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from Sapa RAW novel - chapter 39
* * *
며칠 뒤, 백작 쪽 사람의 안내를 받아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사원 입구는 생각보다 멀었다. 외성을 벗어나 벌판을 지나고, 빽빽한 덤불 지대를 이틀이나 가로질러야 도착할 수 있었다.
‘이걸 찾아낸 것도 용하네.’
아우레오에게는 도시 관광을 하고 오겠다고 대충 둘러댔으니 며칠 걸려도 상관없었다.
안내인의 발이 느려 덤불 지대를 통과하는 게 답답했지만, 막상 도착하니 호기심이 앞섰다.
“저기가 입구인가?”
“앗,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똑같은 덤불인데?”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이 놀라며 물었다.
“딱 보면 알아.”
“역시 대단하십니다.”
병사들은 엄지를 치켜들었고, 백작의 기사들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교단파에 속한, 심지어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민초들에게 명성을 떨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정작 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칭송받는 게 낯뜨겁고 어색했다.
사원 입구를 찾은 것도 그 주변만 기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고, 내공을 익힌 무림인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놈들은 기감도 없이 이걸 찾았으니, 어찌 보면 얘들이 더 대단하네.’
병사들이 입구 주변의 덤불을 걷어 냈다.
그들은 부정 탈까 염려하는 듯 길이가 일 장이 넘는 긴 쇠스랑으로 조심조심 입구를 열었다.
“풀을 베어도 잠깐 한눈을 팔면 다시 자라나 입구를 막아 버리더군. 분명 마법이겠지.”
기사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환각이 아니라 진짜로 풀이 다시 자라게 만들다니, 마법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다녀오지.”
“무운을 비네.”
기사들의 배웅에 대강 손을 흔들고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 * *
같은 시각, 어두운 밀실.
로브로 온몸을 가린 누군가가 새끼 놀을 해부하고 있었다.
실험대 위에는 배가 쩍 갈라진 새끼 놀 외에도 각종 몬스터의 손발이 굴러다녔다.
벽면을 따라 진열된 유리관에는 반투명한 용액이 가득 담겨 있고, 그 안에 놀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이 정체 모를 괴인은 지금 놀의 손톱에 뱀의 독샘을 이식하려 했다.
“또 실패네. 뱀독은 놀과 상성이 안 좋아. 전갈독도 실패고……. 차라리 해파리독을 사용해 볼까?”
의외로 괴인의 목소리는 여인의 것이었다. 끈적하고 나른한 느낌의 발성이었다.
딸랑-.
“……?”
실험대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괴인은 들려온 종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은신처 입구에 걸어 둔 경보 장치였다.
“망할 인간들……. 지치지도 않고 쫓아와서 귀찮게 하네.”
며칠 전부터 도시의 기사와 병사 들이 은신처로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깨끗하게 죽여 버려도 계속 찾아오는 걸 보니, 이미 영주에게 이곳의 위치가 보고된 모양이었다.
“여기도 슬슬 정리해야 하나.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괴인이 진행하는 실험이 성과를 앞두고 있었다.
평소라면 위치를 들키자마자 도망쳤겠지만, 성공을 코앞에 두고 실험을 중단하기가 못내 아쉬웠다.
그 때문에 그녀는 조금만 더 버텨 보자는 생각으로 찾아오는 기사들을 죽여 가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자, 오늘은 또 어떤 멍청한 칼잡이가 죽을 자리를 찾아왔는지 볼까?”
괴인은 책상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수정구를 꺼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수정구를 몇 차례 쓰다듬자, 수정구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수정구 안에는 웬 새파란 청년이 돌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뭐야, 이건.”
침입자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기사의 갑옷도 아니고, 사제의 예복도 아니었다.
허리에는 싸구려 박도가 덜렁거리고 있었는데, 어두운 복도를 척척 걷는 걸 보니 밤눈이 밝은 모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판금 갑옷과 빛나는 검을 예상했던 괴인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다.
“기사가 말단 병사로 위장한 건가? 그 콧대 높은 놈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침입자는 아무리 봐도 기사가 아니었다.
주변을 배회하던 부랑자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벌써 꼬리를 잡은 것일까?
“모르겠네. 어쨌거나 침입자는 처치해야지. 혹시 모르니 도망칠 채비는 해 두자.”
침입자의 생김새는 별로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괴인은 실험복을 벗어 던지고 절뚝거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핸드벨을 들고 있었다. 잔뜩 녹이 슬어 칙칙한 빛을 내는 핸드벨이었다.
“‘구울’을 보낼까? 아냐, 작동 검사도 할 겸 오랜만에 ‘뚱보’를 보내야겠다.”
괴인은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자 지낸 시간이 짧지 않은 듯했다.
후드 안에서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손에 들린 핸드벨이 규칙적인 종소리를 냈다.
딸랑- 딸랑-.
