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8
제신입사원 강 회장 8화화
벼랑 끝 밀어내기(1)
병원으로 온 강 회장은 로비의 소파에 앉아 죽치고 기다렸다.
VIP 병동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줄 사람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간호사들을 유심히 살폈다. 젊은 애들 빼고, 적어도 가정을 꾸렸고, 애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돈에 쪼들리는 여자.
돈에 쪼들리면 눈 밑에 그늘이 깊다. 바로 돈 그늘이다. 돈 그늘이 들 정도면 감당하기 어려운 빚에 눌려 전화만 울려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의료기 카트를 끌고 내려오는 간호사를 발견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끊이지 않는 긴 한숨.
저건 일에 지친 모습이 아니라 하루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 분명했다.
강 회장은 급히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저기, 잠시만요.”
“네?”
“딱 5분만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급히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나마 쌩까고 가 버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입구 옆 화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강 회장은 손에 든 쇼핑백을 의료기 카트에 턱 올려놓고 돌아섰다.
5천만 원이 든 쇼핑백. 저걸 거부할 정도로 풍족하거나 양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 * *
“이봐요!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쇼핑백을 꼭 쥔 손을 흔들며 소리치는 여인. 됐다, 먹혔다.
소리치기만 할 뿐 돈이 가득한 쇼핑백을 휙 내팽개치지 않았다. 윗선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강 회장은 그녀의 고함을 무시하고 물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유명한 사람이라 모르는 간호사는 없을 겁니다. 최성 그룹 강용호 회장. 그 사람 상태가 어떤지만 말해 주면 됩니다. 아, 난 기자는 아니니까 걱정 말고.”
“이봐요!”
여전히 쇼핑백을 쥐고 있다.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시고. 그래도 돈은 가지세요.”
소리치던 간호사의 눈이 커지며 입을 닫았다.
“한 번으로 끝낼 생각 없어요. 강 회장의 상태를 수시로 알려 주면 계속 그만한 돈을 받을 겁니다. 한 번으로 끝내기엔 좀 아깝지 않을까요?”
눈이 더 커졌다.
한 번으로 끝나는 5천만 원이 아니다. 두 번이면 1억, 앞으로 이 병원에서 받을 월급보다 많을 수도 있다.
“최성 그룹 회장 정도면 이 병원 모두가 그분의 상태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분명 누군가가 밖으로 흘리겠죠? 어차피 지켜지지 못할 비밀입니다. 그러니 돈이라도 챙기고 흘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쇼핑백을 쥔 그녀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물론 입술도.
“몸은 정상이에요. 다만 코마 상태라 언제 깨어날지 몰라요.”
코마!
“뇌사 상태라는 거요?”
“아뇨. 뇌 활동은 문제없어요. 다만 TPN으로 오래 영양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근손실이 계속되어 육체가 쇠약해질 수 있어요. 특히 연세가 있으시니 오래 버티기는 힘들 거예요. 그게 가장 무섭죠.”
“TPN?”
“Total Parenteral Nutrition이라고…… 목에 있는 혈관으로 필수 영양소를 공급하는 방법이에요.”
“깨어날 가능성은?”
“아무도 몰라요. 지금도 가능하고, 10년 뒤에도 가능하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노인이라 육체가 쇠약해서 저대로 돌아가실 가능성이 더 커요.”
활동하지 않는 물질은 결국 정지한다. 자연의 섭리다.
강 회장은 뜬금없이 웃음이 났다. VIP 병실에 누워 있는 저 육신이 소멸하면 이 정신도 소멸할지가 더 궁금해져서다.
궁금한 건 또 있다. 앞으로 황준현이라는 덜떨어진 놈으로 계속 산다면?
다시 한번 젊은 몸으로 산다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계속 나온다.
* * *
“야! 황준현이!”
강 회장은 출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소리치는 박 팀장을 보자 저놈은 벼랑 근처도 못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강 회장이 박 팀장 자리 앞에 서자 박 팀장은 확 달라진 인턴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너…….”
