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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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다양하기 그지없는 매장들이 들어차 있는 소비의 거리. 밤의 강남은 그 화료한 전조등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있던 세상 이야기다. 물론 여기도 많이 다르지는 않다. 최소한 사람들의 수는 예전과 그대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게들이겠지.
지금 내가 와 있는 강남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모조리. 죄다. 카드 가게들이다.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나는 거리의 중심부에 모여있는 가게들에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카드팩 찾으시나요?”
“「맥동하는 영혼」. 있나요?”
“맥동하는 영혼은 오래 된 팩이라 지금 저희 매장에서는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 상위 호환인 이 카드팩은 어떠세요?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인데.”
“아뇨. 괜찮습니다.”
하긴. 잘 나가는 매장 입장에서 찾는 사람도 거의 없는 옛 카드팩을 살 이유가 그다지 없겠지. 몇 군데의 가게를 더 돌아다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뭐.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상태였다.
나는 역에서 거리가 먼. 그러니까 후미진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가게들의 퀄리티가 빠르게 떨어진다.
계속 걸어가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문을 열고 있는 가게들고 거의 없다. 카드 가게라고 있는 곳이 거의 문방구 수준이다.
[한마 문방구]···가 아니라 진짜 문방구였네. 여기서 며칠 살지도 않았는데 문방구와 카드가게도 헷갈린다. 아무튼 오히려 좋다. 이런 곳에서 오래 된 팩이 악성재고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는 문방구 안으로 들어갔다.
“카드팩 있나요?”
“카드팩 있지. 아무거나 골라 보쇼.”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긴다. 초등학생 때 카드팩 사던 어린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계산대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카드팩 모음들. 그래. 카드팩은 이렇게 팔아야지. 라는 생각이 잠시간 들었다.
아무튼, 있다.
「맥동하는 영혼」
다른데서 찾아볼 수도 없던 부스터팩이 여기에는 뭉텅이로 있다. 대략 20팩가량. 좀 아쉽다. 살 수만 있다면 20팩을 다 사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반값으로 깎아달라고 할까. 생각해 봤지만 아마도 어림없는 소리일 것이다.
“이거. 사겠습니다.”
“···잠깐. 기다리도록.”
특이한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르고 있는 신원미상의 코스프레맨이. 쪽팔린 줄도 모르고 문 앞에 서 있었다.
***
「고르디우스」의 가면을 본 자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놀라서 신고하려고 하던지, 혹은 전투태세를 갖추던지.
그러나 눈 앞에 있는 시간강사의 반응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왜? 무슨 일인데?”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반응. 누가 봤다면 고르디우스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반응이라고 착각할 법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강사까지 하는 인간이 고르디우스를 모를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역시. 범상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은둔고수? 혹은 허세? 아니면 무던한 자?
‘모조리 아냐.’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워나가던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제 3 세력.
머릿속에 빠직하고 퍼즐이 맞춰진다. 시간강사라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실력.
숨길 수 없는 생각의 속도. 덱의 튜닝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보이는 경계심이라곤 하나 없는 모습까지.
그도 신분을 숨긴 실력자였던 것이다.
자신처럼.
‘그렇다면··· 이 가게도 평범한 가게는 아니다.’
문방구라는 간판또한 시선을 피하기 위한 위장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미행이 들통났을 가능성또한 존재한다. 아니. 확실하다.
“새벽녘에게 전파. 위급상황.”
[무슨 위급상황을 말하는 거지?]“우리들을 감시하는 인간이 있다. 단수. 혹은 복수. 확인되지 않지만.”
[그게 무슨 소리야? 감시당하는 낌새는 전혀 없는데?]“아마···실력이 뛰어난 자인 모양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엄청난 실력이로군.]“만약···내가 나오지 못한다면 그대로 퇴각하도록.”
[수신 완료.]동료에게서 온 무전을 확인한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새벽녘」의 추적 실력은 초일류다. 아무리 감시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그의 레이더를 완벽하게 피하다니.
결코 만만한 집단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눈 앞의 인간.
전익현.
자신을 여기까지 끌어들인 인간이다.
자신에게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에 끌어들인 것일 터. 자신에 대한 카운터 덱도 준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등골로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전한 의문이 생긴다. 만약 자신을 사로잡는 게 목적이라면. 왜 굳이 자신들의 아지트가 될 수 있는 장소를 노출한 거지?
