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4
청풍표국 최강식객 014화
14화. 아홉 개의 별 (3)
객잔의 별채에 딸린 뒤뜰은 제법 넓어서 어지간한 작은 무관의 연무장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몇몇 참관인이 들어서고 임요성과 팽원호가 멀찍이 자리를 벌리고 섰는데도, 남은 공간이 넉넉하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미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이름을 달게 된 팽원호에게 요즘은 시시함의 연속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신성대연에서 친선을 가장한 비무대회가 있었지만, 자신에게 크게 감흥을 주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팽원호가 그들을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말은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대공자나 무당의 의찬도장 같은 경우는 분명 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붙어봐야 거기서 거기인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진천구성이라 불려도 비슷한 연배의 이들과는 딱히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흑의 무복을 입고 강호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패검보다 한 뼘 정도 짧은 중도를 들고 담담하게 서 있는 이 남자는 달랐다.
자신과 가문의 이름을 들었음에도 딱히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얼굴에서 일차로 호감이 갔고, 바로 앞에 서 있음에도 그의 실력의 경지가 눈에 잡히지 않음에 이차로 경악했다.
그랬기에 가슴에 희열이 차올랐다.
마치 거대한 산의 정상을 올려다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처럼.
“임 소협. 저의 억지 비무를 받아주어서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부디 같은 무(武)의 길을 걷는 무반(武伴)이라 생각하시고 부족한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지요.”
팽원호가 정중히 포권을 취하자 임요성은 내심 놀라움을 느꼈다.
아직 확실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감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적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신에게 저렇게 공경의 자세를 취하는 게 쉬운 위치에 있는 자는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의 정중한 부탁에 놀란 것은 비단 임요성뿐만이 아니었다.
임요성의 기도를 관찰하며 좀 평범하지 않나? 생각하던 풍림개도, 황실의 구좌번호를 가지고 있는 귀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살짝 들떴던 공천식도, 정중한 팽원호의 말투에 살짝 놀랐다.
한마디로 눈앞의 청년을 제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강호의 최고 후기지수가 처음 보는 동년배를 저렇게 깍듯이 대하다니.
풍림개와 공천식이 본 임요성의 기도는 별로 강하게 와닿지 않았기에 훨씬 팽원호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혜련을 비롯한 표국의 식구들 역시 자신들과 같이 표행을 할 임요성을 이렇게 정중히 대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런 비무 신청에 적당히 어울려 주다 끝낼 생각이었던 임요성 역시 정중해졌다.
“갑자기 비무를 하게 돼서 좀 얼떨떨하긴 한데, 앞에 계신 분이 강호의 유명 인사라고 하니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임요성이 포권을 취했다.
“그럼 한 수 청하겠습니다.”
챙!
임요성의 화답에 팽원호가 거도를 빼 들며 말했다.
거도를 빼 들은 팽원호는 좀 전까지 예를 다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마치 거대한 호랑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을 가하는 듯한 압박감에 주위에 구경을 하는 이들 중 무공이 약한 이들은 살짝 다리를 떨 정도였다.
팡!
비호같은 몸놀림으로 공기를 가른 팽원호의 거도가 이미 임요성의 정수리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급히 몸을 돌려 팽원호의 거도를 피한 임요성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나이치고는 제법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봤던 생각을 바로 수정하게 만드는 한 수였다.
그런데 처음의 강맹한 공격과는 달리 후속 공격은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팽원호는 자신의 거도를 멍하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내 도를 이렇게 쉽게 피하다니….”
지금까지 자신의 거도를 이렇게 완벽하게 피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 사람의 범주에는 같은 후기지수만 놓고 봐야겠지만.
신성끼리의 비무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거도를 막아내거나 쳐낸 이는 있어도 이렇게 무기도 빼 들지 않고 여유 있게 피해낸 경우는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팽원호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 또 갑니다, 형장!”
살짝 한숨을 내쉰 임요성이 이번엔 제대로 받아주었다.
챙! 채쟁! 채채쟁!
연이은 팽원호의 거도를 가늘고 짧은 중도로 막아내는 임요성을 보며, 비무를 구경하는 중인들은 임요성이 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임요성이 ‘그’ 팽원호를 봐주고 있다는 것을!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강호 초출이 강호의 최고 후기지수 앞에서 전혀 밀리지 않다니! 아니 압도하고 있다니!
지금 자신들이 미래의 강호를 책임질 거두들의 대결을 미리 보는 것이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으아압!”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팽원호가 기합을 지르기 시작했다.
파방!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거세게 임요성을 압박해 들어갔으나 팽원호의 거도는 임요성의 옷깃도 스치지 못했다.
팽원호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임요성은 황제의 그림자로서 최강의 방패였다. 그리고 그 무자비한 파상공세 속에서도 황제를 지킨 그였다.
그가 지금까지 만나 어떤 이들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는 사실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임요성 역시 처음엔 강호백서의 설명대로 적당히 어울려 줄 생각이었으나 무에 있어서 진심인 그를 보며 역시 진심을 다했다.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무인다운 무인을 만난 임요성의 마음은 즐거웠다. 그리고 놀라웠다.
오직 살기만 그득한 살수가 난무하던 곳에서만 살던 그였기에, 이런 상황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특히 살법과 실용만이 강조되는 수법과는 다른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무리가 담긴 공격에 나름 신선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직 팽원호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퍼억!
