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92
제 292화
92장. 압도적인 힘으로! – 3화
“하찮은 인간, 그것도 약해 빠진 인간 암컷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하찮은? 암컷? 어디 만들다 만 붕어빵같이 생긴 마족 놈 주제에 감히 누굴 평가해?”
“내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미물들은 죽는다. 특히 암컷이라면…… 죽이기 전에 모든 것을 더럽힐 것이다.”
“혐오스러워. 네놈같이 더러운 놈을 쳐 죽이려고, 내가 지금까지 힘을 기른 걸지도 모르겠네.”
“뭐라?”
“덤벼. 마족인지 뭔지, 얼마나 잘났는지 그 실력 좀 보자!”
퉁! 퉁퉁!
레나가 힘껏 방패를 튕기며, 정면으로 마주 선 마족 라이츠를 도발했다.
서열은 88위로 높지 않으나, 애초에 마족이라는 타이틀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만의 마수와 마물들 중에서 선별된 99개의 존재만이 마족이 된다.
그리고 최상위에는 서열 1위의 마족, 마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일격에 죽여 주마!”
라이츠가 양손에 무겁게 든 도끼를 휘두르며, 레나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도끼 하나가 100kg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매우 무겁고, 살상 능력이 탁월한 무기였다.
“아아아, 레나 님!”
“위험합니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소리쳤다.
한눈에 봐도 마족임이 뻔히 보이는 라이츠는 레나보다 몸집만 두 배 이상이 큰 거구였다.
덩치에서도, 무기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하는 레나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투웅! 푸욱!
“커헉!”
방어와 반격이 순식간에 연계돼 이뤄졌다.
레나는 가볍게 별것 아니라는 듯이 도끼를 쳐 내고는 바로 들고 있던 검으로 라이츠의 배를 찔렀다.
물론 라이츠의 복부 외피가 두꺼운 탓에 복막을 찌르지는 못했지만, 제법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사이.
“키에에엣! 키엣!”
자폭 특성을 가진 마수들이 일제히 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생긴 것은 딱 코볼트를 닮은 개체로, 일전에 나스 대미궁에서도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몬스터였다.
“어림없지!”
퍼엉! 펑! 퍼펑!
수십 마리의 코볼트가 자폭을 목적으로 레나에게로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노림수는 통하지 않았다.
레나가 전면으로 방패를 힘껏 들고 사방으로 펼친 방어 역장이 그녀의 몸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괜히 애꿎은 코볼트만 폭발에 휘말려, 줄줄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도 버틸 수 있을까!”
이어서 라이츠가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며, 공격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거구의 몸을 빠르게 돌리며, 양옆으로 도끼를 들고 있으니 가히 살상병기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보여. 폐하께서 알려 주신 패턴이 보여. 그래, 나스 대미궁에서도 저런 형태로 공격하던 보스 몬스터가 있었지.’
레나의 눈빛이 번뜩였다.
나스 대미궁은 그야말로 최고의 교과서이자 참고서였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수많은 경험들이 현실에서 엄청 값진 정보가 됐다.
아무것도 몰랐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했을 라이츠의 공격도 레나에게는 빈틈이 보였다.
“…….”
레나가 숨을 죽이고, 라이츠의 움직임에 자신의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도끼의 회전이 만들어 내는 거센 광풍이 그녀를 거칠게 휘몰아쳤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약간의 연기도 좋다고 하셨어. 마족들은 오만하고 거만한 존재라고 하셨으니까.’
이어서 레나가 짐짓 놀란 체를 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어두워진 낯빛을 했다.
“크하하하! 인간들 따위가 감히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지옥으로 보내 주마!”
단순한 – 혹은 멍청한 – 라이츠가 더욱 속도를 높이며 레나에게 접근해 왔다.
주변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병사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방이 마수들로 둘러싸인 상황이라 그녀가 달리 어디로 도망갈 공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푸우우욱……!
제법 깊숙하게, 힘껏 무언가가 찔러 들어가는 듯한 금속성이 들렸다.
병사들은 레나의 죽음을 떠올렸다. 이 전선을 지키기 위해 보내진 어린 여전사가 제대로 손도 못 쓰고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역시…… 폐하가 옳았어!”
병사들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레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 어떻게? 내, 내가, 이, 이, 인간에게 일격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확하게 심장을 꿰뚫은 레나의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 라이츠의 모습을.
지이이잉!
이글거리는 오러 블레이드의 기운은 정확히 라이츠의 왼쪽 심장을 관통해서 창공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진보랏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반짝일 때마다, 심장을 관통당한 라이츠가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궁금하면 저승에 가서 알아봐. 너같이 하. 찮. 은 마족한테 말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촤아아악!
레나가 힘껏 검을 찍어 내렸다.
그러자 라이츠의 왼쪽 가슴에서 우측 복부까지 이어지는 사선의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끄륵.”
절명.
마족 하나의 생명이 그렇게 또 사라졌다.
* * *
장군 멍군의 연속이었다.
나는 계속 전장을 옮겨 다니며, 아군들을 지원했다.
마족을 발견하면 현장에서 전력을 다해 처치했고, 그렇지 않으면 전투에 참여하여 단기간에 화력을 퍼부어 주었다.
정말 몸이 열 개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날 필요로 하는 곳은 참으로 많았다.