종소리가 울리자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중갑을 빈틈없이 차려입은 거구의 전사였다.
중무장한 전사는 종소리에 이끌리듯 다가와 괴인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끄어어어…….”
“일어나, 뚱보.”
괴인의 명령에 갑옷 거한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뭉그적거리는 움직임이 굼떠 보였다.
“출입구에 침입자가 있다.”
“끄어어…….”
“……침입자가 있다고.”
“끄어어……?”
“침입자가 있단 말은 당장 가서 처치하란 뜻이야! 이 멍청한 뚱땡아!”
“끄어어…….”
뒤늦게 말귀를 알아들은 갑옷 거한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괴인은 그 모습을 보며 골치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후…… 조금만 참자. 놀 주술사 세뇌 실험만 성공하면, 곧바로 저런 멍청한 ‘언데드’는 전부 폐기해 버릴 거니까.”
치밀어 오른 짜증에 다시 숨이 가빠 왔다. 괴인은 급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빌어먹을 폐병……. 지긋지긋해.”
괴인은 이를 갈았다. 절뚝이는 다리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폐. 망가진 자기 모습에 자괴감과 분노가 치밀었다.
“뚱보가 침입자를 토막 내는 모습이나 구경해야겠군.”
손을 까딱거리자 탁한 종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온몸에 붕대를 감은 시체들이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시체들은 말 잘 듣는 하인처럼 수정구와 음료를 들고 괴인에게 다가왔다.
“의자.”
수정구와 음료를 받아 든 괴인이 짧게 말했다. 시체 하나가 바닥에 짐승처럼 엎드렸다. 괴인은 시체의 등에 걸터앉아 붉고 끈적한 음료를 홀짝였다.
“화끈하게 찢어 죽여 봐, 뚱보. 생전의 실력 좀 발휘해 보란 말이야.”
수정구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를 채웠다.
* * *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통로가 지겹게 느껴질 때쯤이었다.
쿵……. 쿵…….
“……?”
반대편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드디어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인가? 발소리가 묵직한데?’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가오는 기척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두 눈에 공력을 집중했다. 깜깜한 통로가 초저녁처럼 밝게 보였다.
“저 새낀 뭐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통로 반대편의 괴물도 내 존재를 느꼈다. 어딘가 불길한 상대의 시선이 내 쪽으로 고정됐다.
“끄어어어어-!”
쿵 쿵 쿵 쿵 쿵-!
괴성을 내지른 괴물이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괴물의 정체는 온몸에 강철 갑옷을 두른 거구의 전사였다. 그는 사슬 철퇴를 붕붕 휘두르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목 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머리는 없고 몸만 있는 괴물인 것이다!
“끄어어-!”
괴물의 손에 들린 사슬 철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놈이 휘둘러 대는 거대한 추는 사람의 머리통이었다. 그것도 눈알을 끔뻑거리고 목소리까지 내는 살아 있는 머리.
“강시(殭屍)?!”
꽈앙-!
대처법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굉음이 터졌다. 강시가 사슬 철퇴에 달린 자기 머리통을 냅다 휘두른 것이다.
나는 급히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끄어어……!”
머리와 벽이 부딪혔으면 머리가 깨져야 하는데, 석벽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돌벽이 부서질 만큼 강한 충돌에도 강시의 머리통은 멀쩡해 보였다.
쇠사슬 끝에 데롱데롱 매달린 머리통이 퉁방울만 한 눈깔을 굴리며 나의 위치를 확인했다.
“허, 제 머리통을 무기로 쓰는 강시라니. 실로 창의적인 놈이로고.”
나는 바쁘게 몸을 놀렸다.
강시은 나를 맞히기 위해 쉬지 않고 머리통을 휘둘렀지만,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상대를 무거운 사슬 철퇴로 맞히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 민첩하진 않군. 겉모습은 무시무시하지만, 충분히 상대할 만해.’
강시의 근력은 홉 고블린이나 웨어울프보다도 훨씬 강했지만, 움직임이 느렸다.
사슬 철퇴처럼 길고 궤적이 복잡한 무기를 사용하는 이유도 느린 순발력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터다.
‘큰 공격을 피한 뒤 근접해서 반격한다.’
강시는 내가 쥐 새끼처럼 도망 다니자 짜증이 난 것인지, 사슬 철퇴를 점점 크게 휘둘렀다.
기회를 노리던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오는 머리통을 피하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강시를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체내에 흐르는 기맥을 막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 공력을 모으고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갑옷 틈새로 드러난 견정혈(肩貞血, 겨드랑이의 요혈)이 훤히 보였다.
퍽!
“욱!”
지법이 적중했지만 신음을 내뱉은 쪽은 나였다.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감싸고 급히 상체를 흔들며 강시와 거리를 벌렸다.
“이거 완전히 돌덩이네!”
사파에서 온 용사
언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