“크윽!”
임요성이 왼손에 들고 있던 칼집으로 팽원호의 어깨를 후려쳤다.
“젠장!”
다시 달려드는 팽원호의 몸을 임요성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주 찰나의 빈틈만 보이면 여지없이 임요성의 칼집이 날아들었다.
이것은 일종의 지도 대련으로 고수가 하수의 빈틈을 찌르며 가르침을 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팽원호 역시 그런 느낌에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고, 그의 퇴법 일격에 이은 거도의 횡격을 몸을 공중으로 띄워 피한 임요성의 칼집이 다시 팽원호의 어깨를 가격했다.
“크윽!”
팽원호가 흐트러진 틈을 타 발을 걸며 어깨로 밀치자 어이없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에잇! 더 이상 나도 봐주지 않겠소!”
누가 누굴 봐줬는지는 분명했으나 팽원호의 얼굴은 진심이었다.
거도에 푸르스름한 도기가 서리기 시작하며 구경꾼들이 살짝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공격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지.”
담담한 표정으로 팽원호의 칼질을 피하며 임요성은 착실히 팽원호의 옷에 도흔(?)을 새기기 시작했다.
촥! 촥! 촥촥촥!
“크악!”
열이 받을 대로 받은 팽원호의 거도가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성난 파도와 같은 공격을 담담히 피하는 임요성의 모습은, 마치 성난 호랑이가 잡을 수 없는 검은 연기를 상대로 앞발을 휘두르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팽가의 절기인 오호단문도가 펼쳐졌다.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장강을 건넌다는 오호도강(五虎跳江)의 초식이 팽원호의 거도에서 발출되었다.
실제 호랑이가 마치 거대한 앞발을 치켜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임요성이 다섯 마리의 호랑이 품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헛!”
모두가 경악성을 내뿜는 가운데, 임요성이 쇄도와 동시에 빼낸 흑조가 호랑이의 앞발을 모두 찢어발기더니 호신기막 마저도 무력화시켰다.
그와 동시에 흑아의 손잡이 끝으로 팽원호의 급소를 정확히 가격했다.
퍼버벅!
“커억!”
가슴 중앙인 단중혈과 그 아래 흉천혈과 명치, 세 곳을 단 한 수에 정확히 가격했고, 답답한 신음과 함께 팽원호가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엎어져 켁켁 대기 시작했다. 비무의 끝이었다.
“젠장…! 호신기막을 둘렀는데 어떻게 같은 도기도 실리지 않은 맨 칼로…?”
만약 팽원호가 호신기막을 두르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번 공격으로 팽원호는 저세상에서 눈을 떠야 했을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흔들리는 눈길로 쳐다보던 팽원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을 털며 일어섰다.
“거참. 내가 이래 봬도 꽤 이름 있는 후기지순데 또래에게 이렇게 허망하게 당해보긴 처음이오. 사문이 어디시오?”
“…….”
대답이 없는 그를 보며 뭔가 사정이 있다 짐작한 팽원호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시오?”
“소주.”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자신의 비무를 보고 있던 두혜련을 슬쩍 일견한 임요성의 대답에 팽원호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형장과 나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닐 거라 생각했소. 조만간 소주에서 봅시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그의 뒤를 호위무사인 강천이 따르다 흘깃 임요성을 쳐다봤다.
‘엄청나군.’
임요성이 쓰는 무공. 그건 일반적인 강호의 무공과 달랐다.
강호의 무공은 시연 그 자체로 일반인들에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일깨워 문하를 모집하는 용도도 있었다.
그래서 대체로 화려한 기술, 보통 화법(花法)이라고 하는 기술이 많았다.
그런데 임요성의 동작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가장 최적의 동선으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살수나 군에서 쓰는 무공과 느낌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들이 쓰는 무공보다 뭔가 격이 있고, 힘이 있었다.
강천이 임 공자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가주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다짐할 때, 풍림개가 임요성 앞으로 슬쩍 다가왔다.
“크으음. 정녕 대단하군. 아직 서른도 되어 보이지 않는데…. 아, 정식으로 인사하겠네. 난 개방의 풍림개라고 하네. 이곳 하북성을 맡고 있지. 뭐, 내 나이가 지천명을 바라보니 내 편하게 함세.”
“그러시던지요.”
임요성이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풍림개가 슬쩍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자네가 읽고 있는 그 강호백서 우리 방주께서 쓴 책일세.]그 전음에 임요성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렇다면 개방의 방주가 쓴 책이란 말인가.
[어떤가? 강호 초행인 자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꽤 될 것 같은데.] [원하는 게 뭡니까?]입도 달싹거리지 않고 전음을 날리다니. 실로 높은 수준의 전음술이었다.
“하하. 이것도 인연인데, 어떤가? 잠시 따로 시간을 좀 낼 수 있을까?”
넉살 좋게 풍림개가 말하자 임요성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성을 관할하는 개방의 분타주라면 알아두어 딱히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역시 화통하군. 자자, 올라가세.”
풍림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임요성을 바라보며 공천식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지단에서 본단으로 입성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두혜련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 말을 살 때 끼어들었던 일. 그리고 우연히 객잔에서 다시 만나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일.
그냥 우연일까, 예정된 운명일까.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묘하게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