특히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나와 헤이즈를 기쁘게 만든 것은 동료들이 보내온 승전보였다.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는 했지만 레나, 엘라, 라키스, 나오미, 클로이, 이자벨이 각각 하나의 마족을 처치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
물론 희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왕군의 핵심이자 예봉(銳鋒)인 마족을 제거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전선에 가면 서열 60위 이하로 분류되는 하급, 또는 최하급 마족이 있거나 아니면 마족이 아예 없다는 점이었다.
즉, 2위부터 59위까지 중, 상, 최상위권 마족과 마주친 경우가 없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뒤늦게 베르하드로부터 온 연락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통신(전파)을 방해하는 어보미네이션이 마왕군에게 있었던 것이다.
‘버리는 패에는 그런 수단이 없고, 핵심 전력 위주로 고급 전력을 편성한 건가.’
통신과 정보 전달은 매우 중요했다.
내가 전생에 살았던 현대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이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전령을 보내는 것은 구식이고, 통신석을 이용한 정보 전달이 최신식인데…… 마왕군이 그 연결점을 차단한 것이다.
예상했지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전력이었다.
“일단은…….”
나는 간이 전도를 펼쳤다.
그리고 승전보가 들려온 지역을 중심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내 동료들이 주로 승전을 거둔 곳으로, 나스 대륙 남서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편 패전보가 들려온 곳은 나스 대륙 남동쪽 일대로 발렌시아 왕국과 칸트라 제국이 있는 방향이었다.
“북쪽이 호각세인 듯하고.”
사전 조사에서 판단했듯, 북쪽은 생각보다 마왕군의 발호(跋扈)가 적었다.
결국 핵심은 남쪽 전선인데, 동서의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중이었다.
“확실하게 전의를 꺾으려면 마족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놈을 잡아야 해.”
좀 더 강한 놈을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처치한 마족들은 마왕군 입장에서도 충분히 버림패로 쓸 만한 녀석들이었다.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어쩌면 마왕 레크나트의 노림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의도적으로 하위 마족들을 집중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최정예 전력의 손실을 줄이는 방식.
‘게다가 놈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지.’
사실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레크나트가 아직 현신하지 않았다는 점.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카젤라의 실책으로 뭔가 일이 꼬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인과관계의 연결 고리가 어느 정도 생긴다.
시간을 적당히 끌면서 장기전을 유도한 후, 종국에 레크나트가 직접 나타나 다 쓸어버리는 그런 그림을.
한데 바로 그때.
-폐하!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사비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비오가 있는 곳은 북쪽 전선.
타타르 아일랜드와 가까운 곳으로 옛 크리비아 영지와도 매우 가까운 위치였다.
이미 한 차례 마족 없는 마왕군을 격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2차로 나타난 모양이었다.
“바로 가지.”
나는 사비오의 말에 즉시 응답했다. 그리고 격전을 치르느라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헤이즈를 깨웠다.
“헤이즈, 가야 한다.”
“네, 네, 네! 폐하! 네!”
“미안하다. 고생이 많아.”
“절대 그런 말 마세요! 고생이라 생각하실 것도, 미안해하실 필요도 없어요! 헤, 죄송해요.”
헤이즈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침을 아슬아슬하게 닦아 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스 대륙에 단 하나밖에 없는 디바인 나인의 치유사의 이 허당 같은 모습이라니.
긴장과 걱정의 연속인 전장에서 아주 잠시나마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죽음에는 밤과 낮이 없다.’
다시금 투지를 다졌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레크나트가 의도한 장기전이라면 더더욱.
휴식은 이 정도면 족했다.
나는 바로 헤이즈의 손을 잡고.
파아아앗!
전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북쪽이었다.
* * *
자레드가 현장에 도착한 시점에는 이미 일대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1차에 이어 2차로 나타난 마왕군이었고, 그 군세의 중심에 마족이 있었다.
쇄애액! 쇄액! 쇄애액!
녀석은 날카로운 칼날의 형태로 만들어진 양손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다.
당연히 희생된 것은 마족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들었던 다크 엘프 전사들이었다.
“드디어.”
상위 서열로 충분히 분류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
이런 마족들을 조기에 차단하고 제거해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사비오의 연락을 받고 바로 텔레포트로 이동해 온 것이지만, 이미 수십에 달하는 다크 엘프가 비명횡사를 한 후였다.
그만큼 마족 하나가 갖는 파급력과 살상력은 마수의 몇십, 몇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타트라 넥스 부대는 마족의 이동 경로를 적극적으로 차단한다! 그사이, 용맹스러운 전사들이 마수들을 제거한다!”
사비오는 자레드가 도착한 것도 모르고, 목청을 높여 가며 전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200기에 달하는 타트라 넥스가 다크 엘프 파일럿의 조종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에 나타난 마왕군의 군세도 결코 만만치 않은데다가.
든든한 방패막이로 가져온 어보미네이션이 무려 100기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아예 작정하고 ‘고기 방패’를 세워 마력탄을 막아 내니, 정밀한 타격이 쉽지 않았다.
“사비오, 저 마족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내 안전은 고려하지 말고 퍼부을 수 있는 모든 사격을 퍼부어 줘.”
“폐하!”
“사비오, 헤이즈, 뒤를 부탁해.”
“아앗, 폐하!”
“후우.”
딱 한 번 숨을 돌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자레드는 바로 주로프를 향해 쇄도했다.
개전 1일 차.
드디어 마왕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상위 서열의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쇄(粉碎)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