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566)
566화 단절. (5)
인산진영과 압록강에서 아군들이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것을 본 요동군의 전의는 급격하게 추락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무기를 손에 쥐고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요동군 병사들의 눈은 마구 흔들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병사들의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후방이 무너졌다! 도망가자!”
“후방이 무너졌다!”
‘후방이 무너졌다!’라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자, 요동군의 본진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도망가자!”
“난 살아야겠어!”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은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 뒤로 내달렸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요동군의 본진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후퇴도 작전이 필요한 법인데!”
언덕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던 조병덕은 참모에게 명령했다.
“지금 즉시 예비대를 이끌고 가서 저 멍청이들을 통제해서 끌고 가! 최선을 다해 후퇴시켜! 패주가 아니라!”
“예, 옛!”
조병덕의 명령에 참모들이 후다닥 말머리를 돌렸다. 호위병들과 함께 언덕을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전에 없이 급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조병덕의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한 후퇴를 지휘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지(死地)에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 가까웠다.
“거, 사람들하고는….”
대놓고 보이는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짓던 조병덕은 주변에 선 호위병들에게 명했다.
“자네들도 내려가도록.”
“장군님의 호위를 맡아야 하옵니다.”
“나도 곧 내려갈 걸세. 단지, 조선놈들이 압록강을 건널지 말지만 확인하고 싶어서 머무르는 것이야.”
“위험하옵니다.”
“걱정 말게. 나도 내 목숨 중한 것은 잘 아니까.”
“하오나….”
“어서 내려가도록!”
조병덕의 명령에 호위병들도 언덕을 내려갔다. 하지만, 끝까지 남은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조병덕의 가병(家兵)들이었다.
“자네들도 내려가게나.”
“끝까지 남아 가주를 지키겠사옵니다.”
가병들의 단호한 대답에 조병덕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압록강을 바라봤다.
멍하니 압록강을 바라보던 조병덕은 작게 중얼거렸다.
“취했었구나….”
태자와 함께 요동에 오게 되면서 갑자기 떠맡은 중책에 취했다.
수십만의 병력을 손에 쥐게 되면서 숫자에 취했다.
화룡포를 시작으로, 그동안 구경만 하던 화포들을 손에 쥐면서 취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을 병탄한 다음 나라의 최고위직에 오를 것이라는 야망에 취했다.
“한바탕의 일장춘몽에서 깰 시간이 되었구나….”
강변에서 요동군이 완전히 물러나고 조선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자, 조병덕은 칼을 뽑아 들었다.
“하!”
조병덕은 검을 높이 들고 조선군들을 향해 돌격을 시작했다. 그의 뒤를 따라 가병들도 조선군들을 향해 돌격했다.
“적이다!”
“사격! 사격!”
타타타탕!
그것이 조병덕의 마지막이었다.
* * *
조병덕의 명령으로 언덕에서 내려온 참모들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패주하는 병사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필사적인 노력을 한 것은 단지 조병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저 병사들이 있어야 자신들이 안전하게 사지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참모들의 시도는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일단, 이성을 잃고 패주하는 병사들을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다음으로 조선 수군과 기병대의 집요한 공격이었다.
워낙에 대군이었기에 아직도 많은 병력들이 조선 수군이 쏘아대는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 놓여 있었다.
조선 수군이 쏘아대는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병사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가까스로 복구한 지휘계통이 무너졌다.
조선 기병대의 공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선 수군은 마치 사어(鯊魚, 상어)처럼 집요하게 요동군의 상처를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물고 늘어질 때마다 요동군의 상처는 점점 더 크고 깊어졌고, 진영 전체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이렇게 출렁거릴 때마다 요동군은 무질서한 패주를 이어가게 되고, 참모들은 더욱 처절하게 몸부림을 쳐야 했다.
* * *
본진의 패주가 이어지는 동안, 인산진영 앞은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붕괴되었던 덕에 많은 요동군 병사들이 무의미한 저항을 벌이다 죽거나 항복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많은 병사들이 도로 압록강을 건너다가 을식화차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전장 정리 들어가고, 후방에 통신 보내. 넘어가도 좋다고 말이야.”
“옛!”
요동군의 패주를 확인한 이징옥은 비구를 이용해 후방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미 인산진 후방 5리(약 2km)까지 진출해 있던 최윤덕의 본진은 신호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진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압록강에서는 조선군의 도강을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선, 요동군을 헤집어놓던 조선군 기병대가 둘로 나뉘었다.
둘로 나뉜 기병대 가운데 한쪽은 패주하는 요동군의 꽁무니를 쪼아댔고, 다른 한쪽은 도강 예상 지점의 방어에 들어갔다.
조선군 기병대가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조선 수군들의 판옥선도 움직였다.
“기관 돌려!”
“밀어! 밀어!”
“당겨! 당겨!”
강변에 고의로 좌초한 판옥선에서 내린 수군 병졸들은 판옥선을 다시 강으로 집어넣기 위해 밀고 당겼고, 증기기관은 추진기를 역으로 돌렸다.
한 척을 도로 집어넣기 위해 주변 판옥선들의 수군들까지 다 달라붙어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한 척이 도로 물에 띄워지면 병사들은 곧장 다른 배에 달라붙었다. 그렇게 해서 판옥선들은 하나둘 다시 강에 띄워졌다.
그렇게 강에 뜬 판옥선들은 다시 수병들을 태운 채 압록강을 거슬러 올랐다.
압록강을 도강하던 판옥선들과 합류한 판옥선들은 횡대로 늘어섰다.
