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7
제 87화
33장.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 – 1화
자레드가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를 구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타타르 아일랜드로 향하고 있을 무렵.
크리비아 대신전의 대신관 네오드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네오드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는지, 그를 곁에서 보좌하는 성녀 루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신관님, 하루 종일 고민이 깊어 보이시는데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혹시 대신관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번뇌라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자레드 영주로부터 들은 얘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이틀 전.
네오드는 밤에 은밀히 자신을 찾아온 자레드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사나레 지구에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가 묻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이를 찾아내면 사나레 지구를 공식 성지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백금 성배는 라디우스 교단에서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5대 성유물 중 하나였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5대 성유물로 알려진 성유물이 하나도 교단의 수중에 없다는 얘기다.
과거의 전쟁과 약탈, 그리고 도둑들의 손에 성유물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교단을 상징하는 성유물이 사라졌는데, 이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간 라디우스 교단은 정말 백방으로 신관, 사제, 성녀를 보내어 어떻게든 성유물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마치 상상 속의 동물처럼 성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난 30년 동안은 아예 소문조차 들리지 않았다.
한데 대뜸 자레드가 와서 성유물을 찾아내겠다고 하니,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성유물을 찾으면 우리 교단의 크나큰 축복이자 신의 보살핌이 아닐까요?”
루나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네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교단의 전력을 동원해도 찾지 못한 성유물을 어떻게 일개 영주가…….”
네오드가 말끝을 흐렸다.
자신도 모르게 자레드의 위치를 비하하듯 말을 꺼낸 탓이었다. 그가 빠르게 말끝을 수정했다.
“비록 실력 있는 영주이자 마법사이며, 공작이라고 해도 홀로 어찌 성유물을 찾아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찾아내면 성유물이 있던 장소는 성지가 되는 것 아닌가요?”
“맞다. 그 시간부로 성유물이 있던 장소는 대성지가 되고, 인근 지역 일대는 성지가 되지.”
“제국의 황제가 와서 목에 칼을 들이대도, 성지는 함부로 정해질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지. 성유물이 발견만 된다면, 교단은 만장일치로 그곳을 성지로 공표할 것이다.”
“저는 떨려요! 정말로 찾아내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제 평생의 소원이었던 성유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걸까요?”
“호언장담까지 하면서 떠났으니 준비를 하긴 해야겠지 싶구나. 우선 백금 성배에 대한 모든 자료집을 가져오너라. 그것부터 확인해야겠다.”
“네, 대신관님.”
“흐음.”
네오드가 침음성을 터뜨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과연 자레드가 성배를 찾아낼 수 있을까? 솔직히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루나만큼이나 네오드도 생전에 성유물을 꼭 보고 삶을 마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성직자에게 생전에 성유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축복이었다.
“제발. 꼭.”
네오드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신묘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백금 성배. 그것을 꼭 보고 싶었다.
* * *
그 시각.
‘새벽녘의 바다 위는 정말 무섭네. 조명이라고는 달빛 하나뿐이고, 밑의 바다는 온통 검게 보이는군.’
나는 타타르 아일랜드로 향하는 직선 주로를 잡고, 마그눔 해협을 횡단하고 있었다.
우리 크리비아 대영지의 최북단에서 타타르 아일랜드까지의 거리는 200km. 먼 거리는 아니었다.
‘성배를 찾아내면, 분명히 라디우스 교단에서 만장일치로 성지 결정을 할 거야. 그만큼 성유물에 목말라 있으니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교단을 대표하는 성유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그동안 라디우스 교단이 암흑 교단으로부터 정체성을 공격받는 제1 사유가 되어 왔다.
움브라 교단과 카코 교단은 각각 움브라의 흑색 수의(壽衣)와 카코의 두개골이라는 내세울 만한 성유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서두를 필요가 없어 성유물을 찾는 시점을 넉넉하게 뒤로 미뤄 뒀었지만.
사나레 지구를 성지로 만들 생각을 하면서 성유물 꼼수는 내게 꼭 필요한 선택지가 됐다.
‘라디우스 님, 혹시 저를 보고 계신다면 용서해 주시길.’
때아닌 고해성사를 하늘로 올려 보냈다.
보통 성유물이 발견된 곳을 성지로 지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찾으려는 백금 성배는 타타르 아일랜드에 있다.
다크 엘프의 터전인데 여기서 발견됐다고 솔직하게 공개해 버리면, 성지가 이곳이 된다.
사나레 지구를 성지로 만들려는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백금 성배를 구한 뒤, 사나레 지구로 돌아와서 이것을 미리 봐 둔 장소에 묻어 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짜잔! 하면서 대신관 네오드에게 묻어 둔 백금 성배를 보여 준다면? 완전 범죄 성립이다!
에서 성지로 지정된 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특전이 있었다.
첫째, 신의 가호가 성지에 발동되기 시작하면서 재해 및 전염병 확률이 75% 감소한다. 그것도 기간 한정이 아니라 영원히.
둘째, 성지로 분류된 영지의 정보창에 신성력 스탯이 추가된다.
이 신성력을 최대치로 달성하게 되면, 3개월간 축복이 내려 영지민의 노동 능력이 대폭 상승한다.
