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52
제 252화
81장. 창궐(猖獗) – 4화
오브렌을 꼭 끌어안았다.
굽은 허리와 몸 전체에 가득한 흙냄새가 그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한참 그를 안고 있었고, 오브렌 역시 나를 안은 채 격려하듯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데 바로 그때.
콰앙! 쿠웅!
“……?”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황궁의 연회장에 폭발이 일어난 것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폭발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발생한 지진파의 충격이 막 도착한 느낌이었다.
“꺄아아악!”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일단 이 폭음의 원인이 지진이든, 폭발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뭔가 일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었다.
“일단 연회장을 모두 빠져나갑시다! 게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폐하!”
부르기가 무섭게 바로 아그레시오 기사단원들이 들어왔다.
든든하게 내 곁을 지켜 주는 친위대다.
“정확한 상황 파악이 끝날 때까지 황궁 지하에 있는 안전 벙커로 모두 모셔라. 내 별도 지시가 있기 전까지 절대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폐하!”
“짐이 밖의 상황을 확실하게 확인할 터이니 모두 안전한 곳에 가 있으시오!”
일사불란하게 신하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뒤, 나는 우선 황궁 위의 상공으로 향했다.
“…….”
아래를 내려다보니 황궁은 멀쩡했다. 어디에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울림은 그냥 넘기기에는 상당히 큰 진동이었다.
“타넥스를 전원 기동해야겠군. 올라, 황궁 전체를 탐색해 줘. 비는 공간 없이.”
-올라, 탐색 명령을 수행합니다. 각각의 기체에게 활동 반경을 분배합니다.
나는 황궁 전체로 타넥스를 펼쳤다.
그리고 황도의 상공을 저공으로 비행하며, 빠르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다들 바닥에 엎드려 있거나 벽에 붙어 있는 등 저마다 대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설마?”
나는 황궁 북쪽에 위치해 있는 카실레아스 산에서 수상한 형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 산은 아니지만, 황궁에서 늘 북쪽을 바라보면 눈에 들어오는 녹음(綠陰)이 가득한 산이었다.
한데 그 중턱에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질질 다리를 끌며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언데드가 여기서 나온다고?”
나는 순간 경악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온갖 이물질을 뒤집어쓴 구울들이었다.
네크로맨서라고 불리는 ‘강령술사’의 소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컸다.
처음에는 몇 마리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가까이 접근하니 수천 마리 이상의 구울이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제국은 마기 감지 아티팩트를 통해 교단의 단원을 위시한 흑마법사들의 모든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경계가 삼엄한 황도에 강령술사가 들어왔을 리 없었다. 그 정도로 방비가 허술하지는 않다.
“설마…….”
나는 일전에 그레이 엘프의 터전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오래전부터 설계되어 있었을 암흑 교단의 안배를 떠올렸다.
예전부터 준비된 어떤 장치가 있었다면 이렇게 단시간에 구울들을 생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하나 으슥한 동굴, 공동묘지 따위에 묻혀 있던 시체들에게 일제히 암흑 기운을 불어넣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 XX X끼들.”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격한 감정 표현은 여기까지만.
지금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암흑 교단의 계략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면, 비단 이 산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보고 드립니다. 아수테스 산에서 한 무리의 언데드가 감지됐습니다.
-남쪽의 경계 초소에 언데드 12마리가 나타났으나, 경비대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트리거를 당겼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결과는 명확할 것 같았다.
황도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용마 대전이 남긴 흔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카젤라가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황도부터.”
황도 전역과 그 인근에만 수십 만 명의 백성들이 살고 있다.
우선 황도부터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야, 나머지 다른 도시들의 상황도 수습할 수 있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나는 미련 없이 양손에 8클래스 전격 마법인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를 캐스팅했다.
상대는 구울이다.
적당히 광역으로 타격할 수 있는 마법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트랜센던스는 낭비다.
“하아압!”
일갈과 함께 라이트닝 스트라이크의 전류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끄워어어어…….”
“꾸어어…….”
전류에 유독 약한 생체인 구울은 공격을 당하자마자 신음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두개골이 으깨어 사라졌고,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전신이 익어 버렸다.
[십만인 베기] [23412 / 100000]그때, 카운트가 올랐다.
“오호라. 언데드 몬스터도 이런 경우에는 베기의 카운트에 들어간다 이거지?”
나는 두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당연히 처단해야 할 놈들이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
[칭호 : 십만인 베기 – 파괴자(Destroyer)] [암흑 교단을 추종하는 모든 인원을 참살하여 영혼 파편을 수집합니다. 세 번째 목표는 십만인] [달성 시 효과 : 아티팩트 ‘악마 유희’를 9성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바로 악마 유희를 9성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콰아아아!
비탈길로 빠르게 하강한 뒤.
