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35
135 협잡질 위의 클래스(2)
〈 ···이번 뉴욕증권거래소의 조작 의심 사건을 맡은 리처드 하몬 연방검사는 주모자로 의심받는 페이튼 저스틴 씨의 연루 여부를 물은 본지의 인터뷰에 대해서 수사에 어떤 성역도 없을 것임을 재차 밝혔다. 〉
부스럭──!
“허어, 갈수록 가관이구먼.”
회의실에 나란히 앉은 화이트하우스와 개리슨은 신문을 보며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예, 그러게 말입니다. 연방검사까지 나섰으니 모양새만 내는 것도 아닐 테고.”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며칠 동안 뉴욕 아니, 미국 동부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 스캔들 때문이었다.
바로 뉴욕증권거래소의 조작 정황 관련한 사건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거 혹시 우리와도 관련 있는 거 아닌가.”
“WCSS 인수로 모건이 건 협잡질 말씀이신지요?”
개리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이트하우스에게 자신이 읽던 뉴욕타임즈 기사 말미의 단락을 보여주었다.
“여길 한번 보게나.”
〈 ···한편 일설에 제보자가 금융가 존 피어넌트 모건 씨의 동업자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씨라는 말도 있어 그들의 연루 여부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
“제보자가···록펠러? 모건의 동업자라면 우리가 아는 그 록펠러가 맞을 텐데?”
“그러니까 말일세. 시기가 묘하게 맞물리지 않은가. 거기에 주식과도 연관이 있으니······.”
개리슨은 중얼거리다가 문득 창가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는 훤칠한 체격의 뒷모습을 봤다.
소매를 걷은 검은 머리칼의 소유자는 태선이었다.
“태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 갑자기 회의를 소집한 것도 어쩌면 이 건과 관련 있는 거 아닌가?”
“역시 통찰력이 좋으시네요. 제가 부재할 때 과연 믿고 맡길 만한 분이십니다.”
태선이 돌아서며 말하자 개리슨은 자기가 물었으면서도 이런 대답을 들을 줄 몰랐는지.
“저···정말이었나? 우리 회사 건과 이 건이 관련이 있어?”
놀란 건 화이트하우스 역시 마찬가지.
“잠깐만, 제보자가 록펠러라 했지 않은가. 거기에 모건이 아니라 페이튼 저스틴 씨가 관련됐다는데 뭐가 뭔지.”
태선은 회중시계를 봤다.
“슬슬 시간이 됐군요.”
옷깃을 바짝 당겨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테이블 상석에 가서 앉았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오늘 정말로 중요한 발표를 하고···손님도 올 예정입니다. 그때 전부 말씀드리죠.”
“궁금해서 견디기 어려운데···어쩔 수 없지.”
“어쨌든 드디어 우리도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하는군요.”
그렇게 개리슨과 화이트하우스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드디어 하나둘씩 다른 임원들도 들어왔다.
“이거 태선이 기다릴 줄 알았더라면 먼저 오는 건데.”
“안나 양. 언질 좀 해주지 그랬었나.”
곧 모두가 자리에 둘러앉고 비서실을 겸하는 전략실 직원 안나와 아치볼드가 각 자리마다 자료를 배포했다.
“오늘 회의의 안건······.”
태선은 손에 자료의 첫 장을 넘기며 입을 뗐으나.
턱─!
자료를 내려놓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화제를 돌연 바꾸었다.
“···이전에 자료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먼저 이야기하죠. 혹시 오늘 신문들 보셨습니까?”
“혹시 이거 필요한가?”
때마침 개리슨이 아까 보던 뉴욕타임즈를 건네주자 태선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서 고맙다는 뜻을 표하고는 그걸 테이블 앞쪽으로 내려놓았다.
첫 면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기사는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면 모를 리 없는 것이었다.
“리차드 하몬 연방검사가 뉴욕증권거래위원회의 조작 의심 정황 관련하여 페이튼 저스틴을 위시한 그 주변 인물들을 수사하고 있다죠.”
“오, 나도 그 기사 봤네. 안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었어.”
“나도 봤습니다. 제보자가 록펠러라던데?”
존 엘리스, 새뮤얼 앤드루스, 헨리 웰스, 윌리엄 파고, 웨스팅하우스 등······.
다른 이들도 이 화제가 나오자마자 눈을 빛냈다.
