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자작극
[곧,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실 예정일세.]누가 들으면 황제를 암살하겠다는 사악한 음모의 대화를 나눌 때 나올 법한 말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둘의 입장에서는 그리 놀랄 것도 아니었다.
황제의 승하.
대외적인 껍질과 이름과 직함만 달리 붙이면 끝인 일이며, 동시에 귀족들이 기부하는 부조금을 수거하여 정보부 예산에 보태는 일에 불과했다.
[별로 안 놀라는군?]“조금 놀라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뒷사정 다 아는데 그렇게 놀랄 이유가 있나 싶어서요.”
[하긴 그렇지. 어쨌건 이 뒤에 대략적인 계획이 잡히긴 했네.]장관은 평소 얘기를 하면서 흔히 보이던, 서류를 뒤적이는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란 뜻이었다.
[그림자 우물에 드로칸이 있었단 자네의 말을 듣고 깊게 생각해 봤어. 후방이 더 이상 후방이 아니게 되었다는 건 꽤 큰일이지.]안 그래도 기술력이 몇 수 떨어지는 마당인데 드로칸이 그동안 기술을 남몰래 발전시키고 있었다고?
놈들에게 더 이상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황제 폐하와 상의해 봤네.]현재 제국의 상황은 안정적이다.
오퍼레이션 컷이어로 제국 내 불순분자와 범죄조직이 제법 정리되었지, 반역으로 인한 숙청으로 귀족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있지, 걸출한 인재인 진 테일러의 등장과, 그의 활약으로 인한 전선의 사기진작까지!
자고로 내부가 안정적이게 되면 여력을 외부로 발출하는 법.
[이번 기회에 후방의 전력까지 상당수 동원해서 전면전을 시행하기로 폐하와 합의했네.]국지전이 아닌 전면전.
통합전쟁 이후 4백여 년간 쌓아왔던 인류의 저력을 폭발시키겠단 얘기였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선 자네도 해줄 일이 많아. 우선은 자네 전투식량이 많이 필요해.]“알겠습니다.”
은하 절반을 아우르는 제국의 군수체계에서 ‘많이’라는 단어는 정말 천문학적인 양을 말하는 것이다.
장관은 그런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진이 즉답을 하는 걸 보고 속으로 다소 놀랐다.
‘생각보다 생산력이 높은 건가.’
함선 개조 설계도에서 생산과 창고 시설을 크게 늘린 건 보아 알고 있었지만 즉답이라니.
‘녹음 좀 많이 해둬야지.’
정작 진은 전식 생산에 그 시설을 사용할 생각이 없지만 말이다.
[이유는 안 묻나?]“전쟁에 필요한 거 아닙니까?”
다른 업체들한테도 많이 생산하라 이를 게 뻔한데 뭘 새삼스레.
[그야 그렇긴 한데, 자네 건 달리 쓸 데가 있어서 말이지. 그건 나중에 말하고. 잠시 곁다리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우린 전면전의 방아쇠를 황제 폐하의 승하로 시작할 생각일세. 그 방식은 말이지……]장관이 이어서 꺼낸 말은, 진이 헛바람을 내뱉을 정도의 파격적인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죽는 건 죽는 건데 그 수단이 과격하기 그지없었다.
“지구가 침공당해 모조리 불태워지면서 폐하가 죽는다는 시나리오라고요?”
정보부와 함께하면서 전투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모는 많이 봤으나 이런 음모가적인 면은 처음이었다.
정보부가 이런 뒷공작도 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대놓고 자작극을 하겠단 말을 들으니 뭔가 장관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한 번에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지.]위기감을 느껴도 당장 코앞에 창칼을 겨누지 않는 한은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는 이들은 많다.
오랜 세월 동안 장벽 뒤에서 안빈낙도를 누리던 이들의 해이해진 정신에 경각심을 주려면 위협을 코앞에서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진짜로 침공을 하는 것처럼 꾸미겠단 얘기다. 수단은 당연히 지구를 덮고 있는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이건 지구 복구를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네.]말뚝이 뽑히긴 했으나 지구는 아직도 개판이었다. 4백 년 동안 엉망이었던 게 단시간에 멀쩡해질 리는 없는 노릇.
