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4
제 214화
72장. 치명적인 일격 – 4화
‘속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족이라 해서 압도적으로 빠르다거나 전혀 상대할 엄두가 안 난다거나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케즈만과 교전을 벌이며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공격 하나하나는 매우 위력적이었다.
그간 상대했던 껄끄러운 적이나 보스 몬스터가 작은 망치를 휘두르는 느낌이라면, 케즈만은 큼지막한 해머를 들고 휘두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만큼 공격에 노출되었을 때의 리스크는 컸지만, 전혀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케즈만 하나를 놓고 모든 마족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시스템이 알려 주었듯, 그는 100개의 서열로 나뉜 체계에서 91위에 위치하는 마족이었으니까.
상위 마족으로 갈수록 모든 것이 더 강해지고, 빨라질 것이다. 케즈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쨌든 눈과 몸이 적응을 하자, 케즈만도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다.
오히려 공격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적어 상대하기가 편했다.
왜일까, 하고 생각해 봤다.
‘마계에는 딱히 적수가 없었을 테니까. 상위 마족에게 감히 도전하지 않고 하위 마족을 적절히 밟아 왔다면 현재에 충분히 안주할 수 있었겠지.’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생각이 그 정도쯤에 이르자, 오히려 케즈만과의 전투를 즐기게 됐다.
물론 크고 작은 상처를 꾸준히 입기는 했지만, 감당 가능한 선에서 얻은 상처였다.
나는 케즈만을 넉넉한 샌드백처럼 생각하고, 아낌없이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그간 어지간한 몬스터는 초월 마법 몇 대, 아니 한 번만 맞아도 픽픽 쓰러져서 답답했(@재미없었)는데!
케즈만은 맷집이 좋다 보니, 여러 번 피격당하고도 제법 잘 버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케즈만을 상대로 다양한 초월 마법을 사용하며, 대미지를 측정했다.
이 정도 스탯을 가진 마족이 이 정도 마법에 피격됐을 때, 어느 정도의 대미지를 입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유익한 실험이었다.
당사자는 이게 실험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지켜보는 동료들도 전혀 모를 테고 말이다.
“……여유롭구나, 인간.”
“마계 서열 91위는 생각보다 보잘것없는 것 같네. 차원문의 늪도 빠져나갈 센스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야.”
“망할.”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는 내 도발에 케즈만의 입가가 몇 번이고 씰룩였다.
초월 마법을 활용해서 만든 차원문의 늪. 내가 생각해도 참 기발한 무대였다.
지금 케즈만의 경우처럼 이렇게 차원문으로 주변 공간을 도배해 버리면, 공간 이동 마법이 없는 이상은 절대 못 빠져나간다.
이 방법은 전생의 에서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옵션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래서 마법사는 응용 능력이 중요하다니까. 마법을 창의적으로 활용할수록 변수 창출 능력이 탁월해진다!
“이 힘은 안 쓰려 했다만…….”
“꼭 너희들은 그렇더라.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서 싸우면 될 것을 항상 비장의 무기니 뭐니 하면서 아껴 놓더라고.”
깊숙하게 정곡을 찔렀다.
진심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전투를 할 때, 초반의 탐색전을 잠깐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전력으로 싸운다.
되지도 않는 여유를 부리며 싸우다가, 나중에 곱절 이상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적들은 나름대로의 자존심, 시쳇말로 ‘가오’가 있어서인지 꼭 변화의 수단을 아껴 놓곤 했다.
나는 곁눈질을 통해, 차원문 사이로 보이는 헤이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끝이 사선으로 계속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나와 맞춘 수신호, 아니 족(?)신호로 숫자를 알리는 표시다.
사선 긋기는 숫자 7을 가리키는데 그 말은 즉, 현재 신성력 응축 진행이 70%의 수준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케이.’
시간의 견적이 얼추 나왔다. 아직은 시간을 더 벌어 줘야 한다.
꾸드득. 꾸드득.
그사이에 개변을 시도하는 케즈만의 몸이 울룩불룩하며 변하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나는 미련 없이 아공간에서 꺼낸 멸살의 단검을 가지고 케즈만에게 쇄도했다.
