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60
청풍표국 최강식객 060화
60화. 무투장의 투견들 (3)
하지만 송만극은 오히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부인했다.
“이 미친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더냐! 곽현은 사무실에서 내가 챙겨준 퇴직금을 갖고 희희낙락하면 갔는데. 그러고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너무 뻔뻔하게 나오자 자기가 잘못 알았나 싶어 엄충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됐다. 여러 말 할 필요가 없다.”
성큼 다가선 임요성의 커다란 손이 송만극의 얼굴을 덮으려 할 때였다.
“마, 막아!”
하지만 송만극의 외침은 공허할 뿐이었다.
슈아악!
퍽! 퍽!
잠깐 사이 여산홍의 비수가 도열해 있던 투견의 관리자들을 모두 뚫어 버린 것이다.
덜덜덜.
그 압도적인 광경에 송만극이 두려움에 휩싸였고, 천천히 다가오는 임요성의 손길을 피하지도 못했다.
“끄으윽!”
그 자리에서 탈혼촌열이 시행되자 송만극이 눈알을 까뒤집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음?”
임요성이 잡고 있던 송만극의 머리를 놓아버렸다.
“흠.”
“왜 그러십니까, 주군?”
여산홍이 옆에 섰다.
“정신 금제가 걸려있군. 이런 건 자백술을 시행해도 소용이 없겠어.”
임요성이 나윤천에게 했던 금제와 비슷한 것이었다.
누군가 정신을 침범해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죽거나 발작을 일으키게 만든 금제.
“정신 금제라…. 윗선이 힘 좀 쓰는 놈들인가 보군.”
임요성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닥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송만극을 쳐다보았다.
살기와 호기심이 묘하게 섞인 그의 표정을 보던 여산홍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끔 살수였던 자신보다 더 살기 어린 눈빛을 하는 주군이 섬뜩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여산홍의 비도춤에 가슴이 쪼그라들다 못한 엄충식은 결국 못 참고 구석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피 튀기는 싸움을 했던 그였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육에 금세 공간을 메우는 피 냄새가 아직 덩치만 컸지, 나이는 어린 엄충식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평범하진 않았다. 곧 정신을 차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눈에 경악과 감탄, 존경의 눈빛이 어렸다.
자신이 이 투견장에서 아무리 이름을 날렸다 한들 비벼볼 수도 없던 이들이 이 투견장을 관리하는 덩치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지나가던 개미 새끼 죽이듯 죽여버리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충식이 넌 저 돈이나 챙기거라.”
임요성이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며 말하자 엄충식이 얼른 다가가 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곽현에게서 가져온 돈뿐 아니라 다른 용처의 돈도 섞인 것 같았지만,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군 그건 뭡니까?”
“천리추종향일세.”
“예에?”
여산홍이 깜짝 놀라 임요성을 쳐다봤다.
“그건 어디서 나셨습니까? 보통 방법으로는 구하기 힘든걸?”
한 번 몸의 어딘가에 묻혀두면 한 달은 그 냄새가 지워지지 않고, 천 리가 떨어져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향이었다.
보통 살수문이나 정보 문파에서 많이 쓰는 것으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살수 출신인 여산홍은 그 희귀성과 가치를 알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주군 정체가 뭡니까? 아까 얼핏 듣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산홍의 눈빛이 강렬했다. 설명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이런 구하기 힘든 물건을 구한 것도 그렇고.
“객쩍은 소리 말고 다 했으면 나가지.”
이미 열 명에 이르는 덩치들이 이미 바닥에 엎어져 피를 쏟아내는 상황이었다.
여산홍이 엄충식을 쳐다봤다.
“돈은 다 넣었어?”
“흐흐, 무사님! 완전 횡재했습니다요! 여기 금고가 있어 혹시나 열어봤는데 떡 하니 열리지 뭡니까? 그런데 돈이 이렇게 많습니다!”
엄충식이 마대 자루에 수북이 담겨 있는 전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임요성이나 여산홍이나 별로 신경 쓰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으로 넌 어찌할 셈이더냐. 이렇게 일을 벌여놨으니 계속 여기서 있긴 힘들 텐데.”