나는 죽음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전진만 하는 언데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언데드의 수가 제법 많기는 했지만, 내게는 날벌레들만큼이나 하찮은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의 일반 공격으로는 내 물리 방어력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기껏해야 아주 작은 상처가 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따금 토해 내는 독성 타액이 의미가 있느냐?
당연히 없다.
나는 만독불침지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하찮은 언데드를 대상으로는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다.
뻐엉! 파앙! 콰앙!
여기저기서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구울이 죽어 나갔다.
가끔 그 무리에 하급 데스 나이트도 섞여 있었지만, 역시 내 상대는 되지 못했다.
다만 다른 곳에서도 이런 녀석들이 나타난다면, 일반 병사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겠다 싶었다.
“서둘러야 해.”
나, ‘자레드’의 전투는 여유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 ‘크리비아 제국’의 전투는 여유가 없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애꿎은 우리 병사들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 언데드를 죽였고, 놈들이 특정 지점에서 유독 많이 출몰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은 대개 주변의 지형지물에 가려진 동굴이나 바위 틈새 같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깊숙하게 안으로 파고 들어가 보니.
“……어둠의 마정석인가.”
마정석은 마정석인데, 검붉은 기운이 강렬한 마정석이 박힌 장치가 있었다.
분명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들은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입김만 불어도 무너질 것 같은 구식 시설이었다.
나는 아까 스치듯 떠올렸던 생각을 되짚었다.
천 년 전이라는 아득히 먼 과거에 벌어졌던 용마 대전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한 기관이 마정석에 힘을 불어넣었고, 주변에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 기운을 받아 생기를 얻은 것이 지금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던 언데드였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정말!”
일갈과 함께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마력을 폭발시켜, 통째로 기관을 날려 버렸다.
8클래스 폭발 마법인 마나 익스플로전이었다.
후둑. 후두둑.
거센 마력 폭풍을 이겨 내지 못한 기관은 폭삭 무너져 내렸고, 마정석도 재가 되어 흩어졌다.
시설 자체는 아주 낡고 약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기능을 발휘하기는 한다는 것이었다.
즉, 지금처럼 근원을 차단하지 않으면 계속 생기를 주입받은 언데드가 발호할 터였다.
나는 다시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번과 같은 사태에 대비해 제국 전역에 통신석으로 구축해 둔 비상 연락을 위한 핫라인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것이 완성된 것은 불과 1개월 전으로, 통신석과 마정석을 일일이 연계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탓에 모이즐이 엄청 고생을 했다.
휴대용이 아닐 뿐이지, 일종의 고정된 아티팩트와도 같았다.
광역 연락을 위한 아티팩트 같은 느낌이랄까? 모이즐이 아니면 절대 구축할 수 없었을 시스템이었다.
“핵심부터 부숴야 해.”
대전제는 간단했다.
눈앞의 언데드 군단보다 그 뒤에서 끊임없이 힘을 공급하는 원천을 차단해야 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그것이 갑작스레 창궐(猖獗)하기 시작한 언데드 군단에 대응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 * *
“꺄아아악! 괴물! 괴물이야!”
“여긴 제게 맡기시고 어서 대피를……. 크어악!”
“꺄아악! 경비병님! 아아아!”
우적! 우적! 우드드득!
“크컥.”
제법 중무장을 한 경비병이었지만,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광견’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현재 출몰하고 있는 것은 구울뿐만 아니라 언데드로 분류되는 모든 마수들이었다.
심지어 어보미네이션도 있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병사들이 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압사해 죽어갔다.
“크르르르……. 쩝.”
병사의 두개골과 뇌를 뜯어먹은 광견이 겁에 질려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흑흑,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세요…….”
겁에 질린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미 언데드에게 한 번 물린 탓에 제대로 거동조차 하기 힘들었다.
물론 독성을 가진 언데드는 아니라서 몸이 변이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상처가 심했다.
“누구 없소? 제발 구해 주시오!”
“여기에요! 살려 주세요!”
부상자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쓰러진 사람들이 꽤 됐다.
하지만 마수들로부터 그들을 지켜 줄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이윽고 한 무리의 광견들이 수풀을 헤집고 나타났다. 추가로 합류한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기동 능력을 상실한 일반인들을 보며 유유히 걸어왔다.
“아아악, 제발……!”
“살려 주세요!”
공허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광견들도 자신들의 확실한 우위를 실감했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리더로 보이는 광견이 고갯짓을 하자, 모두가 뒷다리에 힘을 바짝 넣으며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한데 바로 그때.
위이이잉!
갑자기 소환음이 들리더니, 광견들의 한가운데에서 일진광풍과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아아아!”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영상으로는 수도 없이 마주했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자신들의 코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
“폐, 폐하……!”
“폐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하늘이시여, 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흑흑!”
바로 자레드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