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359)
360_백일 천하 (5)
1941년 9월.
나치당의 수장이자 독일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영도력은 의심받고 있었다.
“서부 전선이 위기라던데.”
“그토록 떠들던 아미앵이 사실은 함정이었다며?”
“쉿! 누가 듣고 게슈타포에 이를라. 입조심 좀 해. 요즘 난리도 아냐.”
미영 연합군의 폭격기 부대는 무자비하리만치 도시에 폭격을 퍼부었다.
[무고한 독일인은 없다.] [우리는 ‘부수적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피해의 발생 자체를 막을 순 없다.]괴벨스는 이제 이라는 프레임을 짜기 위해 연합군의 폭격으로 희생당한 민간인 피해자들을 열심히 줌 업 했고, 연합군은 그 꼬락서니를 보자마자 새로운 방안을 준비했다.
[경고! 이 도시는 연합군의 폭격 목표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연합군의 조사 결과 전쟁 병기를 만드는 공업지대가 밀집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나치 지도부는 여러분의 피해를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이 도시를 탈출하시어 소중한 인명을 보존하시기 바랍니다.]폭격기들은 폭탄 대신 삐라를 흩뿌렸고, 도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도망쳐!”
“연합군이 온다! 다 불태워버릴 작정이야!”
“도망치지 마라! 패배를 선동하는 놈들의 책략에 말려들지 마라!”
“아니, 우리도 살고는 봐야지!!”
친위대와 나치당 돌격대가 나서 시민들을 통제하려고 애를 썼으나, 수만 명이 일제히 짐을 꾸려 피난을 가려는데 이를 다 틀어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연합군은 루프트바페의 방공 엄호를 격퇴한 후 곧장 도시 하나를 불살라버렸다.
[우리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목표로 삼은 곳은 반드시 불태운다.] [괴링의 장난감은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살고 싶으면 알아서 피하라.]삐라 작전은 재미를 톡톡히 보았고, 연합군은 이제 폭탄이 떨어지기 전부터 도시 하나를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독일의 산업 능력은 그 시점부터 저점을 갱신하기 시작했다.
“로켓을 발사해.”
“총통 각하?”
“당장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 감히 우릴 협박하다니,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당장 고쳐주라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 즉흥적인 결단을 내린 히틀러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
네덜란드 곳곳에 지어진 V―2 로켓 발사대에서 화염이 치솟았고, 런던은 물론 스파이들을 통해 확보한 연합군 비행장과 기지 곳곳으로 이 ‘총통의 분노’가 내리꽂혔다.
“아아. 당소, 당소 보고함. 로켓이 다발로 쏟아지고 있다.”
― 확인.
“들판에 불이 치솟고 있다. 즉시 소방 인력 증원 요망.”
유감스럽게도, 1941년의 독일은 첩보용 인공위성 같은 맵핵을 가진 게 아니었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목표물인 런던은 로켓 공격에 불타올랐지만, 독일이 첩보 활동을 통해 확보한 ‘우선순위 공격 목표’들은 사실 대부분이 텅텅 빈 들판에 불과했다.
“병신들.”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내가 그 짝불알 콧수염이었다면 애초에 저딴 장난감에 돈을 들이진 않았겠지만, 기껏 만든 로켓을 왜 저따위로 소모하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첩보력이 강력한 나라의 수장, 강철의 대원수께선 정말 맵핵을 켜놓은 듯 유럽 반대편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전 세계 방방곡곡, 빨갱이가 없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빨갱이들 중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소소한 협력을 하지 않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놈들은 정말, 자기네를 위해 목숨 걸고 첩자질을 할 놈들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헛된 희망을 갖고 있으니 파쇼질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친애하는 히틀러 동무에게 진실이라도 알려주고 싶구만.”
영국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다 자화자찬하고 있을 히틀러를 상상하노라면 자다가도 웃음이 실실 나오고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할 것만 같다.
“그러니, 이번 공세로 반드시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히틀러의 상판대기를 봐야겠소.”
“붉은 군대는 서기장 동지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소. 이제 우리의 땅을 수복합시다.”
1941년 9월.
소련군은 작전명 를 발령하고 일거에 전 병력을 동원해 동부전선을 타격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독일군에게 빼앗긴 땅을 한 뼘 되찾을 때마다 인민이 샘솟는다.
“러시아 만세!”
“스탈린 동지 만세!”
“흑흑,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 놈들을 다 죽여주세요!”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를 가리켜 ‘논밭에서 바보 이반을 캐내는 나라’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였다.
이미 어마어마한 맨파워를 소모한 소련은 잃었던 땅을 되찾으며 현지의 국민들을 해방했고, 그들 중 입대가 가능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을 모조리 즉각즉각 훈련소로 처넣었다.
전선을 뒤로 물리길 원했던 독일군과 괴링의 판단은 확실히 틀리지 않았지만, 그 ‘대후퇴’의 결과 소련군은 가장 부족했던 인력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사령관님! 퇴각해야 합니다!”
“아, 안 돼.”
“사령관님?”
