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9
제 89화
34장. 위기를 기회로 – 1화
이튿날 아침.
“도대체 이것을 어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자레드 공작님은 라디우스 님께서 내리신 대리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성배를 홀로 찾아내셨을 리가 없습니다!”
“신의 축복이야.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님에게 라디우스 님께서 친히 축복을 내리신 거야! 아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신께서 내린 대리자의 광휘인가?”
“……그냥 발견자 정도로 해 주시죠. 대리자니 뭐니 하는 말은 낯간지럽습니다.”
자레드는 감탄으로 시작해서 감탄으로 끝나는 성직자들의 반응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교단에 귀의한 신앙인으로서 성유물을 맞이하는 느낌이 남다른 것은 알겠지만, 지나치게 본질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어서다.
“이 성배가 마르가리타 호수의 심부(深部)에 박혀 있었고, 공작님께서 이를 찾아내셨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 잠시 가지고 올라온 것이고, 원위치에 가져다 놓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배가 있던 정확한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 위치, 공작님께서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어디에 성배가 있었는지를 알아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확실히 알겠군요. 뜻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이건 한 치도 의심할 가치가 없는 완벽한 성유물입니다. 라디우스 님께서 빛의 자식에게 남기신 위대한 성유물이 확실합니다.”
“아아아……!”
대신관 네오드가 확정 선언을 하자, 곁에 있던 성직자들이 하나같이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중에는 성녀 루나를 포함, 아예 엎드려서는 오열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신앙인의 삶을 살아 본 적은 없지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레드는 멋쩍은 웃음으로 눈물바다가 된 현장 분위기를 넘겼다.
“공작님, 잠시 이쪽으로.”
그때, 네오드가 자레드를 잠시 다른 이들과 떨어진 곳으로 불렀다.
“좀 더 편한 방법을 쓰죠.”
네오드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은 자레드가 트리플 뮤트 마법을 사용했다.
트리플 트랜센던스로 삼중 강화한 방음 역장이었기에 대화가 새어 나갈 확률은 제로였다.
“아, 제가 잊고 있었군요. 공작님께서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님임과 동시에 5클래스 마법사라는 사실을.”
“많이들 잊으시더군요. 사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마법을 잘 쓰지 않으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노고는 무슨. 그저 운이 좋아 호숫가를 거닐다가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호수의 물에서 치유의 능력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영원히 몰랐겠지요.”
자레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실상은 타타르 아일랜드에서 장거리 공수를 해 온 성배지만, 그럴듯한 스토리로 연기를 하다 보니 제법 이야기에 살이 붙었다.
“새벽에 트란실리아 제국에 있는 라디우스 시국(市國)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습니다. 제 감정을 통해서 성배의 진위 여부가 판별되면, 그 즉시 해당 지역을 대성지로 선포하고 인근 지역을 성지로 선포할 수 있게 됩니다.”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아까 판단이 끝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부로 마르가리타 호수와 그 일대는 대성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지는 어디까지입니까?”
“마침 영주님께서 시기적절하게 난민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권 일대를 사나레 지구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셨더군요.”
“맞습니다.”
“사나레 지구가 바로 성지가 될 겁니다. 사나레 성지 말입니다.”
“오……!”
자레드가 탄성을 터뜨렸다.
혹시나 사나레 지구의 절반만 인정을 받거나, 그 이하가 아닐까 노심초사했는데!
라디우스 시국의 교황(敎皇)이 첫 성물의 발견지이기도 하니 통 크게 지역 일대를 성지로 지정하도록 허락해 준 모양이었다.
“성하(聖下)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자레드 공작님께 주신의 찬미와 영광이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라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온몸에 축복이 가득 내리는 기분입니다.”
자레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말은 정말로 씨가 됐다.
[대신관 네오드를 통해, 교황 아르모니아 17세의 진심이 담긴 축복을 전달받았습니다!] [신성력이 50 증가합니다!]‘신성력은 분배 포인트로는 절대 올릴 수 없는 스탯. 포인트 하나하나가 소중한 마당에 50이라니! 횡재했네.’
자레드가 쾌재를 불렀다.
역시 교황은 교황이다 이건가?
말 한마디에 진정한 신성력을 담아 보낼 수 있을 정도라니. 새삼 신앙의 힘을 실감하는 자레드였다.
“가까운 시일 내에 성하께서 직접 이 성지에 방문하실 것입니다. 이곳은 암흑 교단과 그리 멀지 않은 성지로 위치가 갖는 의미가 실로 크다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움브라 교단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는 돌출부의 위치이기도 하죠.”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렸던 바이기도 했다.
아울러 이렇게 판을 짜 놓아야, 라디우스 교단이 성지에 더 신경을 써 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물론 네오드 앞에서 이런 계산에 대해서는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략 전술에는 맹인처럼 눈이 매우 어두운 사람들이니까.
“이 서약서에 서명을 해 주시면 성하의 승인 아래, 사나레 성지는 대륙 전역의 라디우스 교인들이 제1 성지로 모시는 곳이 될 것입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까?”
