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나홀로 적진-2
“최대 속력으로 돌진!”
진의 명령에 앤젤라는 충실히 따랐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가속하여 자기보다 훨씬 거대한 월드 엔진을 들이박았다.
“꽉 잡아!”
외부 카메라 화면은 마치 볼링공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끝에 카메라를 달아놓은 영상 같았다.
레일건이 만들어놓은 얕은(월드 엔진 전체와 비교해서)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충돌하자, 형용할 수 없는 굉음이 들려왔다.
선체가 흔들리자 팀원들이 각자 억눌린 신음을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슬라임은 몸을 동글게 말고 좋다고 통통 튀어 다녔다.
“와.”
진은 타일 보호 기능으로 인해 바닥과 일체화된 의자를 꽉 잡은 채 화면으로 보이는 충돌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충돌과 함께 순간적으로 화면이 빛으로 덮였다가 자욱한 먼지와 파편으로 암전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먼지가 흩어지며 드러난 광경은 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었다.
카메라 화면 중 선체 전면에 위치한 것들은 월드 엔진 내부 모습을, 측면은 검은 절벽을 보여주었고, 후면은 어둑한 우주를 보여주었다.
젤리를 푹 한 숟갈 떠낸 것 같이 둥글고 거대한 크레이터 한가운데에 선체가 박힌 것이다.
레일건이 입힌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대했다. 같은 체급의 다른 구축함이 들이박아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표면이 아니라 내부로 파고들어가 충돌한 것이고, 선내를 시설로 꽉 채워서 동급 구축함보다 훨씬 무거웠으며, 무엇보다 부서지지 않았다.
물체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이 부서지면 그만큼 운동에너지는 손실된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호는 금강불괴.
결과적으로 월드 엔진에게 이론상 가할 수 있는 운동에너지의 100퍼센트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었다.
“와, 쩐다.”
“함장, 못 본 사이 많이 과격해졌구나. 아, 원래부터 그랬나?”
니베아와 네브라가 간신히 벽 손잡이를 잡은 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런 덴 질량공격이 최고거든.”
아무리 레일건이 강력하다 한들, 그것만으로 지름 3천km에 달하는 월드 엔진을 완전히 못쓰게 만드는 건 탄환 낭비다.
‘쯧, 마음 같아서는 초광속으로 들이박고 싶지만……’
톤수가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중력장 실드 없이 초광속으로 들이박는다면, 거대한 가스행성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 여파는 변명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고.
초광속 충돌을 막아내려면 중력장 실드만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거 없이 초광속 질주 자체가 성립되질 않으므로 행성이라는 넓은 영역에 힘들여 설치해 놓은 곳은 전무.
21세기에서 일개 개인의 손에 핵병기가 들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단순 핵병기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무기라 해도 손색이 없다.
‘좋은 기술력 운운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진은 변명하기 힘든 수법을 사용해 남들의 경계를 사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 삼 할의 힘은 숨기라는 고대 어록(?)을 진은 충실하게 따라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 극단적인 방식을 쓸 필요도 아직 없고.
“앤젤라, 피해는 얼마나 들어갔어?”
[재료공학계에 발표하면 인기인이 될 정도로요.]초광속은 아니지만 나름 최대 속력으로 들이박았다. 그 결과는 월드 엔진의 15%가 날아가는 것이었다.
“의외로 별로네? 적어도 3분의 1은 날아갈 줄 알았는데.”
10km크기의 운석이 고작 초속 수십 m로 들이박는 게 대충 200km 가까운 크기의 크레이터를 만든다. 그것도 스스로 붕괴되는 동시에 고스란히 충돌지점 반대편 허공으로 에너지가 분산되어도.
엔터프라이즈의 속력이라면 지구 표면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고도 태평양 크기만큼의 크레이터는 만들고도 남지 않을까.
‘하긴, 지구랑 드로칸 재질이랑 다르니까.’
앤젤라는 실험으로 측정해본 드로칸 함선 재질로 돌린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가 다르다며, 아마 충돌 순간에 자재의 물성이 변한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냈다.
“제 생각도 비슷해요. 레이저로 열에너지를 가하는 과정하고 운동에너지에 의해 열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이 다소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드로칸의 기술은 고체의 결합에너지와 각 원자의 강력에 의존하는데, 충돌 때문에 입자 밀도가 높아진 것이 에너지 전달로 인한 결합력 약화보다 먼저 적용되면서 미시세계에서의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에나와 파비안도 각자 의견을 내놓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한 번 더 들이박을 수 있겠어?”
