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
“이상하군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우연 아닐까요? 소울 커맨더스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실력 격차가 많이 나도 초보자가 고수를 이길 수도 있는 게임이니까요.”
“권보람씨는. 지금 정말로 그 시간강사가 보여준 실력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20년이 넘게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하던 사람이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죠.”
사실 그렇다. 소울 커맨더스에서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그 의견은 비서로서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권보람씨의 의견입니까?”
“비서로서의 의견입니다.”
“그러면 듀얼리스트로서 권보람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엄청난 실력자입니다. 플레이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고, 판단도 거의 미스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단 한 장의 튜닝만으로 덱을 완성시켜 버렸습니다. 지금 아카데미의 학생들 가운데 이미 「꽃잎 토큰」덱을 쓰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바닥에서 솟아났을 리는 없겠죠.”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실력이 진짜라고 한다면···그 오랜 시간 동안을 자신의 실력을 숨겨 왔다는 뜻이 된다.
“그의 존재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입니다. 앞으로 저희의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변수를 배제하는 것이 옳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카이사르는 주사위를 던졌지만, 가장 좋은 것은 주사위조차 던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이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배제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저도 듀얼이 끝나갈 때 전익현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듀얼이 끝나갈 때쯤. 전익현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여한 설에게 그녀의 잘못된 플레이들을 지적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녀의 자퇴를 구태여 막아냈습니다. 자퇴를 막든 말든 그에게는 어떤 위해도 없을 텐데 말이죠.”
“···만약에 듀얼에라도 이겼다가는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요?”
“여한설의 할아버지가 조폭을 고용한다거나?”
말하고도 권보람은 스스로도 웃긴지 웃었다. 고작 돈 몇 푼에 움직이는 조폭따위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듀얼리스트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왜 굳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아마. 여한설의 가능성을 본 거겠죠. 이대로 그녀가 자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감정 때문이었을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천성이 교사이기 때문이겠죠.”
교사. 지금에 와서는 교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초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만 본디는 남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받는 취급은 천차만별 그 자체이지만 크게 본다면 교수도, 시간강사도, 선생님도, 모조리 다 교사인 것이다.
“저는 오랜 시간 교단에 있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의 가능성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열정에 때때로는 사로잡힙니다.”
“그 열정 때문에 본 실력을 드러냈다는 거군요.”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유다.
“그만큼 열정적인 마음이라는 것일지도요. 게다가 안티 룰로 엄청난 가격들을 자랑하는 카드 가운데서 가장 가치가 보잘것없는 ‘욕망의 단지’를 가져갔죠.”
“굳이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안티 룰을 제안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일종의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거겠죠. 상처가 있으면 교훈은 크게 아로새겨지는 법이니까.”
권보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카드들을 꺼낼 때마다 보였던 탐욕스러운 눈은···.”
“여한설이 얼마나 성장하는지 보고 싶다는, 원석을 보는 장인의 눈이었겠죠.”
이제야 그가 보이던 기묘한 행동들이 모조리 이해가 된다. 교사 그 자체인 사람을 의심하고 제거할 뻔하다니.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아무튼. 그런 교육열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 없다. 는 거겠군요.”
“정답입니다. 그는 저희의 조커 카드가 될 겁니다.”
이현일은 빙글빙글 웃었다.
***
평범하지 않은 하루였지만 아카데미를 나오고서는 그나마 평범한 마무리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카드를 내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기 위해서도 카드를 내고
집에 도착해서도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카드를 내는.
그런 평범해 보이는 마무리였다.
이 모든 카드들이 신용카드가 아니라 소울 커맨더스 카드만 아니었으면 정말 만족스러웠을 텐데.
집에 가고 싶다. 흑흑.
##두 번째 듀얼(1)
첫 수업이 끝난 다음 수업 시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역시나 수업을 듣는 학생 수의 변화일 것이다. 처음 수업은 8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밀지 마!”
“옆으로 좀 가세요!”
“아니 진짜. 수강인원 짠 사람 누구야? 강의실 크기에 맞게 해야지!”
강의실 전체를 메우다못해 터져나갈 지경이다. 내가 여한설을 이겼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 그것도 「꽃잎 토큰」을 사용해서 이겼다는 소문이 돈 덕분이다.
