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149
“각하께서 어떤 위업을 쌓고 오셨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드워프들은 내 건강을 염려했고, 카라예프를 비롯한 용병들은 내가 겪은 무용담을 기대했다.
“서부의 악은 소탕하셨습니까?”
“아도나이께서 내리신 사명을 완수하신 겁니까?”
사제들은 내가 신탁에 나온 악을 처단했는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아 참, 얘들은 아직 서부 소식을 못 들었구나.’
내가 화룡 오비데우스를 처치했다는 건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긴, 그 일은 아우레오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중부 대교구에 도착한 뒤 정식으로 보고를 올려야 알려질 테니까.’
나는 해안에서 조르가드를 타고 오덴세섬까지 한 번에 왔지만, 성직자들은 중부 대교구까지 육로로 가야 했다. 심지어 용의 사체까지 수레에 실어 가야 한다.
그들이 나보다 먼저 서부를 떠났어도, 속도를 고려하면 아직 중간 지대를 걷고 있을 터다.
“많은 일이 있었다. 천천히 이야기해 주마. 그동안 영지에는 별일이 없었느냐?”
“영지에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도 많고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연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술 한잔과 함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카라예프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드워프들은 연회라는 말에 이미 만세를 외치고 있었고, 향락을 즐기지 않는 안드레아 사제마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연회를 준비해라. 나는 우선 씻어야겠으니 목욕물을 받아 두어라.”
“예, 각하.”
나는 영지의 중신들과 함께 장원으로 들어갔다.
사파에서 온 용사
돌아온 영주
나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가 장장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우리는 술과 음식을 즐기며 그동안 각자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가 서부에서 행한 업적을 이야기하자, 영지의 중신들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리거나, 엎드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나의 용맹을 찬양했다.
중신들도 섬의 개발 현황을 보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없어도 영지는 잘 굴러가고 있었다.
조르가드가 바다를 틀어막고 있으니 외적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인구와 물자가 풍족하니 토지 개간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영주가 팔자 좋게 서부를 유랑하는 동안, 영지민들은 봄 파종을 무사히 마쳤고 지금은 여름 농사가 한창이었다.
‘올해는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영지는 자급자족을 넘어 슬슬 수익이 나오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힘릿이 이끄는 잿바위 드워프들은 철광 하나와 구리광 두 개를 찾아냈고, 그중 철광은 충분한 생산성을 갖추었다고 판단해 본격적인 굴착에 돌입했다.
농지가 늘고 광산까지 생기자 유입되는 인구가 크게 늘었고, 어느덧 섬의 주민은 물경 삼천 명에 달했다.
‘벌써 삼천 명이라니, 너무 빨리 늘어나는 게 아닌가?’
이 세계에서는 인구가 오천 명 정도만 되어도 도시라고 불리고, 일만 명을 넘어서면 어딜 가도 꿀리지 않는 중견 도시로 대우받는다.
한 지역에 인구가 이만 명에서 삼만 명 정도면 누구나 대도시로 인정할 정도였다.
고작 일천 명이었던 오덴세섬의 인구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세 배로 늘어났으니, 이런 추세면 대도시로 발돋움하는 것도 머지않은 듯했다.
‘십 년, 아니 오 년 정도만 지나도 대도시 반열에 들어갈 수 있겠군.’
인구가 급증했지만, 물자가 부족하진 않았다.
다레스를 필두로 붉은 모루 드워프들이 미친 듯이 공산품을 찍어 낸 덕분이었다.
드워프의 생산 속도는 실로 대단해서, 폭증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주택과 농기구, 무구까지 부족함 없이 공급하고 있었다.
“이주민이 급증했는데, 기존 주민과 갈등은 없느냐?”
“큰 문제는 없습니다, 각하. 초기에는 여러 다툼이 있었습니다만, 빠르게 질서가 잡히고 있습니다. 오덴세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소소한 갈등은 있겠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내 물음에 카라예프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영지의 치안과 분쟁 조정은 카라예프가 맡아서 돌보고 있었다.
그는 대형 용병단을 이끌며 다양한 갈등 관리 능력을 쌓았고, 이것은 영지 내정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
또한, 군기가 살아 있는 사자갈기 용병단은 자경대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범죄자는 대부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체포됐고, 어설픈 왈패 따위는 감히 오덴세섬에서 설치지 못했다.
카라예프의 보고가 끝나고, 이번에는 사제들의 차례였다.
