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48
제 148화
53장. 포르미도 – 4화
“네가 사용한 비도술은 매우 투박하다. 투박한 비도술은 정확히 타깃을 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척에 민감한 타깃은 반응하기가 좋지. 자, 자세를 이렇게 교정해 보자. 많은 교정은 필요 없다. 딱 이 포인트만 짚어 주면, 기척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옳지. 이 상태로 저 나무의 밑동 중간을 노려라.”
“예.”
휘리리릭! 파악!
“크, 가르치는 맛이 있구먼!”
짝짝짝.
포르미도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클로이에게 원 포인트 레슨에 들어간 것이 겨우 5분.
‘미쳤다, 미쳤어.’
나는 놀랄 만한 변화를 보았다.
각각 A와 B등급이었던 클로이의 약점 분석과 비도술 특수 성향이 한 단계씩 증가한 것이다.
[특수 성향 : 절대 은신 SS / 위장술 S / 약점 분석 S / 비도술 A]포르미도는 비(非)암살자인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클로이의 약점을 잘 찾아냈다.
내가 그간 클로이에게 가르친 것은 장점을 극대화하는 부분이었다.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르미도는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진단을 끝냈고, 클로이의 약점을 교정했다.
“정말…… 눈에 띌 정도로 기척이 줄었습니다. 스승님.”
“그렇지? 내 말이 실감이 되지 않느냐? 어때?”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입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입니다.”
클로이의 입가가 씰룩이고 있었다. 뭔가 좋은데, 기분이 엄청 좋은데, 그것이 웃음이나 환호로 표현이 잘 안 되는 탓이었다.
꾸우욱.
결국 호탕한 웃음 대신에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것으로 클로이가 감정 표현을 대신했다.
“숨은 원석이로고. 대왕께서는 어찌 이런 인재를 찾아내어 곁에 두셨는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꼭 곁에 두고 싶은 인재라고 생각했지요.”
“그레이 엘프를 본 적이 제법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다수가 궁술에 능한 궁수들이었는데, 이 아이는 이쪽으로 타고난 천재로군요.”
“정말로 그렇게 보이십니까?”
“빈말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제자를 키운 지도 어언 30년이 지났는데……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아이고, 우리 제자님. 다 늙어빠진 스승을 두게 되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훈훈한 사제지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포르미도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클로이가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포르미도가 오래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나는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포르미도의 수명을 떠올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앞으로 8년은 문제없겠지만, 이왕이면 성마 대전이 발발해도 그가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재 하나, 영웅 하나가 아쉬운 것은 다가올 재앙을 알고 있는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 명의 영웅이 수백, 수천, 수만의 마물을 처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르미도는 그것이 가능한 존재였다.
“대왕,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그만.”
포르미도의 물음에 나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에게 영생을 가져다줄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좀 더 건강을 신경 써 줄 수는 있을 듯했다.
어쩌면 에서 노환(老患)으로 세상을 떠난 포르미도에게 죽음의 원인이 된 질병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대비하고 수시로 건강을 체크해 준다면, 에서보다 긴 시간을 살 수도 있으리라.
* * *
이동 인원이 셋이다 보니, 멀티 텔레포트 시전을 위한 거리를 잡기 위해 이동이 좀 더 필요했다.
그렇게 이티마 제국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좀 더 내려오던 어느 순간.
“하이야! 하이야! 이랴!”
“와아아아! 와아아아!”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마대와 함께, 끝없는 보병의 행렬이 매섭게 동진(東進)하는 것이 보였다.
이티마 제국 출신이기에 그들의 소속과 구성을 바로 이해한 포르미도가 말했다.
“이티마 제국의 제1군이라고도 불리는 사자군이로군요.”
사자군, 나도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사자를 상징하는 군대로, 사자가 그려진 국기(國旗)를 보유한 이티마 제국의 핵심 군대이기도 하다.
국가에서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는 정복 전쟁을 벌일 때만 동원하는 군대로 정예, 아니 최정예 군대로 유명한 것이 사자군이었다.
‘동쪽이라면 세잔틴 왕국. 지금껏 한 번도 주목해 본 적은 없지만…….’
세잔틴 왕국을 주목한 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에서 별것 아닌 국가였다는 뜻이기는 하다.
하지만 특색이 없는 국가였을 뿐 영토 자체는 꽤 넓었다.
그런데 이티마 제국이 전력을 다해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평온했던 나스 대륙에 본격적인 피바람이 부는 걸까?’
두 왕국을 상대로 과감하게 정복 전쟁을 벌였던 내가 꺼낼 소리는 아니지만, 어쨌든 심상치 않다는 생각은 들었다.
특히 이티마 제국은 얼마 전에 리스티스 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이었다.
내가 환생한 이후.
나스 대륙의 왕국 이름 중 하나가 공식적으로 지워진 것이다.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이티마 제국은 리스티스 왕국의 모든 왕족과 친족, 하녀와 하인들의 구족까지 모두 멸했다고 한다.
씨를 말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강산에 흩뿌려진 학살의 피가 채 식기도 전에 다음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내정에 보다 집중해야겠다.’
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잠시 바깥일을 줄이고 내치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릅시다.”
마음이 급해졌다.