아니.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나도 적다. 지금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카드팩이라는 것 정도다.
그녀는 그가 들고 있는 카드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맹렬하게 노려봤다.
아주 작은 정보라도, 그녀에게는 필요한 순간이었으니까.
“···음···.”
전익현은 이 모든 상황을 관조하는 얼굴을 한 채. 잠시간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흘러나온 한 마디.
“···너도. 이 카드팩 사러 온 거냐?”
##두 번째 듀얼(3)
“카드팩?”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음. 아닌가. 엄청 중요한 걸 노려보는 눈빛이길래 나는 당연히 카드팩 사러 온 줄 알았는데.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터져나오는 광소. 뭐야 얜. 이 세계가 미쳐 있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친 건 아무래도 좀 움찔거리게 된다.
제대로. 그것도 많이 미친 인간이다.
하긴, 제정신 박힌 인간이 저런 복장으로 다닐 리 없지.
“여유만만하군. 이 나를 앞에 두고도 농담할 여유가 있다니.”
“농담 아닌데.”
복면괴인은 크큭. 하는 웃음을 터트린다.
“우리 결사에 대해서 여기까지 알아낸 것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여기까지다.”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카드 게임을 하면 느는 건 눈치뿐이다. 내가 쌓아올린 수없이 긴 시간의 짬밥이 내게 눈 앞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었다.
결사니 뭐니하는 지 혼자만 아는 용어를 남에게 지껄이는 사람. 멋져 보이는 가면과 21세기에 쓸모라고는 없는 망토를 자랑스레 휘날리면서 음성 변조 장치를 달고 돌아다니는 사람.
결정적으로 크큭. 하는 웃음소리까지.
‘중2병이네.’
그것도 영 상태가 좋지 않은 형태의 중2병이다. 주변 사람들을 마치 관계있는 인간들로 만드는 종류의 중2병. 혼자만 아는 중2병이면 그래도 쪽팔림은 덜한데 저러면 나중에 쪽팔림이 배가된다. 어린 나이 같은데 저랬다간 나중에 이불 뻥뻥 걷어차게 될 게 분명하다. 불쌍해라.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겠군.”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이 세계에서 승부를 내자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듀얼하자는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전혀 승부하고 싶지 않다. 미친 사람이랑 어울리는 건 언제나 손해 보는 장사거든.
「돌발 퀘스트!」
「괴인에게서 듀얼로 승리할 것.」
「보상 : 랜덤 카드팩 1매」
···하지만 팩 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문제는 내가 어떻게 눈 앞의 중2병을 이기느냐다. 내 덱은 여한설에게 받아낸 ‘욕망의 단지’ 한 장이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원 상태 그대로다.
여전히 승리와는 거리가 먼 쓰레기 덱이라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물론이다. 대전 룰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지만. 가지고 있는 자금이나 준비와 상관없이 공평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리미티드 포맷(limited format) 룰이라면···.
“룰은 리미티드 포맷.”
“···진심이냐?”
내가 리미티드 포맷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중2병이 스스로 먼저 리미티드포맷 룰을 입 밖에 꺼냈다.
“리미티드 포맷은 공정한 룰. 네놈이 준비해온 카운터 덱이 무용지물이 되지.”
뭐. 그런 설정이구나. 비밀결사의 멤버인 자신이 비겁한 함정에 빠졌다. 대충 그런 설정이겠지. 중2병의 뇌에서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있는지는 이미 대충 알겠다.
“그런데. 카드팩 살 돈은 있나?”
리미티드 포맷을 두 명이서 하기 위해서는 100장 정도의 카드. 즉 카드팩 20개를 살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봐도 중2병 걸린 애가 가지고 다니기에는 좀 많은 양이 아닐까 하는데.
“내게 그런 돈이 없다고 생각했다니. 모든 걸 아는 건 아닌 모양이군.”
중2병이 품에서 검은색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저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이잖아. 0.01% 부자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돈 많은 중2병이었구나. 하긴. 그러니까 음성변조 장치도 달고 다니는 거겠지. 젠장. 부럽다. 대체 부모는 뭘 하길래 애한테 저런 고오급 카드를 맡겨놓고 다니는 거야.
“이거면 충분하겠지?”
“···그래.”
부러워 해봤자 뭐하냐. 나는 내 할 일에나 집중하자. 아무튼. 메인 룰을 결정한 것은 눈 앞의 괴인이었으니 세부 룰을 정할 권한은 나에게 있는 셈이다.
