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53
153 해저 케이블(3)
당연한 일이지만 대서양전신회사에 오기 전에 태선은 여러 가지를 면밀히 파악했다.
해저 케이블 기술에 대해 보완할 점이나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건 물론.
지금 대서양전신회사의 인원 구성까지.
‘중간에 앉은 사람이 당연히 회장인 사이러스 필드일 거고.’
“반갑습니다, 킴 사장님. 사이러스 필드입니다.”
“태선 킴입니다. 만남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시나 그랬다.
“그리고 이쪽은······.”
수장끼리 먼저 인사가 오간 뒤 자연스레 합석한 사람들의 소개도 이어졌다.
“주임기사인 에드워드 화이트하우스입니다.”
“윌리엄 톰슨입니다.”
“찰스 브라이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테이블 맞은편 네 사람과 차례로 악수하며 인사 나누었고 화답하듯 이쪽에서도 나섰다.
“저번에 왔을 때 뵀었죠.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리죠. KSO 전략실 실장이자 킴 사장님 비서 샬롯 푸어 킴이에요.”
“KSO 전략실의 존 더스틴 아치볼드입니다.”
4대3으로 마주 앉은 형세, 긴장한 기색이 보이는 건 대서양전신회사 쪽.
심지어 차를 내온 비서조차 그러했다.
하기야 케이블 공사를 네 번이나 실패했으니 미팅 제안은 이쪽이 먼저 했더라도 이런 기회 하나하나 소중할 것이다.
“제가 듣기로 부회장으로 새뮤얼 모스 씨가 있다던데요?”
모스 부호를 만든 그 새뮤얼 모스였다.
하기야 그런 거물이니 무려 대서양에 해저 케이블을 최초로 설치하는 사업에 부회장 자리에 앉을 만도 하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니 궁금했는데 대서양전신회사로서는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이번 미팅에 보이지 않는 건 의외였다.
“아, 지금 모스 부회장님은 런던에 있습니다. 이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긴 이해 갑니다. 대서양을 끼었으니 해저 케이블 사업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에 있어서도 중요하겠죠.”
“예,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투자금 비율이 영국 쪽이 압도적이라 사무실은 뉴욕에 두었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의 구심점은 런던입니다.”
‘그렇겠지. 앞서 실패한 네 번도 그렇지만 성공할 다섯 번째도 케이블을 런던부터 깔아서 미국으로 오니까.’
뭣보다 미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이 시대 세계의 중심은 엄연히 영국.
미국이 영국을 추월해서 세계적인 톱으로 서는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지금 투자금이 영국 쪽에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그래서일 터였다.
금융의 중심지, 세계의 모든 자원이 런던으로 모여들기에.
‘반면 여기 모인 사람들 중 영국 국적인 윌리엄 톰슨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미국인이지.’
이들로서는 자신들이 주도한 사업의 이권을 영국에 그냥 넘겨주는 것보다는 최대한 많이 회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금을 많이 내줬다는 것 이상 기여를 해야 하는데, 네 번이나 실패한 마당에 그런 목소리를 내는 건 언감생심.
‘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좋은 상황이야.’
자신의 개입으로 그 처지를 바꿀 수 있기에.
물론 기술 자문으로 중책을 맡은 윌리엄 톰슨이 버젓이 영국인이니 영국에도 이득이 될 수 있음을 어필해야 한다.
물론 당연히 그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해온 태선이었다.
“서로 바쁜 사람들이니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바로 본론을 꺼내겠습니다. 귀사의 대서양 해저 케이블 사업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사이러스 필드와 옆자리 임원들이 눈빛을 교환한다.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웃음이 살짝 어리는 등 안도하는 기색이 비쳤다.
“투자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겠지요?”
그건 지금 사이러스 필드가 대표로 묻듯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에 그런 것이다.
잘못 추측한 건 아니다. 대서양전신회사에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네 번째 실패해서 돈이 쪼달리는 것.
반면 이쪽은 돈이 넘쳐나니 투자금도 쏴줘야지.
그렇게 아픈 곳부터 살살 긁어줘야 나중에 파이를 갈라먹을 때 말빨이 서는 법이니까.
“물론입니다. KSO, SGE, SGO를 비롯해서 아멕스까지 우리 회사 계열사 자본을 놀리느니 미래를 위한 인프라에 투자하면 이득이니까요.”
“하하하, 맞습니다! 훌륭한 결정이십니다. 그러면 대충 어느 정도로?”
“마음도 급하십니다. 일단 단언하자면 돈 관련으로 이제 걱정하지는 마십쇼. 해저 케이블 사업이 성공할 때까지 투자금을 쏟아부을 생각이라서.”
