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35
* * *
누런 연기는 실수가 아니었다. 발연지에 도착하니, 1조의 꼴이 처참했다.
병사가 여럿 죽었고 부상자도 다수였다. 리암을 비롯한 기사들도 갑옷 곳곳이 상하고 상처가 보였다.
“리암 경, 이게 무슨 일입니까?”
“웨어울프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사제님은 무사하셨군요.”
“예?”
아우레오가 어벙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웨어울프가 이미 우리 존재를 알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놈의 기습에 큰 피해를 입었어요.”
“아, 아니, 웨어울프는…….”
“맞아요. 강하고 교활한 몬스터지요. 하지만 이 정도 병력을 상대로 먼저 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다.”
리암은 분기탱천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몬스터 한 마리 때문에 많은 병사를 잃고 기사들까지 다쳤으니 화가 날 만했다.
“한데, 2조의 수레에 실린 건 뭡니까? 제법 묵직해 보이는데요.”
“웨어울프예요.”
“그렇군요……. 예?”
아우레오가 사체를 덮은 천을 걷어 냈다. 우람한 웨어울프의 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2조도 웨어울프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테온이 나서서 제압했는데…… 두 마리였던 모양이네요.”
“테온이 제압했다고요? 심지어 이렇게 큰 개체를…….”
리암의 표정이 복잡했다. 웨어울프를 잡았으니 응당 기뻐해야 할 일인데, 정작 자기가 이끄는 1조의 꼴이 우습게 됐다.
“나머지 한 마리도 사냥하고 도시로 복귀하죠. 1조를 습격했다면 아직 이 근처에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유인작전을 펼쳐서 설욕을…….”
“됐어. 어느 세월에.”
리암의 말을 자르고 앞으로 나섰다.
다른 병사들과 조금 떨어져 바닥에 귀를 대고 내공을 집중했다. 천리지청술이었다.
‘빨리 잡고 집에 가야지.’
땅의 진동으로 잡아낸 다양한 발소리를 하나하나 분류하다 보니, 아까 상대한 웨어울프와 비슷한 유형이 있었다.
좀 더 가볍고 사뿐사뿐하는 느낌이지만, 분명 두 발로 걷는 늑대의 발소리였다.
‘암컷인가?’
“찾았다. 너희는 뒤따라와서 놀 잔당을 처리해 줘.”
운해비영을 펼쳐 쏜살같이 달렸다.
등 뒤로 두란을 비롯한 용병들과 기병들이 허둥지둥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본 것은 내가 선운비뢰장으로 웨어울프의 심장을 으깨는 모습이었다.
* * *
“대단한 활약을 했군.”
“맞아, 대단한 활약을 했지.”
겸손 떨지 않는 나를 보며 리암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저런 괴수를 두 마리나 처치했으니, 널리 퍼질 업적을 세웠어.”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장 정리가 거의 끝나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흥건한 피와 살점이 흙바닥 곳곳에 널려 있었다.
병사들이 부상병을 수습하고 놀 사체를 한곳에 모았다.
“웨어울프 사체는 가죽이 상하지 않게 신경 써서 수거해라. 오르샤바로 가져가서 백작 각하께 진상한다.”
“놀 귀때기는 따로 챙겨! 숫자에 맞게 추가 포상을 지급하겠다.”
선임 병사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전장 정리를 지휘했다.
요네스는 병사들을 지휘하며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토벌 초기에는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지만, 실력을 보여 주니 더 이상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서부 기사 놈들, 속이 좁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력 차이를 보여 주면 승복하는군.’
서부인 특유의 기질인지, 능력제일주의를 표방하는 가야르도 백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의외로 기사들은 뒤끝이 없었다.
“자네 덕에 인명 피해 없이 임무를 완수했네. 병사들은 오늘 경험을 통해 몬스터와 싸울 자신감을 얻었어.”
리암이 씨익 웃었다.
병사들은 웨어울프의 사체를 보며 두려움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토벌대는 이 흉악한 괴물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기예르모는 좀 어떻지? 당장 뒈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던데.”
“방금 의식을 되찾았네. 흉골을 다쳐 당분간 거동이 불편하겠지만, 도시로 돌아가 치료받으면 깨끗하게 회복하겠지.”
“쩝.”
웨어울프의 앞발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예르모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그 소식에 애매한 반응을 보이는 나를 보며 리암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행처는 정했나? 듣자 하니 자네는 소속된 곳이 없다면서?”
“우선 아우레오와 함께 북부로 갈 생각이야.”
“오르샤바에 남을 생각은 없나? 자네만 좋다면 영주께 말씀드려서 백인장 직위를 받게 해 주겠네.”
리암의 눈빛이 진지했다. 오르샤바가 능력주의 도시라지만, 입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방인에게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게 해 주는 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리암은 나에게 이 정도 직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네의 실력을 붉은 모루 용병단을 통해 듣기는 했지만, 사실 처음엔 믿지 않았네. 하지만 자네는 스스로 증명해 냈지. 오르샤바에 남게. 자네의 진정한 가치는 순례가 아닌 자유도시에서 빛을 발할 게야. 특히 그 말도 안 되는 손바닥 치기는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리암도 오르샤바에서 손꼽히는 전사겠지만, 선운비뢰장으로 웨어울프를 죽이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관심 없어.”