그 덕분에 1학년 수업.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들어야 하는 하드코어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수업시간 전인데도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뛰어납니다. 」
「추가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10p)」
사람이 이렇게 복작거리는 것이 취향은 아니지만. 포인트를 준다면 이 정도쯤이야. 나는 만족스럽게 칠판 앞에 가 섰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야 나도 포인트 빨이하는···아니, 수업하는 맛이 난다.
“자.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보다. 강의실이 너무 작습니다!”
방금 불평을 터트린 여학생의 이름은 남연철. 아카데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중 한 명이다.
사용하는 덱은 「고철 로봇」덱이다. 지금은 그리 강력한 테마가 아니지만 이후부터 지원을 받아 강해지는 덱이다.
그거 외에도 뭔가 중요한 설정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손봐야 될 부분은 스토리가 아니었던 탓에 그다지 신경을 기W이지 않았던 탓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토리 보드라도 좀 잘 읽어놓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강의실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래도 시간강사이다 보니 주는 대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어.”
“아. 그럼 이렇게 한 학기 내내 수업을 들어야 된단 말이야?”
“곧 더워질 텐데. 망했네.”
「학생들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습니다. (+0p)」
안 돼!
“하.”
누구나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길다란 한숨의 주인공은 여한설이다. 제일 앞 자리. 그것도 제일 중앙의 자리를 차지한 걸로 봐서는 수업 시작전 가장 빨리 온 모양이다.
“서민들은 이런 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건가?”
“다른 해결책이 없으니. 조금 참으면서 해야지.”
내가 왜 참아야 하지? 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는 마법의 도구라도 되는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띠리리.
한 번 착신음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어. 할아버지. 난데. 지금 수업을 듣는데 학교에서 수강실을 너무 작은 걸 줬어. 어. 어. 그래. 맞아. 강의실이 너무 작아. 알았어.”
뚝.
그 전화로부터 1분이 지난 뒤.
“와. 대박.”
“강의실이 아니라 거의 운동장인데?”
우리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넓고, 크고, 시설이 잘 갖춰진 강의실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진짜 마법의 도구였네. 그 휴대폰.
“···누구한테 전화한 거냐?”
“할아버지한테. ···요. 할아버지는 내 부탁을 잘 들어 주거든. ···요.”
진짜 돈이 좋긴 좋네. 환기시설도 좋고 초여름인데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있다. 조명도, 책상도 윤이 난다.
대박 좋다.
원래 강의실을 사용해야 했을 교수가 문 밖에서 원망스런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왜 날 노려보는 건데? 강의실 뺏은건 내가 아니라 여한설인데.
아무튼. 이 정도 크기라면 수강 인원을 두 배는 더 받을 수 있겠군. 포인트얻기가 더 쉬워지겠는걸.
“자.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이전에 비해 수업을 하는 내 태도나 방식. 혹은 내용이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물론 사람이 좀 많이 늘었던 만큼 조금 더 집중해서 수업을 하기는 했지만 엄청나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열의가 매우 뛰어납니다! (+15p)」
「학생들이 매우 열정적입니다! (+10p)」
그런데 벌리는 포인트는 천지차이다. 며칠 전에 나에게 없던 권위가 생긴 덕분이리라. 이 맛에 사람들이 간판 따자고 죽자사자 사는 거겠지.
···오늘 카드팩을 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두 번째 수업을 시작했다.
***
“···아직까지는 그렇게 특별할 건 없네.”
남연철은 수업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구태여 이 수업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입학 시험에서 이겼던 여한설이 수업 시간에 엉망으로 깨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입학 시험에서 그녀에게 졌던 것은 그 날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과, 여한설의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과 그녀의 본래 덱이 아닌 덱을 썼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진 건 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고르디우스」의 멤버인 것을 숨겨야 했다. 오히려 지는 게 자연스럽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신입생이 교수에게 덤벼들었다가 지는 것은 아카데미 입학 초의 흔하디흔한 관례였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기 마련이고, 「각성」한 교수를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을 하기에 충분하니까.
하지만 패배한 학생이 여한설이고, 패배한 덱이 싸디싼 덱이라면 말은 조금 달라진다.
여한설은 남연철이 속해 있는「고르디우스」의 영입순위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실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직까지 각성하지 못했기에 저평가받는 것일 뿐.
‘특히나 그 돈 쳐바른 덱은···강해.’
각성을 하지 못해 속성이 결정되지도 않은 주제에 있는 대로 돈을 다 써서 만든 덱.