“서, 성공할 때까지 계속 말씀이십니까?”
“큰 돈을 투자하고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잖습니까. 기왕 할 거라면 끝까지 가야죠.”
네 번이나 실패하는 바람에 투자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쥐어 짜내서 푼돈이나마 회수할지 말지 간 보는 상황이었다.
그러하거늘 이런 발언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든든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제가 알기로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100만 파운드에 달할지 모른다고 압니다. 달러로 환산하면 수백만을 훌쩍 넘을 터인데 그런 큰 돈을 투자하면서 저도 마냥 남의 손에만 맡겨두기에는 곤란하거든요.”
이어지는 태선의 발언에 사이러스 필드와 대서양전신회사 간부들이 흠칫했다.
“혹시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말씀이신지?”
“그거라면 곤란합니다. 잘 아실 텐데요. 단순히 투자를 하는 것과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주주가 되는 건 다른 것을.”
다른 중역들도 이 건에 대해서만은 의견이 일치하는지 합심하여 나섰다.
“네 번이나 실패하긴 했지만 저희도 이쪽에서 난다 긴다 하는 기술자만 모였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예, 다음에는 반드시 성공합니다. 원인은 분석했고 해결책, 그것이······. 예, 해결책도 마련했습니다.”
다만 해결책도 마련했다고 말하며 윌리엄 톰슨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 대충 뭐가 문제인 것 같다고 짐작은 했겠지.
‘아니, 해야지.’
네 번을 실패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감도 못 잡으면 그게 전문가냐, 돌팔이지.
아무래도 윌리엄 톰슨은 엔지니어 계통의 인물이라 기술적 양심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망설였겠지만.
어쨌든 자신만만하게 뭐라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해결책을 명확히 못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히 해두죠. 경영에는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투자한 부분에 대해 정당한 몫을 받으면 됩니다.”
“예, 물론 케이블로 수익을 거두면 투자금에 해당하는 정당한 비율만큼 배분해드려야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그 수익이 나는 시기를 앞당겨드릴 수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스윽───!
역시나 척하면 척, 샬롯이 서류를 꺼냈다.
이어서 아치볼드가 일어나 4부의 서류를 사이러스 필드를 비롯한 대서양전신회사 임원들 앞으로 돌렸다.
“주제넘게 나선다고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전신 사업에 문외한은 아닙니다.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미국 동부뿐 아니라 전역을 전화로 잇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어서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의 전화 사업은 저희도 요새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긴 합니다.”
사락──!
빈말은 아니라는 듯 일단 배부한 보고서를 넘겨본다.
“그렇다면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런던에서 뉴욕으로 해저 케이블 길이는 3,000킬로미터. 안정적으로 신호를 전하려면 높은 전압을 걸 수밖에 없죠. 그 과정에서 절연체의 성능에 따라 과하게 부하가 걸리고 결국 파괴되었을 겁니다.”
“어떻게 그걸?”
역시나 윌리엄 톰슨이 순간 흠칫했다.
사이러스 필드나 다른 기술자들은 그나마 속내를 숨기려 애썼지만 헛수고로 돌아갔다.
결국 찰스 브라이트가 한숨 내쉬더니 순순히 토로했다.
“잘 아시는군요.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아서 높은 전압을 걸었는데······. 하아, 끊긴 케이블을 회수해서 보니 절연체 부분이 손상됐더군요.”
“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이어진 태선의 답에 찰스 브라이트는 반응이 없었다.
그 부분을 해결했다고? 것도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서? 그게 그렇게 쉽게 나오는 말인가? 하물며 타이밍 딱 맞게 이 시기에 자신들에게 들이밀 수 있게?
“사업상 기밀이라 자세한 건 말씀을 못 드리지만 석유에서 폴리에틸렌이라 이름 붙인 절연체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원하시면 샘플을 나중에 드릴 테니 직접 검증해보시고.”
“관련 내용은 배부한 자료 13페이지부터 보시죠.”
자료에서 어느 부분인지 못 찾는 몇몇 중역을 위해 샬롯이 어시스트로 치고 들어왔다.
“폴리에틸렌은 지금도 전화 사업을 위한 전선 소재로 쓰고 있는 겁니다. 효과는 검증됐고, 형태의 가공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에 케이블 설계에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물량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잠시만 저희끼리 이야기를 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 정도 시간이야 물로 내줄 수 있지.
자신이 제안한 수에 약점은 없다. 왜냐면 폴리에틸렌은 나중에 실제로 해저 케이블 절연체로 쓰이는 소재니까.
