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352)
352_아미앵그라드 (5)
“씨발! 씨바아알!”
“총, 총!”
“꼼짝 마! 꼼짝 마!!”
“움직이면 쏘, 쏜다!!”
근엄한 육군 원수는 어디로 가고, 남아 있는 건 악을 쓰는 중년 아저씨들뿐.
행복한 꿈을 꾸었다. 한… 0.3초쯤.
교통사고로 똘마니를 다 잃어버린 모델을 생포한 뒤 머리에 고양이 귀 장식을 꽂아주고 목에는 라고 적은 팻말을 걸어준 뒤 내 차 본네트에 매드맥스 피주머니처럼 꽂아 복귀하는 행복한 상상이 와장창 나는 덴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야! 운전병! 총 어따 팔아먹었어!”
“차, 차 뒤에―”
“손 들어!”
빌어먹을, 부관이 살아 있었네. 왜 뇌진탕 아냐?!
내 업보가 너무 크다. 밥 먹듯이 교통사고로 장성들이 죽어나간다는 걸 알고 있던 만큼 승객 안전, 특히 뒷좌석 안전엔 거의 강박적으로 소요제기를 했던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의식 잃고 쓰러진 모델을 보쌈하는 훈훈한 엔딩이었으면 어디가 덧나나.
설상가상으로 누가 미제 차 아니랄까 봐, 모델의 부관으로 보이는 놈은 너무나 익숙한 샌―프랑코의 유서 깊은 아이템 그리스건을 허겁지겁 손에 쥐고 있었다. 거지 같은 놈들아, 나 덕분에 살았으면 최소한 감사하다고 라이센스비는 내야 하지 않겠니?
인원수는 3 대 2로 우리가 유리. 하지만 우리 운전병은 안타깝게도 총 대신 빠루 한 자루만 들고 있다. 내 부관은 권총. 저쪽 부관은 주유기. 재미없는데, 이거.
“부관, 그냥 쏴버려!”
“미치셨습니까? 각하께서 다치는 게 훨씬 손해입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오이겐 킴을 죽여!”
“원수님께서 쓰러지시면 저흰 끝장입니다!”
의외로 인간이란 것들은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동물이었다.
여기서 곧장 내 권총을 뽑아다 갈겨버리면 모델을 따는 게 먼저일까, 아니면 주유기에 내가 벌집이 되는 게 먼저일까. 돌아가시겠네 진짜.
나도 부관 해봤으니 잘 안다. 적의 수괴를 죽이기 위해 자기가 모시는 분이 총 맞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 새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장 확정이다. 내가 우리 부관이었어도 솔직히 못 쐈을 거야. 당연히 뇌정지 오지.
아직 제 앞길 걱정이 가득한 부관들이 움찔움찔하고 있지만, 나나 모델이 손을 총 근방에 꼼지락대기라도 하는 순간 곧장 쏴버릴 게 뻔한 시츄에이션.
이 혼란 속에서 내 머리라고 딱히 멀쩡하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정작 주둥아리는 뇌의 패닉과 별개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
“??”
“명성 드높은 모델 원수를 이렇게 뵙게 되니 기쁘군요. 유진 킴입니다.”
나는 양손을 번쩍 들어 아무 무기가 없다는 걸 보여준 후 모델에게 슬며시 오른손을 내밀었고, 그는 기가 찬다는 듯 그 오른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결국 자신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발터 모델. 대독일 국방군 육군 원수.”
“그 차, 망가졌는데 일단 나오시죠. 해치지 않겠습니다. 귀하의 운전병, 수습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폭발이라도 하면 나도 죽잖아. 문명인답게 놀자고, 문명인답게.
하지만 모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참 놀라운 우연이지만, 우연도 이 정도면 운명 아니겠습니까. 후세의 호사가들은 몇백, 몇천 년이 지나도 두 원수의 숙명적인 만남에 대해 떠들겠지요. 역사에 기록될 이 만남을 이토록 추하게 흘려보낼 순 없지 않겠습니까? 우린 쏘지 않을 테니, 일단 정리부터 합시다. 머리에서 피 흐르시는데 그것부터 먼저.”
