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65
165 노블리스 오블리주(4)
영국에게 있어서 조선과 연계하여 좋은 점은 무엇인가?
보다 정확히 말해 근대화로 국력이 강해진 조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때 장점 말이다.
“음, 하긴 킴 경의 말대로 되기만 한다면······. 러시아 제국으로서는 턱 밑에 칼이 겨눠진 형세가 되니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겠습니다.”
지금 더비 백작이 수긍하는 반응처럼, 두말할 것 없이 러시아 제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국이 일본을 통해 실행했고, 더 훗날에는 일본과 한국을 두고 미국이 아시아 전략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예, 더구나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에 경쟁하거나 다른 국가와 야합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태선이 말이 당대 영국의 정치인들에게 허튼 소리로 들리지는 않을 터였다.
전생의 역사에서 사실로서 입증된 걸 바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호, 이거 사실 러시아 제국 문제로 골치가 아픈 터였는데 뜻밖의 힌트를 얻게 됐군요. 다음 국무 회의에서 다른 대신들과 논의해볼······.”
다만 한편으로 이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한계도 명확했다.
“허허, 킴 경의 그 말이 실현되기 이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발전부터 먼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지금 모건의 말투가 살짝 아니꼽지만 말이야 맞는 말.
“조선이 청나라 옆에 붙은 나라라고 했죠? 일본이 그나마 근대화가 되어간다는데 그보다 못한 수준이라면······. 조선은 식민지로나 생각해볼 법하겠군요.”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대고 디즈레일리 재무대대신처럼 발언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다.
동방 정책에서 영국과 손을 잡을 파트너로 일본을 밀어주던 자기의 주장이 조선에 밀리자 감정적으로 불편한 건 이해가 간다지만,
‘식민지라니.’
그 나라 출신이 앞에 있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완전히 개무시하는 거 아닌가.
이럴 때 최고의 복수는 대영제국이 우매한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로 지배해주는 것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라는 생각을 뒤집어주는 것.
‘보기 좋게 조선을 동방 파트너로 만들어버리면 되겠군.’
“그 점은 걱정마시죠. 제가 장담하건대 몇 년 내로 조선은 근대화될 겁니다.”
“말이야 쉽지 그걸 킴 경이 어떻게······.”
“전구, 전기, 보일러, 자동차, 전화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미국과 영국의 생활 수준을 바꾸었으며 나라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뒤를 더 말하지 않았지만 태선은 모건과 디즈레일리를 그저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그 의미는 분명했다. 방금 언급한 그것을 누가 만들었느냐?
“······.”
모건과 디즈레일리는 방금 전까지 몰아붙인 것에 비해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태선이 만들거나 태선의 회사에서 상업화하고 양산에 들어간 것이기에.
하물며 몇 년 만에 말이다. 확고한 업적이 배후에 든든하게 받치고 있으니 솔직히 방금 전의 발언 역시 단순한 허언으로 안 들리기는 했다.
‘그래, 저 자라면······. 정말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적대 관계에 있는 자신들이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을 품었는데.
더비 백작이나 하물며 태선에게 우호적인 라이온스 경이나 폰손비 경은 어련할까.
‘이 화제로는 더 대화해봐야 본전도 못 찾겠어.’
모건의 제안에 따라 일본을 이용한 국제 정세 구상으로 러시아도 견제하고.
국내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면서 더비 백작 뒤를 잇는 차기 총리로 발돋움하는 야심을 품은 디즈레일리였다.
그러하거늘 안 그래도 아시아 놈이 명예 시민권에 작위까지 받아서 마음에 안 드는데 바로 그놈이 또 훼방을 놓는다.
“킴 경이 사업을 잘하는 건 알지만 외교 분야는 사업과는 다르다는 걸 너무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만.”
“맞는 말씀입니다. 사업과 외교는 분명히 다르지요. 다만 사업에 있어서 외교는 중요한 변수입니다.”
“그래서 외교 공부라도 하셨다는 말씀이신지?”
“제가 직접 영국에 온 건 놀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저도 나름 미국에서 큰 조직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데 그 자리를 비워두고 영국에 왔습니다. 것도 꽤나 오래 머물 요량으로 집도 구했고요.”
샬롯이 앞서 몇 개월 먼저 와서 대저택을 매입하고 머무르며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태선의 말에는 설득력 있었다.
“그만한 각오로 사업하러 영국에 왔는데 당연히 철저히 공부했지요.”
“공부요?”
“아시아 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럽 정세로 화제를 옮겨서 논해도 유익한 대화가 될 것 같군요.”
“하하하, 지금 유럽 정세를 논하자고요? 우리가 같이요? 이거 죄송합니다, 더비 백작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려서.”
순간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디즈레일리였다.
옆에서 모건도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 의미를 읽는 건 어렵지도 않았다.
‘잘 나가다가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생각했겠지.’
