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74
몸에 따개비와 비늘로 뒤덮이게 된 세이렌이 길고 낮게 그르렁거렸다.
+
【수룡의 발톱】
【특이성】
【0 mana】
【무기의 공격력을 2 증가시킵니다.】
+
세이렌의 손톱이 한 층 더 길어졌다. 길어진 손톱이 내게 날아든다.
촤아악! 이번 데미지도 만만치 않다. Hp바가 위험하게 깜박인다. 남은 hp는 1.
세이렌이 의기양양하게 턴을 종료한다.
그리고 턴이 끝났다는 것은, 내 승리를 의미한다.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드로우를 했다. 드로우 전에 승리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꽤나 기분좋은 일이다.
나는 카드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첫 패에 있었던 용의 파멸을 발동했다.
“나는 용의 파멸을 발동.”
+
【용의 파멸】
【1 mana】
【용 종족 하나를 파괴합니다.】
+
“용의 파멸?”
“그래. 용의 파멸을 발동할 거야.”
“전익현. 바보? 필드에 용 종족. 없어.”
시레나의 눈이 필드를 노려봤다. 텅텅 비어 있는 필드. 용의 파멸의 대상이 될 카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대로면 아무 의미없는 발동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
“누가 필드에 있는 소환수를 선택한대냐?”
“그러면?”
“내가 「용의 파멸」의 대상으로 삼을 타겟은.”
[세이렌을 대상으로 지정합니다.]“세이렌이다.”
“···세이렌?”
메타몰포시스가 처음 도입됐을 때, 메타몰포시스의 캐치프레이즈는 ‘듀얼리스트도 한 명의 소환수가 될 수 있다!’였다.
꽤나 색다른 시도였다. 실제로도 듀얼리스트가 소환수처럼 싸울 수 있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니까. 호응도 꽤나 대단했지.
이런 시도의 소산으로 메타몰포시스가 진행된 듀얼리스트는 소환수들의 능력치. 이를테면 공격력, 체력, 「특이성」으로 대표되는 효과 등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멋져 보였다.
하지만 여러 번 이야기했듯 듀얼리스트의 이기겠다는 열망은 이런 「멋짐」따위와는 천만 광년 떨어져 있다.
으득! 으드드득! 세이렌의 몸에서 비늘이 틑더져 나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세이렌의 울음소리가 필드 전체에 터져나왔다.
문제가 된 것은 듀얼리스트들이 변태하며 얻게 된 효과들 가운데에, 「종족」태그도 포함해 놨다는 것이다.
「수룡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수룡화」는 듀얼리스트의 종족을 용족으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용족이면 당연히 ‘용의 파멸’의 대상으로 지정 가능하지.”
카드 게임이란 건, 텍스트 게임이다. 종족을 처음 부여할 때에 당연히 카드라고 생각해 ‘용 종족 소환수’라고 지정하지 않았기에. 대참사가 난 것이다.
···뭐. 대참사가 났다고 하기는 뭣한가? 실전에서 수룡화한 듀얼리스트를 「용의 파멸」로 파괴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용의 파멸이라는 카드 자체의 채용율이 크게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한 종족에만 들어가는 저격 카드를 사이드덱에 넣거나 메인 덱에 넣는건 총체적인 승률을 낮추는 행위란 말이지.
그 덕분에 용의 파멸은 실용성 없는 카드로 판정되었다.
“···근데 그건, 평균적인 환경에서나 그렇고.”
내 카드들을 데려가 주는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상대로 전용덱을 짤 수 있다면, 「용의 파멸」로 상대를 부숴 버리는 덱은 충분히 실용성이 있다.
아니. 반드시 이기는 사기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드드드득! 용으로 변한 세이렌의 몸이 승천하지 못한 채 반으로 접혀 물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풍덩.
가라앉은 세이렌의 몸은, 다시 솟아나지 않았다.