자레드가 확인차 물었다.
이미 영지의 성지화에 대해서는 에서 경험해 알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의 변수라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성지의 교세를 다른 교단으로 대체하려 하거나, 대신전을 핍박하거나, 간교한 수단으로 성배를 강탈하려 하실 때에는…….”
“교단을 포함해, 라디우스 교를 국교로 삼는 모든 국가와 전쟁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이겠군요.”
“정확하십니다.”
“그 세 가지 경우를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영지민의 신앙생활을 독려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저희 신전에서 전력을 다해, 영주님에게 큰 힘이 되어 드릴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입니다. 외세의 침공에도 대비할 것이고요.”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자레드는 미리 준비해 온 만년필을 꺼내,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러자 네오드가 감개무량한 표정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자레드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 서약서는 사실 모든 대신관이 신전에 파견을 갈 때마다 들고 가는 서약서지요. 자신이 간 곳에서 성유물이 발견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네오드는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남자를 안아 주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아 하는 자레드지만, 그래도 그를 꼭 안아 주었다.
올해로 쉰이 되었다는 네오드.
자레드의 나이보다 24살이나 많지만, 우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진해 보이기만 했다.
“사나레 성지를 나스 대륙 전체에서 신을 향한 축복과 찬양, 찬미가 끝없이 흘러넘치는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거듭 감사드립니다, 공작님.”
네오드가 자레드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세인(世人)들에게 좀처럼 큰 예를 갖출 일이 없는 대신관으로서는 꽤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네오드가 자레드에게 갖는 감사함은 한없이 컸다.
그에게 직접 얘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시국에서는 자레드를 성자로 추대하자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교황 아르모니아 17세가 자레드의 발견을 기뻐했다는 것이다.
“곧 대신전 건립을 위한 전담 부서를 개설하고, 관련자들을 배치하겠습니다. 실무 협의는 총행정관인 율리안과 상의하시면 됩니다. 비용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멋진 신전을 지어 드릴 테니까.”
“…….”
네오드는 그저 말없이 다시금 흐느낄 뿐이었다. 확실히…… 감수성이 풍부한 모양이다.
* * *
네오드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마르가리타 호숫가를 따라 조용히 걸으며, 바뀐 영지의 상태를 재확인했다.
[서약서의 효력이 발동됨에 따라 사나레 지구가 사나레 성지로 개편됩니다!] [사나레 성지는 크리비아 영지와는 별도의 창으로 관리되며, 이를 성지창이라고 부릅니다.] [내용을 확인하시겠습니까?]성지창이라고 해 봤자 딱히 다를 것은 없다. 기존 영지창의 내용에서 신성력 파트가 추가되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성지창’이라는 명칭 자체가 너무 특별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확인.’
라디우스 교단을 후원하고 있는 일부 신들의 높은 관심을 받게 되며, 그들은 성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합니다.]
‘성지 자체가 갈 길은 머네. 내정도 밑바닥에서 시작하다 보니 사실상 걸음마 수준이고.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는 신들의 관심이라는 건데.’
이 세계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신은 많다.
내가 전생에서 과로사 하고, 현생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도…… 분명 어떤 신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하급, 중급, 상급, 초월, 네 종류 중에서 어떤 부류의 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왕이면 초월의 신이었으면 좋겠는데, 단서가 하나도 없으니 알 방법은 없다.
‘후아! 나스 대륙에서 가장 교세가 강한 라디우스 교단의 제1 성지라니! 앞으로 개발만 잘해 두면, 돈은 거의 쓸어 담는 수준이겠어. 이 정도면 좀 더 큼지막한 프로젝트를 준비해도 되겠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위기가 하나의 기회가 됐다.
물론 예상했던 위기였기에 현명하게 대처해서, 더 큰 기회로 바꾼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그냥은 안 넘어갈 그놈이겠지.’
장밋빛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려던 나는 이내 이성을 되찾고, 현실을 직시했다.
누구보다도 사나레 지구가 성지가 되는 것을 가장 아니꼽게 여길 사람.
클루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 녀석이라면 편성된 조직의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성지에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이참에…… 이 칭호도 수집해 봐?”
나는 칭호창에 있는 목록 중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칭호의 명칭과 달성 효과를 보았다.
[칭호 : 천인 베기 – 어둠 사냥꾼(Night Hunter)] [암흑 교단을 추종하는 신도 조직원, 교단의 신앙인, 간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원을 참살하여 영혼의 파편을 수집합니다. 첫 번째 목표는 천인(千人)입니다.] [달성 시 효과 : 아티팩트 ‘악마 유희’를 획득합니다.]‘악마 유희.’
나는 아티팩트의 이름을 다시금 곱씹었다.
악마 유희.
죽이는 악마 – 악 성향의 인간을 포함 – 의 수만큼 일정량의 스탯을 얻게 되는 7성급 아티팩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