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인계산 초입 마을.
“안녕하세요. 이장님.”
“누구여?”
“말씀 좀 여쭤 보려구요. 혹시 저기 저 산에 노인 한 분이 살지 않나요?”
진우가 인계산을 가리키자 이장이 웃었다.
“살지, 노인만 사나? 젊은 거, 늙은 거, 어린 거 가릴 것 없이 몽땅 살지. 근디 지금은 암도 읎어.”
“왜요?”
“아따! 그믐이 아니잖여!!”
“아…”
그럼 그렇지! 인계산 같이 악귀들이 잘 모이는 곳에 헌터들이 없을 리 없었다.
“혹시 오두막 같은 것도 없나요? 인신 선생님이 만드신…”
관심이 없다는 얼굴로 능청을 떨던 이장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가 원래로 돌아갔다.
“오두막? 천진디? 그 잡것들이 몽땅 때려 지어놔서 말이제..”
“그래요? 하하. 감사합니다.”
진우가 꾸뻑 인사를 하곤 대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장이 진우를 불렀다.
“지금 산에 오르려고?”
“네, 지금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이.. 긍께.. 벌써 10신디?”
“왕복 6시간이면 충분하죠.”
진우가 두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웃자 이장이 윗니를 슬쩍 드러내 보였다. 가능할 리 없다는 표정이었다. 진우가 다시금 꾸벅 인사를 하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따, 오랜만이고만? 그 양반을 찾는 사람은?”
**
2시간 48분 만에 오두막이 20채쯤 지어진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완전히 마을이 됐네. 아랫마을보다 집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진우가 피식피식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오두막이 아니구나. 간이형 주택이네. 이런 걸로는 오래 못 버틸텐데..”
헛돈을 쓰고 있다며 혀를 차면서도 지어놓은 오두막들을 꼼꼼히 살피며 걷고 있었다.
“이렇게 집들을 지어 놓으니까 길이 해깔리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진우의 발걸음은 무너지기 직전인 허름한 오두막 앞에 멈춰져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런지 오두막은 이미 반쯤 무너져 내려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몰골이었다.
“떠난지 오래되신 모양이네.”
절실히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에 그 정도 위험은 진우의 발길을 잡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광경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확실히 달라.”
감상평을 쏟아내면서도 진우의 손과 발은 쉴 줄 몰랐다. 스승과 자신만이 아는 비밀의 공간을 열어 재꼈다. 그 안을 확인한 진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실망이었다. 그러나 이내 곧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천문도룡도 대신에 천각필이 있어?”
낡은 붓 한 자루를 가슴 깊숙이 밀어 넣은 진우가 오두막을 나와 오두막 뒤로 돌아갔다.
“역시 있었군. 있었어.”
괴목 한 그루가 처량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진우가 괴목을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잘 지내셨나요? 조금만 더 버티십쇼.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말을 건네듯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의 눈은 먹이를 찾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이 반짝였지만 이내 실망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믐이 지난 지 한참 되었지.”
진우가 말라비틀어진 꽃잎을 손에 쥐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 귀하디 귀한 도돌이꽃나무가 그대로 방치되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여기, 저기에 구하기 힘든 약초들이 힘을 잃고 거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방치가 된다는 것은 가치를 모른다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스승님께서 연구 방향을 다른 곳으로 잡으신 모양이군.”
진우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한 달에 한번은 이곳을 들려야 할 이유가 생긴 듯했다.
**
늦은 저녁, 진우가 돌아왔다. 가방에는 무언가가 잔뜩 들어 있었다. 아쉬운 대로 쓸만한 약재들만 모아온 것이다. 이렇게 오래 방치된 약재들을 써본 적은 없지만 오진철을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아빠!”
“잘 다녀왔어?”
“점심은? 드셨고?”
“어.. 네가 해 놓은 김밥! 정말 맛있더라.”
“하하하, 당연하지. 이 오덕팔, 아니 오진우 표 레시피는 쭈욱~ 계속 되어야 하니까! 하하하. 잠시만 기다려요. 맛있는 저녁 해드릴테니까.”
오늘따라 진우의 표정이 더 밝은 듯 싶어 오진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식사 준비를 하다말고 진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응?”
“통증은 어때요?”
“통증? 괜찮아. 참을만해. 약도 먹고 있고..”
“저기..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제가 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발라보실래요?”
오진철의 눈이 커졌다. 요즘 진우는 자신이 아는 진우와 조금 달랐다. 특히 이런 말을 할 때는 다른 이를 보는 거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네가.. 약을?”
“응, 며칠 전에 아빠 다니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이 주시는 약이 저도 아는 약 같아서요.”
“네가?”
“약효가 없어도 몸에 해롭지는 않을 테니까 속는 셈 치고 한번 발라 보세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해주는 약인데 독약이라도 발라야지. 암”
오진철이 기쁜 얼굴로 웃자 진우가 슬며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잠시 후, 얼큰한 동태탕이 끓여져 나왔다.
“오다 보니까 동태가 싸더라구요. 드셔봐요.”
“커어.. 얼큰하고 좋구나. 이럴 때는 소주 한 병! 딱 하고 마셔야 하는데 말이지. 하하하”
“사올까요?”
진우의 물음에 오진철이 고개를 저었다. 마실 때는 문제가 없지만 마신 후에는 밤새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진우가 더 이상 묻지 않고 오진철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을 치웠다.
“잠깐 계세요.”
진우가 밖으로 나갔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약 비슷한 덩어리를 들고 들어왔다.