“자네들이 보기에······.”
“실제로 봐야 알겠지만······.”
자리에 앉아 의자만 살짝 돌려서 속닥거리는 터라 소곤대는 말이 조금씩 들렸다.
필시 사이러스 필드가 실무 기술자들인 에드워드 화이트하우스나 윌리엄 톰슨에게 물어보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들은 실물을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자료만 봐서는 가능성 있다는 식의 답을 줬을 것이고.
“샘플을 보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제안할 수 있는 건 이걸로 끝이 아니니까.”
“뭐가 또 있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 사업을 멱살 잡고 캐리하기로 결정했는데 그거 하나로 되겠냐.
“아마 제가 전화를 언급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해저에 놓는 케이블은 전화 전선과는 다르다.”
“절연체 소재와 별개로 사실 그렇지요.”
“그걸 위해 네 번 실패하는 동안 항장력을 지속적으로 높였는데도 효과가 없으셨죠?”
“이번에도 참 귀신같이 알아맞히시는군요.”
태선은 득의만만하게 웃었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연구소에 공을 들여서요. 지금 와서는 다방면에 걸쳐 최고의 전문가들을 섭외했고 결과를 거두어왔는데 다행히 해저 케이블에 관련해서도 그동안 거둔 성과들이 의미가 있더군요.”
팔락──!
먼저 페이지 넘기며 태선은 살짝 눈짓을 보내 맞은편의 사이러스 필드나 임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케이블의 내구성과 항장력 강화는 단순히 이전 케이블이 끊어졌으니 더 강하게······. 이런 접근이 아닌 데이터에 의거해서 정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대표 변수로 내압력, 인장강도, 내굴곡성, 내꼬임성······.”
줄줄이 읊는 태선의 말은 자료에도 있는 내용이었다.
“······.”
그리고 자료에 눈을 처박고 에드워드 화이트하우스, 윌리엄 톰슨, 찰스 브라이트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만큼 열중하고 있었다.
“이건······. 생각 이상으로 정밀한 분석이로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도 내구성과 관련하여 의논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이런 변수를 이런 식으로 계량화해서 계산한다는 접근이라.”
“다만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계산을 다 하려면 공사에 한참이 걸릴 겁니다.”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문제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태선의 입가에는 더 짙은 미소가 걸렸다.
“저희 연구소에 있는 컴퓨터라는 물건에 대해서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컴퓨터라면······. 아, 혹시 모건과 소송에서 인용된 증거를 계산한 그 기계 말입니까?”
역시 아는군.
하긴 그걸 모르면 이 시대의 지식인 자격 없지.
그리고 컴퓨터를 알면 나올 반응은 뻔하지.
“컴퓨터가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도 단기간에 하게 해주는 기계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가능한 겁니까?”
“속도도 속도지만 정확도도 중요한데.”
“물론 가능하고 정확도도 보증합니다. 솔직히 사람이 한 것보다 컴퓨터 계산이 더 정확할 겁니다.”
21세기에도 시쳇말로 흔히 쓰이는 표현이지만.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막 등장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기계를 맹신하는 풍조마저 생긴 이 시점에는 더 잘 통할 것이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음, 하기야 그렇긴 하죠.”
“그리고 법정에서 증거로 쓰였습니다만 오류가 있다면 그게 됐겠습니까?”
거기에 결정타 한 방 더.
“만약 오류가 있었다면 그 모건이 물고 늘어졌겠죠. 그래서 증거로 인용되지 못하고 지금 감옥에 있는 신세를 면하지 않았겠습니까.”
“하기야 듣고 보니 그렇군요. 문제가 있었다면 그 모건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네요.”
“하긴 모건이라면 그랬겠죠. 컴퓨터는 믿을만하겠군요.”
이어지는 콤보 두 방에 사이러스 필드와 중역들은 곧바로 납득했다.
JP모건, 그래도 감옥이 가고 나서 도움이 되는구나.
“첨언해서 컴퓨터로 설계를 위한 항장력 등을 계산하되 케이블에도 차이를 둬야 합니다.”
팔락───!
태선이 페이지를 넘기자 이제는 진도 나가는 선생님 강의를 놓칠세라 사이러스 필드와 임원들이 재빨리 따라 했다.
“얕은 바다용 케이블과 깊은 바다용 케이블을 나누어서 설계해야 합니다. 덧붙여 이건 투자자로서 제 욕심입니다만 전신-전화 겸용 케이블로 설계했으면 하고요.”
“전신-전화 겸용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