개변은 순식간에 끝난다.
길어야 5초?
이 과정에서 적에게 피격을 당하더라도, 개변으로 얻을 수 있는 어드밴티지가 많기에 다들 시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 잠깐의 ‘극딜 타이밍’을 확실하게 노릴 생각이었다.
[옵션 6 : 확정적 해체 – 10초간 적의 모든 방어력 수치를 0으로 만듭니다. 쿨타임 24시간]확정적 해체를 바로 활용했다.
이 녀석만큼은 마족이 아닌 마왕이 개변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10초간 완전 방어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이니까.
투욱!
이내 내 손길이 닿자, 케즈만의 외피가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케즈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개변 과정이 무적은 아니라서, 변화의 과정에서는 정신 집중이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케즈만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이다.
개변을 멈추고 내 공격에 대응하든지, 아니면 꿋꿋이 개변을 시도하며 대미지를 받아 낼지.
나라면 전자를 선택했겠지만.
케즈만은 지금보다 더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나를 찍어 누르고 싶은 욕심이 있어 보였다.
“하아아압!”
케즈만이 일갈하며 집중을 시도했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역시 사자성어는 틀린 말이 없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푸우욱!
과감하게 케즈만의 가슴팍에 멸살의 단검을 꽂아 넣었다.
다음 순간.
“크어억!”
뭔가 잘못되었음을 확실하게 직감한 듯한 케즈만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 * *
그로부터 10분 후.
“빨리. 빨리. 힘내자, 헤이즈. 집중해야 해. 집중, 집중…….”
헤이즈는 막바지로 접어든 신성력 응축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신성력 응축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바로 타넥스의 등 뒤였다.
타넥스의 등에 비상시에 마정석을 박고, 마력을 긴급 추출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제법 넓은 공간인 데다가, 에너지의 응축이 가능하도록 마법진 세공이 되어 있었는데.
딱 지금의 상황에 응용하기 알맞은 설계였다.
물론 설계자인 사비오가 이것을 의도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레드가 눈썰미 좋게 활용한 셈이었다.
95%.
거의 막바지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날뛰던 마수들도 상당수가 제압된 상태였다.
엘프 전사들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동료들이었다.
“정말 다들 대단해.”
헤이즈는 감탄하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마나를 느끼는 것도 벅차했었던 미아.
라키스에게 호된 가르침을 받으며, 검술을 배우던 레나.
자기 수준으로는 3성 이상을 뛰어넘기도 힘들 것이라며 자책을 수도 없이 하던 이자벨.
모두 그런 과거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이자벨의 광역 주술진의 파급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모든 마수가 환각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엉뚱한 곳을 공격하거나 들이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동족을 적으로 오인하고 서로 때려죽이는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최근에 헤이즈가 디바인 식스의 경지에 진입한 것처럼, 이자벨도 6성의 주술사가 되었는데.
주술사에게도 6성이라는 경지는 상당히 높아 보였다.
예전에 헤이즈가 볼 수 없었던 광범위한 주술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폐하가 괜찮으셔야 하는데. 폐하, 괜찮으신 건가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헤이즈는 자레드가 가장 걱정이었다.
자레드와 케즈만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전장은 차원문으로 인해 시야가 대부분 가려져 있었다.
틈새로 불꽃이 튀는 것이 보이고, 신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들리기는 했지만…….
그 이상을 볼 수는 없었다.
“하아!”
계속 쉬지 않고 고밀도의 신성력을 신체에서 끌어낸 탓인지 헤이즈는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상 신호였다.
신성력이라는 것도 사용 과정에서 체력과 심력을 함께 소모하게 되는 터라, 중간에 휴식이 필요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망할 마족 XX!”
그때, 차원문 안쪽에서 동시에 케즈만과 자레드의 신음이 들렸다.
동시에 한 줄기의 피가 촤악, 하고 차원문 틈새로 튀었다.
‘폐하……!’
그 피는 자레드의 것이었다.
순간 헤이즈의 마음이 급해지려다가, 가까스로 폭주를 멈췄다.
여기서 하던 것을 멈추고 자레드에게 달려갔다가는 모든 계획을 그르치게 된다.