“그래, 좋습니다. 듣자 하니 기왕이면 킴 경은 전화 사업을 내륙으로 진출하는 건에 관심이 있다는 것 같던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혹여 태선이 발 뺄세라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건지 바로 말을 던진다.
“빅토리아 루이자 공주 전하께서 프로이센으로 시집을 가셨는데 여왕님께서도 따님과 통화하고 싶으실 거고 전화 연결이 되면 외교상 도움도 되겠지요. 다만 거리가 먼데 전화 연결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디즈레일리가 굳이 언급하는 프로이센-독일 왕가로 시집간 빅토리아 여왕의 딸, 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
‘그리고 최근 탄력이 붙은 전화 사업이라.’
더구나 그걸 계기로 독일과 관계가 좋아지면 러시아는 물론이고 프랑스 견제에도 좋다.
‘언뜻 들으면 나한테 무조건 유리한 화제를 꺼낸 것 같지만 너무 쉬운 함정이네.’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맞는 말씀이겠지만 지금은 무리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막 끝난 참이 아닙니까.”
“?!”
이 말이 나올 줄 전혀 몰랐다는 듯 디즈레일와 모건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굳었다.
“허허, 얼마 전까지 미국에 있으시면서 그 소식은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저야 여러 나라에 친구들이 있어서 소식을 접할 수 있다지만, 허허허!”
폰손비 경과 라이온스 경도 마찬가지.
그럴 만도 한 것이 교통과 정보가 정체된 시대.
태선이 자동차를 만들었고 전화도 보급했지만 그건 이제 막 미국에서 영국으로 퍼져나가는 참이다.
유럽 내륙에는 마차가 주요 교통 수단이고 서로 연락을 할 때도 편지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니 정보를 분석하는 안목이나 통찰력은 둘째로 치더라도 최신 정보를 빨리 접하는 것은 또 하나의 능력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프로이센 군부의 특성상 독일 내의 권력 관계의 확실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빈으로 진격해서 오스트리아를 눌러놓을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외교 감각을 중시하는 자라던데 그걸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구도의 제패권은 프로이센이 가져가면서······.”
“마침 이 전쟁에서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양도할 것처럼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다죠. 그건 영국 입장에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막아야죠.”
“전쟁을 벌이느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형편이 아닐 뿐더러 특히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입장을 이용해서······.”
태선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국제 정세.
“그걸 이용해서 영국이 주도해서 유럽 평화와 서로 긴밀한 협력을 위한 일종의 상징으로 전화의 연결을 추진한다면 한층 사업이 쉬우리라 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 인프라는 각국의 소유권으로 넘기고 사업권을 넘겨받는다는 조건을 걸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그 국제 관계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업으로 매끄럽게 연결 짓는다.
“······이거야 정말 놀랍군.”
잠자코 듣던 더비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태선을 보는 그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듯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태선, 아니 킴 경! 그런 외교적인 안목은 대체 어떻게 가진 겁니까?”
심지어 당대 영국에서 외교 분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라이온스 경조차 방금 태선이 청산유수로 한 말을 듣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비 백작과 라이온스 경이 이럴진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이나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태선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다 한들 별수 없었다.
방금 전 태선이 그린 유럽 정세의 큰 그림은 그야말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완벽했기에.
“저도 여왕님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보느라 작금의 정세는 알지만 그걸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추는 건 머리가 아픈데······. 킴 경의 구상은 놀랍습니다. 마치 정교한 시계처럼 하나하나 다 맞아들어가는군요!”
이어지는 폰손비 경의 말에 태선은 조금 머쓱해졌다.
‘왜냐면 흘러간 역사를 아는 상태에서 영국 입장에서 좋을 부분만 고쳐서 말해준 거니까요.’
특히 이 시대는 외교 달인 비스마르크가 활동하는 시대라서 정보도 많다.
마침 영국에서도 독일에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를 시집보내 이래저래 외교적으로 활용할 자원도 많은 상황.
그 외에도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의 대모라 불릴 정도로 혈육들을 유럽 각국에 보냈다.
그러니 맵핵을 킨 것처럼 큰 그림 그리기 좋았던 것이었다.
“크흠! 저기 글래드스톤이 오는군요. 저자와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으니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가보지요.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그 결과 태선은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으로 하여금 궁색한 변명이나 대면서 도망치게 만들었다.
“자네······.”
다만 한 가지 뜻하지 않은 수확이 있었으니 더비 백작이 진지하게 태선을 보며 물었다.
“그 외교적 역량을 묵혀두기에는 너무 아깝군.”
“예? 하지만 저는 엄연히 사업가라서요.”
“알고 있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정치인이나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네. 더구나 명예 시민권도 받았고 여왕님께 엄연히 작위도 받지 않았던가. 노블리스 오블리주, 귀족이라면 응당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자네 정도 되는 자가 모르지는 않겠지?”
더비 백작은 태선의 팔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거야 원, 하하······.”
태선은 겉으로는 난감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뜻밖의 수확에 쾌재를 불렀다.