박 팀장의 말을 조 대리가 받았다.
“황준현 씨 정장 질렀나 보네요. 좋은데? 어디 거야?”
“아…… 이거 수제 맞춤이라…….”
“수제? 그거 두벌에 40만 원 하는 거?”
두벌에 40만 원? 그런 수제 정장도 있나?
“그런 수제 샵 맞지? 치수 대충 재서 방산 시장으로 보내면 그쪽 공장에서 만들어 오는 거라던데?”
박 팀장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잘 나오네. 무시할 게 아니네.”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사는 곳이 다르다는 걸 어찌 알겠나?
옷 덕분에 분위기가 좀 풀렸다. 박 팀장의 목소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황준현이, 넌 지금 영업부 가서 사과하고, 업무 협조 잘하겠다고 해. 자료 부탁하는 것도 잊지 말고.”
역시 벼랑 근처에도 못 갔구먼. 졸아서. 그런데 어디서 돌아섰을까? 부장 선에서? 상무? 아니면 스스로 돌아섰나?
“벼랑 끝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박 팀장이 눈을 치켜떴다.
“벼랑? 야! 내가 그거 때문에 상무님께 얼마나 깨진 줄 알아?”
아하! 상무에서 막혔구나.
이거 참 애매하다.
김재현이 임원 진급할 당시의 평가 보고서에는 눈치 빠르고 꽤 정치적인 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자재부가 외주 업체랑 다이렉트로 업무 협조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 없을 텐데, 호통치고 끝냈다?
그렇게 안 봤는데, 김재현이도 배짱이 약한가? 아니면 둔한가?
“야! 너 뭐 하고 서 있어? 빨리 영업부로 안 튀어가?”
“아…… 네.”
강 회장은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방향은 영업부가 아니라 김재현 상무실이다.
문 앞에서 비서 때문에 막히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강 회장은 전무 이상부터 비서가 딸려 간다는 걸 오늘 알았다.
상무 따위는 전속 비서가 없다. 대충 하위 부서 여직원 중 똘똘한 애가 상무의 잡무를 처리한다.
김재현 상무실을 노크하고 곧바로 들어갔다.
“뭐지?”
김재현 상무는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젊은 사원을 기가 찬 듯 쳐다봤다.
“어제 박 팀장의 건의가 별로였습니까?”
“뭐?”
“제 생각엔 아주 좋은 기회 같은데, 아니었습니까?”
“그러는 넌 누군데?”
“박 팀장에게 그 안건을 제안한 인턴입니다.”
“뭐? 네가 바로 그…….”
회장님을 들이박은 놈이냐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혹시 영업부랑 힘겨루기하는 게 두려우신 겁니까?”
“뭐?”
“아니면 상무님은 지금 무슨 판때기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뭐?”
김 상무는 신입의 입에서 자신이 헸던 말을 다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 지금 뭔가 알기나 하고 그러는 거냐?”
“몰랐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깟 자료 받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고작 귀찮은 것 때문에? 안 그래요?”
김 상무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문 닫아.”
“네?”
“문 열어 놨잖아! 문부터 닫고 앉아.”
“아, 네.”
그럼 그렇지. 아무것도 모를 리 없잖아? 상무씩이나 돼서.
강 회장이 상무 앞에 앉았다.
“그래, 말해 봐. 인턴이 생각하는 판때기가 뭔데?”
“최성 물산의 두 축인 영업과 관리. 누가 헤게모니를 잡느냐 하는 싸움이죠. 지금까지는 압도적으로 영업이 칼자루를 쥐고 이 물산을 지배하고 있죠.”
“물산은 무역 회사야. 그리고 무역 회사의 중심은 바로 영업이고. 영업부서가 칼자루를 쥐는 건 당연하지. 아무리 인턴이라도 이 정도도 몰라?”
“영업부가 칼자루 쥐는 것도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
“유효 기간? 야! 그게 무슨…….”