[승리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물 속성의 소울이 주어집니다.(+520)] [보상으로 「해신에의 길」이 주어집니다.]내 손에 「해신에의 길」카드가 나타났다. 별 건 없고, 효과가 없는 토큰용 카드처럼 보이는 카드. 하지만 이 카드는 입구에서 사용하면 바로 「해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소위 숏컷을 여는 열쇠 카드다.
왜 열쇠가 카드인지는 묻지 마라. 이 세상이 그 따위인 것을 나에게 항변해도 대답할 방법은 없으니까.
아무튼, 지지 않고 잘 끝났네.
“쉽구만.”
“전익현. 머리. 피 나.”
진짜네. 머리에 손을 대 보니 뜨뜻한 피가 만져진다. 데미지를 너무 많이 입었다. 다소간의 데미지를 입을 것을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니.
“으음. 어떡하지. 그냥 돌아가야 되나.”
「해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체력 소모가 필수적이다. 지금 내 체력 상태로는 이기기 애매하다.
돌아갔다 내일 다시 오는게 베스트일지도.
“익현. 무슨 고민?”
“내일 해신을 사냥할지, 오늘 할 지 고민하고 있었어.”
“오늘! 오늘 해야해! 내일은 안 돼! 내일은 절대 안 돼!”
시레나가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저었다. 너무나도 결사적인 반대다. 내 기억으로는 딱히 걸리는 거 없는데.
어쩌면 해류의 방향이 위험해지거나, 만조가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 내가 놓친 중대한 이유가 있나보군.
“왜 내일은 안 돼?”
“내일 시레나 바빠!”
니가 바쁜데 어쩌라고. 아무 씨잘데기 없는 이유였잖아. 내 험악해진 눈빛에 시레나가 몸을 움츠린다.
“해신은 내일 사냥할 거야.”
우으으. 입술을 움쩍이던 시레나가 품. 그러니까 가슴팍을 가리고 있는 조개껍데기 안에 손을 넣어서 뭔가를 꺼내든다.
조그마한 약병에 들어 있는 황금색의 액체다.
“이거. 먹어.”
“이게 뭔데?”
“내 침.”
나는 약병을 집어던졌다. 퐁당. 약병이 물살 위에 자그마한 파문을 낸 다음 가라앉았다. 시레나가 질겁하며 약병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가라앉던 약병을 헤엄쳐 다시 가져온 시레나의 표정은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이거 먹어. 상처 나아.”
“상처가 낫는다고?”
“내 침. 먹으면 아픔 멀리멀리 흘러!”
무슨 말인지 해석하면, 자신의 침에 타인의 회복을 돕는 능력이 있다는 모양이다.
나는 약병을 받아들고 가만히 기다렸다.
“뭐 기다려?”
“아이템 창 떠오르는 거 기다려.”
“전익현 바보? 물건 든다고 아이템 창 같은 거 안 나와.”
“왜?”
“···세상이 원래 그래.”
···뭐지.
왜 맞는 말이지.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은 다음 시레나가 준 약병을 마셨다.
마시자마자 몸이 개운해진다. 몸 전체에 퍼져 있던 고통이 빠르게 사라져 나간다. 나는 머리를 매만졌다. 줄줄 새고 있던 피도 더 이상 나지 않는다.
“···그 침. 더 없어?”
“없어!”
메롱. 하고 혀를 내미는 시레나. 저 혀를 쥐어짜면 침 몇 방울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어떻게든 시레나의 혀를 쥐어짤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수틀리면 초고압의 물줄기를 쏴대는 물고기를 상대로 연약한 인도어(indoor) 카드쟁이가 이길 방법은 전무하다.
아무튼 오늘 「해신」을 상대할 수 있게 됐으니 이득이라고 해 두자.
나는 듀얼보트를 정비하고 앞을 향해 보트를 몰아나갔다.
끝
카드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원’이라는 것에 꽤나 민감해지게 된다. 어떤 게임에서는 아드(advantage)라고도 표현하는 것들 말이다.