“일단, 이것부터 상처에 붙여보죠.”
진우가 칭칭 동여매진 붕대를 풀었다. 아직 절단한 상처 부위가 다 낫질 않아 검붉은 피를 머금고 있었다. 고약이 상처 부위로 옮겨질 때 오진철이 움찔하였지만 이내 평상심을 되찾았다. 진우가 자신에게 해가 될 약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진우가 뭔가를 잘못 알고 해가 되는 약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기쁘게 그 약을 바를 것이다. 사랑하는 하나뿐인 아들이지 않나?
통증이 밀려왔다.
“으윽…”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이 흘렀다. 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약을 붙인 부위를 붕대로 감았다.
“일단 다리만..”
진우가 오진철을 요 위에 눕히곤 오진철의 상태를 살폈다. 처음에는 따갑고 아팠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시원해졌다. 통증도 조금씩 사라지더니 이젠 아프지 않다.
“혹시 내일 아침에 가려움이 느껴지면 꼭 저한테 말씀을 하셔야 해요. 알았죠?”
“그래, 알았다.”
“그럼 저 알바 다녀올게요.”
진우가 방문을 열고 나간다. 저렇게 나가면 날을 새고서야 돌아오는 아들이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그때 수술을 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어차피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그랬다.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겠지만 진우는 자신이 남긴 돈으로 편안하게 살았을 텐데…
이미 너무 늦은 후회라 후회를 해본들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이면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곤 한다.
**
간지럽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진우의 말이 생각났다.
“진우야.. 진우야..”
자신의 옆에서 쪼그린 채 잠이든 진우를 불러 깨웠다.
“왜..왜요? 아빠? 어디 아파요?”
“간지럽구나.”
“많이요?”
“못 참을 정도로..”
“진짜요?”
진우의 안색이 환해졌다. 좋은 징조인 것인가?
진우가 부엌으로 나가더니 어디서 끈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팔과 몸을 칭칭 감는 것이 아닌가?
“뭐… 뭐하니?”
“긁으시면 안 되거든요. 딱 이렇게 하루만 참으세요. 미칠 정도로 가렵겠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아빠는 다시는 아프지 않아도 돼요.”
진우가 신이 났는지 부엌으로 뛰어나갔다.
**
하루종일 진우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가려움이 아픔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것을 오늘 처음 경험했다. 처음엔 상처 부위만 가려웠다. 그런데 점심나절이 되니 전신이 가렵기 시작했다. 한팔이 묶였고 다른 한 팔은 잘려 없어졌다. 긁을 방법이 없어 남아 있는 왼발로 긁어보려 했지만 진우가 양말을 세 개나 신겨 놓고 갔다.
벌컥
방문이 열리고 진우가 뛰어 들어왔다. 인사도 생략하고 다리에 감아 놓았던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상처를 살피던 진우가 환하게 웃었다.
“됐어요. 아빠! 완전히 깨끗하게 나았어요.”
“…지…진짜?”
“네, 이제 더 이상 다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돼요.”
진우가 오진철의 상체를 일으켜 앉게 해주었다. 직접 상처 부위를 보았다. 고약이 떨어지면서 검게 물들어 있었지만 확실히 전과는 무언가가 달라 보였다. 변한게 없더라도 잠시의 희망이라도 맛볼 수 있었으니 좋았다.
진우가 대야에 물을 담아와 수건을 빨더니 상처 부위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몇 번을 닦아내니 뽀얀 살이 드러났다. 하루 만에 진물이 흘러나오던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어 있었다.
“봤죠? 깨끗하죠? 하하하”
오진철의 눈에 습이 맺혔다. 조금씩 조금씩 다리를 잘라낼 때 오는 절망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이젠 이만큼이라도 남게 된 것인가?
“고맙다. 진우야.”
“자, 어서 팔도 치료를 해요. 많이 늦었지만 더 늦으면 장기로 옮겨갈지도 몰라요.”
진우가 미리 준비한 고약이 팔에 붙여졌다. 통증, 가려움 따윈 이젠 상관없다. 하룻밤, 하루 낮만 잘 버틴다면 더 이상 고통 속에 살 필요가 없다.
“아빠 의족 하러 가요.”
“의족?”
“네, 이제 더 이상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니 의족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돈이…”
“걱정 마시구요. 상처만 다 나으면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의족을 해드릴게요. 의수도 해드리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상태를 봐서… 하하하”
진우가 크게 웃으며 부엌으로 뛰쳐나갔다. 기름 냄새가 났다. 찌개 끓는 소리도 났다. 잠시 후, 밥상이 들어왔다.
“손은 못 풀어 드려요. 그러니까 오늘은 제가 먹여 드릴게요.”
진우가 떠주는 밥과 계란말이,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받아 먹다보니 ‘행복이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로 한참 잘 나갈 때는 이런 음식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매일 같이 진우와 함께 고급 식당에서 외식을 했다. 음식들이 맛있었지만 지금 진우가 집어 주는 저 계란말이보다 맛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진우야, 너도 먹어.”
“아빠 식사 다하시면요.”
또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은 자꾸 눈물이 난다.
“아빠, 다 나으시면 뭘 하고 싶으세요?”
“일을 해야지. 진우 너도 이제 대학에 가야 하니까.”
진우가 고개를 저었다.
“돈은 제가 벌어요. 그러니까 아빠는 아빠 하시고 싶은 걸 하세요. 그리고… 궁금한 게 좀 있는데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뭔데?”
오진철의 눈이 껌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