[그건 무리일 거예요.]아직 중심부는 멀쩡했다.
크레이터 표면을 가장자리에서부터 덮어가는 녹색 광채가 그걸 증명했다.
다시 한 번 충돌하겠다고 밖으로 나갔을 때 중력장 실드를 두르면 충돌 수법은 그대로 봉인된다.
“아, 그렇겠네. 그러면-”
쿵, 쿠쿵
월드 엔진에 반쯤 박힌 엔터프라이즈 호가 흔들렸다. 밖에서 공격이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과연 저 드로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하며 진은 말을 마저 했다.
“-직접 침투해서 중앙 핵을 날려버리고 와야겠다.”
“괜찮으시겠어요? 워프라도 하면……”
진은 풋하고 웃었다.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거 같은데?”
진의 엉뚱한 말에 팀원들이 못 말린다며 피식거렸다.
***
거대한 충돌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월드 엔진. 부피의 15%가 날아가긴 했지만 견고하게 만들어진 중앙 구역 보호 장치는 간신히 버텨냈다.
물론 멀쩡하진 않았다.
간신히 버텨냈단 말은 한계에 다다랐단 얘기니까. 다시 한 번 같은 충돌이 발생한다면 월드 엔진은 끝장이다.
어찌어찌 버티고 있는 각종 구조물이 일제히 붕괴되면서 중심핵까지 충격을 받으리라.
“중력장을 펼쳐!”
상대방이 충각 공격을 했다는 걸 안 수석 엔지니어가 악에 받쳐 고함을 외쳤다.
중앙 핵 엔진실의 엔지니어들이 황망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완료했습니다!”
더 이상의 충돌 공격은 불가능할 거라는 엔진실에서의 보고에 사령부는 잠시 숨통이 트였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적이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멍청한 놈이로구나. 당장 죽여! 함선은 단단해도 한낱 그릇된 종족 따위가 분해 광선을 막진……”
“큰일났습니다! 놈이, 놈에게 저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답니다!”
절망스런 보고가 드로칸들의 숨통을 다시 죄이기 시작했다.
***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막아라! 목숨을 던져서라도 막아!”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쏴도……!”
주변은 시끄러웠다.
드로칸의 목소리는 듣기 싫었다.
쇳조각을 삼킨 것 같은 거친 음성 합성 장치 소리는 물론이고 육성 역시 묘하게 질척한 소리가 들렸다.
또한 진녹색과 연녹색 사이의 스펙트럼을 오가는 광선들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귀를 긁어대 마치 요란한 공장 한복판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부릉!
마지막으로 그 모든 소리를 오른손에 쥔 애병의 소리가 반쯤 덮었다.
거대 병기도 편하게 오가도록 위해서인지 월드 엔진의 내부 통로는 널찍했다. 그 통로를 드로칸 보병들이 중구난방이지만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겠답시고 앞을 가로막는 문어대가리를 뚫으며 돌진하고 있었다.
“비켜비켜! 다 비켜 이것들아!”
숨을 들이마시며 팔에 힘을 주었다.
팔뚝을 흐르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느낌을 느끼며 무기를 힘껏 휘둘렀다
겁도 없이 다가온 덩치 큰 전사 하나가 섬뜩한 쇳소리를 내고 두 동강이 나 바닥을 뒹굴었다.
“으아악!”
“피해!”
방어막만 믿고 들이댄 근접전 전사들을 썰어 넘긴 뒤 그대로 원거리진에 들이박았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체인소드의 단분자 칼날이 드로칸 병사들의 방어막과 몸체를 동시에 두부처럼 갈라냈다.
본디 드로칸 무기인 페이즈블레이드에 있던 방어막에 부가피해가 들어가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를 통해 고스란히 체인소드에 생겨난 것이다.
-아이템 정보 : 분자 및 원자의 결합을 강제로 찢어발길 수 있는 단분자 칼날로 기존 칼날을 대체한 체인소드. 인간이 아닌 종족 및 에너지 장막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강력한 근접전 무기이나, 적용된 수법이 미숙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단분자 칼날이 무뎌지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쓰임처 : 무기(9티어), 공구, 투척 등 [더 많은 쓰임처를 알려면 클릭]
나는 몸을 던지며 한 녀석을 또 베어냈고, 동시에 왼손 검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40mm 권총이 불을 뿜자 펑펑하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드로칸 보병 실드에 부딪혀 터졌다. 주변의 드로칸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아쉽게도 실질적인 피해는 그리 주지 못하지만, 무한탄창을 이용한 연속적인 굉음과 약간의 폭발로 드로칸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데는 탁월했다.