“모두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은밀히 저를 찾아왔기에 신뢰를 지켜주려면 비밀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태선이 꺼내는 말의 뉘앙스가 명확히 어떤 사실을 가리키자 간부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서···설마 정말로 록펠러가 내부고발자란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잠깐만! 페이튼 저스틴이 수사 중이란 건 모건과도?”
“우리에게 비밀로 한 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네. 그보다 엄청난 소식이구먼.”
“그···이중 첩자는 아니겠지?”
물론 개중 윌리엄 파고처럼 록펠러에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도 몇몇 있었고 태선은 그런 심리를 충분히 이해했다.
“사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데는 그 부분을 확실히 하려는 것도 있었는데··· 록펠러 씨가 물러날 곳도 없이 이쯤 나선 걸 보면 거의 확실합니다.”
삐그덕──!
그때 회의실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아치볼드였다. 그러고 보니 회의할 때는 안나와 아치볼드가 진행 보조를 위해 항상 같이 자리하고 있었건만.
아치볼드가 어디 갔다가 막 돌아왔다.
하물며 보통은 들어올 때 노크를 해서 허락을 받고 들어오는데 그냥 들어왔다는 건.
“손님이 도착했습니다.”
태선으로부터 미리 받은 지시가 있다는 것.
“마침 잘 됐군. 지금 바로 들여보내도록 해.”
그리고 태선의 명령이 재차 떨어지자 아치볼드가 전략실로 나가더니 이내 열어둔 회의실 문으로 훌쩍 키 큰 체격의 남자가 들어섰다.
그의 등장에 회의실은 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정말이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조셉의 목소리가 들렸을 뿐.
언질을 줬다고는 해도 막상 실제로 킴 스탠다드 오일 회의실에서 저 사람의 모습을 보자 놀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록펠러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에 와서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킴 사장님.”
거기에 태선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고 지시에 따르는 태도라니.
“존 데이비슨 록펠러입니다. 제가 이 지라에 와서 모두 놀라셨을 걸로 압니다.”
하물며 태선에게만 예의를 갖추는 것도 아니라 모두를 향해 말했다.
“모건과 동업을 하며 여기 계신 분들의 사업 분야와 겹치는 비즈니스도 벌이고 사실 마찰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뭣보다 절대로 허리 굽히지 않을 듯 꼿꼿하게 보이는 자가 사과까지 했다.
“자, 과거의 이야기는 미뤄두도록 하죠. 가장 중요한 안건은 따로 있으니까요.”
“예, 그럼 킴 사장님께서 이 회의에 저를 부른 이유는 모두 짐작하셨겠지만 주식 조작 건 때문입니······.”
우당탕탕──! 콰당──!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태선의 요구에 록펠러가 본론을 꺼내려는데 그때 밖이 돌연 소란스럽더니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록펠러, 아직 안 늦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용서하겠다!”
뭔가를 뿌리치고 튀어나온 듯한 기세로 얼굴을 들이민 건 모건이었다.
그 뒤로는 페이튼 저스틴의 격앙된 표정이 보였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죄송합니다. 곧바로 밖으로 끌어내겠습니다.”
그 둘이 문턱을 넘기도 전에 억세 팔에 휘감겨 모건과 저스틴이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양복 차림의 덩치 큰 인디언 하나가 들어와서 태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타왕카의 심복이었지.’
회의실 밖을 지키는 인원은 아멕스 경비대의 인원이었다.
체로키족 전사들도 아멕스 경비대로 편입됐는데 전투력이 뛰어나 타왕카의 심복들은 요직을 차지했다.
저자의 이름은 라산카였을 것이다. 들어오면서도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늘 경비의 책임자를 맡았고.
“라산카 씨, 너무 거칠게는 하지 마세요. 괜히 다쳤다고 핑계 대서 수사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곤란하잖아요.”
“마음만 같아선 몇 대 쥐어박고 싶지만···알겠습니다.”
전에 파이프 습격 사건으로 자신과 타왕카가 대립하게 될 뻔했던 사건의 배후에 모건이 있었다는 건 이제 라산카를 비롯해 타왕카의 심복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좋게 내보내라고 말하는 이는 당사자 중 하나···심지어 파이프를 공격받은 주인이었다.
“새삼스럽지만 킴 사장님은 정말로 그릇이 크십니다.”
라산카가 나가려다 태선에게 진심 어린 감정을 밝히는 것은 경비대에 잘 섞여들었다고 해도 역시 인디언다웠다.
“······놔!”
“이 자식들, 어딜 내 몸에 손 대는 거냐. 내 발로 나갈 테니 비켜라.”
