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33
제 133화
50장. 레드 퀸 – 1화
“폐하! 역시 가공할 만한 마법의 위력은! 그야말로 폐하의 신묘한 힘이자 기적이십니다!”
“하하, 바스테레를 나 혼자서 잡은 것은 아니지. 마지막에 경이 바스테레를 확실히 묶어 두지 못했다면, 나도 마음 놓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진 못했을 것이오.”
“이 검……. 폐하께 바치옵니다.”
“후후, 아마 안 될 거요. 자아를 가진 검이라 검을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거든.”
“예? 이 녀석이 에고 소드라는 말씀이십니까?”
“워낙에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녀석이라 말을 듣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오.”
“폐하!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지. 경에게 검을 얻게 하고, 오러의 힘을 부릴 비기너의 경지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자 온 것이오.”
“신을 위해서…… 폐하께서…….”
“표현이 틀렸소. 날 위해서요. 그대가 강해져야, 나와 왕국의 힘 역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오. 착각하지 마시오! 라키스 경을 더 열심히 굴리려고 그런 것이니까.”
“폐하!”
라키스가 부복하며, 자레드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크나큰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 엎드린 것이다.
바스테레의 마검.
마검을 손에 넣는 순간, 라키스는 내면에 억제되어 있던 투사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마검에 내재된 수많은 살육의 경험과 지식들이 빠르게 라키스에게 주입됐고, 깨달음이 얻어졌다.
그것은 그간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던 마력과 오러의 밀접한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황송했다.
자신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북부의 차디찬 외곽 영지의 평범한 군인이었다.
자레드에게 중용되어 치안대장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어도, 그것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위치라고 생각했다.
소드 마스터?
꿈에서조차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미래였다.
오러 블레이드?
들고 있는 검이나 잘 다룰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라키스는 감히 두 가지 꿈을 함께 꾸고 있었다.
망상이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깨달음이 있었다.
마흔둘의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샘솟는 머리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다고 생각했으니까!
“폐하…….”
라키스가 참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뚝뚝 쏟아 냈다.
자신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 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레드였다.
남들은 자신에게 그리 자레드가 좋으냐며, 광신도처럼 맹목적으로 찬양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라키스의 마음은 광신도 맹신도 아닌, 진심 어린 감사와 충성뿐이었다.
자레드를 위해서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존경하는 나의 폐하이시여!’
이 말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라키스에게 자레드는 처음이자 끝이고, 전부였다.
“마검이 그대에게 가르침을 충분히 주었소?”
“예. 그뿐만 아니라 신이 함부로 누릴 수 없을 엄청난 힘도 함께 선사하였나이다.”
“내게 경의 힘을 남김없이 보여 주시오. 두 눈으로 보고 싶군. 우리 크리비아 왕국의 든든한 수호신이 될 경의 모습을 말이오.”
“예, 폐하!”
자레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키스가 마검을 휘두르며, 체내의 마력을 신속히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이이잉!
“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오러 블레이드의 묵직한 기감이 자레드를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순간 자레드도 움찔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위압적이며, 냉랭함을 머금고 있는 검기였다.
“폐하! 신이, 신이…… 신이, 오러 블레이드를…… 아아!”
그 어떤 말로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라키스는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한없이 울기만 했다.
군인이자 무인으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성장했다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었다.
“경이 내게 말했었지. 내 몸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예…… 폐하.”
라키스의 목소리는 끝없이 떨리고 있었다.
감사, 기쁨, 희열, 떨림, 설렘.
모든 행복한 감정이 한데 섞여, 그의 가슴을 뜨겁게 흔들었다.
“라키스 경, 새겨들으시오. 이제 그대의 몸도,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오. 라키스 경의 모든 능력과 힘을 나와 왕국을 위해 쓰시오.”
“신 라키스, 뼈가 으스러져 가루가 되는 그날까지 폐하께 충성하겠나이다!”
“잘 부탁하오.”
자레드는 라키스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나이만 놓고 보면 열다섯이나 차이 나는 두 사람의 관계였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군신(君臣).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믿음, 충성과 감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 * *
바스테레가 죽으며 열린 출구 포털로 라키스를 먼저 내보낸 뒤.
나는 아직 챙기지 못한 전리품이 있나 꼼꼼히 살피면서, 공략의 성과를 점검했다.
‘일단 초월급 마정석 10개.’
마정석 수입이 짭짤했다.
초월급 마정석은 최상급 마정석의 상위 개념으로, 개당 가격이 1만 골드에 육박한다.
전생의 가치로 보면, 개당 100억 원의 가치를 하는 셈이다.
마정석은 무조건 다다익선이고, 특히 판정 등급이 높을수록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나는 타넥스를 아공간에 다시 넣기에 앞서, 올라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오도록 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타넥스의 움직임을 살피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을 사비오에게 소리쳤다.
“야! 초월급 마정석 10개 얻었거든? 전부 네 연구 재료로 줄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있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넥스의 머리에서 녹색등이 점멸했다.
알아들었다는 사비오의 표시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잔여 스탯 전체를 늘 그랬듯 마력에 투자하고는, 현재 내 스탯을 확인했다.
여기에는 8성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스탯이 2배로 뻥튀기 된, 악마 유희 반지의 옵션도 포함됐다.
[자레드 – Lv. 175] [근력 : 435][체력 : 350] [마력 : 11,611][지혜 : 635] [민첩 : 190][매력 : 330] [물방 : 555][마방 : 1,430] [신성력 : 300] [잔여 스탯 : 0]‘물방 555. 이제 고블린이나 코볼트 따위에게는 백날 맞아도 어린아이가 때리는 느낌이겠네.’