예전이었다면 내 무장은 이 둘을 중심으로 바꿔치기를 해가며 싸웠을 것이지만……
브주우우우웅!
지금의 나는 동시에 세 개의 무기를 운용 가능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무기 중 가장 DPS가 높은 무기가 내 한쪽 어깨를 묵직하게 만들고 있었다.
블랙 파워 아머에 약간의 개조를 가해, 등 부분에 일자 형태와 기역자 형태를 오가는 경첩 같은 간단한 구조물을 만들어 어나힐레이션을 장착한 것이다.
왜 양쪽 어깨가 아니냐면, 오른쪽은 칼 휘두르는데 거치적거려서다. ……생각해 보니까 쌍 어나힐레이션도 괜찮을 거 같다. 나중에 해봐야지.
“피해라!”
드로칸들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닌데도 어나힐레이션이 반짝거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엎드리고 몸을 날리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다.
월드 엔진에 진입한 초반에는 어나힐레이션을 쓰지 않았다.
왜냐면 예전에 방어막 함선 내에서 바위인간에게 어나힐레이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쏘자마자 지워지는 게 보통인데 한 놈당 무려 1.5초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물론 바위인간은 건축재질과 비슷한 몸체라 그런 것이었지만, 드로칸은 방어막 하나는 제대로 만드는 것들이라 보병용이라고 약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어나힐레이션으로 한 놈 죽이는 데 드는 시간이 0.5초 이상은 걸릴 거 같아, 차라리 칼로 두셋씩 썰어 넘기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놈들이 하도 꾸역꾸역 몰려오는 걸 보고 있자니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몰이사냥에는 광역기라는 법칙이 뇌리에 박힌 게이머의 충동은 내게 하여금 길쭉한 원통을 꺼내도록 만들었고, 드로칸 보병들의 방어막이 함선처럼 강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피해!”
“으아!”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흰 빛기둥이 어두운 통로를 밝힐 때마다 수십에 달하는 보병들이 세상에서 지워졌다.
‘그래도 나름 실드가 튼튼하네.’
제국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개인 실드 장치 중 최고급품이라 한들, 이 초고열 레이저를 전혀 막지 못하고 곧바로 깨져나간다.
하지만 드로칸 보병이 가진 실드는 그보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깨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한 0.05초 정도?
오감 강화 장치가 없었더라면 그 차이도 잘 못 느꼈을 미미한 수치지만, 모든 드로칸 보병이 제국의 최고급 실드 장치보다 좋은 걸 끼고 있단 얘기다.
최전선에서야 드로칸 병사의 희생을 줄이려는 건지 로봇과 바위인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드로칸 성국의 중심부로 가면 갈수록 이런 정예병들이 계속 등장하겠지.
때문에 내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반드시 월드 엔진을 끝장내야 돼.’
월드 엔진은 사령부이자 요새다.
전시인 지금은 일반 행성보다 이런 중요 군사시설에 병사들이 많이 모여 있을 게 뻔하다.
그러므로 인류의 피해를 줄이려면 최소한 이런 곳을 집중 파괴하여 적의 전력을 줄여야 한다.
“……”
헬멧 내부 화면에서 보이는 드로칸 함선 내부는 계속 작렬하는 녹색 빛에도 여전히 어두컴컴해 화면에 내 얼굴이 약간 비쳐 보였다.
전투의 희열에 물들어 사나운 웃음을 지은 전사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금방 씁쓸함을 머금었다.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머리로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싸움꾼 다 됐네.’
아마 상대방이 인간이 아니라 더욱 거리낌이 없는 걸지도 모른다. 오퍼레이션 컷이어의 스타트를 끊을 때도 표정이 저랬거든.
‘전쟁을 얼른 끝내야겠어.’
나도 모르게 싸움에 중독되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무감정하고 계산적인 빙의 전이 더 나은 것 같다. 적어도 과몰입하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전쟁을 종결시키고 저 너머의 온갖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서지, 싸움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아니, 느낄 수는 있겠지만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취하지는 말자.
“비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부지런히 길을 뚫어댔다.