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걸쭉한 누룽지탕이 23조원들의 허기를 채워주었다. 누룽지와 물만의 단순한 조합이었지만 고소한 국물과 쫀득한 누룽지가 입맛을 당기고 있었다. 거기에 낮에 먹었던 된장찌개를 더 하니 금상첨화였다.
“우와, 맛있어요.”
놀람의 연속으로 속이 좋지 않다던 여학생들도 ‘한 그릇 더’를 외치며 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누룽지탕은 아쉬움을 남길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덕팔은 조원들에게 누룽지탕을 먹이면서 부엌 한쪽에서 술안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MT는 2박 3일. 첫날부터 과하게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일정에 문제가 생기므로 조인범은 야간 이벤트를 첫날 저녁으로 잡은 듯했다.
저녁에 벌칙이 있다는 이유로 이벤트가 끝날 때까지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였고, 이벤트가 끝나면 최소 12시, 늦게 끝나는 조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야 했기에 학생들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3조는 게임에서 4등을 하여 가장 먼저 이벤트를 끝냈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제시간에 맞춰 폐가에 올라 11시에 모든 이벤트를 끝낼 수 있어 약간의 술을 마실 시간을 벌었다. 그렇기에 덕팔이 간단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형, 그게 뭐에요?”
“제육볶음!”
“그게 마지막 고기죠?”
“응”
“그럼 우린 내일부터 뭐하고 밥을 먹어요? 이미 재료를 거의 다 써버렸는데?”
“모자라면 마트 가서 장을 보면 되지?”
덕팔이 지갑을 흔들며 웃자 온주환이 엄지척을 해주었다. 돈을 버는 형이 있으니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만 볶으면 되니까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해달라고 해줘.”
덕팔이 가스레인지 위에 커다란 냄비를 올리고 식용유를 살짝 부은 후, 마늘과 파를 볶기 시작했다. 기름에 적당히 마늘과 파 향이 베이자 양념된 돼지고기를 부었다.
치익..
고기가 기름을 만나며 맛있는 소리와 냄새를 만들어 내었다.
잠시 후, 20명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이 완성되자 온주환이 냄비 채로 제육볶음을 날랐다. 그 사이 조원들이 쌈을 씻어 준비해 놓았고 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까지 그릇에 담아 놓았다.
본격적인 야참 시간이 도래하였다.
**
9번째로 이벤트를 마치고 돌아온 22조는 매우 지친 기색이 되어 있었다. 이민성은 조원들을 방안에서 쉬게 한 후 덕팔을 찾았다.
“일찍 끝났네?”
“늦은 거죠. 원래는 11시 반쯤 끝났어야 했는데 앞 조에서 워낙에 시간을 오래 끌어서 아무래도 새벽이나 되어야 모든 조원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쌨나보지?”
“말도 마세요. 날 죽이라고 바닥에서 뒹구는 남학생도 있었고, 기절한 여학생도 있었어요. 그런 담으로 어떻게 의사를 하겠다는 건지.. 쯧”
이민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를 찼다. 덕팔이 웃으며 솥을 가리켰다.
“누룽지탕 끓여 놨어. 이렇게 일찍 올 줄 모르고 불을 줄여 놨으니까 장작 몇 개 더 넣고 보글보글 끓으면 조원들에게 나눠줘.”
“킁킁.. 이 맛있는 냄새는 뭐죠?”
“아.. 우리 조원들 야참!”
“이 익숙한 냄새는? 제육볶음이죠?”
“어”
“형, 미안한데.. 우리도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민성이 진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22조의 최고참으로서 조원들에게 뭔가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일단 누룽지탕으로 속 좀 달래고… 23조 방으로 들어가. 같이 먹으면 되지 뭐!”
“진짜요? 히히..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니까!!”
이민성이 냉큼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22조원들에게 알렸다. 잠시의 환호 후에 22조원들이 주루룩 밖으로 나와 23조 방으로 들어갔다. 23조원들도 22조원들을 환영해 주었다. 오늘은 간단히 술을 마시기로 한 탓에 독주는 보이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이들을 위해 꺼내진 소주 몇 병과 맥주가 전부였다.
“형, 제가 도울게요.”
이민성이 술자리를 피해 덕팔 곁으로 왔다. 덕팔이 돼지고기에 특제 양념을 버물리고 있었다.
“이 이파리는 뭐에요?”
“아.. 아까 산에서 캔 건데 간에 좋은 약초라서 넣어봤어. 산사람들은 음식에도 많이 넣어 먹는 거라 맛도 괜찮을 거야.”
“와우.. 형은 별걸 다 아네요?”
“산에서 10년쯤 살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거지.”
덕팔이 양념이 재어진 고기를 커다란 냄비에 넣고 볶기 시작했다.
“흐미, 맛있는 냄새!”
“쌈이 부족할지 모르니까 몇 명 불러서 쌈 좀 씻으라고 해. 남은 밥 있으면 가져오고..”
“네, 형”
이민성이 불이 나게 밖으로 나가 22조원 남학생 몇 명을 불렀다. 덕팔이 고기를 볶는 사이 밖에서 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 고생 많으셨네요.”
