 저 기물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예.”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조병덕과 참모들은 다음에 벌일 작전을 좀 더 꼼꼼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 * *
참으로 혈전이라는 표현이 제대로 들어맞는 하루였다. 하지만, 조병덕과 참모들, 나아가 요동군 전체의 사기는 많이 꺾이지 않았다.
-요즘 들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조선은 소국이다. 우리를 대적할 만큼 많은 병력을 보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성전이 어렵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병력을 성에 배치했다는 소리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이 고비만 넘기면 탄탄대로라는 소리다.
-즉, 이 고비만 넘기면 저 조선에 넘쳐나는 재물들이 우리 것이 된다는 소리다.
약탈에 익숙한 여진족 병사들은 목소리를 드높였다.
“어차피 죽는 인생! 제대로 한번 걸어보는 거야!”
“오우!”
“조선의 금은보화가 내 것이다!”
이런 여진족 병사들의 말에 명군 출신의 병사들도 점점 비슷하게 바뀌어 갔다.
* * *
하지만, 이는 전제부터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조선의 상비군은 저들의 예상보다 많았다. 물론, 예상보다 넓은 강역을 지켜야 하는 관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절대 적은 수가 아니었다.
-전쟁이 나면 바로 징병되어 전선에 나설 조선의 백성들은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향이 만든 예비군 제도에 따라 농한기마다 훈련을 받았고, 그 훈련 때마다 최소 10발 이상의 실탄 사격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거기에 항상 마무리로 하는 석전을 통해 기초적인 진법운용까지 경험한 상태였다.
-조병덕은 조선이 때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이는 조선의 철도망을 무시한 것이었다.
조병덕이 철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명에서 운용하는 철도는 조선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뒤처져 있었다. 명에서의 경험을 조선에 대입한 치명적인 실수였다.
-비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산진만 한정한다면 조병덕과 참모들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비구에 탑재된 발광통신기를 통해 후방에서도 전선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미리미리 대비를 할 수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조병덕이 오판한 것은 그가 상대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상대해야 할 조선군의 규모였다.
자신을 막아선 조선군의 규모를 5만이라 예상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맞아 들었다.
향의 주장에 따라 인산진과 그 일대에 배치된 군사의 규모가 정수를 채운 3개 부(部), 약 5만 명이었다.
하지만, 인산진영과 좌우에 늘어선 참호선에 투입된 병력은 모두 합해 2개 부였다. 남은 1개 부, 1만 7천의 병력이 예비대로 그 뒤에서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공세준비선이라 명명된 지역에 대기하고 있는 조선군은 지금 1개 영(營), 약 8만 8천명이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철도를 통해 병사들이 모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공세 대기선에 모일 조선군의 병력은 3개 영, 26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 * *
압록강의 인산진영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한성에서도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산진에서 보낸 급보입니다!”
“필사해서 위로 보내! 최소한 20부는 필사해야 해!”
“사람이 모자랍니다!”
“타자기 뒀다 뭐할 거야!”
“여기 보급품 목록입니다!”
“여기 숫자 틀렸잖아! 당장 첫 장부터 숫자가 틀리면 어쩌자는 거야! 발가락으로 주판 치냐! 아니면, 산가지들이 다 부러졌어? 당장 다시 작성해서 가지고 와!”
국방부에서 온갖 고함과 욕설이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때, 재경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장에 인출 제한 걸라고 했는데, 이건 뭐야!”
“했는데, 어찌 알았는지…”
“어느 놈이 흘렸는지 당장 찾아내! 찾아내서 당장 기록원에 처박아 버려! 잡아내지 못하면 너부터 기록원에 처박아 주마!”
“힉!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대감!”
재경부 장관의 서슬에 기함한 차관이 후다닥 밖으로 튀어 나갔다.
재경부 장관의 사무실 한쪽 벽은 온갖 표와 그래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미 예상한 전쟁이었지만, 실제로 벌어지면서 예상도 못했던 지출과 생각보다 커진 지출들로 재경부는 숫자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승화당과 총리실, 그리고 다른 관청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혼란을 틈탄 범죄가 많아질 것이 확실합니다. 치안 강화에 신경 써야 합니다.”
“예. 포청에 명령을 내리겠사옵니다.”
“예비군 징병 상황은 순조롭습니까?”
“예. 다행히 백성들이 모두 잘 따라주고 있사옵니다. 예정된 시간표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다행이로군요.”
한숨 돌렸다는 표정을 짓던 향은 바로 경고를 주었다.
“그들에게 지급할 보급품의 품질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헛짓을 하는 인간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이 나와서는 안 되지!’
향이 계속 강조하자 황희가 나서서 대답했다.
“각골명심하겠사옵니다.”
그렇게 안건을 처리한 향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명에 보낼 사신은 인선이 끝났습니까?”
향의 질문에 허후가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직접 갈 생각이옵니다. 가서 제대로 따지고 오겠사옵니다.”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향의 경고에 허후가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된다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니옵니까? 이를 명분으로 명의 항구를 모조리 태워버리면 되니 말이옵니다. 저의 목숨 하나와 명의 항구 전부를 바꿀 수 있으니 한참 남는 장사 아니옵니까?”
허후의 말에 향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일이 틀어지면 명의 항구를 다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목숨을 챙겨서 오십시오.”
“자신은 하기 힘들지만, 최선은 다하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