지구의 탄생 초기처럼 황량해진 걸 복구하는 건 둘째 치고, 정상화에 필요한 자재를 옮기는 것조차 힘들다. 당장 같은 정보부 사람들조차 속여야 하는 등 속일 눈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드로칸이 지구를 침공해 굳이 불태운 것으로 위장하는 거군요.”
[맞아. 그러면 지구는 황폐한 진면목을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어지고 전 국가적인 분노도 불러일으킬 수 있지.]또한 인류의 심장부가 타격 당했으니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고 각 군구의 자치권을 회수, 철권을 휘둘러 얼마든지 병력을 끌어 모을 명분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말씀하는 겁니까?”
[그야 자네도 이번 자작, 음, 단어가 조금 그러니 기만작전이라 하지. 이번 작전에 한 발 걸쳐야 되니까.]“제가요?”
장관은 씩 웃으면서 ‘자네 전적이 전적이잖은가. 귀족 잡아먹는 조사관 나으리.’라고 말했다.
“아. 허튼 짓을 할지도 모르는 귀족을 제 이름으로 찍어 누르겠단 거군요.”
인류의 심장부가 공격당했다는 것은 정계를 휩쓸 거대한 폭풍이 될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별별 짓거리가 자행될지도 모른다.
[정답일세. 지구가 불탄 마당에 허튼 생각을 할 머저리가 있을진 의문이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혹시라도 있을, 황제파를 이탈하거나 분탕을 칠 기회주의자를 저지할 강력한 패로 진을 쓸 셈이었다.
[편하게 휴가 즐긴다고 생각하게. 멍청한 귀족이 나오면 움직이게 될 테지만 그게 아니면 그냥 시간 죽이기니까.]***
인류 제국.
비록 모두가 행복하고 부유한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통합전쟁이란 아픈 역경을 딛고 일어나 수많은 소수종족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무려 은하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간의 제국이라는 점에서 자부심(또는 오만)을 갖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34세기 후반기의 어느 날.
인류의 자존심에 끔찍하고 참담한 상처를 입힐 사건이라고 또 하나 역사책에 기록될 일이 일어났다.
그날의 참사를 가장 먼저 목격한 곳은 지구의 위성이자 인류가 우주를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천체, 달이었다.
***
“저것 봐!”
“역시, 지구의 푸르름은 다른 곳과 달라!”
감히 발을 디딜 수 없어 신성시되기도 하는 푸르고 큼직한 구슬을 올려다보며 관광객들은 감탄을 터뜨렸다.
다른 테라포밍된 행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인류의 탄생지이며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란 건 그 무엇보다 인간들의 마음에 불꽃을 지피는 요소였다.
그런데…..
“어, 어어 뭐야!”
“어어어?”
“왜 저래?”
“무슨 일이야?”
“몰라.”
망원경에 눈을 붙이고 있던 이들의 갑작스런 경악한 비명에 모두가 어리둥절하는 것도 잠시.
“꺄아악!”
“세상에!”
높디높은 전망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같은 외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달에서 볼 수 없는 지구의 뒷면에서부터 시작된 검붉은 파도가 서서히 지구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흰 구름이 산산이 흩어지고 푸른 물이 말라 맨얼굴을 드러냈으며 초록 대지는 멀리 떨어진 달에서 보일 정도로 붉게 타들어갔다.
통합전쟁 이후 지구와 달의 거리는 훨씬 가까운 상태다. 달 표면의 모든 사람들이 이변을 알아채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으악! 피해!”
지구와 달을 연결하던 궤도 엘리베이터의 지구 쪽 밑동이 갑작스레 폭발했다. 길고 긴 구조체가 힘없이 출렁거리며 크고 작은 파편이 지구와 달 사이로 쏘아져나갔다.
파편들이 달의 얇은 대기를 관통하면서 소규모의 유성우를 만들어냈다. 큰 조각은 떠 있는 전광판 등에 충돌하기도 했다.
“대피! 모두 대피하세요!”
요란한 경보가 달의 대기를 울리며 달 표면 도시는 삽시간에 공황상태로 치달았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자신이 본 믿을 수 없는 일을 떠드느라 바빴고 성간 인터넷을 통해 상황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지구가 공격받았다!
지구가 불태워졌다!
지구 인구가 몰살당했다!