* * *
나스 대륙력 1416년 6월 1일.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살짝 더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나는 두 달을 꼬박 집중해 왔던 내치의 압박에서 한 걸음 살짝 물러섰다. 한숨을 돌려도 될 만한 여유가 생겨서였다.
왕궁은 여전히 짓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제법 속도를 낸 덕분에 공정률은 50%를 넘어가고 있었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모든 역부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을 최우선시했다.
덕분에 왕궁 건설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통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다가 사고로 역부가 죽는 일이 잦은 것을 생각하면 분명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신데르스 왕국의 많은 기술자가 왔다 갔다고 한다.
어떻게 건설 현장을 관리하기에 사상자가 없는지, 국왕 이즈엘이 무척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왕성이 차근차근 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기는 했다.
바로 그때.
“폐하.”
집무실에서 창밖을 살피던 내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은 라키스가 말을 건넸다.
그에게는 발데스나 아키처럼 별도의 보고나 통보 과정 없이, 언제든 나를 찾아와서 볼 수 있는 특전을 주었다.
귀찮고 복잡한 절차를 없애고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한 것이다.
“말해 보시오, 라키스 경.”
“묵묵히 크리비아 해군에 재원(財源)을 조달하고 투자해 온 것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듯합니다.”
“설마 이번에도 승전이오?”
“그렇습니다! 루크 제독과 게니츠 제독께서 해적 우르나도와 그 일파를 모조리 격파하고 세칠라 아일랜드를 장악했다고 합니다.”
“연안 지대의 정리는 진즉에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주변 도서(島嶼)를 장악하기 시작했군.”
“그렇습니다! 예전에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의 해군 제독이었던 시절에는 두 제독이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았습니다만…….”
“지금은 살아 숨 쉬는, 더 강해져서 돌아온 지옥의 맹수가 되었지. 전권을 그들에게 주었으니.”
“예, 폐하. 폐하의 혜안 덕분에 두 제독이 실로 만개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모든 능력을 펼쳐 보이고 있사옵니다!”
스으윽! 스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키스가 나스 대륙 북서부 쪽의 지도에 몇 개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리라키를 위시한 해안 도시에 머무르던 ‘크리비아 해군’의 모형을, 한 뼘은 될 정도의 거리까지 쭉 옮긴 것이었다.
그 사이에는 총 다섯 개의 섬이 있는데, 그 섬이 모두 우리 크리비아 왕국의 차지가 된 것이다.
[제독 루크의 충성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충성도 37이 올랐습니다!충성도가 200이 되어, ‘1차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기분 좋은 1차 각성 소식까지 전해졌다.
각성이라는 것이 꼭 무인으로서의 힘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루크와 게니츠는 해군의 총사령관임과 동시에 전략가이기도 하기에, 그 혜안이 더 깊어질 계기가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육군, 해군 모두 지원 사업 및 일정에는 문제가 없소?”
“폐하, 전혀 걱정 없습니다. 게다가 켈디아 무기의 공급도 순조롭고, 아세로 님의 말에 따르면 다음 주부터는 생산 물량을 50% 이상 더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아세로 공정이 완성된 모양이군.”
“예, 다음 주가 완공입니다. 정말 대량생산 체계가 확실하게 갖춰지는 것입니다!”
라키스가 계속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인 듯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치에 공을 들인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키와 함께한 칼라카스 꽃잎 차 사업, 약칭 다이어트 사업이 시쳇말로 ‘초대박’이 났다.
덕분에 왕국의 재정은 풍요롭다 못해 금화가 차고 넘쳤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 방심하지 않고, 재정의 입출(入出)을 꼼꼼히 따지면서 면밀하게 관리하니 새는 돈도 없었다.
원활하고 투명한 국가 재정 관리를 위해, 율리안이 추천한 인재를 중심으로 ‘크리비아 재무성’을 신설한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마정석 조명등 설치도 왕국 전역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지?”
“예. 폐하께서 매우 공을 들이신 영화 산업도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금주부터 많은 백성의 관심을 받는 연극들이 영화로 상영될 예정입니다.”
“내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품격에 어울리는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충분히 있지.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려.”
“돈 냄새를 맡은 상인들이 영화 산업에 하나둘 뛰어드는 모양새입니다. 이게 바로 선순환 아니겠습니까?”
“맞소.”
참 기분 좋은 소식들의 연속이었다.
의 플레이어였던 시절에는 도대체 국가 경영의 재미가 무엇인가 싶었다. 모든 것이 데이터와 숫자로만 보이니, 통치하는 모든 것이 고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변화가 두 눈으로 실감 나게 보이고, 달라진 가신과 백성의 반응이 체감되니 성취감이 엄청났다.
중독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일들을 모두 제쳐두고, 내정에만 올인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정도였다.
한데 바로 그때.
라키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깔며, 진지하게 화제를 돌렸다.
“저어, 폐하…….”
“음?”
쭈뼛쭈뼛하면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이 왠지 느낌이 안 좋다.
그래서 그 내용이 무엇이든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려고 했지만…….
“언제 신들은 폐하의 영원한 배필이 되실 왕후 폐하를 뵐 수 있게 될는지요?”
“아…….”
올 것이 온 듯했다.
왜 이 얘기가 안 나오나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