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637)
637화 Wild Wild North (3)
그날 밤, 침전에 홀로 앉은 향은 이마에 손을 얹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하단 말이야… 아오! 저 빌어먹을 철덕 자식!”
다른 의미로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버린 진평으로 인해 골치가 아파진 향이었다.
철도에 관한 진평의 과도한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철도 건설이 늦춰지면 안 된다고 사병을 구성하게 해 달라는 놈인데….”
철로와 같은 인프라 사업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예산을 많이 잡아먹는 항목이었다. 만약, 진평이 폭주한다면 예산의 균형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철로를 1순위로 밀어붙일 것이 확실했고, 여기서 더 폭주한다면 ‘계유철난’은 개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너 숙청!’할 수도 없고… 명분의 문제야.”
함부로 진평을 숙청한다면, 2번에 걸쳐 벌어졌었던 ‘왕자의 난’과 같은 권력다툼으로 보게 될 것이었다.
-황제가 황태자로의 안전한 권력이양을 위해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둘째 동생을 죽여버린 것이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이런 숙청이 일종의 전통 아닌 전통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좌에 오른 이가 형제들의 목을 무조건 다 날려버린다면 황실 자체가 점점 작아지게 될 것이었다. 또한, 황좌에 오른 황제는 더욱 강력한 독재권력을 휘두르게 될 것이었다. 그런 독재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면 외부의 자극에 유연한 대처를 할 탄력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도태될 것이 확실했다.
“계속해서 백성들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나누기를 원할 텐데,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리면 종국에는 처형대만 남아있겠지.”
이런 명분의 문제도 있었지만, 향이 숙청을 주저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덕후로서의 동질감도 문제지….”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처럼 21세기는 물론이고 환생하고 나서도 덕후로서 온갖 크고 작은 사고를 쳤던 향으로서는 진평이 그리 밉지가 않았다.
“이성과 감성의 충돌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거리던 향은 결론을 내렸다.
“이성이고 감성이고 다 지랄이고. 이대로 진평을 놔둔다면 결론은 파국이다. 내가 안 나서도 대신들이 나서게 될 거야.”
당장 오늘 향 앞에서 땡깡을 부린 것만 하더라도 상소가 홍수를 이룰 일이었다.
그동안 진평이 권력에는 욕심이 없고, 철로에만 미쳐있었기에 오늘 일은 대신들도 웃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잦아진다면 슬슬 경각심을 가질 확률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황제 앞에서도 저럴 진데, 잘못하면 철로 하나 때문에 국정을 농단하려 들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중앙 관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게 된다면 이후에는 향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향이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모든 관료들이 합심한다면 승부를 가늠할 수 없었다.
“결론은 제어판을 붙여야 해. 누가 적당할까?”
향은 후보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국무총리와 좌우 부총리들을 제외. 너무 늙었어. 황보인은… 사법체제에 그만큼 정통한 이가 없으니 제외, 김종서는… 도시 중독도 문제지만, 그 성격에 진평과 멱살잡이나 안 하면 다행이야. 흐음… 이사철은… 너무 꼬장꼬장해. 잘못하면 역으로 멱살잡이가 벌어질 거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향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들 나이가 너무 많아! 지금까지 쌓은 실적과 권력, 이름값을 생각하면 진평을 제어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 나이 차이와 세대 차이로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어. 지금 진평을 보자면 익히 알려진 그 성격에 덕후들의 외골수적인 기질까지 더해진 끔찍한 혼종이야. 잘못하면 일을 더 키우게 돼. 그렇다면 비슷한 연령대로….”
거기까지 생각한 향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만만한 녀석들이 4인방밖에 없네.”
제대로 말하자면 향과 진평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욕받이 겸 윤활제와 브레이크로 써먹을 인간들로 4인방이 최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진 향은 곧 한 사람을 낙점했다.
“성삼문밖에 없군.”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런 일에 적격은 한명회였다. 눈치와 머리 회전이 빨라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막을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진평과 한명회, 권람의 인연을 알고 있던 향은 그 둘을 가장 먼저 제외했다. 그리고 남은 이들 가운데 하위지는 지독하게 고지식했기에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성삼문이란 패도 나쁜 패는 아니었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집현전 학사가 되었을 만큼 머리도 좋았고, 단종 복위를 위해 사람을 모을 정도로 친화력도 괜찮았다. 단, 거사 직전 발생한 변수 때문에 미적거리다가 실패한 것처럼, 결단력이 좀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도 향 밑에서 구르면서 어느 정도 개선되었기에 향은 성삼문을 선택한 것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향은 한명회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성삼문을 ‘북지 철로 개발 감리’에 임명해 진평에게 보내도록. 소속은 승정원 직할로 하고.”
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명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이 가는 것이 낫지 않겠사옵니까?”
“왜?”
“매죽헌의 능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좀 고지식한 부분이 있사옵니다. 진평 공작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충돌이 있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성삼문을 선택한 걸세.”
“예?”
“다른 관청 소속도 아니고, 짐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승정원 소속이야. 이는 곧 짐의 의중이란 소리니 성삼문이 막는다면 진평도 멈출 수밖에 없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향은 한명회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자네 말처럼 자네를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일 수도 있겠지만, 짐에게는 별로 안 좋아.”
“예?”
“진평 편하게 하자고 짐이 불편해지는 것은 싫거든.”
이는 향의 진심이었다. 눈치와 머리 회전이 빠른 한명회를 옆에 둔덕에 일이 편해진 향이었다.