이 자원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들 중 마나, 핸드, 필드, 필드의 남은 갯수, 덱의 남은 장수들과 같은 직관적인 것 외에도 시간, 심리전, 정신적 피로와 같은 비非게임적인 것들도 포함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 세계의 듀얼이 치러질 때의 육체적인 ‘체력’ 또한 하나의 자원이다.
이 세계의 듀얼은 한 판 한 판이 물리력이 동원된다. 성인 남성이라면 첫 듀얼에서 얻게 되는 체력적 손해의 최대치. 그러니까 대략 29데미지 정도라면 그냥저냥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듀얼에서는 그 절반도 버티기 힘들다.
이러한 물리적인 체력도 하나의 자원인 셈이다.
몇 번의 시험식 듀얼을 해 보면서 알게 된 지식 중 하나는, 「빛」속성의 회복 마법이나 「흡혈」로 대표되는 체력 회복 능력들로는 받은 데미지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에 여러 번의 듀얼을 하게 될 때에는 최대한 데미지를 입지 않고 듀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단 말이지.
물리적 체력이라는 자원은 여러 모로 성가시다.
가장 큰 문제는 수치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 게임에서 29데미지를 입었으니 다음 게임에서는 20 데미지까지만 버틸 수 있어요! 같은 게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단기간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튜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라는 내게는 미지의 벽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악랄하다.
그런데 만약. 이런 난관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이를테면···
“왜 힐끔거려?”
“별 일 아니야.”
···먹기만 해도 몸에 있던 피로와 상처가 회복되는 신비한 회복 포션과 같은 것 말이다.
시레나에게서 이 포션을 더 얻을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좀 더 친해지면 포션을 받을 수 있으려나.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지금 중요한 것은 「해신」을 상대하는 일이다.
나는 품 속 가장 깊숙히 넣어놓은 최중요 덱을 다시 확인한 다음, 기암괴석 지역 초입에 있는 기묘한 돌에 세이렌에게서 얻은 카드를 집어넣었다.
카드를 집어넣자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소용돌이 주변에 희끄무레한 영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영체들의 입에서 기괴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만약 이게 듀얼 준비 씬이 아니라 공포게임이었다면 당장 이곳을 떴을 만큼 무서운 비명소리다.
저 유령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죽은 사람들의 혼령들이다.
이 혼령의 집단이 바로 「해신」의 정체다.
[「해신」을 만났습니다.]수없이 많은 혼령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신」은 백 명의 듀얼리스트들의 군체郡體다. 제각각의 유령들은 제각각의 덱이 있으며, 해신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원혼들과 듀얼해 이겨야 하는데. 이게 심하게 어렵다.
백 판쯤 듀얼을 하다 보면 한두 판은 패가 심하게 말리기 마련이다. 그러면 아무리 난잡한 덱이라고 해도 질 가능성이 생긴단 말이지.
즉, 난이도가 심하게 높다.
[「해신」의 처치보상 : 모든 속성의 소울.(+50000)]물론 난이도가 높은 만큼 보상도 죽여준다.
5만씩 소울을 받는다면 카드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소울은 거의 모두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간다.
“익현. 눈. 탐욕 가득해.”
“시꺼.”
총합 3만5천짜리 몬스터를 보고도 군침이 안 돈다면 성인군자일 것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몬스터가 아니라 PVP 듀얼이기는 하지만···. 아이템이 나온다면 몬스터인 것 아닐까?
“듀얼!”
나는 자신만만하게 듀얼을 외쳤다.
[듀얼 형식을 선택하십시오.]해신과의 듀얼은 백 명과 해야 하는 듀얼인 만큼, 룰을 선택할 수 있다. 룰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줘도 깨기 어렵다는 거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조차도 해신의 클리어율은 채 80%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준비해 온 덱이 없을 때의 이야기고.
“듀얼 형식은. 다면기多面棋다.”
[듀얼 형식이 다면기로 지정됩니다.]“···다면기?”
다면기라는 말에 시레나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익현. 미쳤어?”
“안 미쳤어. 완전, 완전 정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