“…….”
모델은 놀라울 정도로 말이 없었다. 쏠까 말까 고민하는 건가.
내가 무어라 다시 한번 말하려는 순간, 모델이 입을 열었다.
“…독어나 불어 할 줄 아시오?”
“…예. 조금은.”
아. 그래.
영어로 떠들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 * *
모델의 운전병도 죽지는 않았다. 정신도 차렸고. 다만 사고의 충격이 있는 만큼 양지바른 곳에 잠시 눕혀 놓았다.
두 중년 아저씨들은 무장해제.
저쪽 부관과 우리 운전병은 그리스건 한 자루씩.
독일어 할 줄 아는 내 부관은 살짝 멀찍이 떨어져서 중간중간 막힐 때마다 통역.
우리 운전병은 알까 모르겠다. 자기가 총만 챙겨 나왔어도 적 원수 포획이라는 희대의 대업을 이뤘을지도 모른다는 걸. 근데 빠루 챙기라고 한 게 또 나니까 뭐라 말도 못 하겠다. 아마 평생 속쓰림을 부여잡으며 술집에서 썰 풀지 않을까? ‘제리 5성 장군 붙잡을 뻔한.SSSSSul.’이라니.
아, 저 인간 붙잡아다 끌고 가고 싶다. 아마 모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문제는 대관절 지금 여긴 어디고 누가 점령한 지역이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델이 이곳을 뽈뽈 싸돌아다닌 걸 보면 독일 놈들이 이 인근을 장악했을 확률이 높다. 당장 오면서 보던 게 불타는 퍼싱이고.
그러니 이쯤에서 장사 접고 빨리 내 한 몸 무사히 도망치는 게 베스트인데… 원래 이럴 때일수록 가오를 잡아야 한다. 내가 뻔뻔스럽게 어깨 펴고 있을수록 상대방도 ‘어? 혹시 미군이 유리한가?’ 하고 혼란에 빠지지 않겠나.
나는 아쉬움이고 나발이고 싹 얼굴에서 지워버린 후 뻔뻔스럽게 차에 꿍쳐놓은 위스키까지 꺼내 한 잔씩 돌렸다. 제리 놈들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알콜이 우리의 목을 축인 뒤에야, 참으로 어색한 정상회담이 시작될 수 있었다.
“도대체 이 마술은 어떻게 부린 겁니까?”
“마술이라니.”
“어디 듣는 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이야기니까 그냥 툭 터놓고 말합시다. 우리쯤 되는 레벨의 사람들이면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도박성 전략전술 대신 알아도 못 막는 술책을 부려야 아, 저 새끼 전쟁 조까치 하는구나 하고 극찬을 듣잖습니까.”
“풉.”
애써 한껏 가오를 잡고 있던 모델이 웃었다. 모델이 웃었어! 내가 마침내 제리 수괴의 감정을 지배했다!
“여기로 오게 만든 시점에서 내가 이겼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전리품을 딸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굉장히 한 대 맞은 느낌입니다. 뭐 어떻게 한 겁니까?”
“당신네 미군은 급속도로 확충한 군대라면 피할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지. 초급 간부의 부재 말이오. 군문에 종사하며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 부족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어쩔 수 없다, 라.”
“군사전통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솟아날 순 없잖소. 미군 병사들 개개인의 투지는 나 또한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을 이끌어줄 부사관과 장교가 얼치기라면 그 투지가 성과로 이어지긴 힘들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그의 몸을 쿡쿡 찔렀고, 내 가슴께 주머니를 가리켰다.
“뭐요?”
“담뱃갑 좀 꺼내주시죠.”
“손 없소?”
“이 분위기에서 그, 주머니에 손 가져다 대면 좀 그렇잖습니까.”
당신 부관, 눈빛만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을 거 같다고.
모델은 손을 뻗어 내 가슴팍 럭키 스트라이크를 꺼내 내 손에 떨구어줬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빌어먹을.”
