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8
제 88화
33장.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 – 2화
나는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발견이 빨랐던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사각지대로 숨을 수 있었다.
이왕이면 다크 엘프에게 내가 들렀다 갔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숨은 것이다.
초월체라 불리는 타트라 넥스, 약칭 타넥스(Tanex)가 무서운 이유는 하나다.
착용자의 신체 능력과 무관하게 타넥스가 초월체로서 엄청난 속도의 기동은 물론이고, 다양한 압박에 대한 적응을 돕기 때문이다.
의 경험대로라면, 타넥스 한 기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최상급 마정석이 하루에 최소 1개는 필요했다.
금화 가치로 따지면 하루에 1000골드이고, 전생의 가치로 환산하면 하루에 10억 원을 소모하는 셈이다.
출력을 보조할 마정석이 없다면 대안으로는 마력이 있었다.
100% 화력 충전을 위해 타넥스가 요구하는 마력은 총 2만.
지금 내 마력 스탯으로는 3번을 채워도, 여전히 출력이 모자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어? 시험 비행인가?’
한데 뭔가 이상했다.
타넥스를 보자마자 내가 나무 뒤로 모습을 숨긴 것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100%의 확률로 타넥스 안에는 파일럿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전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타넥스의 얼굴로 보이는 위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같았으면 탑승하고 있는 수려한 외모의 다크 엘프가 보여야 하는 상황.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거, 기회인가?’
생각해 보니 정식으로 타넥스가 에 등장하는 시점은 성마 대전 발발 후였다.
즉, 지금으로부터 9년 후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시제품을 운용하고 테스트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컸다.
타넥스는 다크 엘프 고유의 개발품이며, 그에 대한 지식 또한 그들만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절대 타넥스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타넥스를 가져가 연구를 직접 할 수 있다면?
전생에 타넥스를 다루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직접 보강하고, 알맞은 형태로 개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는 기연은 어떻게든 붙잡고, 오는 기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붙잡는 게 진리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타넥스가 있으면, 내가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극대화된 전투를 치르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내가 타넥스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동료들을 통해 활용하게 할 수도 있었다.
‘좋아, 그럼.’
결심을 마친 나는 미러 이미지 마법으로 환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녀석을 밖으로 보내자.
끼리릭.
타넥스의 몸체가 내 쪽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뛰어!’
나는 미러 이미지로 만들어 낸 분신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나를 쏙 빼닮은 녀석이 전력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모르스. 모르스.
다크 엘프의 언어로 세팅된 타넥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침입자를 죽이겠다는 그런 멘트겠지.
“…….”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러자 타넥스가 내 분신을 쫓아 신속하게 기동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이내 내가 숨어 있는 나무 옆을 지나가던 바로 그때!
화아악!
나는 아공간을 펼쳤다.
얼마 전 큰마음을 먹고 1만 골드를 투자해서 가로, 세로, 높이 10m로 확장한 아공간이었다.
다음 단계의 확장은 10만 골드를 소모하게 되는데, 그때는 전부 100m로 확장이 된다.
쑤우욱!
타넥스는 갑자기 나타난 아공간의 정체를 파악할 새도 없이, 그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내부는 진공의 공간이고, 내 의지와 사념이 완벽히 닿는 공간이다. 직접 볼 수는 없어도, 내부를 느끼고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다.
“좋았어.”
안전하게 타넥스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아공간 내부에 있는 아티팩트와 기타 물품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창에 타넥스에 대한 내용이 추가됐다.
[타트라 넥스(Tatra Nex)] [분류 등급 : 7성] [옵션 1 : 사용자의 기동 능력을 최대 5배까지 상승시키는 기동 보정을 적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체에 실리게 될 과부하와 압력은 초월체가 받아 냅니다.] [옵션 2 : 마력탄 – 마력을 고강도로 응축시킨 마력탄을 총 7개의 캐논을 이용해 발사합니다.] [옵션 3 : 절대 체력 – 출력이 100% 충전된 상태 기준으로, 타트라 넥스는 체력 1천의 절대 체력을 갖습니다.] [옵션 4 : 마정석 보수 – 마정석으로 손실 부위를 보강할 수 있습니다. 단, 코어가 파손된 경우에는 장인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옵션 5 : 초월 연계 – 탑승자의 모든 기술과 스킬을 별도의 변환 과정과 딜레이 없이 즉시 연계할 수 있습니다.] [옵션 6 : 봉인 상태 – 해제 불가. 해제를 위해서는 개발자 사비오(Sabio)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옵션 7 : 봉인 상태 – 해제 불가. 해제를 위해서는 개발자 사비오(Sabio)의 승인이 필요합니다.]‘역시! 다크 엘프의 마도 공학자로 이름을 날린 사비오의 제작품이 맞았군.’
모든 것이 내 기억과 일치했다.
일단은 최우선 목표였던 성배를 손에 넣었고, 때아닌 기연으로 초월체까지 손에 넣었으니 소기의 목적을 200% 달성한 셈.
나는 빠르게 타타르 아일랜드를 벗어나기로 했다.
다크 엘프는 여전히 외부에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종족이다.
그들과 마주쳐서 좋을 게 없었다. 아울러 초월체 한 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더더욱 분노할지도 모른다.
파팟! 팟! 팟!
텔레포트 마법을 전개하며, 빠르게 숲을 빠져나갔다.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으로.
* * *
그로부터 30초 후.
스르르륵.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던 나무 위에서 다크 엘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 망토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모습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하곤 했다.
“재밌겠어.”
다크 엘프가 혀끝으로 입술을 훑으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레드가 사라진 자리를 지켜보았다.