‘잘만 하면 조선으로 진출할 때 영국 감투 하나 얻어서 갈 수 있을지도.’
***
버킹엄궁 파티 이후 더비 백작의 사교 모임에 태선은 정식 초대를 받게 되었다.
“흠, 태선의 말대로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군부의 폭주를 억눌러줬구먼.”
“나폴레옹 3세는 자기한테 아무것도 안 떨어져서 불만스러운 모양인데 이걸 잘만 이용하면 프로이센에 좋은 견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듯한데 킴 경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시아 쪽은······.”
태선이 합류하자 라이온스 경이나 폰손비 경도 끼었고 때로 간단하게 담소를 나눌 때도 있었지만 또 때로는 유럽 정세에 대해서 큰 사안이 논의됐다.
“역시 태선, 자네를 그냥 사업가로만 두는 건 너무 아까워. 솔직히 사업은 이제 자네 없이도 굴러가잖나.”
‘무서운 양반이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나도 윗사람으로 일하는 입장이라서 잘 안다네. 어느 정도 시스템을 잘 잡아주면 아랫사람들이 움직이지. 자네나 나 같은 사람들이 할 일은 큰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총리, 것도 대영제국 총리를 세 번이나 해먹은 경험이 무시할 게 아니네.’
태선이 공식적인 직함 없이 그저 인맥, 식견으로 영국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져가는 사이 그렇다고 사업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사실 존 브라더튼의 스완 제네럴 일렉트로닉스가 영국에서 입지를 잘 다져뒀고 거기에 샬롯까지 합세했기에 태선이 직접 나설 것은 없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큰 방향을 잡아주고 아랫사람을 부린다는 더비 백작의 말이 자신에게 딱 들어맞았지만.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전기, 전구, 자동차와 달리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일도 있었다.
“잘 지내셨는지요, 배비지 씨.”
“오랜만이구먼. 아들놈이 신세지고 있네.”
그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 특히 사업의 발판이 될 연구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 태선이 가장 먼저 택한 사람은 미국에서 떠날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찰스 배비지였다.
“그래, 해석 기관을 완성했다는 것인가. 프레보스트 그 녀석이라면 해낼 줄 알았어.”
“직접 오지 못했는데 섭섭하지는 않으십니까?”
“섭섭하기는! 자네가 전해준 편지에 따르면 진공관에 이어 트랜지스터라는 걸로 해석 기관의 성능을 몇 단계나 더 높일 수 있다고 하잖나. 그 연구를 위해서라면 미국에 있는 게 맞지!”
“그렇군요.”
컴퓨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선은 슬그머니 찾아온 본론을 꺼냈다.
“프레보스트 씨가 해석 기관을 완성하고 더 개량할 수 있는 것은 배비지 씨가 이론적인 기초를 잘 완성해준 덕분도 있지만 연구소에서 훌륭한 장비와 의견을 교류할 연구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국에도 그런 연구소를 세워보려 합니다.”
“연구소라면 이미 대학이나 협회에서도······.”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를 겁니다. 상업화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라서요.”
“흠, 상업화라. 하긴 그런 유인이 있다면 기술 개발에도 더 자극이 될 테지.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내게 꺼내는 건가?”
왜긴 왜겠어.
“배비지 씨가 연구소장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학벌, 나이, 명성에 아들인 프레보스트를 통한 자신과 인연과 신뢰까지 다 따져봐서 당신이 연구소장으로 딱이라서 그렇지.
“연구소장이라. 일단 제안은 고맙네.”
다만 뛸 듯이 기뻐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이건 좀 미적지근하다.
‘하기야 일흔 살이 넘었으니 나이가 많기는 한데.’
본래 역사에서 찰스 배비지는 1871년에 죽는다. 이번 역사에서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5년이 남은 시점.
그래도 역시 연구소장으로 찰스 배비지만한 인물도 없고, 아버지에게 감투를 씌워줘야 나중에 프레보스트를 만났을 때 자기를 챙겨준다 싶은 감동을 줄 수가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나도 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서 말이야. 앞으로 시대는 젊은이들에게 양보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킴 경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네.”
거절당했다.
그래도 태선은 명예직이 될지언정 배비지에게 다시 권할 생각이지만, 그와 별개로 추천하고 싶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흥미가 일었다.
“배비지 씨가 추천하신다면 만나봐야죠. 물론 연구소장은 배비지 씨가 해주셔야 하지만요.”
“이거야 자네도 참 한 고집 하는구먼.”
“배비지 씨는 연구소장을 하시고 추천하는 분은 부소장으로 두어서 실무적인 연구를 맡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또 에디슨도 있고요.”
사실 그도 연구소장 자리에 욕심이 아예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는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하긴. 킴 경의 말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러면 하던 말을 이어 부소장을 맡기실 분은 누구입니까?”
“아마 나이가 자네와 비슷할 텐데 런던 태생의 윌리엄 크룩스라는 친구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