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29
냅다 휘두른 주머니가 사내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건들거리던 취객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동전 주머니에 달린 끈을 잡고 돌리자 붕붕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났다.
“더 줄까? 이야깃값.”
“이런 개새끼가!”
취객들은 친구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도 겁을 먹기는커녕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다. 과연 개척 도시의 사나이다운 패기였다.
퍽! 퍽! 퍼억!
몇 차례 동전 주머니가 휘둘러지고 취객들은 모조리 바닥에 뻗어 버렸다.
“이제 이야기할 마음이 생기나?”
“으으…….”
“자세히 설명해 봐. 놀 주술사인지 뭔지에 대해서.”
“아, 예, 예.”
놀은 오르샤바 인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사람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고블린보다는 큰 체격을 가진 집단 서식 몬스터.
집단을 이루는 만큼 기초적인 사회성을 가졌고, 너절한 갑옷과 무기를 사용할 정도의 지능도 있다.
“고작 그 정도 지능으로 주술을 써?”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몬스터 중에는 간혹 마나와 감응하는 개체가 태어나는데, 놀도 예외는 아니었다.
높은 지능과 마나 친화력을 가진 새끼가 태어나면, 놀은 부락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주술을 가르친다.
그렇게 성장한 고지능 놀은 주술사가 되어 부락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마나를 쓴다고? 그럼 놀의 주술이라는 건 결국……?”
“뭐, 마법인 셈이지요…….”
* * *
“나오슈.”
철창이 열리고 간수가 손짓했다.
“거, 순례의 수호자라고 미리 말씀을 하시지. 그럼 이런 고초를 겪지 않으셨을 텐데.”
“고초는 무슨.”
간수의 말에 건성으로 답하며 관청 밖으로 나왔다.
아우레오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취객을 폭행한 죄로 도시 자경대에 체포된 나를 아우레오가 꺼내 준 것이다.
“테온,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사제 아우레오가 내 신분을 보증하자 자경대는 나를 즉시 석방했다.
“명망 있는 사제를 뒷배로 두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명망이라뇨, 과찬이세요.”
“맞잖아? 감옥에서도 네 이름이 들리더군. 오르샤바 교구에서 네 명성을 높이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지?”
“그건…… 맞아요.”
아우레오는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오르샤바에서 아우레오가 갑자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옐란치노 주교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이번 토벌에 사제가 종군한다는 사실을 백방으로 알리고 있었으니까.
거리의 부랑자와 빈민에게 푼돈을 쥐여 주며 소문을 퍼뜨리고, 각 지부의 사제들은 예배 시간마다 아우레오의 이름을 홍보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아우레오의 희생과 봉사를 칭송하게 된 것이다.
“그런 걸로 유명해지면 좋지 뭐. 덕분에 나도 감옥에서 쉽게 나오고, 흐흐.”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테온 때문에 얼마나 난처했는지 아세요?”
아우레오가 ‘뱁새눈’을 떴다.
한창 신의 성실한 사제로 이름을 높여 가는 와중에 순례의 수호자라는 놈이 술집에서 시민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했으니…….
“술 먹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순례의 수호자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조심해 주세요.”
‘무림에서는 밥 먹듯이 하던 짓인데.’
객잔에서 술 처먹다 싸우고 집기를 부수는 건 중원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르게만 살아온 아우레오에게는 살면서 겪은 가장 난감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옐란치노 주교에게 받은 망토와 브로치는 착용하지 않았으니, 교구에서 주교의 명예가 어쩌고 하면서 트집 잡진 않겠군.”
“그건 정말 잘하셨어요. 주교 예하께 폐를 끼치면 안 되지요.”
한눈에 봐도 귀한 물건인 망토와 오르샤바 교구를 상징하는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었다면, 경비대는 애초에 날 체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권위를 빌리면 결국 빚을 갚을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밤거리로 나오며 망토와 브로치를 두고 온 것도 딱히 주교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노회한 정치인에게 이런 사소한 일로 빚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옥살이를 마친 해후는 이 정도로 하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이번 토벌에 나도 참가한다.”
“네?”
“동쪽 숲 토벌 말이야. 그거 나도 한자리 끼자고.”
“테, 테온……!”
아우레오는 감격했다. 술집에서 사고 친 건 금방 잊어버린 듯했다.
“제가 테온 때문에 난처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출정을 결심하시다니……. 역시 테온은 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뭐, 너랑은 딱히 상관이…….”
“하긴, 꼭 그게 아니더라도 테온의 내면에 자리 잡은 정의가 종군을 결정하게 만들었겠지요. 민생을 해치는 몬스터 무리를 두고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아니, 민생도 나랑은 그다지…….”
한번 오해하면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자기 생각에 깊이 매몰되어 버리는 아우레오의 고질병이 또 시작됐다.
‘그래, 네 좆대로 생각해라. 모로 가도 내공만 얻으면 그만이다.’
놀 주술사를 잡으면 마법사를 찾기 전에 또 한 번 내공을 불릴 수 있다.
아우레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저렇게 오해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이거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난 도시 경비대나 용병의 신분으로 종군하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네 수호자로서 참전하는 것이고, 토벌 기간 내내 너와 함께 다닐 거다.”
“그야 물론이지요, 테온.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든든합니다!”
아우레오는 감동한 얼굴이지만,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아우레오가 다치면 영주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터. 어지간하면 이놈을 전투에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놀 주술사가 나타나면 아우레오가 나서야 하겠지만, 그 외에 평범한 놀 전사를 상대하는 건 다른 병사들의 역할이었다.