“한창 성장할 때야 그렇지만, 지금 최성물산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매출이 5조에서 멈춘 게 몇 년 됐으니.”
김 상무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작 인턴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성장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사장님도 머리 아플 테고요.”
“이봐, 인턴. 이야기 들어 주니까 자꾸 건방져지려고 한다. 말 가려서 해.”
“그게 뭐 중요한가……. 아무튼, 성장 한계치에 이르렀을 땐 관리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법 아닙니까?”
“경영학책 좀 봤나 보지? 그렇다 치고, 그게 외주 업체 재고 현황이랑 무슨 상관이지?”
“알면서 물으시는 겁니까?”
“건방 떨지 말고 대답이나 해 봐.”
“서로 입 맞추려다 보면 현황 작성이 늦어지죠. 입 맞춘다는 건 문제가 많다는 증거고.”
“뭐, 이야기 좀 들었어? 외주 업체에 뒷돈 받는 비리 상사맨?”
“재고까지 입 맞출 정도라면 개인 비리가 아니죠. 회사 비리지.”
“뭐, 회사 비리?”
“외주 업체 자체가 누군가의 회사겠죠. 임원의 회사일 수도 있고, 간 큰 부장의 회사일 수도 있고 말이죠.”
본질을 말하는 인턴 때문에 놀란 김 상무는 속내를 감추려 농담을 던졌다.
“드라마 봤구만. 너도 미생 봤어?”
뭔 말이야? 미생? 미생물? 기생충이 아니고?
“좋아, 그렇다 쳐. 그게 관리의 중요성이랑 무슨 상관이야?”
아이고, 요놈 참. 다 알아들었으면서 뭘 모르는 척하는 거야?
요즘은 뭐 이런 식으로 교육하나? 아니면 아직 결심하지 못한 건가?
“영업부서 칼질 좀 하면 권력이 넘어오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칼질 제대로 하면 회사가 뒤집힐지도 모르고…….”
김 상무는 회장님을 병원으로 보낸 이 인턴이 왜 자재부에 있는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인턴 주제에 사내 헤게모니 싸움도 알고, 싸움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도 안다.
이놈은 영업 체질이 아니라 기획 체질인가?
김 상무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소설 같은 이야기는 잘 들었다. 나가 봐.”
강 회장은 김 상무가 망설이는 이유를 안다.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하면 역적모의가 될 수도 있다. 사장도 걸려 있다면.
“상무님, 최 사장님은 그런 쪽으로 깨끗하실 겁니다. 싸움이 크게 벌어지면 사장님은 상무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강 회장은 놀라 입을 떡 벌린 김 상무를 못 본 척하며 나와 버렸다.
최 사장이 5년 넘게 물산을 지배하는 이유가 바로 돈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강 회장은 잘 아는 까닭이다.
* * *
“진행하라고요?”
“그래. 근데 너 말이야, 박재우.”
“네, 상무님.”
“놀라기는 왜 놀라? 이거 하자고 한 게 너야.”
박 팀장은 웃으며 말하는 김 상무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어제 얻어먹은 욕이 소화도 안 됐다. 그런데 하루 만에 뒤집어?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말하는 거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에서 일 제대로 하려면 방법은 하나다. 정석!
“공문부터 날리겠습니다. 앞으로 외주 업체 재고 현황 파악은 우리 자재 2팀에서 직접 한다고요.”
박 팀장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 상무의 얼굴을 봤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그러려면 상무님 결재가 필요한데…… 어떻게…… 부장님 전결로 할까요?”
팀장이라는 놈이 인턴보다 상황 파악을 못 한다. 일을 크게 키우려면 아랫것들은 빠지고 윗대가리들만 남아야 한다.
상무가 결재하는 순간 이 싸움은 지원본부장인 자신과 영업본부장인 전무의 싸움이 된다.
“내가 결재한다. 내 사인이 들어간 공문을 영업본부장부터 부장급까지 쫙 돌려.”
“네! 상무님.”
박재우 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임원이 사인한 공문이다. 이제부터 일어날 소란은 임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