“돛을 접고, 닻을 내려라!”
함장들의 명령에 따라 판옥선들은 돛과 돛대들을 접어 옆으로 치우고, 닻을 내렸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판옥선들 사이로 곧 밧줄들이 날아다녔고, 판옥선들은 서로서로 엮이면서 단단히 고정되었다.
인산진의 성벽에서 그 광경을 보던 이징옥은 작게 중얼거렸다.
“적벽의 연환계인가…. 누가 불쏘시개라도 던지면 한 방에 끝나겠군.”
하지만, 지금 압록강의 상황과 적벽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조선군이 강의 양쪽 강변을 장악하고 단단히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공병대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참모의 외침에 이징옥은 인산진의 뒤쪽을 바라봤다.
여러 개의 검은 연기 기둥이 풀풀 솟아오르며 조선군 공병대가 인산진에 도착했다.
* * *
인산진에 도착한 공병대는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인산진영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굴착기를 동원해 거대한 구덩이를 파는 것이었다.
삐이익!
입에 호각을 문 병사들이 깃발을 휘두르며 보내는 신호에 맞춰 굴착기들은 큼지막한 구덩이들을 여러 개 팠다.
그렇게 구덩이들이 완성되자, 포로로 잡힌 요동군 병사들이 죽은 요동군 병사들의 시체를 구덩이로 날랐다.
조선군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동료의 시체를 옮기는 요동군 병사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거대한 굴착기들을 바라봤다.
어지간한 초가집 몇 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와 장정 서넛은 동시에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삽날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물건이었다.
* * *
한쪽에서 그렇게 전장 정리를 하는 동안, 압록강에서는 도강을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삐이익! 삐익!
호각 신호에 맞춰 판옥선에 설치된 거중기가 목재 가교를 들어 올렸다.
수군 병졸들과 공병대 병사들은 그렇게 공중에 뜬 가교를 이리저리 밀면서 위치를 잡았다.
“좋아! 내려! 내려!”
신호에 맞춰 목재 가교는 천천히 내려왔다. 가교의 양 끝에는 강철제 갈고리가 달려 있었고, 그 갈고리들은 판옥선의 여장을 단단히 붙잡았다.
제대로만 놓으면 두 판옥선을 연결하는 단단한 가교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틀 뒤, 조선군의 본진이 압록강을 건넜다.
여기까지가 허후가 북경에서 머무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 * *
김종서의 설명을 들으며 승화당으로 향하던 허후는 슬쩍 손을 꼽아보더니 중얼거렸다.
“지금쯤이면 북경에도 소식이 전해졌겠군. 황제의 표정이 볼만했겠어. 아니지, 내 목이 달아났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들어선 승화당 회의실 안에서는 대신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명분도 얻었고, 기왕 압록강을 넘은 김에 요하도 넘읍시다!”
“요하는 안 돼! 그러면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이 되어 버리오!”
“아까 황제의 칙서를 보지 않았소! 책임을 묻겠다 했소! 어차피 전면전은 피할 수 없소이다!”
확전에 관한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향이 조말생에게 물었다.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향의 요청에 조말생은 바로 답했다.
“군의 의견은 예전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 조선의 능력으로는 요동이 한계입니다. 장성을 넘으면 보급에 문제가 생깁니다.”
“수군을 이용하는 방안은 어떠하오?”
황희의 물음에 조말생은 고개를 저었다.
“도전자급 전선이나 민간의 상선을 다 동원해도 턱없이 모자라오. 누누이 말하지만, 명이나 우리나 서로의 본토를 침공할 능력은 부족하오. 결국, 요동에서 모든 것을 결착지어야 하오.”
“군이 그렇다면야….”
“조금은 아쉽군….”
확전파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전쟁의 주역인 군이 무리라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확전파의 심정을 알았는지 조말생은 말을 덧붙였다.
“생각 같아서는 자금성까지 쳐들어가 황제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기는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소모한 물량과 앞으로 소모할 물량을 생각하면….”
조말생은 김점과 재경부 장관을 슬쩍 바라보며 말을 흐렸다.
이번 전투에서 조선군이 소모한 탄약과 물자는 육수군 전체가 두 달 동안 훈련으로 소모하는 물량과 맞먹었다.
그것도, 수군과 기병대가 사용한 물자를 뺀, 인산진영에서만 소모한 것이었다.
이미 조선 전역에 예비군의 징집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들이 소모할 물자들은 여태까지 겪었던 그 이상이 될 것이 확실했다.
슬쩍 말을 흐렸던 조말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따라서, 요동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최선이오. 황제가 벌인 음험한 계교에 대한 분풀이는 수군에게 맡기고 말이오.”
“흐음… 그것도 괜찮겠군.”
“좋아 보입니다. 저하는 어떻게 생각하시옵니까?”
황희의 말에 향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자금성까지 말 달리자 하고 싶지만… 항구들만 다 작살 내놓는 것이 더 이득이기는 하지. 명의 시장 장악능력을 확 깎아버릴 수 있으니까….’
향이 조말생의 손을 들어주면서 앞으로의 방향은 정해졌다. 그때, 김점이 입을 열었다.
“누가 뭐래도 무순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옵니다! 무순만큼은!”
김점의 외침에 향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화룡포를 시작으로 요동군의 무기들을 만든 광물들이 전부 무순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천 탄광?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철광과 구리, 석탄이 다 나와?”
보고를 받은 김점은 바로 향에게 달려가 외쳤다.
“무순만큼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