‘난 후방에서 농땡이나 피우다가 놀 주술사가 나타나면 그놈만 노린다.’
다른 귀찮은 싸움에는 볼일이 없다.
오직 놀 주술사의 마나만 노리는 나로서는 이놈과 함께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흐흐, 이번에도 멋지게 한 건 해 보자.”
“좋습니다, 테온. 지난번 마녀 소탕처럼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웁시다!”
주먹을 내밀자 아우레오도 맞받아쳤다. 부딪친 두 주먹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 * *
보름 뒤.
출정식이 열렸다. 도시 광장은 군중으로 바글거렸다. 출정하는 토벌대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의 목말에 탄 소년은 갑옷을 차려입은 기사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소녀들은 창가에서 꽃잎을 뿌렸다.
젊은 여인들은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 병사들을 향해 던지며 축복했고, 병사들은 그 속옷이 무사 귀환의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마다 하나씩 주워 품에 간직했다.
도시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토벌대 규모가 생각보다 작네. 군사를 일으킨다길래 수천 명을 동원하는 줄 알았는데.”
“수천 명은 어지간한 대영주도 동원하기 힘든 숫자예요. 이 정도도 굉장한 규모입니다.”
내 혼잣말에 아우레오가 대답했다. 우리는 행렬의 맨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중원에서 천자가 황군을 일으키면 최소 만(萬) 단위의 병력이 움직였다.
일개 성에서 마적이나 오랑캐 퇴치를 위해 병력을 모을 때도 일천 명 정도 동원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토벌에 동원된 병사는 이백오십 명이 다였다.
“이백오십 명이라니, 영주의 이름을 걸고 나서는 토벌이라지만 너무 많네요. 영주가 힘을 과시하는군요.”
‘삼백도 안 되는 숫자로 뭘 과시한다는 거야?’
심지어 동원한 병력이 모두 훈련받은 정예도 아니었다. 토벌대는 도시의 상비군과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은 용병이 뒤섞여 있었다.
‘도시의 영주라길래 대단한 권세를 누리나 했는데,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중원무림의 명문세가만도 못하군.’
이곳의 귀족은 가진 재력이나 권위에 비해 무력이 보잘것없었다.
중원의 황군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태양 앞에 반딧불이었고, 어지간한 대형 무림 방파와 비교해도 밀릴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장정 수백 명을 동원하는 것이 강대한 힘이겠지만, 인구가 훨씬 많은 중원에서 온 나에게는 허무할 정도였다.
“그나마 저 토벌대장이라는 놈은 한가락 하겠군.”
선두에 선 토벌대장은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맨 뒤에서도 그 뒤통수가 보였다.
애초에 행렬이 짧아 조금만 고개를 빼면 끝에서 끝까지 보였다.
“그런가요? 체격은 다른 두 부장보다 왜소해 보이는데……. 저는 전사를 보는 안목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우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모는 토벌대장은 상당한 외공을 쌓은 검객으로 보였다.
뒤통수가 따가웠는지, 토벌대장도 뒤를 돌아봤다. 그는 나와 잠깐 눈을 마주치고, 옆에 있는 아우레오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놈이 널 보는 눈빛이 영 아니꼬운데?”
“저 때문에 오르샤바의 영주가 골탕을 먹은 셈이니까요. 토벌대의 대장을 맡을 정도라면 백작의 심복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합니다.”
“뭘 그런 걸 이해하냐.”
선두에서 행렬을 이끄는 토벌대장, 기사 리암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오연한 그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드러났다.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온 숙련된 전사의 자신감이었다.
리암의 양옆으로 두 명의 부장도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 역시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듯 보였다.
“저 왼쪽 놈이 예비대를 이끄는 거지?”
“맞아요. 기예르모 경인데, 영주의 측근 중 하나라더군요. 이번 토벌에는 보병과 예비대 지휘를 맡았고요.”
토벌대는 기병대와 보병대, 예비대까지 총 세 개 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병대는 오르샤바의 상비군으로만 이루어져 토벌대의 주력이었고, 보병대는 주로 용병이지만 숫자가 많았다.
반면, 나와 아우레오가 속한 예비대는 소수의 특수 인력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특수 인력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마부나 짐꾼 등 잡역부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기예르모 경은 마상 검술이 대단한 사내라던데, 보병과 예비대를 담당하다니 의외네요.”
“아마 저놈의 역할은 전투가 아니라, 예비대를 지키고 보병대의 군기를 유지하는 것이겠지.”
보병대는 여러 용병단의 집합체였고, 위기가 닥치면 금방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예비대는 전투를 위한 조직이 아니었다. 무장도 빈약했고, 결정적으로 아우레오가 속해 있었다.
‘예비대는 아우레오를 지키는 게 주요 임무겠지. 혹시라도 아우레오가 죽거나 다치면 영주의 체면이 말이 아닐 테니.’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토벌대를 이끄는 총대장 리암에게 아우레오는 짐짝이나 마찬가지다.
본래 토벌전은 전면전보다 변수가 많고 갑작스러운 전투가 자주 벌어진다.
그런 산만한 전투에 외지에서 온 사제가 끼어든 상황이니, 지휘관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토벌대는 시민의 축복을 받으며 도시를 벗어났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휘적휘적 뒤를 따랐다.
사파에서 온 용사
유치한 기 싸움
토벌대장 리암은 아우레오와 나를 예비대에 처박아 놓았다.
출정식에서부터 최후방에 배치한 걸 보니, 역시 전투에 투입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