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62
제신입사원 강 회장 62화화
결혼 준비(2)
“이사님, 다 온 것 같습니다. 저 앞 편의점이 말씀하신 곳 같은데요?”
김윤수가 차를 세우며 말했다.
“그래? 그럼 근처 카페라도 가서 기다려. 시간 좀 걸릴 테니까. 많이 늦어지면 다시 연락할게.”
“그런데…… 누구신지……?”
강 회장은 조심스레 묻는 김윤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고약한 운명이 만들어 준 인연.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이지.”
“아…… 네.”
김윤수는 선문답 같은 소리에 더 궁금했지만 캐물을 수는 없었다.
강 회장은 계속 힐끔거리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생물학적 아버지야. 여기 기억해 둬. 혼자 와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너무 놀라 눈이 커진 김윤수를 남겨 두고 강 회장은 차에서 내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앨범에 들어 있는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버지다.
몸이 바뀐 지 1년이 다 되도록 전화 한번 없던 생물학적 부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혈육이며 하나뿐인 가족인 아들이지만 통화 내역만 보면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강 회장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선도 두지 않는 이의 기계적인 말이 들렸다.
“어서 오세요.”
강 회장이 아무 말도 없이 입구에 멈춰 서 있자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환갑이 일 년 남았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환갑은 훌쩍 넘어 보인다. 강 회장은 자신이 저 나이 때도 저 정도로 늙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 일이냐, 연락도 없이? 회사는?”
그의 얼굴에 걱정이 어렸다.
평일 낮 시간에 불쑥 찾아온 아들, 혹시라도 회사에서 잘렸나, 하는 걱정일 것이다.
“잘 다니고 있습니다.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
안도의 표정을 지은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집으로 가서 좀 쉬어. 여긴 뭐하러 왔어?”
“몇 시까지 일하십니까?”
“11시에 알바생 오니까 그때까지는 있어야지. 뭘 새삼스레…….”
강 회장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아침에 일찍 나오시지 않습니까?”
“야간 알바만 쓰니까 당연하지.”
역시나, 집에서는 잠만 자고 하루 15시간 이상 이 편의점에서 일한다.
강 회장도 저 나이 때 그렇게 일했다. 끝없는 회의, 출장, 계약 등등.
하지만 강 회장은 사업을 했고, 생물학적 아버지는 노동을 한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황준현이, 네가 내게 젊은 몸을 줬으니 난 네 부친의 노후를 안락하게 책임지마. 황준현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할 돈으로 하는 효도를.
“가게 문 잠깐 닫고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 문을 닫아? 그냥 저녁에 이야기하면 되지.”
“아뇨, 오늘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해. 손님도 없는데…….”
정말 오랜만에 아들을 봤지만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돈 그늘이다.
돈에 짓눌린 일상은 하나뿐인 아들도 위로가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지내면서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에게 손 한번 내밀지 않은 사람. 요즘은 보기 드문 전형적인 남자다.
“많이 힘드시죠?”
애처로운 마음에 강 회장이 조심스레 묻자 부친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하루 이틀이냐? 그래도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넌? 괜히 밥 굶고 다니지 마. 거 뭐냐…… 인스턴트 이런 거 먹지 말고.”
갑자기 편의점 매대에 깔린 삼각김밥을 가리켰다.
“편의점에서 저런 거랑 라면으로 밥 때우는 건 아니지?”
“잘 챙겨 먹습니다. 라면이나 밀가루 음식은 먹지도 않아요.”
“그래, 타지에서 고생하는데 먹는 거라도 가려 먹어야지.”
자식 먹는 거 걱정하는 것 보면 여타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강 회장은 어려운 상황은 절대 자식에게 말하지 않는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에게 물었다.
“혹시 임대료 올려 달라고 하지 않아요? 요즘 서울은 부동산이 엄청 올라서 자영업 하는 사람들 다 쫓겨날 판인데…… 여긴 지방이라 좀 낫나?”
임대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말이다. 부동산 뛰는 건 서울인데……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이런 보잘것없는 곳에서도 다들 미쳐 날뛴다. 계약 기간 끝나면 보증금이랑 월세 올리겠다고 하더라.”
신세 한탄 같은 말을 끝내고 아버지는 다급히 말했다.
“넌 신경 쓰지 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괜한 말을 했어.”
그냥 어려운 상황을 잠깐 말했을 뿐인데 미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아들이 신경 쓸까 극도로 조심하는 눈치다.
아이고, 이 친구야, 이제 그런 궁상은 없도록 하자.
강 회장은 아주 어렵고 힘든 단어를 입에 담았다.
“아버지.”
“응?”
“아버지는 돈이 많다면 뭐 하고 싶으십니까?”
“뭐, 돈?”
분명 지금 상상했을 것이다. 평생을 혹은 아들 서울 보내고 혼자 남았을 때 가끔 꿈꿨던 것을.
“왜, 로또라도 맞았냐?”
당신 아들은 로또의 수만 배 이상을 맞았지요.
“그냥요. 말씀해 보세요.”
“글쎄다.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주택 갖는 게 우리 나이 때 남자들 꿈이지. 작은 텃밭도 가꾸고 말이야.”
“그게 다예요? 다른 건 없어요?”
“밥은 먹고 살아야 되니까 요런 가게도 있으면 좋고. 대신 월세 안 내고 장사해야지.”
상상만 해도 행복한지 주름진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네가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꿈이다. 근데 요즘 여자애들은 돈 없는 남자 싫어한다면서?”
“그래도 저처럼 대기업 다니면 인기 좋습니다.”
“그래? 그럼 만나는 여자라도 있는 거냐?”