여산홍의 말에 엄충식이 마대 자루를 놓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임요성을 힐끔 쳐다보며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갈 데가 없어서…. 흐흐. 받아 주신다면 밥값은 하겠습니다.”
그를 쳐다보던 임요성이 고개를 까딱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지.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그때 엄충식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저기… 공자님.”
“뭐지?”
임요성의 물음에 엄충식이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툭 내뱉었다.
“이제 여기 투견장의 비리를 알았는데, 저나 곽현과 같이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이 일로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 같은데 알고는 그냥 못 갈 것 같아서요. 잠시만 데리고 있다가 살길을 열어 주면 안 될까요?”
그의 말에 물끄러미 쳐다보던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충식의 말에 임요성이 자책했다.
불량인으로서 임무의 완수와 결과만 확인하던 습성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강호에서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그 은원을 모두 함께한다는 뜻이 된다.
즉 도움을 주려면 끝까지 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어설프게 돕다가 큰 화를 당할 수 있었고, 상대도 괜한 도움에 겪지 않아도 될 화를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그 부분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아, 아닙니다! 공자님! 전혀 미안해하실 게….”
“아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건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엄충식을 따스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책임지고 소년들을 소집해서 청풍표국으로 데리고 오너라. 독립을 원하는 애들은 여기서 빼앗은 돈을 분배해 줄 것이고, 너희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국주님께 청하여 청풍표국에서 지내게 해주겠다.”
“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허리를 숙이는 엄충식을 보며 임요성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그리고 사무실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다가 바닥에 쓰러진 송만극에게 눈길이 닿았다.
송만극의 목숨은 일부러 붙여놓았다. 그들의 악행을 생각한다면 바로 죽여도 시원찮았으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몸에 무색, 무취, 무향의 추종향을 묻혀 놓았기에 절대 놓칠 리가 없다.
이 추종향은 묵천에서 전용으로 쓰는 향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구용식에게 말하면 바로 이들이 어디로 가든 추적해서 그들이 접선한 인물, 장소 등 모든 것을 알아다 줄 것이다.
물론 굳이 추종향을 묻히지 않아도 충분히 감시할 수 있으나, 효율을 위해 묻혀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는 날…!
임요성의 눈 안에서 광폭한 흑풍이 휘몰아쳤다.
* * *
대수롭지 않게 내디딘 소주 나들이였으나 한 번의 출행으로 청풍표국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우선 곽현의 몸이 많이 상했던지라 홍연은 임요성 등의 조언을 바로 받아들여 청풍표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초련 역시 의망루의 처분은 나중으로 생각하고 일단 며칠 문을 닫기로 하고, 총관과 함께 청풍표국으로 함께 왔다.
그리고 엄충식은 일단 투견장에 자신처럼 남아 있던 이들에게 사실을 알렸고, 그들은 돈은 안 받아도 좋으니 자신들도 받아달라고 청했다.
그들에게는 표국의 표사 자리만 얻는다 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번듯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인생 역전이었다.
또한 사무실에서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날이 밝는 대로 다른 투견들에게도 찾아가 권유를 하기로 했다.
그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충식이 맡기로 했다.
그들은 처음엔 청풍표국에서 머무는 것에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으나 홍연이 손을 잡아 끌어주며 같이 가자고 하니 마지못해 따라나섰으나 얼굴엔 함지박만 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고아에 제대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크지 못한 그들에게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자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곽현이 부럽기도 했으나, 그런 곽현 때문에 이런 일도 생겼기에 그에 대한 마음이 사뭇 달라졌다.
홍연은 홍연대로 자식의 친구들이라 마음 쓰였다.
이제 아들도 청풍표국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아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그리 한 것이다.
그렇게 새 식구가 들어오고 며칠이 지나자 곽현은 조금씩 거동을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방을 나와 마당 앞에서 멋들어지게 관리된 정원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처음 의식을 차린 후 임요성을 봤을 땐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었다.