‘날 믿고 맡기셨으니까. 내가 반드시 해내야만 해.’
헤이즈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지막 집중을 더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파르르 떨리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이 일었지만 참았다.
마족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자레드를 생각하면, 자신의 임무는 너무나도 하찮았다.
헤이즈는 그렇게 생각했다.
‘99%!’
마지막 한 줄기의 신성력만 불어넣으면 모든 충전이 끝난다.
최대치다.
이 이상은 타넥스의 몸체가 받아 낼 수 없기에 한계점이다.
“아아아앗!”
헤이즈가 힘껏 기합을 내지르며, 정말 짜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신성력을 쏟아 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가듯, 주변 모든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용감했고, 공격에 거침이 없었다.
아울러 앞장서서 멋지게 싸우고 있는 자레드를 믿으며,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이것이 폐하가 원했던 신하들의 모습일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모두가 하나로 뭉쳐, 한마음으로 싸우는 것.
그것이 유능한 인재에게 무릎을 꿇어 가며 진심을 전하고 설득하던 자레드의 목표가 아닐까 싶었다.
100%!
신성력 충전이 끝났다.
“폐하……!”
헤이즈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쳤다.
* * *
‘됐구나!’
헤이즈의 목소리를 들은 자레드의 귀가 쫑긋했다.
반가웠지만, 역설적으로 상황은 반갑지 못했다.
‘차원문의 늪’ 때문에 동선이 제한된 것은 비단 케즈만뿐만이 아니었다. 자레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치고 빠지기에 집중을 한다고 해도, 공간 자체가 좁으니 변수 창출이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종국에 이르러서는 초단거리 난타전이 되어 버렸고, 결국 몸으로 때우는 상황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힘법사나 할 걸 그랬나. 큭큭.’
되지도 않는 농담을 속으로 뇌까리며, 자레드가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다잡았다.
우선 자레드는 ‘가즈넬라의 날개’를 사용하여, 바로 헤이즈의 옆으로 붙었다.
파앗!
순식간에 주변이 바뀌고, 헤이즈와 타넥스의 모습이 보였다.
스르르륵.
디멘션 도어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공급하던 마나의 연결 고리 사라졌다.
자레드가 차원문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촘촘하게 폐쇄 구조를 갖추고 있던 차원문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죽여 버리고 말겠다……!”
독기가 잔뜩 오른 케즈만의 시선이 정확히 자레드에게로 향해 있었다.
“…….”
자레드는 묵묵히 타넥스의 뒤쪽으로 한 손을 옮긴 채, 응축된 신성력 구체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정말 참을 수 없을 고통이 손끝을 따라 흘러들어 왔다.
그것은 마치 깊게 팬 상처에 소독약을 콸콸 부어 넣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느낌이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와라.’
기다렸다.
이 노림수는 대응할 시간을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된다.
일격, 그리고 필살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크아아아앗!”
이윽고 일갈과 함께 케즈만이 자레드에게 쇄도했다.
자레드는 숨을 죽였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20m, 10m, 5m, 2m, 1m…….
케즈만의 날카로운 손끝이 살점을 꿰뚫기 전까지 자레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케즈만의 오른팔이 자레드의 왼쪽 심장을 노리고, 깊숙하게 찔러 들어오는 그때.
파아앗!
블링크를 이용해 살짝 몸의 위치를 바꿨다.
끝까지 침착했기 때문에 블링크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후웅!
덕분에 케즈만의 오른팔은 간발의 차이로 허공을 갈랐고, 바로 자레드의 턴이 왔다.
“끝이다.”
자레드의 짧고 굵은 메시지와 함께.
뻐어엉!
자레드의 주먹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케즈만의 가슴을 정확하게 후려쳤다.
다음 순간.
퍼어어어어엉!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펼쳐진 광경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레드가 헤이즈에게 가칭으로 정해 주었던 계획의 이름처럼.
“터져 버렸어…….”
케즈만의 몸이 터져 버렸다.
마족의 몸을 재료로 살점과 핏물이 사방에 흩날리는, 절대 쉽게 볼 수 없을 ‘폭죽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