“각하, 교회에서는 인구 증가에 발맞춰 교회를 늘렸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주민이 세례를 받았고, 꾸준한 교육으로 섬의 문맹률을 크게 낮추었습니다.”
주민들의 글공부는 내가 특히 신경 쓰는 분야였다. 중원에서 살다 온 나는 문자의 힘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현재 문맹률은 어느 정도지?”
“7세 이하 아동과 60세 이상 노인을 제외하면 삼 할 정도입니다.”
“삼 할? 놀랍군. 교회에서 애를 많이 썼구나.”
내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영지민 중 문맹이 삼 할이라니, 달리 말하면 칠 할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대부분 글을 모른 채 살다 죽는다. 노예나 평민은 물론이고, 귀족들 중에서도 까막눈이 태반이다.
언젠가 북부의 귀족과 대화하다가 글을 모르면 답답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휘하에 유능한 문장관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오?’라고 반문하기에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주민의 칠 할이 글을 깨쳤으니, 슬슬 서신을 활용한 행정 통치로 전환해야겠군.’
현재는 영주의 지침을 각 마을로 하달할 때, 전령이 일일이 찾아가서 소식을 전했다. 그러니 정보 전달이 느린 건 물론이고, 내용이 왜곡되고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흔했다.
마을에 글을 아는 촌장이 있다면 전서조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 경우는 촌장들이 영주의 권위를 악용하는 문제가 있었다.
다른 주민들이 죄다 까막눈이니, 촌장이 멋대로 지어내는 말이 곧 영주의 명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대다수의 주민이 글을 깨치면 그럴 일이 없지. 행정의 문서화는 섬의 발전 속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적혈의 뱀파이어들처럼 마법 수정구를 곳곳에 배치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당장 활용할 수 없는 기물이다.
지금은 전서조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사제들은 자기들의 성과를 계속 보고했다.
“인구가 늘면서 섬 중심부 상가에 갱단이 운영하는 도박장이 다수 들어섰습니다.”
“하긴, 그런 놈들이 꼬일 때가 되었지. 어떻게 조치했느냐?”
“갱단은 사자갈기 용병단의 도움을 받아 강제 해산시켰고, 수괴들은 교회 수도원에서 교화 중입니다.”
‘수도원에서 교화’란 쉽게 말해 옥살이였다. 지하 독방에 가둬 놓고 정해진 기간 동안 물과 보리죽만 먹이며 성경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큭큭, 그런다고 갱들이 개과천선하진 않겠지만, 보리죽을 먹기 싫어서라도 당분간은 죄를 짓지 않겠지.”
내가 웃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제들이 마지막 사안을 보고했다.
“갱단이 운영하던 도박장은 일반 술집으로 업종을 바꾸도록 조치했습니다.”
“잘했다. 슬슬 영지 내에 여윳돈을 가진 사람도 나올 텐데,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나오기 전에 싹을 자르는 게 좋지.”
“또한, 몰래 개업한 창관들도 일제히 단속해 폐점 조치했습니다.”
“…….”
이 대목에서는 약간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카라예프를 비롯한 사자갈기 용병단원들의 표정도 떨떠름했다.
“빛의 집행자이신 크로우 백작 각하께서 다스리는 영지에 음탕한 윤락 업소를 차리다니, 마음 같아서는 포주를 잡아다 가시 채찍으로 벌하고 싶었지만, 카라예프 대장이 자비를 권하기에 참았습니다.”
꼬장꼬장한 안드레아 사제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카라예프와 눈을 마주쳤다. 카라예프는 죄지은 강아지처럼 눈을 피했다.
나는 그의 곤란한 표정을 보며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용병들이 회포를 풀지 못해 불만이 쌓인 모양이군.’
대부분 자기 짝이 있는 주민들과 달리, 사자갈기 용병단은 징그러운 사내들끼리 벌써 일 년 가까이 합숙하고 있었다.
자유롭게 대륙을 주유하던 혈기 왕성한 용병들. 그런 자들을 창관도 없는 외딴섬에 처박아 두었으니, 그들을 이끄는 카라예프도 입장이 난처했을 터다.
“카라예프.”
“예, 각하.”
나의 부름에 카라예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는 창관 포주의 뒤를 봐준 것에 대한 처벌을 각오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오덴세섬에 물자가 풍족해지고 있다. 넘치는 음식에는 파리가 꼬이는 법. 슬슬 북해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이 약탈을 시도할 때가 되었지.”