“우리 오르샤바는 이 넓은 대륙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도시라네. 후회하지 않을 거야.”
“관심 없다고.”
“크흠, 그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생각보다 단호한 거절에 리암이 머쓱하게 입맛을 다셨다.
“자넨 아직 젊으니,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겠지. 이해하네.”
리암은 역시 경험이 많은 군인이었다. 그는 젊은 영웅을 포섭할 기회가 오늘만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오르샤바에 정착시키지 못하더라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면 언젠가 더 큰 인물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착과 별개로 이번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니 상을 주어야겠지. 혹시 바라는 것이 있나?”
리암이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사파에서 온 용사
늑대 도살자
“난 웨어울프 가죽값만 받으면 돼.”
“돈? 겨우 그건가? 거기에 더해서 신원보증서를 발급해 주겠네.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젊은이에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거든. 내가 직접 백작 각하께 말씀드리지.”
“오, 그건 고맙네.”
옐란치노 주교에게 받은 브로치와 별개로, 도시에서 내주는 신원보증서는 탐나는 보상이었다.
지금은 아우레오와 함께하니 신분증이 필요 없지만, 천년만년 아우레오와 동행할 건 아니었다.
교회와 귀족. 양쪽 모두에게 신원을 보증받아 두어서 나쁠 게 없다.
‘뜻밖의 수확을 얻었네. 정작 기대한 내공은 얻지 못했지만.’
내가 놀 토벌에 참가한 이유는 오직 놀 주술사를 잡기 위해서였다.
마법을 쓰는 몬스터에게 흡성대법이 통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고, 가능하다면 내공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놀 부락이 전멸하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정말 다른 괴수와는 다르군.’
놀 주술사의 지능은 인간에 버금간다더니, 놈은 실로 영악했다. 동족이 모조리 죽어 나가도 어디에 숨었는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웨어울프에게 죽었을지도?’
결국 토벌대는 놀 주술사 퇴치를 포기하고, 1차 목표인 부락 토벌에 만족하기로 했다.
웨어울프라는 대어를 낚았으니 오히려 더 큰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나만 원하는 걸 얻지 못했구나. 젠장, 그나마 신원보증서를 얻었으니 헛걸음은 아닌 셈인가.’
놀 부족을 쓸어버리면서 오르샤바의 시민들은 안전을 확보했다. 기사들은 공을 세웠고, 병사들은 값진 경험과 포상을 받게 될 것이었다.
토벌에 참여한 용병들은 두둑한 임금을 받을 테고, 아우레오는 정의롭고 용맹한 사제로 이름을 떨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나 혼자만 원하는 걸 얻지 못한 것 같아 입맛이 텁텁했다.
“부대를 재편성하겠다. 부상자를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를 넷으로 나누어 사방에서 호위하며 이동한다.”
전장 정리가 끝나고, 리암은 부대 편성을 바꾸어 복귀를 서둘렀다.
“사제님, 테온. 두 사람은 저와 함께 선두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시지요.”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 리암은 나를 자신의 곁에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건넸다.
출정해서 도시를 떠나올 때는 리암과 요네스, 기예르모가 선두에 있었지만, 돌아갈 때는 리암과 나, 아우레오가 선두였다.
중상을 입은 기예르모는 중앙에서 수레를 탔고, 요네스는 행렬 끝에서 후방을 지키며 이동했다.
웨어울프 두 마리를 죽인 것으로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 * *
토벌대는 위풍당당하게 오르샤바로 개선했다.
비록 놀 주술사는 찾지 못했지만,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토벌대의 개선 행진을 구경했다.
사방에 꽃잎이 날리고, 들뜬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여인네들의 교태로운 웃음이 전사들을 맞이했다.
“이겼노라!”
선두의 리암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모여든 군중이 그에 화답하며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토벌대는 추악한 이종의 위험으로부터 인간의 땅을 지켜 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목숨을 걸고 영역을 지켜 낸 수사자였다.
“난 이 맛에 싸운다.”
“흐흐, 돈도 돈이지만, 이 개선 행진의 맛이 각별하지요.”
병사와 용병 들도 해맑게 웃으며 농담을 나누었다. 그들은 합당한 보상을 즐기며 거침없이 내성으로 향했다.
“세상에! 저게 뭐람?”
“웨, 웨어울프잖아? 정말 크다!”
화려한 개선 행사 중에서도 수레에 실린 웨어울프의 사체는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대한 늑대 인간의 사체에 입을 딱 벌리고 감탄을 터뜨렸다.
* * *
놀 토벌이 끝나고 평화로운 며칠이 흘렀다. 토벌대에게는 포상이 내려졌다.
용병들은 두둑이 임금을 받았고, 병사들도 상여금과 휴가를 받았다.
기사들은 영주의 저택에서 별도로 포상을 받는다고 했다.
아우레오는 오르샤바 교구의 고위 사제들과 여러 행사를 치르느라 얼굴도 자주 비치지 못했고, 자연히 일행의 북부 순례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나도 웨어울프의 사쳇값을 아직 못 받았기 때문에 당장 떠날 마음은 없었다.
“이보게 테온,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에릭이 밥을 먹다 말고 말을 걸었다. 그의 눈이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다.
“도시의 시민들 사이에서 자네를 부르는 칭호가 생겼더군. ‘늑대 도살자’라고 부른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