전생의 데이터에 기반하여 정확한 계산이 섰다.
마법사인 내가 근접전을 치를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마법사들이 근접전을 꺼리는 이유는 그만큼 맷집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기사들이 대(對)마법전을 배울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어떻게든 마법사에게 가까이 붙으면 이긴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거의 99% 이상의 마법사는 물리 방어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근접전에서 종잇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르다.
그간 아티팩트와 칭호를 꾸준히 모으며 물리 방어력을 높여 왔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검격 정도로는 생채기밖에 나지 않는다.
즉, 일반 병사가 잔뜩 힘을 실어 공격하는 정도가 아니면, 중상을 입히기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지혜도 조금 더 노력하면 800 찍을 것 같고. 그러면 지혜 200의 동급 마법사에 비해 3배에 가까운 화력을 가질 수 있지.’
착착 오르는 스탯들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직 모자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아직 5클래스의 마법사니까. 9클래스까지는 갈 길이 구만리다.
‘빨리 이그니스를 만나야지.’
6클래스 퀘스트의 첫 타자인 화염의 정령왕 이그니스를 떠올리니, 괜스레 한숨이 나왔다.
꼴 보기 싫은 놈이지만, 만나기는 해야 한다.
한데 바로 그때.
[신 ‘헤레시스’가 신의 힘을 멋대로 끌어들여 자신을 농락한 당신에게 깊은 불쾌함을 표합니다.] [신 ‘아소스’와 여신 ‘네프리아’가 ‘헤레시스’를 실컷 놀리며 통쾌해합니다.]“크큭.”
신들의 반응을 알리는 메시지가 보여,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메시지를 통해서 내게 보였다는 것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표현을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보고 들으라는 것이다.
불쾌하다고.
기분 좋다고.
널 지켜보고 있다고.
알고 있으라는 얘기다.
“그러게, 신도 멍청하면 고생한다니까.”
나는 대놓고 헤레시스를 도발했다. 어차피 레드 퀸을 후원하는 신이니 나와는 엮일 일 없다.
애초에 악신은 내가 싫다.
암흑 교단도 악랄함 때문에 싫어하는데, 그 상위 개념인 악신을 좋아할 리가 있나!
[옵션 8 : 흡혈 – 생체의 선혈을 흡수하여 체력과 부상을 회복합니다. 5회 이상 흡혈을 사용하면, 뱀파이어화가 진행됩니다.]8성이 되면서 새로이 열린 악마 유희 반지의 8번 옵션도 확인했다.
흡혈.
위급한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쓸 수 있지만, 마지막 줄의 문구는 절대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어쨌든 위기 대처 수단을 얻은 것이니, 내게는 분명 이득이다.
“이제는 엘라보다 라키스의 성장이 더 빨라질 수도 있겠어.”
출구로 향하며, 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엘라와 라키스가 서로의 오러 블레이드의 경지를 견주며, 자극받고 성장하는 모습을 말이다.
‘나의 첫 S급 무장이 되어 줘요, 라키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조용한 기도를 올리며, 나는 던전 밖으로 나섰다.
* * *
얼마 후.
“크어어어…….”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군.”
나와 라키스는 데스먼드 제국의 던전 도시, 질리아의 중심가에 있는 여관에 도착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다.
물론 나는 잘 일이 없다.
문제는 올해 불혹하고도 두 살을 더 넘긴 라키스였다.
마검이 이끌어 낸 대각성의 후폭풍 때문인지 그는 엄청 피곤해 보였다.
괜찮다고 했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참을 수 있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왔는데.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기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나는 라키스의 스탯을 심안으로 한 번 스캔한 뒤, 여관 옆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라키스의 성장은 술집에서 천천히 맥주를 들이키며 저장해 둔 상태창으로 체크할 생각이었다.
던전 도시라 그런지 술집의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붐볐다.
단층이 아닌 4층인 데다가 층마다 공간이 제법 넓어 어림짐작으로도 수백의 손님이 있었다.
‘분위기가 안 좋군.’
하지만 왁자지껄한 소리와 달리, 내부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그것은 마치 중앙에 선을 그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좌우로 갈라서서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각각 견장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한쪽은 흑장미가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사자 문양이었다.
‘꽉 찼구먼.’
1층, 2층, 3층 할 것 없이 전부 입구에 ‘자리가 없으니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4층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인파를 헤치며 4층을 향해 올라갔다.
그때.
“손님! 안 됩니다. 4층은 아무나 들어가실 수 없고, VIP 손님만이 출입이 가능합니다.”
“아, VIP 공간이군.”
급히 앞을 막는 점원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아키의 크리비아 펍에서도 VIP 프리미엄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차피 술집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돌리는 찰나.
“내 동행이야. 괜찮으니까 들어가게 해 줘. 헨리, 내 인증이 필요하니?”
“앗! 그럴 리가요! 동행이셨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자, 손님. 올라오시죠.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여자의 말에 점원이 재깍 꼬리를 내리며, 나를 다시 4층으로 안내했다.
‘누굴까? 라키스 말고는 동행이 없는데.’
그녀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레드 퀸?’
나는 예전에 스치듯 만났던 인연과 조우했다.
악신 헤레시스의 가호와 후원을 받고 있는 진 주인공 후보 2번!
바로 레드 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