그는 살짝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듯, 피 같은 장초 한 개비를 진흙 바닥에 떨군 끝에야 미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미 프랑스의 들판 곳곳엔 새까만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지만, 우린 구태여 두 줄기의 연기를 거기에 더 보태고 있었다.
“그 결과가 이 눈에 보이는 전경이다, 이겁니까.”
“유리한 점을 극대화하고 불리한 점을 은닉하는 것. 전쟁의 기본이잖소.”
“그렇지요. 그래서 나 또한 이제 우리의 강점을 십분 활용할 계획입니다.”
나는 입에 물린 빨간 담뱃불을 총구처럼 그의 가슴팍에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 거하게 한탕하셨으니, 이제 물자가 쪼들리실 테지요?”
“…….”
“이렇게 단위 제대 싸움으로 가면 귀하의 말씀대로 별 뾰족한 도리가 없긴 합니다. 하지만 2백만 미군은 이 싸움으로 약간 생채기가 났을 뿐이고, 프랑스군은 빠른 속도로 재건 중인 데다가, 귀하께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파리로 달려오셔야지요.
하나 물어봅시다. 파리로 올 물자, 남아 있습니까?”
“물론이오. 없긴 왜 없소.”
구라 치는 솜씨가 어설프다. FDR이나 스탈린 같은 인간들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모델의 어설픈 저 긍정이 훤히 티가 난다.
“그렇군요. 물자가 충분하다니 다행입니다. 실은 여기서 내빼면 그게 더 아쉽거든요. 절대 돌아가지 못할 만큼 깊숙이 들어와주길 오매불망 바라고 있습니다.”
“즐거운 대화였소, 킴 총사령관. 이제 후세 사람들도 만족할 테니, 이쯤에서―”
“조금만 더 이야기합시다. 뭐가 그리 급합니까?”
나는 이제 실실 쪼개며 세상에서 가장 건방진 자세를 취했다. 드럼의 표정과 맥아더의 포즈를 합친 이 완벽한 모델 포즈야말로 이 유진 킴, 평생 갈고닦은 빡침 포인트.
“요즘 들어 독일 본토에 대한 전략폭격이 뜸해졌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그렇소. 아마 그 폭격기를 호위할 전투기가 전부 이 전역에 묶여 있기 때문이겠지.”
“반은 맞는 말입니다. 실은, 우리 멍청한 물개 놈들이 서류상 착오가 있었는지 전투식량을 글쎄 1억인 분을 주문해 놓고 쩔쩔매고 있지 뭡니까?”
1억인 분이라는 말에 모델은 어이가 없는지 담배만 연신 매만졌다.
“벨기에 포켓에 그 남는 물자를 죄다 투하할 계획입니다. 독일군이 줍든, 지나가던 쥐나 새가 줍든 아무튼 그냥 쫙쫙 뿌릴 겁니다. 10퍼센트라도 벨기에인들의 손에 떨어지면 대충 포위망 안의 식량난은 해소되리라 기대하고 있거든요.”
“군사 기밀 아니오?”
“곧 당신네들도 알게 될 텐데 뭘 숨깁니까. 거기다 노르망디에 세웠던 조립식 항구 역시 몇 개 더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그 포위망은 망치가 되어 파리로 달려온 여러분의 퇴로를 끊을 건데.”
총사령관은 이래서 좋아. 기밀을 술술 풀어도 내게 뭐라 할 사람이 없거든.
“이거 참, 친절한 안내 고맙소. 빨리 포위망 내 영국군을 섬멸해버려야겠군.”
“나야 손 안 대고 경쟁자인 영국인들을 죽일 수 있으니 그건 그거대로 좋습니다. 사실 내가 기대하던 바가 바로 그거거든요.”
슬슬 모델이 날 미친놈 바라보듯 한다. 왜 그러십니까 대체.
“이미 견적 다 내셨으면서 왜 그러십니까, 크헤헤헤! 영국군이 섬멸된다면 나는 빗장 닫아걸고 한 2년에서 3년쯤 끝없이 전략폭격만 할 겁니다.