가면 갈수록 가중되어가는 소식의 심각함에 중앙군구는 물론이고 주변 군구들 역시 펄쩍 뛰며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중앙군구 군부들의 함선들이 위급 상황인 만큼 워프 금지 상태가 해제된 태양계로 급히 달려갔으나.
“맙소사.”
그들이 목격한 것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파이고 용암이 끓어 넘치며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지구뿐이었다.
[경고. 드로칸으로 추정되는 함선 포착.]“각하, 외계인입니다! 드로칸입니다!”
“당장 추격하라! 드로칸을 상대할 수 없는 함대는 지구로 접근해서 생존자부터 수색하고!”
저 멀리 특유의 진녹색으로 발광하는 낯선 형태의 드로칸 함선들이 포착되자 각 함대의 사령관들은 사색이 된 채로 악쓰듯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방을 쫓을 수 없었다. 드로칸 함대들이 검은 구멍을 열더니 그 안으로 쏙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저게 무슨?”
“투명화 기술인가? 스캔해라! 어서!”
그러나 스캔 결과는 ‘아무것도 없음.’이었다. 드로칸 함선이 사라진 곳으로 가보아도 그저 공허뿐이고 주변으로 포를 쏴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배경과 동화된 게 아니라 정말로 사라진 거였다.
“대체,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만신창이로 변한 지구만 덩그러니 남은 상황. 모두의 얼굴에는 허탈한 감정뿐이었다.
이 모든 변화가, 21대의 AI 중순양함이 지구를 떠나면서 원거리 홀로그램으로 연출한 가짜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
지구가 불태워졌다.
인류 제국의 심장이 관통 당했다.
인류의 요람에 살던 선량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모조리 참변을 당했다. 심지어 현 황제의 생사도 확인할 길이 없다.
문명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형태가 된 바, 분명 사망했으리라.
정계건 민간이건 모두가 이 소식에 들끓어 오르며 인간의 자존심이 갈갈이 찢겨나간 것을 절절히 느꼈다.
제국민들은 태어난 행성을 벗어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나 그렇다고 제국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소속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무능한 군부!
-세금은 세금대로 먹으면서 그걸 못 지키냐!
중앙군부는 뭘 하고 있었느냐며 민간에서의 비판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저희가 단독 입수한 지구의 참혹한……
-보다시피 어떤 문명의 흔적도 남지 않은 채로……
정보부의 조종 및 방관 하에 언론을 통해 지구의 참담한 상황이 널리 유포되었다.
-인류 역사에 남을 안타까운 사태에 대해 슬픔을 감출 수 없으며 이 같은 참사에……
벌떼같이 일어나 공기관의 무능을 비난할 귀족조차도 이례적으로 담담하게 조의와 지지만 표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저건 워프가 아니다!
-워프 섬광이 없다!
처음에는 무능한 군사기관에 화살이 날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로칸 함대가 워프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 감쪽같이 사라지는 영상이 유출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최전선의 워프 방해 역장을 회피할 수 있는 신기술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에 문명이 사라진 지 족히 수백 년은 지나 보이는 이유는, 드로칸이 물질 분해 광선이라는 것을 주 무기로 쓰기 때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전문가들이 TV와 인터넷에 나타나 떠들며 군부를 옹호하고 여러 의혹들을 적극 해소해 나갔다.
최전선의 정보는 통제되고 있었지만 들락거리는 용병, 강습병대, 수송업자 등의 수많은 입을 전부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진이 최전선에 가기 전에도 드로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듯, 인류가 어떤 적을 상대하고 있는지에 관한 건 약간의 정보가 풀려 있었다.
이는 정보부가 허용한 것이기도 했다. 너무 통제만 하면 쓸데없는 음모론이 돌기 때문에 진짜 정보를 약간 풀어 그것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수법이었다.
그래서 드로칸의 기술력이 인류보다 높다는 건 최전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대중들이 이번 사태가 ‘뭔진 모르지만 군부조차 막을 수 없던 사악한 외계인의 술수’라는 걸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자 풍선 효과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분노가 공기관의 무능함을 성토하는 쪽이 아니라 침공한 외계인에게로 돌려진 것이다.
[짐은, 아니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종족의 복수를 다짐하며 동시에 한 명의 아들로서 아비의 원수를 갚겠음을 선언하노라!]여기에, ‘새 황제’가 풍선처럼 부푼 인류의 분노에 바늘을 들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