이민성이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무래도 본과 3, 4학년들이 실습을 마치고 MT에 합류한 모양이었다. 덕팔이 잠시 망설이다가 다 볶아진 제육볶음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덕팔과 명실상부 통합의대 1, 2기 학생들의 어색한 만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덕팔이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였다. 덕팔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벌써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안에서는 왁자지껄 큰소리가 났다. 23조와 22조가 가진 술은 이미 동이 났고, 늦게 합류한 21조의 술도 반쯤 풀린 상태였다.
시계를 본 덕팔이 조용히 23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덕팔이 합류한 이후 어색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21조와, 22조, 23조 간에 어색함이 맴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늦게 합류한 본과 3, 4학년들과 나머지 학년들 사이에 어색함이 감돌았던 것이다.
“통합의대 1기 윤다혜라고 해요.”
검은 생머리에 고집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톤을 가진 여학생이 뒤늦은 자기소개를 했다. 윤다혜를 시작으로 나머지 학생들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통합의대 4기 또는 6기 오덕팔입니다.”
“4기?”
윤다혜의 눈썹이 치켜 올려졌다. 그러자 곁에서 윤다혜의 눈치를 보고 있던 한아름이 윤다혜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정할 수 없어요. 학번과 무관하게 통합의대 기수는 나름의 룰대로 정해지는 것이에요.”
“그럼 6기로 하겠습니다.”
덕팔이 유두리 있게 대답을 하였지만 이 역시 윤다혜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쪽 분께서 이번 입학이 정상적으로 인정되었다면 당연히 6기가 되었겠죠. 하지만 그쪽 분은 법대 출신 편입생이에요. 기수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 흐음.”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덕팔이 크게 양보를 했음에도 윤다혜가 고집을 부리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선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덕팔이 온주환의 팔을 잡았지만 온주환이 덕팔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팔이 형이 좀 특별한 케이스로 입학, 아니 편입을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당히 입시를 봐서 우리 과에 수석으로 입학을 한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올해 입학은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네, 그렇죠. 하지만 우리 기수는 덕팔이 형을 우리 기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수 탑이고 넘사벽이죠. 우리가 인정하는데 다른 기수들이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예과 1학년 과 대표 자격입니다.”
“네가 기수장이야? 아니면 네 뜻이 너희 기수 전체의 뜻이라는 거야?”
“오늘 낮에 교수님 말씀을 듣고 저희 기수들끼리 잠시 모여서 상의를 했습니다. 4기 선배님들이 덕팔이 형을 같은 기수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저희들이 덕팔이 형을 우리 기수장으로 선출하겠다고 합의를 하였습니다.”
“기수장으로?”
윤다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과 대표는 1년 임기를 가진 학년 대표이다.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게 되면 같은 학년이라도 기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 대표는 기수를 대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수장은 한번 정해지면 졸업을 한 후에도 기수의 대표로 인정을 받는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덕팔이 머리를 긁었다. 조인범과 한아름에게서 윤다혜에 대한 언질을 받았지만, 술자리가 끝나고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도 되는 덕팔의 기수 문제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꺼내 놓을 줄은 몰랐기에 난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어.. 제 문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시고 슬슬 정리하셔야 내일 일정에 차질이…”
“형, 잠시만 요. 이 문제는 오늘 밤에 정확히 마무리 짓고 싶어요. 한정아, 다른 조에 가서 6기들 다 모이라고 해.”
그러자 4기(본과 1학년) 유필상이 나섰다.
“아무래도 우리 기수들도 좀 모여야 할 것 같네?”
유필상이 웃으며 방문을 나섰다.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런 후배들을 보며 윤다혜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었다. 윤다혜의 눈짓에 자신을 2기라고 소개한 남학생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6년째 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동시에 1기 기수장인 이정훈, 4기 기수장이자 3년째 과 대표를 역임중인 조인범, 그리고 많은 1,2기와 4기, 6기들이 모여들었다. 23조 방에 앉을 자리가 없자 조인범이 제안을 하였다.
“마을회관으로 가시죠. 사실은 내일 전체 모임을 가지려고 했는데 오늘 밤에 이벤트 뒷풀이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회장님?”
“주최 측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이야 저희는 따라야죠. 하하”
학생들이 우르르 마을회관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조인범이 뒤늦게 방에서 나오며 덕팔의 손을 잡았다.
“형, 형은 여기 좀 있으면 좋겠는데…”
“왜?”
“제육볶음이 참 맛있네요. 아무래도 긴 술자리가 될 것 같은데.. 헤헤”
조인범이 입을 벌려 천진난만하게 웃자 덕팔이 피식거리며 조인범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고맙다, 인범아.”
조인범은 이번 대담이 덕팔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덕팔을 뒤로 빼돌릴 생각을 한 것이었고 덕팔은 그런 조인범의 생각을 읽은 것이었다.
“고기는 다 가져다 드릴게요. 양념도..”
조인범이 웃으며 민박 밖으로 나가고 잠시 후, 이민성이 인상을 쓰며 들어왔다.
“너는 왜 돌아와?”
“저는 형의 조수래요. 아무리 고등학교 선배라지만 4기가 3기를 이렇게 부려먹어도 돼요?”
이민성이 투덜거리면서도 각 조가 가지고 오는 고기를 펼쳐 놓기 시작했다.
**
360인분의 제육볶음을 볶아 낸다는 것은 가히 중노동이었다.
“하아.. 하얗게 불태웠어요.”
제육볶음이 가득 든 14번째 냄비를 떠나보낸 이민성이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했다. 민성아.”
“형, 이제 우리도 슬슬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글쎄? 필요하면 연락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