아울러 대신관, 사제, 성녀들의 신성력도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신성력 스탯을 채우기 위해서는 신전의 성직자들과 신전을 찾은 이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봉헌(奉獻)이 필요했다.
셋째, 성지가 될 경우 해당 성지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적인 축복을 내릴지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개발(농지)에 축복을 내릴 생각이었다.
개간할 황무지가 많았기 때문에, 일단 비옥하게 만드는 데 성공만 한다면 대량의 쌀농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넷째, 성지에 거주 중인 거주민들에게는 지속적인 감화(感化) 현상이 일어나므로, 영지의 일에 협력하고 충성하는 적극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렇게 네 개의 특전을 누릴 수 있는 만큼, 내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게다가 움브라 교단의 교세를 중간에 끊는 부수적인 효과도 누릴 수 있지.’
움브라 교단의 세력권은 크리비아 대영지 주변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한데 그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에 보란 듯이 신성 교단의 성지를 만든다면?
적의 심장 앞에 칼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암흑 교단에 확실한 경고도 될 것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력 스탯.’
성배를 발견하면 지금껏 스탯창에 빈 공간으로 있던 신성력 스탯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암흑 교단과 부딪힐 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게는 꼭 필요한 스탯이기도 했다.
“좀 더 고도를 높여 볼까?”
이내 내 몸은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상공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을 수놓은 별들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은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웠다.
실로 오랜만에 혼자만의 드넓은 공간을 누려 보는 해방의 시간이었다.
* * *
처억.
계속 해협을 횡단한 내가 타타르 아일랜드(Tatar Island)의 지면에 발을 처음 내디딘 것은.
동이 막 트기 전에 박명(薄明)이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여기도 골치 아픈 곳이지. 성마 대전이 발발하고 나서, 다크 엘프들이 마왕군과 협력하여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보통 마왕군의 협력자나 종족이라고 하면 인식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다크 엘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구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는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후.
다크 엘프는 수십 년간 유지해 온 인간들과의 해금(海禁)을 풀고,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한다.
덕분에 다크 엘프와 무역 교류를 하기 시작한 국가에서는 그들의 마도 공학 무기나 장치들을 대거 사들였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탐욕.
처음에는 우호 관계로서 그들의 발전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데 만족했던 국가들이 어느 순간 마음을 달리 먹었다.
목돈을 주고 장치를 사들이는 것보다, 다크 엘프를 복속시켜서 그 기술을 원천 흡수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머저리 국왕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인지, 이때 연합군을 편성해서 다크 엘프의 공격을 주도한 것이 바로.
이번에 난민을 그야말로 내 영지로 ‘던지기’를 해 버린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의 국왕이었던 것이다.
결국 다크 엘프들은 이들의 배신으로 인간에 대한 모든 신뢰를 접어 버렸다.
그리고 철저한 해금 정책과 함께 자신들만의 무기 연구에 박차를 가한 뒤.
성마 대전에서 가공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마왕군의 편에 서서 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타트라 넥스(Tatra Nex).
유저들 사이에서는 초월체라고 불리는 마도 공학 슈트의 등장과 함께 말이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사륵. 사르륵.
가볍게 흙만 밟고 지나가는 발걸음으로 나는 백금 성배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에서 성배를 찾던 시절.
매번 지도창에서 지도를 확인하기가 귀찮아서 아예 통으로 외우고 찾아다녔던 덕분에 위치에 대한 기억은 전혀 문제없었다.
성배가 묻힌 장소는 다크 엘프들의 거점과는 제법 거리가 먼 곳이었으므로, 그들과 마주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이쯤이었지. 그래, 진액이 유독 많이 흘러나오던 나무. 이 나무 바로 앞에 묻혀 있었어.’
나는 익숙한 기억을 더듬어, 바로 성배가 묻힌 장소 위의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만약을 대비해 뮤트 마법도 확실하게 걸어 두고, 아공간에서 꺼낸 삽을 이용해 온 힘을 다해서 지면을 팠다.
푹! 푹! 푹!
그렇게 얼마나 팠을까?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 [분류 등급 : 5성] [옵션 1 : 라디우스 교단의 5대 성유물 중 하나로 불리는 성배입니다.성배의 능력을 이용해 죽은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으나, 그 경우 성배는 완전 소멸합니다.] [옵션 2 : 성배를 물에 접촉하면, 고유의 치유 기운이 발산되어 물의 기본 성질을 치유의 성질로 변환시킵니다.
이 변환 작업은 무한히 영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성배의 신성력은 고갈되지 않습니다.]
“드디어.”
백금 성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기억하는 옵션과 내용 그대로였다.
게임에서는 1번 옵션에 적혀 있는 부활에 대한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았었는데.
현생인 지금은 보면 볼수록 그 단어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졌다.
저 말의 뜻은 무엇인가 하면.
죽어서 백골이 된 자도 살릴 수 있으며, 생전의 모습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완벽한 부활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성배를 막 집어 들고, 이어질 칭호 메시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
위이이이이이!
파공음과 함께 숲 지대인 이쪽으로 빽빽한 나무 사이를 가르며 날아드는 비행체가 하나 있었다.
“……타트라 넥스?”
그것은 다크 엘프가 만든 마도 공학 문명의 초절정 집약체!
바로 타트라 넥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