아버지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있기는 한데, 좋은 여자…… 아니 좋은 며느리가 될 것 같지는 않아 조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건 좀 있다 말씀드리고…… 그 전에 아버지 꿈부터 이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강 회장은 핸드폰을 꺼내 김윤수 대리에게 전화했다.
“잠깐 와 봐. 일이 좀 생겼어.”
“응? 누구에게 전화한 거냐?”
아버지가 깜짝 놀랐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김윤수가 번개처럼 달려와 편의점 문을 열었다.
“아버지, 저랑 같이 일하는 김 대리입니다.”
대리라는 호칭 때문에 아버지가 착각했다.
허리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아이고, 대리님까지…… 우리 못난 아들 데리고 계신 분인데…….”
당황하기는 김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보다 더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이사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네? 이사……?”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자 강 회장이 말했다.
“제가 서울에서 꽤 출세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요. 그러니 이런 편의점에서 장사는 그만두고 원하는 대로 사시면 됩니다.”
강 회장은 김 대리를 향해 말했다.
“김 대리, 미안한데 여기서 아버지 좀 챙겨 줘야겠어.”
“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살 집부터 알아봐 줘. 전원주택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장소에서 괜찮은 집 보이면 무조건 사.”
“네.”
“주…… 준현아, 그게 무슨……?”
강 회장은 이 상황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무시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딘지 확인하고, 그곳을 전부 매입해. 건물이든, 집이든.”
“네.”
“오다 보니까 여기는 어디든 다 낡았던데…… 싹 밀고 한 10층 정도 되는 빌딩 올려.”
“준현아! 빌딩이라니?”
“괜찮습니다. 이런 지방에 그런 건물 올라가면 그곳이 중심이 됩니다. 덩달아 땅값도 오르니 절대 손해 보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아들 믿고 하자는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김 대리는 금융 전문가입니다. 이런 일 전문이에요.”
이번엔 김 대리도 당황해서 눈이 똥그래졌다.
금융 전문가 맞다. 한때 사채를 했으니까. 본인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다.
“돈 아끼지 말고 무조건 비싸고 좋은 걸로 해.”
“네, 이사님.”
“그리고 이 편의점 정리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네.”
대답은 시원시원하게 하지만 난처한 심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거 다 혼자 하면 힘들 테니까, 사람 필요하면 얼마든지 불러서 써.”
그제야 김 대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버지.”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지 못해 멍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다.
“이 동네에 친한 부동산 업자 있으면 집 구하고 빌딩 올릴 땅 알아봐 달라고 하세요. 그래야 소문나죠.”
“소문? 무슨 소문?”
“아버지 아들이 서울에서 크게 성공해서 아버지 집도 사 드리고 빌딩도 사 드린다는 소문이요.”
시골 동네에서 자랑할 게 뭐 있나? 자식 성공해서 돈 뿌리는 모습이 가장 뿌듯한 자랑거리다.
지시가 끝났다는 걸 눈치챈 김 대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전 준비도 해야 하니 차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김 대리가 편의점에서 나가자 아버지가 급히 입을 열었다.
“너 정말 성공한 거니? 취직한 지 1년밖에 안 됐잖아?”
“자세히 말씀드리기에는 좀 복잡합니다. 하지만 최성 그룹에서 20조짜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제가 그걸 맡아서 잘 처리했습니다. 그 덕분에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엄청난 연봉을 받습니다. 보너스 차원에서요.”
이런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다행인지 몰라도 지방에서 평생 이런저런 장사만 한 사람이라 기업의 생리와 구조를 모른다.
기업에 대해서 아는 건 판타지에 가까운 드라마를 통해 얻는 게 전부라 20조라고 말한 게 다른 의문을 지워 버린 듯했다.
“20조?”
“네. 그 덕분에 여자도 만났고요. 사실 오늘 결혼한다는 걸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결혼?”
“네. 말씀드린 회사에서 프로젝트 진행하다 만난 여자입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아들의 큰 성공보다 결혼이 더 중요한가 보다. 아버지는 이미 돈 이야기는 잊었다.
“그래? 뭐 하는 여자냐? 집안은 뭐 하시고?”
“좀 대단한 집안의 장녀입니다. ST 그룹 아시죠?”
“ST? 아…… 그 주유소?”
“네. 그 주유소 회사 맏딸입니다.”
아무리 지방이라고 해도 깡촌이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정도는 알고, ST가 주유소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가라는 것도 안다.
그의 안색이 변했다. 저 표정은 아들이 한국 재벌가에 장가가는 데서 비롯된 기쁨의 표정이 아니다.
충격 때문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참을 말이 없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네가 잘 판단했겠지만, 나는 탐탁지 않다. 많이 걱정돼.”
“뭐가 그리 걱정됩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된다. 달다고 해서 과일을 파 먹다가는 죽어. 드라마 보면 재벌가 딸과 결혼해서 인생 역전하는 게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도 뉴스 나오지 않았어? 우리나라 최고 재벌가에 장가간 남자, 나이 마흔 넘어 이혼당했더라. 그게 무슨 추태냐? 법정에서 싸우기까지 하고 말이다.”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지요?”
“안 그러냐? 우리 집안이 가당키나 해? 끼리끼리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게 무탈하니까 나오는 말이다.”
틀린 말 아니다.
다만 이 송충이는 다른 종이고, 다른 집단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모두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버지, 제가 매달려서 하는 결혼 아닙니다. 그쪽 집안에서 원하는 결혼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집안사람들과 의외로 잘 맞습니다. 이미 부모님과 할아버지까지 만났는데 모두 절 원할 정도입니다.”
표정을 보니 설득과 이해는 물 건너갔다.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다.
그래, 오늘 얼떨결에 아버지가 된 이 사람과 소주 한잔해야겠다.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황준현이 어떤 사람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확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