잠시 후 밖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멀어지자 침묵을 깨고 개리슨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꼴 한 번 좋구먼!”
진심도 있겠지만 저들의 소동으로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에는 개리슨의 이 웃음이야말로 딱이었다.
더구나 실질적인 영향력은 태선이 톱이지만 명목적으로나마 태선과 같이 회사를 일으킨 사람이었다.
태선의 부재 시에는 대신 사령탑을 맡아주고 있는 사람.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지간히도 급했으면 직접 여기로 찾아온답니까.”
“세상 살다 별일을 다 보겠군요. 저스틴 씨도 그렇지만 세상에나···그 모건이 저렇게 끌려나가는 꼴이라니.” “쯧쯧, 내 저럴 줄 알았지.”
모두가 이내 한두 마디씩 반응하면서 분위기는 오히려 그들의 소동 피우기 전보다 더 활기를 띠었다.
그러고 나서 개리슨은 슬쩍 태선에게 눈짓을 했다.
‘역시 노련하셔.’
기실 자신도 하려면 할 수야 있지만 조직의 최고 실력자로 개리슨처럼 직접 나서기 애매한 순간이 있었다.
그 부분을 대신 풀어줬으니 이제는 자신이 나설 순간.
“자자, 우리 대표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니 들어보자고.”
판까지 깔리자 태선은 옅은 미소 띤 채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록펠러 씨가 나서서 고발하고 내부 자료까지 고스란히 넘겨준 덕분에 모건과 저스틴의 입장이 많이 난처해진 상황입니다.”
시선은 아까 테이블 중앙에 놔뒀던 신문에 던진다.
“거기에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리처드 하몬 연방 검사님이 사건을 맡아서 몰아붙이고 있죠.”
“···제가 하몬 검사님과 이야기나누면서 듣기로 법무부 장관님도 관심이 많으시답니다.”
거기에 태선이 미리 기수로 세운 터라 리처드 하몬 검사의 수사에 협조한 록펠러가 때마침 지원 사격을 해줬다.
“오, 법무부 장관까지! 지금 법무부 장관이 누구지?”
“제임스 스피드였나. 공화당 급진파 출신이라는데 젊은 시절 변호사 할 때는 링컨 대통령과 사건에 대해 매일 같이 의논한 사이라는군.”
“어이구, 그러면 견적 딱 보이는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물렁하게 판결이 나지는 않겠군요.”
“이거 우리가 나설 것 없이 모건과 저스틴 씨의 운명도 끝장나는 거 아닌가.”
그냥 놔둬도 끝난다···사실상 그렇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지른 일이 커서 그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마당인데 법무부 장관이 엄격한 법률가 출신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수작의 가장 큰 피해자인 이쪽이 직접 나서느냐와 나서지 않느냐에서는 큰 차이가 생길 터였다.
“우리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태선이 한마디 하자 방금 나설 것도 없겠다고 했던 조셉은 농담이었다는 듯 덧붙였다.
“물론일세. 피해자로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우리잖나.”
하기야 생각해보면 조셉 스완이야말로 SGE의 대표이며 어떤 면으로 가장 회사에 애착 깊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본 피해도 제대로 토해내게 해야 하네. 거기다 입은 손실까지 그렇고.”
“예, 안 그래도 그 점에 대해서도 계획을 짜두었고 그래서 록펠러 씨도 부르고 급히 회의를 소집한 겁니다. 이제 그에 대해 논의하죠.”
이 말을 꺼내자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조용해졌으되 아까 전의 침묵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실 논의라고 해도 모두 아시겠지만 할 일은 자명합니다. 직접 나서는 거죠.”
눈치 보는 어색함이 아니라 결전을 앞둔 의식에 임하는 태도였으니.
“그리고 이번에 나선다면 단번에 목줄을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놓을 생각입니다.”
거기에 태선이 숨통을 끊어놓겠다며 이처럼 강한 의지를 드러내보인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잭, 우리가 주문한 내역과 실제로 거래소에 반영된 주식수와 주가를 대조한 해석기관의 계산 자료 준비는 다 됐어요?”
“물론이지. 심혈을 기울여서 검토했어.”
“그 자료가 드디어 빛을 볼 순간이 왔습니다.”
“드디어···. 내가 다 긴장되네.”
생각해보면 컴퓨터로 계산한 자료가 처음으로 법정 증거로 채택되는 전례가 될 터.
‘한 시대의 단순한 스캔들로 끝나지 않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지 모르겠군.’
당사자인 모건이나 저스틴은 달갑지 않겠지만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