“타트라 넥스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허점을 이용해서 아공간에 넣어 갔다? 보통내기 인간은 아니네. 심지어 우리 땅까지 들어왔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야.”
터업!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다크 엘프, 사비오는 자레드가 남기고 간 흙구덩이를 보았다.
애매한 사각지대가 있었던 터라, 자레드가 무엇을 파내어 가져갔는지까지는 보지 못했다.
“뭐, 숨겨진 보물 정도 되려나?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됐고. 과연 파일럿으로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데…….”
삑. 삑삑. 삑.
사비오는 주머니에서 꺼낸 소형 장치로 만들어 낸 홀로그램 화면에서 버튼을 분주하게 눌렀다.
그러자 장치 옆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타트라 넥스 1호기.
-이 시간부로 파일럿의 모든 기동 정보와 패턴, 동기화율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송합니다.
“좋아. 이 정도면 됐어. 다크 엘프 중에 적임자는 없었으니, 어쩌면 인간 중에 쓸 만한 인재가 있을지도? 심지어 5클래스 이상의 마법사잖아?”
사비오는 사라진 자레드가 사용한 텔레포트 마법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 남자가 무슨 일로, 여기에, 은밀히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오랜만에 재미있는 연구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랄라라. 랄랄라.”
사비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연구실을 향해 멀어져 갔다.
지난 수년간 공들여 제작한 초월체를 잃어버린 개발자의 반응이라 하기엔 너무도 차분하고 평온한 반응이었다.
* * *
“이제야 마음 놓고 보네.”
왔던 길을 되돌아 마그눔 해협 위를 횡단하는 길.
나는 급히 타타르 아일랜드를 빠져나오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칭호와 관련 메시지를 살피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성배를 획득하여 신성력 스탯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시간부로 스탯창에 신성력 표기가 추가됩니다.] [칭호 ‘최초로 성배를 발견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신성력 100을 획득하였습니다!]단숨에 신성력이 100이 올랐다.
신성력의 활용도는 간단하다.
악(惡)이나 암(暗) 성향의 적을 상대로 마법이나 검술에 부여한 신성력 수치만큼의 퍼센트(%) 추가 대미지가 들어간다.
만약 신성력을 정확히 100 사용했다면 100%, 그러니까 총 대미지가 2배가 되는 것이다.
900을 사용한다면 900%, 총 대미지가 10배가 되는 셈이다.
나스 대륙은 넓고, 암흑 교단은 물론이거니와 악 성향의 몬스터를 만날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신성력 스탯은 매우 중요했다. 앞으로 반드시 키워야 할 이유도 동기도 분명하고.
‘나는 정말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게다가 타넥스로 말미암아 이제는 날개를 양쪽 어깨에 단 셈이 됐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난민의 정착도 단계적으로 잘 진행되는 중이었고, 우려했던 돌발 상황이나 대형 범죄도 없었다.
‘7클래스 정도까지는.’
경험에 따른 계산으로 7클래스의 마법사 정도까지는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계산이 섰다.
클래스의 절대적인 수치로는 당연히 두 단계 아래지만, 트랜센던스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월체 타넥스를 이용한다면, 능히 7클래스 마법사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듯했다. 장기전으로 가면 다소 불리해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다음의 목표를 고민한다면……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이지.’
나는 다음 정복 전쟁의 상대로 두 왕국을 떠올렸다.
수준 미달의 국왕 둘이 떡하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두 나라.
이 둘은 당장의 목표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꼭 정복하고 싶었다.
‘일단은 난민 정착에 올인. 다른 건 다음에 생각하자.’
나는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목표 설정도 좋지만, 지금은 가장 큰 이슈가 있지 않은가?
사나레 지구가 안정되기 전까지 전쟁은 둘째 치고, 다른 국가를 자극하는 일은 일체 삼가야 한다.
‘좋아. 이제 성지 꼼수를 쓸 때가 얼마 남지 않았어.’
품에 꼭 안고 있던 라디우스의 백금 성배를 열심히 쓰다듬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투박하고, 때가 많이 묻은 성배인데, 이 녀석이 거대한 교단의 뜻을 단번에 움직일 수 있는 성유물이라니 참으로 신기했다.
‘성지의 중심이 될 곳은 사나레 지구의 중앙에 있는 마르가리타 호수(湖水)다.’
맑은 물이 흐르고, 주변을 둘러싼 자연경관이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호수 마르가리타.
나는 이 호수의 중앙 바닥에 성배를 놓아둘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이곳은 순례자의 지친 마음과 육신의 상처를 치유해 줄, 거대한 치유의 샘이 될 것이다!
* * *
그날 밤.
“대, 대, 대신관님! 대신관님!”
백금 성배에 대한 자료를 요약하여 정리 중이던 네오드는 맨발로 다급히 달려오는 루나의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설마…….”
정말 자레드가 말도 안 되는 불가능을 극복하고 성유물을 찾아낸 것인가?
달려오는 루나의 모습을 보는 네오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이내 루나가 신전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레드 공작님께서 드디어! 정말로! 우리 교단의 성유물을! 성배를 찾아내셨다고 해요!”
“그, 그게 정말이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나가 방금 전달받은 영상 장치를 신전 내벽을 화면 삼아 틀어 보였다.
그러자 마르가리타 호수의 수면 아래를 촬영한 영상 장치의 화면 속에서.
찬란한 광휘를 뽐내는 성배가 보란 듯이 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설마가 현실이 됐다.
라디우스 교단이 수십 년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성물을 자레드가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감격, 차고 넘치는 격한 감격!
“끄르르륵…….”
네오드는 그만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