“총통께선… 퇴각을, 불허하셨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장 만슈타인이 이끄는 독일군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내가 그걸 모르겠나? 물러나면 나도 총살이지만 너희들도 다 같이 총살이야!!”
시뻘건 파도처럼 몰아치는 소련군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등 뒤에 있을 총통은 두렵다.
제아무리 만슈타인이라 한들, 전술적 선택지를 죄다 압류당한 상황에선 그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째서 놈들이 물러나지 않지?”
“양키들이 알려준 대로다. 틀림없어. 놈들은 정복한 땅에 집착하는 허수아비들일 뿐이야!”
몇 년간 독일군의 쇠망치 세례에 가혹하게 담금질당한 붉은 군대.
앞으로 독일군, 뒤로 스탈린이라는 양면 전선에서 살아남은 붉은 군대의 장성들.
팔다리 다 잘린 만슈타인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주코프를 비롯한 소련군 최고의 지휘관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 * *
아미앵 포위.
아무튼 총사령관이 까라고 하니 까게 된 미 육군 제12집단군은 즉각 상부의 명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12집단군을 구성하는 야전군은 넷으로, 각각 제1군, 제7군, 제9군, 제15군.
제15군이 한창 편성 진행 중인 서류상의 허깨비에 불과하며 패튼의 제7군이 너덜너덜해져 후방으로 물러났다는 걸 고려하면, 결국 2개 야전군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하지만 브래들리는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독일군 또한 마켓 가든에서부터 아미앵 시가전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하게 소모되지 않았던가.
영국군의 측면을 지켜주기 위해 격전을 치렀던 제1군이 동쪽으로 진격하고, 아미앵 남쪽에 있던 제9군이 위로 치고 올라간다.
지휘관의 결심을 이행하기 위해선.
결국 말단 병졸들이 굴러야 했다.
“가자!”
“와아아아아!!”
미 육군 제1보병사단 병사들은 빈말로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입고 있는 군복은 피와 그을음, 흙먼지로 뒤덮여 엉망진창이었고 얼굴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병사는 없다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한 줄기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우리는 천하무적이라 일컬어지던 독일군을 저지하고 우리의 전우 토미들의 등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오직! 빅 레드 원(Big Red One), 우리 1사단만이 해낼 수 있던 일이다!”
“와아아아아!”
“이제 저 좆같은 제리들을 끝장낼 시간이 왔다! 놈들은 킴 장군이 흔들어대는 낚싯바늘에 걸린 월척이다. 우리가 던져준 아미앵이란 털실에 미쳐 날뛰는 고양이 새끼지! 이제 그 고양이의 가죽을 벗기기만 한다!”
명확한 목표.
간단한 비전.
“12군단을 기억하라! 93사단을 기억하라! 그들은 가장 어려운 순간,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고의 부대인 우리 1사단이 그들의 용맹함에 밀릴 순 없다!”
“보통 격전이 아니었다던데.”
“그 깜둥이 새끼들이 뭐―”
“주둥아리 좀 조심해, 새꺄.”
“우리가 맞설 상대는 저 냄새 지독한 나치 쓰레기들 중에서도 최고의 쓰레기, SS 제1사단이다! 한 놈도 살려 둘 필요 없다! 전우를 학살해댄 그놈들에게 줄 건 오직 총알뿐이다!”
미군 참모부의 예상대로 독일군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여전히 차량 대신 우마(牛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보급 능력.
격전에 격전을 거치며 사그라든 인간의 육신.
압도적인 항공력 우세 속에서 독일군은 쉴 틈도 없이 폭격에 시달렸고, 그 와중에 분노로 불타는 영국군과 미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까지 감행했다. 아직도 여력이 넘치면 사람이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미 제1군이 방어에 이은 역습을 감행하자, 모델이 아니라 모델 할애비래도 이 역습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좆도 아닌 새끼들.”
“이 새끼들은 무슨 타타르인이야? 왜 이 새끼들이 지나간 곳엔 시체밖에 없냐고?!”
“전부 찍어 놔. 이 말종 새끼들.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해.”
1사단의 진격은 신속했다.
그리고 친위대가 저지르고 채 은폐하지 못한 학살과 파괴의 흔적을 보며 치를 떨었다.
그렇게 전진에 전진을 거듭한 미군은 9월 어느 날, 목표로 잡은 지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기 맞나?”
“예. 지도를 제대로 읽었다면 저기가 빌레르―보카주(Villers―Bocage)입니다.”
“방어 태세가 제법인데. 우리 기갑 부대는?”
“퍼싱 중전차의 소모가 큽니다. 잭슨도 그리 많지는 않고, 대다수는 셔먼인데―”
“별수 없나.”
미군 고위 장성들은 퍼싱 중전차의 탁월한 성능에 만족을 표하고 있었지만,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퍼싱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느리고, 밥 많이 처먹고, 심심하면 뻗어버린다.
이 귀부인의 압도적인 탱킹 능력은 분명 반할 만했지만, 이토록 까탈스러워서 어쩌잔 말인가.
이미 병사들은 ‘늙으신 우리 원수님, 말년에 유럽에서 개고생한다네.’라며 노래를 흥얼거렸고, 정비반은 날마다 악을 쓰며 파워팩을 더 보내 달라고 꽥꽥대는 게 일상처럼 자리 잡았다.