“해적들이요? 섬 연안에 조르가드가 사는데 해적들이 무슨 수로…….”
“너는 영지의 각 마을을 돌며 건장한 사내들을 골라 민병대를 조직하고, 배를 구해 섬 주변을 정찰해라. 보급은 오덴세섬과 해안 마을을 오가며 실시하고, 군자금 등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따로 와서 보고해라.”
“가, 각하, 그 말씀은……?”
“오늘부터 착수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신호를 주자, 카라예프도 내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챘다.
“알겠습니다, 각하!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이로써 사자갈기 용병단은 정기적으로 해안 마을에 드나들 명분이 생겼다. 그곳에서 사제들의 눈을 피해 회포를 풀 수 있을 터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할 일을 미뤄 두고 계집질만 하진 않겠지.’
카라예프는 야무진 놈이니, 용병들이 너무 풀어지지 않게 잘 관리할 것이다.
또한, 실제로 주변 정찰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조르가드가 있으니 해적들이 섬을 약탈하러 오긴 어렵겠지만, 인구가 더 늘기 전에 주변 섬을 파악해서 나쁠 게 없지.’
북해에는 오덴세섬 말고도 큰 섬이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북해의 야만인으로 이루어진 해적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뒤를 봐주는 대영주가 없으니, 무력으로 밀어낼 수만 있다면 북해 군도의 많은 섬이 전부 내 땅이 되는 셈이다.
‘해적 본거지에 침투해서 세력을 자세히 파악하면 좋을 텐데……. 겸사겸사 암시장에서 마정석도 알아보고. 쳇, 카심과 이자벨라가 없으니 지저분한 일을 맡길 사람이 없군.’
평범한 행정 업무는 사제들이 잘 처리해 주었다. 토지 개발은 힘릿이 전담했고, 공산품 제작과 건축은 다레스가 책임졌다. 영지의 치안과 분쟁 조정은 카라예프가 맡아서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과 관련된 의문이 생기거나, 교회에서 금하는 물건이 필요하거나, 기타 대놓고 하기 어려운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오크들을 좀 만나 보고 와야겠다.’
내가 오크들을 떠올린 건 오덴세섬으로 돌아온 지 무려 보름이나 지난 뒤였다.
* * *
“이리 오너라-!”
“취익, 각하! 언제 돌아왔나!”
오크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나를 맞이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원망까지 담겨 있는 듯했다.
“왜 이렇게 반기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취익, 각하가 없는 동안 큰일이 있었다!”
오크들은 핏대를 세워 가며 자기들이 겪은 일을 떠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적발 적안의 마법사가 분지에 쳐들어왔고, 무자비한 화염 마법으로 오크를 여럿 살해했다는 것이다.
‘오비데우스 이 새끼, 섬에 진입하자마자 본체로 돌아와야 했을 텐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기어코 패악을 부렸군.’
하여간 죽어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놈이었다.
오크들의 성토는 한동안 이어졌다. 오비데우스가 차원 관문과 함께 자기네 일족을 강제 이주시키려고 했다는 둥, 자기들은 굳건한 절개로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둥 뻔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의 끝에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내용이 있었다.
“오비데우스의 분신이 섬에 그대로 있다고?”
“취익, 그렇다. 빨간 머리 마법사는 무슨 이유인지 정신을 잃고 추락하더니, 취익, 아직도 잠들어 있다. 취익, 가사(假死) 상태인 것 같다.”
오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오비데우스의 분신은 썩거나 야위지 않고 벌써 몇 달째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혼백이 없는 육신에 명(命)만 남은 건가? 상상이 안 되는군. 내가 직접 봐야겠다.’
오크 주술사들에게 안내받아 오비데우스의 분신을 보러 갔다.
오크들은 이 적발 적안의 마법사가 어지간히 두려웠는지,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두꺼운 석관에 넣고 주변을 온갖 마법으로 봉해 두었다.
‘이런 거 만들 시간에 토템이나 열심히 만들지.’
겁 많은 오크들의 행동이 내심 답답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크들이 석관을 열자, 백옥과 홍옥을 깎아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오비데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살아 있군. 최소한 육신은 살아 있어.’
예상대로 오비데우스의 분신은 혼백 없이 육신만 살아 있는 상태였다.
육신 없이 혼백만 남은 보브찬친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희귀한 경우일 것이다.
사파에서 온 용사
시체 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