이런 향의 말에 한명회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좋게 보자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리였고, 나쁘게 보자면 발에 땀이 나도록 굴러야 한다는 소리였다.
“뭐하고 있나? 얼른 명령서를 작성해 와야 짐이 결재를 할 것 아닌가?”
“아, 예! 예!”
향의 재촉에 퍼뜩 정신을 차린 한명회는 급히 예를 올리고는 밖으로 물러났다.
* * *
시간이 지나자, 향과 한명회 사이에 오간 대화가 소문으로 퍼졌다.
소문을 들은 관리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도승지 정도라면 그런 말 들을 만하지….”
한명회가 빠릿빠릿하다는 평가는 공통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명회는 도승지로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 도승지는 오늘도 바쁘시구먼!”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김종서가 아는 체를 하자, 한명회는 머리를 숙이며 답례했다.
“안녕하십니까, 총무부 장관 대감.”
“나야 뭐 언제나 좋지!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김종서는 한명회의 어깨를 두들겼다.
“도승지를 보면, 북방에서 방촌대감과 함께 했던 때가 기억나는구먼. 죽어라 고생했던 그때가 어제 같았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으이! 자네도 조금 더 고생하시게!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예. 하하하… 감사합니다.”
김종서가 어깨를 칠 때마다 휘청거리면서도 한명회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럼 수고하시게!”
호탕한 웃음과 함께 사라지는 김종서를 바라보던 한명회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좋은 날이 오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한명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와 함께 신지까지 갈 것 같아.’
* * *
한편, 명령서와 함께 압록강으로 향한 성삼문은 바로 진평을 찾았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명령서를 읽은 진평이 건넨 말에 성삼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폐하께 잘 좀 말씀드려주게!”
“맡은 명령을 최선을 다해 수행할 뿐입니다.”
“그래도 잘 부탁하지!”
그렇게 상견례가 끝나고, 진평은 현장을 설명했다.
“지금 여기 압록강에 놓고 있는 철교를 완성하는 것이 북지 철로의 시작이지. 저 철교를 통해 자재들이 다 들어오니까!”
“참으로 큰 다리입니다.”
성삼문의 말에 진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한수에 놓은 다리들을 뺀다면 어디 가서도 밀릴 다리는 아닐세.”
그렇게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한 진평은 성삼문을 이끌고 압록강 철교 공사 현장의 다른 부분을 모두 보여줬다.
공사 현장 시찰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진평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요하 지역의 제국 영역을 옮겨놓은 지도를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진평은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은 압록강 철교가 하나뿐이지만, 본격적으로 북지 개발이 진행되면 하나 더 생기게 될 거야. 그리고, 요동성만이 아니라 여기 여순 반도, 그리고 북부와 동부에 만들어질 거점을 중심으로 철로들이 종횡으로 연결될 걸세. 그렇게 되면 북지의 북쪽 끝에서 서울까지 늦어도 닷새, 빠르면 사흘 안에 오갈 수 있게 될 거야.”
“대단하군요.”
성삼문의 말에 진평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업(大業)이지. 더불어, 철로망이 완성되면 그 누구도 제국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야.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오게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일세.”
“후세의 제국 백성들이 모두 공작을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으로 좋겠네.”
성삼문의 말에 화답한 진평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런데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바로 북지의 치안이 문제야. 워낙에 드센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서 말일세.”
“그 문제로 인해 군이 배치될 것이라 들었습니다.”
“군으로는 한계가 많아.”
진평은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지금도 북지 여기저기에서 분탕질하는 놈들과 제국군 사이에 추격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병력을 배정하는 것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공사 현장이 생길 것인데 이 모든 현장마다 필수적으로 경비병력이 배치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값비싼 자재들이 도난당할 것이다.
-측량반의 안전도 문제다. 철로를 깔기 위해서는 사전에 측량작업이 필수인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의 상황과 연결되어 점점 더 많은 병력들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정치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성삼문이 이의를 제기했다.
“어째서 정치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까?”
“지휘권의 문제일세. 만약, 현장에서 일이 발생해서 급히 군이 필요한 상황인데 따로 명령계통을 밟아 움직인다면 너무 오래 걸려. 때문에, 철도와 관련해 배정된 군사들의 지휘권을 내 밑으로 놓는 것이 유용해.”
진평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삼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절대 아니 될 일입니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겨 버립니다.”
“하지만, 빠른 대응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절차라는 것을 잘 알잖나?”
“그 부분은 경비를 담당한 부대 지휘관에게 자위권과 즉응권을 주면 될 일입니다.”
“그 부분은 동의하네. 하지만, 예전에 이만주가 벌였던 것처럼 대규모로 습격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야인 여진들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여러 부대를 통합해 지휘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움직임이 느려지네.”
“폐하께서 전담 부대를 편성하신다 하셨으니, 이 문제를 지적하고 해당 부대의 규모와 행동범위를 조정하면 됩니다.”
이후로도, 진평은 이런저런 문제들을 꺼내며 자신이 직접 부릴 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성삼문은 그 자리에서 대책을 내놓으며 진평의 주장을 막아냈다.
“자네의 대책도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공사의 속도가 늦어지네. 빠른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은 물론이고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네.”
“미리 예상해 대책을 잘 세워놓는다면 임기응변이나 과감한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공사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황제폐하께 심려를 끼쳐 드리는 일을 피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공작께서도 제국의 신하 아니십니까?”
“자네 말이 맞네. 맞아.”
결국, 진평은 성삼문에게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