“그래도, 놈들 전차 전력이 그리 많진 않겠지?”
“그래 보입니다.”
“좋아. 1대대부터 진격 개시. 저 마을을 장악한다.”
연대장의 결심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씨발! 씨바아아알!!”
로저스 병장은 사방에서 빗발치는 총성 앞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병장님!”
“엎드려, 이 병신들아!”
타탕! 탕!
“설리번 상병! 총류탄 남았나?”
“예!”
“11시! 2층 창문! 보이나!!”
“예에!!”
“그럼 갈겨, 씨발!”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조준. 발사.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류탄이 샴페인 코르크 마개처럼 퐁 하고 날아가고, 정확히 스트라이크―
쾅!
“잘했다!”
“쑤셔 박는 솜씨가 끝내주는구나!”
“크핫핫!”
“쪼개지 마! 재수 없어진다!”
독일군이라면 이제 넌더리가 난다.
저 또라이들은 무슨 기관총에 박는 취미라도 있는지 한 뭉텅이라도 모여 있으면 그놈의 ‘히틀러의 전기톱’을 끼고 살았고, 뭐만 했다 하면 저 전기톱이 불을 뿜어대니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았다.
박격포반을 하염없이 기다렸다간 이 동네 길바닥 어드메에서 진작 시체가 될 판이니, 악으로 깡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보십쇼! 셔먼 옵니다!”
“씨발놈들. 진작 좀 올 것이지.”
“보나 마나 차 안에서 한숨 퍼질러 자고 오겠지? 우리는 이렇게 조뺑이 치고 있는데―”
“쟤들도 뭐 사정이 있겠지. 아무튼 기도 팍팍 올려. 믿을 건 쟤들뿐이니까.”
이런 지랄 같은 곳에선 전차야말로 예수님 동기 동창인 법. 이미 노르망디에서 뼈와 살이 된 교훈이었다.
“샅샅이 뒤져. 대전차포 있으면 난리 난다. 쟤들 좆되면 우리도 다 같이 좆되는 거야.”
“없습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아아주 좋아.”
그리고 저 예수님 동기 동창은 그 명성 그대로, 예수님 성전에서 채찍질하듯 제리들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신나게 기관총이 불을 뿜고, 저 우람한 75mm 전차포가 전능한 번개를 쏘아 올리니 제리들로 가득 차 있던 건물 한 채가 와르르 무너진다.
그 늠름한 궤도가 구르는 길에 적이라곤 없으니, 어설프게 쌓아 놓은 바리케이드 따위는 단숨에 뭉개지고 쥐새끼처럼 찍찍대며 폭탄을 던지러 달려오던 제리들은 인근에 있는 병사들 손에 걸레짝처럼 수십 발을 처맞고 뒈져버리나니. 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로저스가 선창하고 부하들이 화답하노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시면 누굴 예뻐하고 누구에게 천벌을 내릴지 명확하지 않은가?
로저스는 그 모습이 참으로 흡족했다.
“이 맛대가리 없는 초코바만 좀 어떻게 해주면 좋을 텐데.”
“그 안에 정력 감퇴제 들어있다던데요.”
“넌 먹은 짬밥이 몇 낀데 아직 그딴 걸 믿냐? 그리고 이거 보급품 아냐.”
믿음과 신뢰의 샌―프랑코 아닌가. 원수님 이름 팔아서 장사하는 놈들이 설마 초코바에까지 그런 장사를 했으려고.
“그거 유진―바 아닙니까.”
“그런데?”
“원수님을 뜯어 먹으면 재수가 없다던데.”
“지랄 좀 작작해. 그랬으면 제품명을 아돌프로 바꿨겠다.”
“저도 그거 들었습니다. 벨기에로 쳐들어간 토미 새끼들이 우리 몫 유진―바까지 다 쌔벼가서 이번에 좆된 거라고 하던데요.”
“혹시 나 없는 사이에 단체로 아편 빨았냐?”
로저스는 총알이 빗발치는 이 와중에 저딴 소릴 지껄이는 따까리들을 보며 갑자기 회한이 치밀었다.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우편으로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이 시국에 대가리가 텅텅 비었으니 저딴 소릴 하지.
“저거, 저거 뭡니까?”
“뭐?”
“전차에서 9시! 제리! 저 새끼 이상해!”
다 무너진 폐허에서 꼬물꼬물대는 독일군 한 놈.
제법 거리가 있어서 전차에 폭탄을 던지기엔 어림도 없는데, 웬 막대기 같은 걸 어깨에 걸치고―
“저거 바주카 아냐?”
“제리들이 무슨 바주카가―”
피유우우우―― 펑!!
“맞았다!”
“아악! 아아아악!!”
치솟는 화염.
그리고 폭발.
셔먼 전차에 타 있던 병사 하나가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손발을 허우적거리는 모습.
로저스는 씹고 있던 초코바를 퉤 하고 뱉은 후 손에 쥐고 있던 걸 수류탄처럼 바깥에 내던졌다.
“하느님 씨발.”
미신이 아니다.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