붉은 군대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걸 느긋하게 구경하며 독일의 모든 건물이란 건물은 죄다 폭격만 해버리면 전쟁 승리는 확정인데, 내가 왜 귀중한 우리 아들들을 전쟁터로 내밀겠습니까.”
“이런 말을 굳이 내게 지껄이는 의도를 말해주시겠소, 킴 원수?”
“항복하시죠.”
나는 그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슬라브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백, 수천만을 학살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 처넣고. 언제까지 군인은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그 얄팍한 이유 하나만으로 진실에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군인의 가장 막중한 임무를 그렇게 매도하다니, 당신도 군인 아니오.”
“옳고 그름 같은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건 집어치웁시다. 어차피 서로 온몸에 피 가득 묻힌 놈들이니. 그래서,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전선으로 밀어넣어서 더 나은 미래를 쟁취할 가능성이 보입니까?”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구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 당신을 붙잡거나 아니면 쏴버리기만 해도, 당신이 말한 ‘더 나은 미래’가 눈앞으로 다가오지 않겠소.”
“하하하. 큰 착각을 하시는군요.”
모델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린다. 진짜 쏘겠네 저러다가.
“내가 죽으면 연합군이 흔들린다? 그럴 리가. 예수가 어디 살아서 온 유럽에 기독교를 퍼뜨렸습니까. 살아 있는 김유진보다 더 무서운 게 죽어서 신이 된 김유진일 텐데.”
“연합군은 신앙을 얻는 대신 머리를 잃겠지.”
“이제 우리의 대전략이 바뀔 일은 없소. 북유럽은 이반할 테고, 발칸의 당신들 따까리들도 매일같이 나와 새 친구를 먹고 싶어서 초인종을 눌러대고 있지. 나 하나를 죽인다고 해서 내가 깔아놓은 레일이 사라지진 않거든.”
나는 킬킬대며 그의 어깨에 손을 턱하고 올렸다.
“반면 원수 나리께서 여기서 죽으면 어떨까요? 그토록 세밀하게 5성 장군께서 지휘하던 병력들이 갑자기 머리를 잃으면?”
“…손 떼시오.”
“아무리 봐도 우리 둘이 서로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내가 조금 더 이득인 것 같군요.”
나는 껄껄 웃으며 내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얘들아, 뭐 하냐. 이제 가자!”
“예, 옙!”
“재밌게 잘 놀다 갑니다, 원수. 명심하시오. 지금 독일엔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운전병이 부관에게 총을 넘겨준 후 다시 시동을 걸었고, 부관이 달달 떨면서도 그걸 받아 겨눈 채 내 옆에 탑승했다.
“다음에 봅시다!”
모델이 뭐라 말을 한 것 같긴 한데, 엔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진 않았다.
“혹시 모델이 뭐라고 하던가?”
“좆 까라고 하던데요.”
“매정한 양반이군. 빨리 가자. 저 새끼들 꼴받아서 총 쏘기 전에.”
술에 술 탄 듯 흐물흐물 자연스럽게 떠나니 어어 하다 진짜 보내주는 것 보소. 거 참 고맙구만.
“이, 이래도 되는 거 맞습니까?”
“뭐가?”
“기밀을 전부 불었잖습니까!”
“그래서? 짝불알 콧수염한테 쫄래쫄래 가서 ‘제가 유진 킴과 일대일 면담을 해서 놈에게 군사 기밀을 전부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또라이가 아하! 그렇구나! 할 것 같나?”
내가 친절히 모든 진실을 알려줬지만, 모델쯤 되는 사람이 그걸 넙죽 다 믿을 린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겠지. 정말 난 진실 그대로를 말해줬다고.
그다음은?
당연히 파리 진공 대신 빠른 퇴각을 모색할 테고, 그 시점에서 나와 모델의 만남을 베를린에 솔솔 뿌려주는 순간 그는 끝장이다.
“자결하거나, 처형당하거나, 항복하거나. 어지간하면 항복해 주면 좋겠는데.”
저 멀리 전차 굴러다니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아군의 엔진음은 아니었지만.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