그런 덱이 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그녀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채 전익현이 이전에 썼던 꽃잎 토큰 덱을 꺼내들었다. 덱에 놓여져 있는 카드의 순서는 전익현이 받아서 했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순서다.
그녀는 전산망을 해킹해서 얻은 영상을 몇 번이나 봤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전익현이 매 순간 했던 선택들이다.
소울 커맨더스에서의 승패는 반드시 실력순이 아니다. 실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승자가 더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패배했더라도 얼마나 완벽한 선택을 했느냐다.
그녀는 카드를 드로우해 나가며 전익현이 해 왔던 선택들을 다시 되짚었다.
첫 턴에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두 번째 턴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세 번째 턴은 여덟 가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선택들.
물론 덱을 꽤나 굴려본다면. 이를테면 천 번쯤 굴린 후라면 이 선택지에서 올바른 선택지들을 찾아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익현은 거의 처음 만지는 것이 분명한 덱일 텐데도 능숙하기 그지없게 정답의 문만을 찾아 선택했다.
장고長考가 존재하지 않는 우아하기 그지없는 덱 운용. 몇십 번이나 영상을 돌려본 그녀는 전익현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력을 인정하고 나자, 당연스럽게도 흥미가 생겼다.
‘할 수 있다면 붙어 보고 싶은데.’
그녀는 아카데미에 등록되어 있는 자신의 덱이 아닌, 품 속에 숨겨 놓은 자신의 진짜 덱을 만지작거렸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볼까.”
멤버들에게 부탁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듀얼(2)
「현재의 잔여 포인트는 1070p입니다.」
“크흐으. 이거지.”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포인트를 확인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한 번 수업한 것만으로 10팩 분량의 포인트가 쌓였다. 설명에 따르면 이 포인 트는 단순히 카드팩으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상점에 가서 카드팩을 살수 있는 일종의 ‘재화’로 표시되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정상적으로 값을 지불하고 카드팩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나.
그렇다는 건 카드팩 뿐 아니라 다른 방식. 이를테면 구매와 같은 것에도 쓸 수 있는 재화라는 뜻이다.
생각보다도 쓸데없는 데 섬세하네. 그냥 구매버튼 하나 눌러서 만들어지게 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아무튼 이 쓸데없이 현실적인 설정 덕분에 지금 나는 지옥철이나 다름없는 2호선을 타고 카드팩을 살 수 있는 매장에 가고 있는 중이다.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살 수 있기는 했지만··· 내가 찾는 카드팩이 없었다. 내가 지금 사려고 하는 카드팩은 소울 커맨더스의 첫 팩인 「맥동하는 영혼」이다.
거의 절판된 카드팩인 탓에 사기 위해서는 발품을 좀 팔아야 한다고 했다. 이 따위로 귀찮은 설정을 하나하나 다 게임에 밀어넣었다면 망하기 딱 좋을 텐데.
그냥 앉아서 아카데미에 「맥동하는 영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겠지만···그랬다가는 절판되고 나서 필요한 카드를 못 구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흔들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으니 들으려 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고르디우스 영상 또 올라왔더라?”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다. 설령 엿들었다고 쳐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살 수 없는 내 불쌍한 형편 탓이니 사회의 잘못인 것이다.
“어제는 발전소를 점거했던데. 그것 때문에 정전까지 일어났잖아.”
“다음번에는 대체 어디를 습격할지 불안해.”
고르디우스라. 뭐 하는 단체였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머릿속에서 이거다 하고 떠오르진 않는다. 애초에 내가 맡은 건 스토리쪽도 아니었을 뿐더러 스토리는 나에게 있어서 그리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충대충 스킵한 탓이다.
RPG게이머가 들으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TCG 게이머란 것 자체가 스토리는 그다지 관계없어하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다.
음.
뭐. 별 일 없겠지. 보아하니 고르디우스란 테러 그룹이 습격하는 것은 발전소나 공관서 등의 장소들이다. 놈들이 나 같은 시간제 강사를 습격하고 앉아 있을 정도로 한심한 놈들은 아닐 테니.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저 멀리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기사를 보는 마음을 한 채 나는 자리에 앉아 블루투스 이어폰의 가격을 검색해 보고 있었다.
쿠팡에 나와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의 최저 가격은 커먼급 카드 1.2장이었다.
비싼건지 싼 건지 모르겠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