그러다 그가 형의 소식을 가져온 형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에 다시 우울해졌다.
어머니가 그로 인해 광증이 도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가슴에 응어리져있던 뭔가를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이는 모습을 보자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오히려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형에 대한 생각만 하느라 제대로 쳐다봐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후우….”
“무슨 한숨을 그리 쉬어?”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이미 그가 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냥. 난 얼굴도 모르는 형이란 존재 때문에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 싶어서.”
씁쓸한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는 곽현 옆에서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왜 웃어?”
곽현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찡그리자 엄충식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네.”
“뭐, 뭣!”
“엄청 센 형님 친구가 앞으로 잘 돌봐주겠다는데 뭐가 걱정인데? 그 친구 애인분이 여기 표국 주인이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다 보니 배가 처불렀냐?”
“쳇! 말이 그렇다고! 근데. 그 누님이 요성 형님 애인이래?”
“아니, 뭐. 그냥 내 생각인데? 분위기가 좀 요상모상하잖아?”
“참나. 난 또 뭐라고.”
김샜다는 표정으로 곽현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엄충식이 잡았다.
“뭐 누다 만 똥처럼 그래? 그래서 어쩔 건데?”
“뭐가?”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그럼. 뭐 뾰족한 수 있냐?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나도 뭐…. 그런 뒷골목 싸움이나 평생하고 살 수도 없고.”
“흐흐. 혹시 요성 형님 만나면 나도 무공 좀 가르쳐달라고 말 좀 해주라.”
“니가 직접 말해 새꺄!”
퉁명스럽게 내뱉는 곽현이었으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어렸다.
“너, 이번에 제법 활약 좀 했다며?”
그의 말에 엄충식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쪼… 금?”
“크크큭. 그게 뭐야.”
둘은 신나게 웃었다.
곽현의 말마따나 엄충식은 곽현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동안 열심히 돌아다녔다.
사무실에서 입수한 주소를 토대로 투견들을 전부 찾아다녔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모두 분노에 찬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곽현이 요즘 소주 무림에 회자되고 있는 무림일성의 절친한 친구의 동생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별호조차 그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뭔가 무림을 일통한 자에게 붙는 강렬한 느낌에 강하게 끌린 것이다.
게다가 모두 혈기방장한 소년들이었고, 무공을 배우려고 투견이 된 이들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시설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고 싶은 게 꿈인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누구한테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직업도 가질 수 있고, 무공도 배울 수 있는 조건은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기회일 지도 몰랐다.
엄충식의 말빨이 먹혔는지, 상황이 그랬는지 모르나, 지하투견장의 투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청풍표국으로 모였다.
곽현과 엄충식을 포함한 서른 명이 넘는 투견들이 청풍표국에 입국했다.
역시 홍국헌이 이 소식에 가장 뛸 듯이 기뻐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고, 방을 붙여도 표사들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표사들 간 죽고 죽이는 참극이 벌어졌던 곳이라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련문의 문도들이 들어오질 않나, 이렇게 표사들이 될 재목이 무더기로 들어오질 않나, 요즘 같기만 하다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특히 그들은 투견으로 활동했던 경력 때문에 독심이 있고, 싸움에 대한 망설임이 또래 나이에 비해 적었다.
그리고 무공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만큼 근골도 뛰어났고, 배움에 대한 열의가 있었다.
이들을 잘만 가르친다면 앞으로 청풍표국을 이끌 동량지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일을 말끔히 처리한 엄충식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사실.
이미 그 소문이 돌아 곽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동굴을 걷다가 갑자기 기화요초가 만발한 극락에 온 것 같은 설렘에 요즘 밤잠을 설치는 곽현이었다.
콜록. 콜록.
“크음. 아직 몸이 좀 그러네. 나 먼저 들어간다.
엄충식의 팔을 툭 치고 걸어가는 곽현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눈가에 고마움이 서렸다.
그들의 얼굴을 스치고 가는 봄바람이 형이 가져다준 것처럼 따스했다.
그리고 곽현 또한 마음속으로 봄의 전령에게 감사함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