아니. 오히려 좋다. 중2병 괴인의 카드를 얻어낼 수는 없지만. 이 상황도 이용할 수 있다. 룰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지금 있는 1000포인트로 깔 수 있는 부스터팩의 2배. 2000포인트의 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룰은 부스터 드래프트(booster draft).”
그리고.
“카드팩은 맥동하는 영혼으로.”
***
남연철은 20팩의 카드팩을 전부 까 바닥에 내려놓았다. 리미티드 포맷은 무작위의 카드팩을 전부 까서 그 카드들만으로 즉석에서 덱을 완성해 싸우는 룰이다.
평소에 스스로가 짜 와서 싸우는 듀얼이 전쟁이라면, 이 룰은 일종의 투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정이나 준비가 먹힐 여지는 한없이 제로에 가깝지.’
특히나 바닥에 늘어놓은 카드들을 번갈아가며 한 장씩 골라가는 룰인 부스터드래프트는 더더욱 그렇다. 덱의 숙련도나 재력이 아닌, 순수하게 재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게임.
그녀는 재빠르게 바닥에 놓여진 카드들을 확인했다.
‘「로데이브」가 한 장. 「타이탄 비룡」이 한 장. 그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카드들이군.’
밸류가 가장 높은 두 장의 카드가 바로 로데이브와 타이탄 비룡이다.
하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한 장을 자신이 선택한다면 선택순서는 상대에게 넘어가니까.
“내가 먼저 선택하지. 나는 로데이브를 선택하겠다.”
고민하던 그녀는 마침내 로데이브를 선점했다. 아마 상대는 타이탄 비룡을 선택할 것이다. 이 룰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타이탄 비룡을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고를 카드는 욕망의 단지.”
남연철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눈 앞의 남자는, 리미티드 포맷을 거의 해보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이 투기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비다. 능력치가 높은 카드들을 우선적으로 집고, 카드의 밸류를 우선시해서 덱을 짜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기에 한 번 쓰고 나면 바로 사라져 버리는 마법 카드들은 쓸모가 없다.
욕망의 단지는 마법 카드 가운데서도 최악의 선택이다. 0코스트의 1장 드로우하는 마법 카드. 자신의 한 순번을 스킵해서 주워가는 카드가 저런 카드라니.
그녀는 망설임 없이 타이탄 비룡을 선택했다.
“욕망의 단지.”
“욕망의 단지.”
“욕망의 단지.”
그는 계속해서 욕망의 단지만을 뽑아 나갔다. 대략 10번 정도의 순번이 끝나자 바닥에 깔려 있던 욕망의 단지가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에 깔려 있는 쓸만한 카드들도 거의 떨어져 버렸다. 남아 있는 카드들이라고는 「금빛 털고 릴라」나「용암 전사」 같은 줘도 쓰지 않을 카드들 뿐.
“리미티드 포맷을 처음 하나 보군.”
그녀는 승리를 확신한 채 입을 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계속해서 카드들을 뽑아나갈 뿐이었지만.
작가의말
리미티드 포맷 룰은 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카드라면한 덱에 넣을 수 있는 수량 이상으로도 넣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같은 카드만으로 한 덱을 전부 만들 수도 있죠!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째 듀얼(4)
개꿀이다.
덱에 들어와 있는 욕망의 단지 다섯 장을 확인하며 한 생각이었다. 부스터 드래프트에서 서로가 고른 덱의 소유권은 사용한 유저의 것이 되는 룰의 특성상. 이 욕망의 단지는 이제 내 카드다.
욕망의 단지가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이대로 듀얼에서 져도 이득이다.
“듀얼!”
물론. 져 줄 생각도 없지만.
내가 욕망의 단지를 고를 때마다 멈칫하며 내 안색을 살피는 모습을 봤을 때, 저 중2병은 지금 내가 리미티드 포맷을 거의 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로데이브고 타이탄 비룡이고 다 내주는데 그렇게 생각할 만 하지. 보통의 리미티드 포맷의 픽은 강한 소환물 위주로 가져가는 게 정석중의 정석이니까. 선택한 팩이 다른 종류의 팩이었다면 무조건 좋은 하수인 밸류 위주로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맥동하는 영혼」 팩에 한해서는, 그런 전략은 최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